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

역대 보이명차

청원1 2008. 10. 26. 09:11

 

<역대 보이명차> 

유명생산지로는 운남성 일대이며 특히 운남 서쌍판납의 6대 다산에서 생산된 차가 유명하다. 우량품종으로 운남 대엽종이 이용되며

신선한 잎을 채취하여 살청 하고 비빈 후 퇴적하여 곰팡이 균을 이용해 발효 가공하거나 다시 증기로 쪄서 압력을 주어 재가공한

긴압차가 있다. 긴압차의 형태로는 사발 모양의 타차, 버섯모양의 긴차, 원형인 병차와 칠자병차, 벽돌모양의 전차가 있다.

현재 [중국농업과학원차엽연구소]에 가장 오래된 청대의 금과공다가 있고 최근에는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일부 수장가들에 의해 보관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역대 보이 명차들이 있다.



금과공다(金瓜貢茶)

"여름에는 용정을 마시고 겨울에는 보이를 마신다"는 궁전 속담이 있듯, 청대의 최상품차는 보이차였다. 최상품 차로서의 보이차는

모두 어린 새싹의 여아차(女兒茶)로 만들어지는데, 여아차란 이족(夷族)의 미혼소녀들이 딴 아차(芽茶)를 먼저 옷속에 넣은 다음

일정한 수량으로 쌓인 후 대나무 광주리에 꺼내 놓는 차를 말한다.

 

여아차로 크기가 서로 다른 대, 중, 소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는데, 큰 것은 사람의 머리모양 같아서 인두차(人頭茶)라고도 불리어졌다. 1963년 북경고궁에는 청나라시대 만들어진 2톤 남짓의 보이공다가 보존되어 있었는데, 보존이 아주 잘되어 변질되지 않았으며, 약간을 끓여보니 탕색이 있고 차의 맛이 깊고 담백하다고 하였다. 중국정부는 많은 보이공다를 부순후 기타 다른 보이차속에 섞어 팔았는데

비교적 큰 금과형 공다를 유일하게 남겨서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에 보존하였다. 이 금과공다는 다청이 굵고 단단하며 약 100년 전후가 된 차이다.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

청 중기 보이차는 이무산(易武山)과 의방다산(倚邦茶山)의 차 품종이 으뜸이었다. 의방다산은 보이공차를 만드는 소엽종의 차이고

이무산은 오래 묵을수록 향기로운 대엽종 보이차의 품종이었다. 광서(光緖)중기 이무진과 의방다구 사이로 도로가 연결되어 이 시기

차를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두 곳의 차산지에 동시에 차 공장을 설치하였다. 광서(光緖)초년에 창설된 원창호 역시 광서 중기 이무 큰 거리에 차 공장 분점을 개설하고 복원창호 차가게라고 이름짓고 이무산의 대엽종 보이차엽을 전문적으로 사용하여 정선하여 만든 제품을 제조하여 국내와 해외에 판매 하였다.

 

그러나 광서 말년 운남 남부의 모든 차가게와 차공장이 지방의 치안부재와 질병유행으로 휴업하였는데 의방의 원창호와 이무의 복원창호도 마찬가지고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원창호는 폐업하고 이무의 복원창호는 민국 10년 전후에 다시 개업하여 운영하였다. 복원창원차는 광서년간에 제조한 백년전 보이차로 제일 우수한 대엽종 보이차청을 채취하여 만들어 차엽이 두텁고 크며 가지가 넓고 엷으며

밤색에 차기(茶氣)는 강하여 이무산 보이차의 특성을 충분히 가졌는데 남색 내비로 포장된 차는 비교적 양기(陽氣)가 강하며 백색 내비로 된 차는 여리고 부드럽다. 현재는 당시의 원창호 보이차는 볼수 없고 복원창호 보이원차가 남아서 일부 수장가에게 보관되고 있다.



동경원차(同慶圓茶)

동경호차 가게는 1736년 이무에 모차공장을 설치하였는데 공장규모가 크고 산량도 아주 많았으며, 그 역사도 오래되어 200여년을 자랑하였다. 동경노호로 대표되는 용마(龍馬)상표의 내표, 내비는 200년을 사용한 후 1920년에 쌍사기도(雙獅旗圖)로 고쳤다. 그 후 중국정부가 운남의 모든 차가게를 국유화 시킬때 휴업을 하였다. 동경호 차가게의 보이차는 당시 품질이 가장 좋은차로 알려졌다.

