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청원1 2006. 3. 15. 07:46
8. 좌선의 준비사항 (1)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1>
일체 사량분별 버리고
한 생각에 집중해야


좌선의 및 천태의 지관 등 수행의 기본사항을 기술하고 있는 전적들에는 선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시작하기 이전에 점검해야 할 내용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 주변의 모든 잡무를 쉬라는 식제연무(息諸緣務, 放捨諸緣 休息萬事)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번잡함, 사람들과의 관계, 생활과 관련한 잡다한 일들, 문자에 대한 집착 등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으로 요약하자면 모든 것을 놓은 상태에서 수행에 들어가야 함을 말한다. 이는 근본불교에서의 수정(修定)법이나 초기 선종사에서의 수행법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외형적으로는 생활 속에서의 번잡함 제거를 의미하지만 선수행의 구조와 관련해 본다면 일체의 사량분별을 버리고 하나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일체의 사량분별을 여읜다는 것은 단순히 분별의식을 갖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수행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모든 주의(主義), 주장들을 제거하는 이른바 ‘그릇 비움’을 말한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나 진리관, 생활관 등 자신이 절대적 가치나 관점으로 여기고 있던 것을 버리고 수선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수선의 용이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남아 있게 되면 새로이 접하는 선의 세계를 기존의 관점으로 분별 헤아리고, 취사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들은 그 자신은 스스로 확립한 것이라고 하지만 살아오면서 상황과 필요성에 의해 외부로부터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주입된 것일 뿐, 근본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릇은 비우면 비운만큼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새로운 것에 의해 기존의 것들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올바로 볼 수 있을 때 그 모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바로 반야 지혜의 활용이요, 진공묘용(眞空妙用), 임운자재(任運自在)이다.

주목할 것은 그릇은 비우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불변의 것으로 규정한 진리, 절대적 가치관 등으로 무장되어 있는 한 그릇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면 여타의 무한한 불변적 진리, 가치라는 것들을 수용 용해시킬 수 있고, 이에 의해 십우도 맨 마지막의 언급처럼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고 이전 현성들의 가르침에도 얽매이지 않은채 세상에 다니며 교화 성불시키는 삶’이 가능해진다.

선은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논리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만 새로운 또하나의 분별세계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를 위해 입문 단계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화두 등에의 집중이 이를 자연스레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입문자에게 비움과 고집함의 차이는 무척 크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8. 좌선의 준비사항(2)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2>
계율을 근본 삼고
오욕의 유혹 경계해야


좌선에 임하기 전에 유념해야 할 또다른 것으로 계율의 수지에 대한 것이 있다. 지계청정은 〈마하지관〉 등에서 수행을 시작하기 이전에 준비해야 할 25종 중 제일 첫 번째로 들고 있을 만큼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수행인이 올바른 해탈을 얻고자 한다면 바드시 계율로 근본을 삼아야 하나니 계로 인해 정이 생기고 정에 의해 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라는 〈유교경〉의 구절처럼 정혜의 근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선종에서의 계율관은 ‘지키고 범하는 것이 본래 생함이 없는 것이나 어리석은 사람은 계율에 사로잡혀 스스로 금하고 얽매인다’고 하고 있는 지공화상의 설을 비롯해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이 계요,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계라고 하고 있는 신회 및 이후 여러 선사들의 언급과 같이 직접적인 행계(行戒) 보다는 근원법에 바탕한 심계(心戒)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체득의 경지에서 언급되는 근본법과 일상사의 경계일 수밖에 없는 현상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근원법에서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고 생함이 없는 공(空)이지만 현상법에서는 필연적으로 인과를 수반하며 연기의 법칙에 순하게 되어 있다. 달마가 진성(眞性)의 세계를 언급하면서도 구체적 행에서는 보원행(報寃行), 곧 수행시의 어려움에 대해 과거의 무한 겁 이전부터 원한과 증오심으로 행한 악업의 결과라 생각하고 그 과보를 갚는 것으로 여기라는 것도 여기에 그 의미가 있다.

〈초심문〉에서 지키고 범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상황에 따른 능동적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 계율의 무시나 부정은 아니며, 〈선가귀감〉에서는 ‘음란하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지르는 것과 같으며, 도둑질하며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거짓말하며 참선하는 것은 오물로 향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모두가 마도(魔道)가 될 뿐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서산의 가르침처럼 막행하는 부처는 없으며, 소림문하에 거짓말하는 조사는 없는 것이다.

