커피 중용(中庸)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이 마신 커피가 무려 640잔이란다. 매주 12번 이상 마신 셈인데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는 쌀밥을 먹은 횟수(7회)보다 훨씬 큰 수치이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우리나라가 커피를 수입하는 데 지불한 돈이 무려 6,100억원에 달한다. 배달민족은 어쩌다 이처럼 커피에 탐닉하게 됐을까? 어려서 내가 발가벗고 멱을 감던 동해안 안목 해변이 유명한 카페 거리로 변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내가 미국에 유학하기 전인 1970년대에는 카페가 아니라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작은 찻잔에 담겨 나오던 커피는 그저 두어 모금이면 바닥을 드러냈다. 이에 비하면 미국 커피 인심은 후하기 짝이 없었다. 커다란 머그컵 그득히 담아주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어느 날 나는 심상찮은 손 떨림을 경험했다. 그 후로 나는 커피를 입에 대지 않는다.
커피가 몸에 좋으냐 나쁘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루에 커피를 6잔 이상 마시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최대 40%나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루 3~5잔 정도의 커피가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커피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우리 몸에 지방이 축적되는 걸 억제하는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커피에는 무려 1,000종류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카페인처럼 이른바 2차 대사 물질이다. 이는 식물의 성장과 번식에 필요한 1차 대사 물질과 달리 대부분 곤충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질이다. 커피의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들어주는 주체지만 지나친 섭취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설명했다.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고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을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커피도 중독(中毒)은 피하고 중용(中庸)을 취해야 한다.
※ 최재천 : 국립생태원장, 이화여대 석좌교수
<출처 : 조선일보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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