 

동경노호의 용마상표 원다는 종류가 많았는데 시장에서 살수 있는 제품들은 제일 오래된 2.3종의 보이차 제품중 하나이며 그 차의 햇수는 근 100년에 가깝기 때문에 차를 파는 상인들한테서 청말기 국보급의 백년보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동경노호원차는 매 하나의 통마다 죽순껍질 포장이 되어 있는데 이런 죽순껍질은 운남의 큰 대나무의 죽순줄기 겉껍데기에서 생산된다. 운남은 토지가 비옥하여 대나무가 굵고 단단하며 죽순과 죽순껍질이 크면서 인성이 특히 강하다. 또한 죽순껍질의 섬유는 강인하고 내구력이 있어 못쓰게 되거나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으며 동시에 습기를 방지하고 잡 냄새를 여과시키는 기능이 있어 보이차를 포장하는데 제일 적당한 재료로 근 100년이 된 보이차지만 완전하게 보관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동경노호원차는 대만의 보이차 수장가들이 보관하고 있다.



경창원차(敬昌圓茶)

경창원차(경창호)는 만새다산의 제일 좋은 차잎을 채집하여 만들고, 대엽종 차나무이며 가지는 비대하고 차잎의 크기는 넓고 크며 기름지고 황금빛의 솜털이 있다. 만새다산은 라오스 변경에 위치하는데 차의 성질은 이무다산 다음이다. 모든 민간 차 가게들은 차 제품 중에서 동경호와 경창원차(경창호)의 제조공정과 기술이 가정 정교하고 우수하다고 추천한다.

병차의 직경이 20.5cm 이며 무게는 약 330g으로 녹나무 향기가 나고 보이차 제품중 가장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민국 30년대 제품이다.



강성원차(江城圓茶)

강성원차(강성호)는 강성현의 보이차 제품으로 대표적인 강성의 보이차로 경창원차와 강성호 보이원차가 있다. 직경 19.5cm, 무게 약 320g으로 가지는 납짝하고 길며 빛깔은 밤색이 나는 황색이고 차청은 반지르하다. 대엽종이며 약한 녹나무향이다.

경창원차의 자매차로 민국 30년대 제품이라는 평가도 있고, 마시면 느낌이 새롭고 그 내표의 그림과 문자에 오성이 그려져 있거나

"포장을 참답게 하고 경제를 번영 시키자" 는 어구에서 나타난 사회주의적 색채를 보아 50년대 제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양빙원차(楊聘圓茶)

양빙호(楊聘號) 차가게는 대략 민국10년 의방진의 큰 거리에서 개점하였다. 그러나 언제 폐점 했는지는 자료가 없고 다만 10여개의 원차만이 남아 있어 양빙호 차 가게의 역사적 증거물이 되었다. 직경 19cm, 무게 약 280g 이며 매 병(餠) 마다 5 x 6.8cm의 내비가 한 장씩 있고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된 문자 속에는 양빙호등 33자가 적혀 있다. 병차의 표면 색깔은 어두운 밤색이고 차의 가지는 가늘고 작으면서 줄기가 있으며 누른 싹이 반지르르 하다. 차탕은 맑고 담박하고 약간 신맛이 나서 전형적인 의방 소엽종 보이차의 특성을 지닌다.



동흥원차(同興圓茶)

동흥호(同興號)는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동흥초기원차로써 민국10년부터 23년 사이의 제품이고, 다른 한가지는 동흥 후기원차로써 민국 23년부터 38년 사이의 제품이다. 두가지 모두 의방다산의 차제품이며 차공장에서 나온 기간이 근 20년 간의 차이가 나지만 두 가지 차의 성질이 서로 같아서 동흥호 차가게의 상품관리가 아주 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창원차(同昌圓茶)

동창호(同昌號)는 1869년에 창립되어 청나라 말기에 폐업하였다. 그후 상인인 황문흥(黃文興)이 차가게를 인수받아 운영하였는데, 동창호의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다가 민국 38년에 동창황기(同昌黃記)로 바뀌면서 주인인 황문흥도 황금당으로 바뀌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황문흥의 동창원차, 동창황기람(藍)원차, 동창황기홍(紅)원차가 있다.



정흥원차(鼎興圓茶)

정흥호(鼎興號)의 차가게는 고급 보이차를 생산하여 유명하였다. 현재 이 가게의 남겨져 있는 제품은 많지 않다 원차 세 가지와 긴압차가 있는데, 원차는 내비의 색깔로 구분한다. 원차의 내비 색깔은 붉은색, 남색, 자색의 서로 다른 세 가지 글자색인데 붉은 색과 남색의 글자로 된 내지가 있는 두 가지 원차는 품질이 비슷하며, 경미하게 익힌 차청으로 야성(野性)의 녹나무 향이 있고, 보이차 중 가장 진한 차 향기를 지닌 맹해 주위의 소엽종 다원에서 나온 것으로 유락산남산(諛樂山南山)기슭 일대의 소엽종 차청이다. 자색의 글자로 된 내비가 있는 것은 원차의 품질이 앞의 두가지 차보다 떨어진다. 정흥원차는 맛이 담백하고 약간 신맛을 띠고 차찌꺼기, 수성(水性)으로 볼 때 의방보이차의 특색으로 볼 수 있다.