덧붙일 것은 25종의 준비사항 중에 색·성·향·미·촉이라는 인간의 다섯 감각기관의 욕망에 반연하는 외적 조건을 조심하라는 가오욕(呵五欲)의 부분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운 외모나 형상, 진귀한 물건, 귀를 자극하는 온갖 소리, 향기로운 냄새 등의 온갖 내음, 미욕(味欲)을 부추키는 맛있는 음식,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 등을 말하는 것으로 정해진 율의만이 아니라 수행자 자신을 유혹하고 속박하는 외적 조건 또한 경계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자극에 휩쓸리거나 근원법만을 탐닉하는 것은 입문자의 자세가 아니다. 수행은 방종이 아니며, 철저한 자기통제와 자아성찰을 기본으로 한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8. 좌선의 준비사항(3)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3>
외부 번잡함 없는
수행처·새벽시간 ‘최적’


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먼저 살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로 장소에 대한 것이 있다. 수행 장소는 원시경전을 포함해 선수행의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 모든 전적들에서 거의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을 만큼 중시되고 있는 내용이다.

이들 자료들에서 밝히고 있는 이상적인 수행 장소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 곧 한정처(閑靜處)이다. 조사선에서는 특별한 장소를 규정하지 않고 일상사의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행동에서 수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지만 장소나 행동에 구애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일정 경지에 오르지 못한 초학자는 필연적으로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연유로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택해 수행하도록 설하고 있는 것이다.

〈대념처경〉의 ‘아란야(阿鍊若)에서나 나무 아래, 혹은 공처(空處)에 가 앉아 가부좌 자세를 하고…’나, ‘일이 없는 곳, 산 속, 나무 아래, 편안하고 고요한 처소로 가 좌선 사유하되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중아함〉’, ‘비구들아, 적정무위의 법, 안락을 구하고자 한다면 응당 시끄럽고 산만한 곳을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머물도록 하라.〈유교경〉’, ‘항상 공한처(空閑處)에서 깊이 선정을 닦아야 할 것이니…〈법화경〉’고 하고 있는 여러 경론들을 비롯해 초학자가 좌선할 때에는 고요한 장소를 택하라고 하고 있는 〈능가사자기〉의 도신장과 〈좌선의〉 등의 설들이 모두 이에 대한 내용들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초기 수행자의 처소로 강조하셨던 수하좌(樹下坐)나 죽림정사의 기증을 계기로 ‘도시에서 멀거나 가깝지 않고, 사람들의 소리가 없어 명상에 적당한 곳’을 언급하고 계신 것도 이와 관련한 말씀이다.

천태는 〈마하지관〉에서 이를 사람들의 칭찬이나 훼방이 없는 깊은 산 속, 사람들의 왕래가 없고 욕심을 멀리 할 수 있는 장소, 한가하고 고요한 아란야의 셋으로 분류하며 이런 곳이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인적이 드물고 목축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란야나 산 속 등 외부의 번잡함으로부터 영향받지 않는 곳을 최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재가 수행자들이 이런 곳을 택해 수행에 전념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따라서 현대의 지도자들은 가정에서라도 이런 환경을 만들어 수행하도록 권하고 있다. 다른 가족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을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에, 그리고 눈이나 귀, 코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TV나 전화, 냄새나는 것 등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수선에 임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진 눈, 코 등의 여섯 감각기관에 영향받지 않을 최적의 여건이 갖추어진 곳, 그곳이 재가 초학자의 가장 좋은 선수행처가 되는 셈이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8. 좌선의 준비사항(4)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4>
적당한 음식섭취·수면 등
가장 안락한 상태 유지해야


〈좌선의〉에는 좌선의 준비사항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음식에 관한 것과 수면의 조절, 그리고 방석과 의복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음식은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지 말라는 것이며, 수면도 많거나 적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의복도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천태의 지관에서는 이를 더욱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음식의 경우 병이 생길 수 있거나 졸음이 올 수 있는 것, 번뇌를 증가시키는 음식들은 먹지 말고, 몸을 편하게 하거나 병을 고치는 것들을 먹으라고 하면서, ‘음식을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가 어렵고 병이 생길 수 있으며, 게을러지고, 먹은 것이 잘 소화되지 않으며, 졸음으로 스스로 괴로움을 받아 미혹과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니건경〉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배가 부르도록 많이 먹거나 반대로 고프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라는 것이다.

