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차 이야기
우리들의 선조들은 쓰고 떫은 맛을 내는
나뭇잎이나 뿌리를 가공해 몸을 치료해 왔고
평상시 즐겨 마시는 차로 발전시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해
자연의 새로운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한 잔의 차 속에는 윗대의 조상들이 남긴
정신과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인스턴트 음료가 미각을 길들이고 있는 요즘의 분위기에는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차 마시는 법이 까탈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을 때 마시는 차 한 잔을 감로차라고 부릅니다.
달콤한 아침이슬이 밤기운에 늘어진 생물들을 깨우는 것처럼 잠을 물리치고
마음을 상쾌하게 두들겨주기 때문에 일컫는 것입니다.
정신을 흔드는 아주 쓴맛을 가진 차 중에 중국의 고정차가 있습니다.
하나의 잎으로 만든 차이기 때문에 일엽차(一葉茶)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선처럼 몸이 가벼워진다고 하여 선차(仙茶)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등소평이 즐겨 마신 차이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가 아니라 고로(皐蘆)나무 잎으로 만든 차인데
곰쓸개처럼 매우 써서 한 잔을 마시면 졸음이 확 깹니다.
중국의 중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은
통증을 완화시키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감기, 배탈을 낫게 하고 살을 빼고
만병을 치료하는 차라고 설명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의약품이 아니라
대용차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고로나무는 심회원(沈懷遠)의 “남월지(南越誌)”, 육우의 “다경”, 초의의 “동다송”,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기록되어 있는 차나무와 비슷한 나무로
과로(瓜蘆), 고등(苦登), 고정(苦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동청과(冬靑科:겨울에도 푸른 식물)의 교목(喬木)나무입니다.
남월지가 쓰인 해가 서기 589년이고 육우가 다경을 편집한 해가 서기 774년이니까
고정차의 역사도 참 오래 되었습니다.
위의 고서에서는 고로(皐蘆)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석명(釋名): 과로(瓜蘆), 고등.
서기 589년 심회원(沈懷遠)이 남쪽 지방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남월지(南越誌)에 이르기를 용천현에 과로가 있으니
일명 고로라고 하는데 잎이 차(茗)와 비슷하다. 과라(過羅)라 이르고 혹은
물라(物羅)라 말한다.
서기 493년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를 완성한 도홍경(陶弘景)이 말하기를
남방에 과로가 있으니 차와 비슷하다 만약 그 잎을 따 가루해서 삶아 마시면 바로 밤새도록
잠자지 않는다. 남쪽 사람들이 채취해 차 음료로 하는데
극히 중히 하기를 촉 지역 사람의 음차와 같다. 고로는 잎의 상태가 차와 같으나 크기가
손 바닥만해서 주물러 부숴 우려 마시는데 가장 쓰면서
색이 탁하여 풍미가 차에 비해 미치지 못함이 멀다.
본초강목에는 무독하지만 옆(葉)의 기운이 한(寒)하여 위가 냉한 자는 쓰지 못한다.
다려 마심에 목마름을 그치고 눈을 밝혀 사람을 잠자지 않게 하고
담을 제거하고 인후(咽喉)와 소변에 이롭다.
작년(1996년) 6월에 중국 광동(廣東)지방의 서초산(西樵山)을 여행하는 중에
차 가계 주인의 소개로 처음 맛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차나무로 만든 차로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대엽종의 푸르고 고운 잎이
보기 좋아서 여행하는 동안 즐겨 마셨습니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은 뒤에도 쌉쌀한 떫은맛이 더부룩한 속을 진정시켜주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고로나무는 광동, 사천, 귀주, 호남, 강서 지역에서 자라는데 각 지방마다 만드는
고정차 맛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이 있습니다.
광활한 중국은 어디를 가나 신화와 전설이 풍부합니다.
고정차를 마시게 되는 전설도 빠질 수 없지요.
서기744년(당 천보 3년) 당 현종은 천하의 절색인 양귀비를 얻은 후 불노의 비결을 찾으라고
신하에게 엄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 양광정이 사공산에서 채취한 과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시 무상사(無相寺)의 주지 사공본정선사는 과로로
만든 차(고정차)를 양귀비에게 진상했으며 심신의 활동력이 왕성해지는 효험이 있어
현종은 해마다 사공산 고정차를 공물로 바치도록 명했다고 합니다.
위 전설과 유사한 기록이 불서에도 남아있습니다.
사공산(司空山)은 호북성 장현에 있는 산입니다.
사공본정(司空本淨:667~761)선사는 육조 혜능대사의 제자로
사공산의 무상사(無相寺)에 머물며 “도는 닦을 것이 없다”(道本無修)라고
가르치고 있을 때
중사(中使)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양광정이 찾아와 선사에게 도를 물었다고 합니다.
“나에게 절을 하지 마시오. 그대는 부처를 구하는가, 아니면 도를 구하는가?”
“제자는 지혜가 얕아서 부처와 도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부처를 구한다면 마음이 바로 부처요, 도를 알고자 한다면 무심(無心)이 바로 도이다.”
양광정이 거듭 묻기를 “어찌하여 무심을 도라 합니까?”
“도는 본래 마음이 없지만(道本無心) 무심을 도라 이름 한다.”
“무심이란 곧 무물이고(無心卽無物) 무물은 천진이며(無物卽天眞)
천진이 바로 대도이다(天眞卽大道). 일체 법은 모두 공적(空寂)하여 얻을 바가 없다.
만약 얻을 바가 있다면 바로 유위의 마음(有爲之心)이 일어난 것이다.
다만 마음에 막힌 바가 없이 무심으로 노력하면 자연히 도에 합하여
모름지기 깨닫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무심이 도(無心是道)라 한다.”
도를 가르치던 본정선사는 양광정에게 그만큼 쓴 고정차 한 잔을 권하고
양광정은 당 현종에게 진상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기록입니다.
과로나무의 새 잎은 자홍색을 띠고 다 자라면 녹색으로 변합니다.
특히 해남지역의 과로나무는 잎의 길이가 20여 센티에 달하고
넓이는 10여 센티에 달할 만큼 크고 두껍습니다.
그래서 해남의 고정차와 광동이나 광서지역의 고정차는 차이가 있습니다.
해남의 고정차는 일년 4계절 내내 채집할 수 있고
제다하는 방법도 차나무와 같이 살청, 유념 등 여러 가지 순서를 거쳐 완성이 됩니다.
근래의 고정차는 이름과 종류가 참 많아졌습니다.
사천지방에서 생산되어 청산녹수(靑山綠水)라고 부르는 고정차는 과로나무와 비슷한
여정나무 잎으로 만든 차인데도 고정차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합니다.
광활한 지역의 환경을 살려 문화를 축적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판로를 개척하는
중국의 노력에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쓴 고정차 한잔을 마십니다.
1997. 10.
취산 최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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