정흥긴차(鼎興緊茶)

불해(佛海)지구의 정흥차 가게에서 생산한 것으로, 불해는 지금의 보이차 생산 중심인 맹해이고 정흥 차가게는 1949년전의 상회이며

운남에서 명성이 있었고 지금도 이 차가게에서 만들었던 좋은 원차들이 남아 있다. 긴차의 표기에는 별과 달의 그림이 있고 당시 생산된 제품은 서북성에 운반되어 이슬람교의 변강 민족에게 팔렸고 동시에 영문으로 써서 먼 중동의 회교도 국가에까지 운반되었다.

탕색은 짙은 밤색이며 차가루가 얼마간 있어 차를 우려 마실 때는 여과 시켜야 한다. 수성이 순수하고 두터우며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감각이 있고, 찻물이 입에 들어가면 두텁고 유순하며 짙고 매끌매끌하며 순수하고 달콤하며 상쾌하다. 차향은 침향 향기가 짙고 그 속에 담박한 녹나무향기가 있다.



맹경긴차(맹景緊茶)

맹경긴차는 맹농(맹弄)지방의 맹경 차가게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맹농은 운남성 보이진(鎭)의 동북방향에 있는 맹농촌 인데 맹고(맹庫), 봉산(鳳山)과 더불어 운남성 중부의 차산지이다. 맹경긴차는 늙은 차나무의 쇄청한 생엽 으로 만들며 건조한 창고에서 오랫동안 저장한 것으로 차 덩어리는 이미 말라 터져서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되었고 어떤 것은 껍질이 말라 떨어져 있다. 무게는 200g정도이고, 우려내면 향기롭고 잡냄새가 없으나 늙은 차청이라서 오랫동안 우려 낼수는 없다. 탕색은 붉은 밤색이며, 비교적 가루가 많아 우려 낼 때 여과시켜야 한다.



반선긴차(班禪緊茶)

대리(大理)하관에 차 공장을 건설한 주요 원인은 보이차를 티베트등 서역 지구에 운반하여 판매하기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티베트는 차 마시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어 있는데 순수하고 짙은 맛이 나며 강한 생긴차(生緊茶)가 그들의 식습관과 어울렸다. 그러나 70년대 쾌속 발효제다 공정의 연구가 성공한 뒤로 그러한 맛의 보이차 맛을 잃어 버렸는데 1980년 10월 20일 티벳 종교 지도자 반선이 친히 하관의 차공장에 와서 참관하고 옛 보이차 맛을 아쉬워 하자 하관 차공장에서 반선을 위해 한 차례의 생긴차를 제조하여 "보염패(寶焰牌)"라는 내비를 붙여 생산하였다. 티벳 외의 대외 판매는 하지 않았으나, 몇 년 지난 후 재고품이 소량 남아 있다가 일부 수장가들에게 판매 되었다. 반선긴차는 새 차나무 관목의 2급 아래 차청을 사용하였고 차 덩어리가 매우 단단하며 덩어리 표면은 짙은 밤색이고 속은 푸른 밤색이다. 푸른잎의 향기를 보존하였고 수성이 엷고 날카로우며 쓰고 떫은 전형적인 생보이차의 제품이다. 나중에 티벳트 지역의 요구에 따라 80년대말에 「운남성차수출입공사」하관 차공장에서 육속 화염패(火焰牌) 반선긴차를 제다하여 서북지구에 공급하였고 현재 하관 차공장에서 일정한 수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가이흥전차(可以興茶)

1926년에서 1941년 사이의 차 가게로써 현재 보이전차만이 남아 있다. 가이흥전차(可以興茶)의 의의는 전차의 무게가 10량전 이라는

실물의 표본이며, 보이차청으로 이름난 이무다산과 불해다산중 보드랍고 검은 가지를 지닌 최상의 불해 보이차청으로 만들어졌고, 현재 보이전차의 역사를 1967년부터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가이흥호 전차를 보면 초기에도 전차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인(紅印)

