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에 비친.....

[스크랩] [茶器의 미학①] 향과 멋을담는 찻그릇

청원1 2017. 11. 15. 06:19
[茶器의 미학①] 향과 멋을담는 찻그릇  

'차, 정신문화의 꽃'


▲ 잎차용다기. 다관과 찻잔 / 변희석 기자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인 차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중의 하나이다. 중국에 기원을 둔 차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동양 각지와 유럽에 전래되면서 지역마다 독특한 차 문화를 이루었다. 차는 단순히 마실거리의 차원을 넘어 서양에서는 사교문화로 동양에서는 정신문화로 꽃피웠다. 특히 동양에서 차는 예술적인 규율안에서 격식있게 마시는 의식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를 다도(茶道), 다례(茶禮), 다예(茶藝), 다법(茶法)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내는 이의 철학적 태도를 반영하기도 했다.

 

차는 크게 찻잎의 원형을 살려 가공한 잎차와 찻잎을 미세한 분말 상태로 만들어 가공한 가루차로 나눈다. 이런 차의 향과 멋을 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그릇으로는 잎차를 우려 마실 때 쓰는 다관(차주전자)과 찻잔, 그리고 가루차를 타서 마시는데 사용하는 찻사발(다완)이 있다. 이같은 찻잔과 다관, 찻사발을 좁은 의미에서 다기(茶器) 또는 찻그릇이라 하고 기타 찻일에 쓰이는 다른 도구들을 다구(茶具)라고 한다. 이 글의 주제가 “다기의 미학”에 대해 알아 보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동양의 정신문화에 녹아있는 ‘차의 정신’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동양에서의 차의 역사

동양에서 차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전기호(古典嗜好) 음료라고 말할 수 있다. 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당나라 때 육우가 쓴 「다경(茶經)」에 보면 ‘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신농(神農)의 「식경(食經)」을 인용한 내용의 기록이 있다.

신농은 중국의 삼황(三皇)가운데 한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처음 가르쳤고 약초를 발견하기 위해 백가지 풀을 맛보다가 하루에도 70번이나 독초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신농황제는 독초의 중독을 찻잎을 씹어 해독하곤 했다는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이런 기록들의 내용으로 보면 신농 황제 때인 BC 2700년경에도 차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수 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차는 동양의 생활 문화 속에서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닌특별한 정신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선 차는 약리적 기능으로 마음을 편히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하여 우리에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사색의 시간은 다인들에게 자연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명상과 자기 성찰을 통한 수양의 실마리를 주었고 시인과 묵객들에게는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중국에서 나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차는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주장하는 승가의 사원차, 접대연이나 제례 등 의례로 행하는 의식차, 일상에서 마시는 생활차, 아플 때 마시는 약용차로 각각 이어져 내려오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한 요소가 되었다. 우리 옛 선인들은 차를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아 혼자 마시며 깊이 생각했고 둘이 마시며 담론하고 여럿이 마시며 예를 갖추었다. 이래서 차는 다른 마실 거리와 차별되는 동양이 만들어 낸 정신적 음료가 되었다.

 


▲ 행다(行茶)는 차의 정신을 풀어내는 행위예술이다.茶會 茶嘉緣 / 변희석 기자

차생활은 실천 미학

차 생활은 단순히 차를 우려내는 일만은 아니다. 차생활을 하다보면 차를 우려내거나 담아 내는 다기로써 도자기와 찻그릇을 올려놓는 찻상이나 다반같은 목기, 다실의 분위기를 위 해 장식하는 서화(書畵)나 음악, 꽃을 꽂는 화기(花器) 등 찻일(茶事)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에 관심을 갖게된다. 더 나아가서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이끼 낀 작은 돌, 풀 한 포기가 만 들어내는 조형이나 놓여진 섬돌 하나에서도 감동어린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미의 추구를 위한 요소들로써 그 목적이 단순히 감상에 있다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데 있다. 그것은 단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차생활은 정적인 미가 깃든 동적인 미를 추구한다. 그것은 운동 속에서의 미다. 한 벨기에 사람은 어느 다인 집(다가연 차회 김용술님 댁)에 초대되어 차를 대접받고 귀국한 후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정갈한 숲의 향을 우리는 마셨다. 
창호지와 간결하고 명확한 몸짓으로 우려내는 차. 
한 손 밑의 다른 손... 손가락 마디 마디... 
물이 흐르고, 부드럽고 분명하게 따라진다. 그런 폭포수... 
시원한 도자기의 그 멋! 
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 행위가 계속된다. 
그릇들이 묵묵히 이동한다. 
그런 호흡...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의 그 특별한 맛! 
이 추억이 얼마나 근사한지!! 
 
 

그 외국인은 ‘차내는 일’에서 동양정신이 담긴 정중동(靜中動)의 미, 즉 고요함과 인체의 동선이 함께 어우러진 선(線)의 미학을 본 것이다.

차 생활은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예술이고 차와 관련된 주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하는 종합적 실천미학이다. 또 차 생활을 통해 공예문화 즉 도자기나 목기, 다실의 분위 기를 돕기 위한 민예품 등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일 수 있다. 차는 시(詩),서(書),화(畵)의 세계까지 정신적 눈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 다양한 종류의 잎차 다관 .묵전요 김평 작품 / 변희석 기자


어울림과 더불어 사는 삶

따라서 차 생활은 종합문화체계이면서 미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말할 수 있다. 일 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차생활을 통해 미의 나라로 들어가는 우리는 다시 착함의 세계로, 착함의 세계에서 참됨의 세계로, 참됨의 세계에서 경건함의 세계로의 여정을 거치게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의 극치는 착함과 참됨과 경건함과 한 가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眞(학문), 善(윤리), 美(예술), 聖(종교)이라는 조화로운 전인적 인격을 만들 어 가는 것이다.

 

 

차의 정신은 한 인격이 삶에 생기와 빛을 주는 아름다움을 체험하면서

 자기 성찰을 통해 얻어내는 조화의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치우침이 없는 인격의 조화이고 사회적으로는 너 와 나의 어울림이며 더불어 살려하는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자연을 통해서는 질서와 이치를 배우고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해하고 몸에 익히는 일이다.

 

 

 

 

▲ 필자 김동현

(출처: 조선일보 200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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