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최종태 한국가톨릭미술협회 회장“관음의 미소는 성모를 닮았다”
성모 마리아를 닮은 얼굴로 눈길을 끄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의 관음상은 조각가 최종태(68)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품이다. 최 교수는 소녀상과 성모상에서 일가를 이룬 조각가로 한국가톨릭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작업실 한면을 차지하고 있는 최씨의 작품들 맨 앞에는 길상사 관음상을 3분의 2 규모로 축소해 만든 불상과, 같은 크기의 예수상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객을 맞고 있었다.
-불상 제작은 처음이시지요.
=개인적으로 반가사유상을 만들어 본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사찰에 봉안되는 불상을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지난 가을 법정
스님이 집으로 찾아와서 말씀하시기에 만들게 됐지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데 불상 제작을 맡으신 계기는 뭡니까.
=조각을 하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실 한국 전통 불상조각이었어요. 특히 창작에 많은 한계를 느끼던 30대 초반에 본 백제 반가사유상에서 막혔던 길을 뚫어주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뿐 아니라 석굴암이나 다른 삼국시대 불상들은 제 젊은 날에 결정적인 감화를 준 작품들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불상 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결과겠지요.
-주위의 우려나 만류는 없었나요.
=제작 전에 주교회의를 통해서 제작할 뜻을 전했는데 다들 반겨하는 분위기더군요. 천주교 미술을 담당하는 장익 주교는 오히려 "잡음이 생기더라도 마음쓰지 말라"는 격려까지 해주셨고. 오히려 가족들이 구설수에 휘말릴까봐 걱정을 한 편이지요. 그런데 아마 누가 말렸어도 하고야 말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준비도 적당했고 시대적인 분위기도 성숙했다고 생각했고요.
-관음상과 성모상의 미소가 참 비슷해요.
=초기에 주로 제작했던 소녀상과 성모상, 그리고 관음상은 사실 같은 연결선상에 있습니다. 저한테는 해맑은 소녀와 성모 마리아, 관음보살이 한 원 안에 있을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見性)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같은
울타리라고 봐요. 관음의 이미지와 성모의 이미지가 당연히 겹칠 수밖에요. 이런 작업이 작으나마 종교간의 벽을 허무는 결과를 낳은 거겠지요.
-길상사나 불교 신도들에게는 좀 낯설어 보일 듯도 한데요.
=법정 스님께서 완성 작품을 보더니 따로 하나 더 부탁하시더군요. 그래서 제 작업실에 있는 크기의 작품을 스님의 강원도 산골 거처로 보냈습니다. 얼마 전에 사진과 함께 편지가 한통 왔습니다. 아침 햇살에는 금불 같기도 하고 오후 역광 때는 목불 같기도 하다고 흡족해 하십디다. 봉안집회 때 신도들도 이상하게 보지 않던데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불상 제작을 계속할 계획이 있으세요.
=소원을 이뤘으니 미련도 없지만, 아마 원하더라도 할 기회가 없을 거예요. 아직 다른 절에서는 제가 만든 관음상을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길상사와 법정 스님을 못 만났더라면 불상을 만들고자 하는 제 소망을 아마 평생 이루지 못했겠지요. 법정 스님의 결단에 탄복이 나올 뿐입니다.
-종교간의 벽이 여전히 공고하다고 느끼세요.
=이제 지역 갈등에다가 종교 갈등까지 더해지는 양상이에요. 계속 이렇게 나가면 우리나라 큰일납니다. 평화와 사랑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종교인들이 서로 싸운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에요. 기독교만 해도 한국에 진정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유교나 불교, 노장 사상 같은 전통 사상을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신부들이 불경이나 노장사상 번역 작업들을 하는 것은 참 반갑게 느껴집니다.
김은형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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