1940년대에 범화균(范和鈞)선생이 중국다업공사에 초빙되어 맹해에 차 공장 건물을 세우고 민간에서 차청을 사들여 몇 가지 보이차를 시험 제다 하여 성공하였는데, 그중 홍인보이원차가 있다. 홍인은 글자 그대로 붉은 인기(印記)이다. 차 덩이의 겉면 종이 정면에 "8중차(8中茶)의 중차공사(中茶公司) 표지가 찍혀있고 가운데 붉은 색으로 된차(茶)자가 찍혀 있어 이후 속칭으로 홍인 이라 불리었다. 홍인보이원차는 범화균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맹해 일대의 제일 좋은 차청으로 200여년의 보이 최상품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정세의 불안정과 중국인민공화국의 건립으로 숙원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사실상 현대 보이 최상품차이다. 홍인은 1940년대 만들어진 초기홍인과 1950년대 만들어진 후기 홍인이 있다. 초기홍인은 어린 차청을 사용하였으며 난초 향기가 있고, 후기홍인은 중장년급의 차청으로 만들었으며 짙은 녹나무 향기가 있다.



녹인(綠印)

녹인보이는 홍인보이와 마찬가지로 포장 종이에 찍힌 8중차 표기의 가운데 찍힌 차(茶)자가 녹색이라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홍인의

자매 제품으로 40년대 초기 녹인과 50년대 후기 녹인의 두 가지가 있는데. 범화균 선생이 맹랍지방의 제일 좋은 차청으로 홍인을 만들고 다시 맹해 부근의 좋은 차청을 사들여 녹인을 제다 하였다. 초기녹인을 "홍인갑을원차" 혹은 "갑을녹인"이라고도 하는데 초기홍인 보다는 그 맛이 떨어지나 후기홍인 보다는 부드럽고 떫지도 않다. 후기녹인은 "포장지 없는 녹인" "대자녹인(大字綠印)" "소자녹인(小字綠印)"등 세 가지이다.



황인(黃印)

50년대말 후기홍인과 후기녹인 이외에 중차패 표지 가운데 차(茶)자가 황색인 제품이 있었는데 이것이 황인원차 이다. 덩어리가 큰 대황인과 덩어리가 작은 소황인이 있다. 황인은 현재 칠자보이병차의 전신인며 배합차청 보이차 제품의 시작으로 제다 과정 중에서 상당한 정도의 발효 효과를 내며, 덩어리를 단단하게 압축하였다.



원차철병(圓茶鐵餠)

50년대 초 중국 차엽 회사에서 소련과 신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판매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워 차 교역을 확대하게 되자 하관 차 공장에서 러시아의 원조를 받아 공장 건설을 증축하였고 전통적인 보이차 압조 기술을 개선 하기 위하여 전부가 금속으로 만든 압축 모형을 설계하여 개량하였다. 이 새로운 압축 모형을 사용하여 특별히 맹해 차 공장의 차청을 가져다가 처음으로 원차원반을 압축 제조하였다. 그러나 이 원차원반은 덩어리가 너무 단단하여 쉽게 발효되지 않아 이후 새로운 금속모형의 생산을 중지하였고 이 때 생산된 원차원반은 하관 차공장의 전무후무한 원차원반 제품이 되었다.

 

같은 년대의 다른 차보다 발효 속도가 느려 새로운 맛이 나며 신선하고 달콤하며, 향기는 맑은 녹나무 향기가 난다. 건조한 창고에서 변질되지 않은 것은 차 덩어리 표면이 고르게 금황색을 띠고 반들반들 윤이 나며 차 덩어리의 가장자리는 일부분이 떨어져서 울퉁불퉁하다. 변질된 차는 표면이 어둡고 진한 색이고 반들거림이 부족하며 차 덩어리가 평평하고 가장자리가 균일하고 단단하며 두텁고 덩어리를 쪼개어보면 속층에 검고 푸른곰팡이가 있다. 덩어리가 느슨한 편이고 검은 밤색이 나며 깨져 떨어져 있는 것은 습기찬 창고에서 보관하였기 때문이다.



칠자철병(七子鐵餠)

"칠자원반"이라고도 하며 60년대 초기 곤명 차 공장에서 천주머니로 된 압축 모형 기계를 바꾸어 하관의 원차원반처럼 전부 금속으로 된 압축 모형을 사용하여 "칠자원반보이차"를 압축 제조하였다. 칠자원반은 내비와 통포장이 없으며, 차청은 곤명 일대의 차청으로 추정되고 차 찌꺼기로 보아 중장기에 속하며 품질은 좋고 차의 가지는 길고 가늘고, 균일하며 생차 제다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탕색은 검은색이고 수성은 두텁고 매끌매끌하며 뒷맛이 달고 물맛이 짙으며 차의 기는 강하고 담박한 녹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