수면에 대해서도 잠은 눈의 음식이니 심하게 줄여서는 안되며, 마음의 산란함을 증가시키고 공부를 손상케 하므로 멋대로 많이 자서도 안된다고 하고 있다. 육신이 조화로워야 수행이 잘된다는 것이다. 수면에 대해 〈선법요해〉에서는 ‘잠은 세간의 이익도 파괴하는데 하물며 출세간의 도이겠는가? 수면법은 죽음과 차이가 없으나 숨을 쉰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졸음은 심법을 덮으며, 수면이 증가하면 도법을 막고 파괴하게 된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 찬물로 세수하거나 사방을 쳐다보는 것 등 잠을 깰 수 있는 방법들도 설하고 있다.

옷에 대해 〈지관〉에서는 추하고 흉한 것을 가리며, 추위와 더위를 막고, 모기나 벌레로부터 육신을 보호하는 것을 밝히고 있으나 〈좌선의〉의 내용은 옷과 허리띠를 느슨하게 해 좌선에 방해가 안되도록 옷을 입으라는 말이다. 몸에 달라붙는 옷이나 꽉 조이게 입으면 자연히 좌선에 방해가 된다.

방석은 좌선시 밑에 깔고 앉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직경 40여cm, 두께 5∼6cm 정도의 원형을 사용하도록 말하고 있으나 여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방석을 사용하는 이유는 좌선의 용이함 및 장시간의 좌선에서 오는 통증 완화만이 아니라 특히 두 무릎이 바닥에 붙어 체중이 신체의 특정한 부위에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므로 그렇게만 된다면 여타의 것을 사용해도 무방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음식을 많이 먹거나 뱃속이 비어 좌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또한 졸음이 오도록 수면을 줄이거나 지나치게 자지 말고, 넉넉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방석을 준비해 좌선에 임하라는 것으로, 이른바 가장 안락하고 적절한 신체상태를 유지해 좌선하라는 것이다. 여타 자세한 준비사항에 대해서는 천태의 25종 준비사항을 꼭 살펴보기를 권한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1)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6>
몸·호흡·마음 정립하고
좌선 중간 중간 점검해야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들을 제도(救世度人)하려는 수행자로서의 목적을 세우고 주변을 정리하는 등의 준비를 마쳤으면 좌선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좌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인가.

여기에는 크게 몸의 자세를 갖추는 것과 호흡에 대한 것, 그리고 생각에 대한 것 등 세 가지가 언급된다. 이른바 신체의 조절이라는 조신(調身)과 호흡을 바르게 하는 조식(調息), 마음을 조절하는 조심(調心)의 삼사(三事)이다.

몸의 자세는 가부좌의 형태를 비롯해 손의 모습과 허리, 등, 어깨, 목, 혀, 눈 등을 좌법에 맞게 유지하는 것이며, 호흡은 소위 복식호흡을 포함한 들이쉬는 호흡과 내쉬는 호흡의 길이 조정 및 멈춤 등 좌선시의 여러 호흡법들과, 소리가 나거나 거칠고 막힘, 끊어짐이 있는 호흡들을 조절한 바른 호흡의 유지에 대한 것이고, 마음의 조절은 위빠사나의 관법과 간화선의 화두참구 및 묵조선 수행시의 마음가짐들이다.

이들 몸과 호흡, 마음의 삼사를 바르게 유지하는 것이 좌선의 요결로 이중 어느 하나만 잘못되어도 올바른 좌선 수행이 어렵게 된다. 곧 몸의 자세가 바르게 되어야만 호흡이나 마음의 조절이 바르게 되며, 호흡이 제대로 되어야만 몸과 마음이, 또 바른 마음의 조절이 바른 몸과 호흡을 가져오는 것이다. 시작 단계에서나 수행 도중에 몸의 자세가 바르지 않게 되면 자연 호흡이나 마음이 흐트러지게 되고, 호흡이나 마음의 조절이 잘못되면 역시 나머지도 영향받아 몸에 무리가 오거나 망상이 생기는 등 제대로 된 수행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소지관〉 등에서는 이들 셋이 시작과 도중, 끝날 때의 모두에서 조화롭게 되어야 한다고 하고, 또 입문자는 좌선의 중간 중간에 마음을 거두어 이를 살피라고 하고 있다. 몸이 느슨해져 있거나 굽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등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고, 호흡이 거칠거나 고르지 못하면 역시 바르게 해야 하며, 마음 또한 가라앉아 있거나 들뜨고 느슨해지거나 조급한 것들을 살펴 잘못되어 있으면 곧바로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초심자의 경우 새겨두어 항상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들어가고(入) 머물고(住) 나오는(出) 것에 대해서도 시작할 때는 먼저 신체를 바르게 유지하고 호흡을 조절한 후 마음을 다뤄 나가는 신체→호흡→마음의 순서를 취하도록 하고 있으며, 중간에는 전후가 없이 적절히 조화롭게 하고, 끝날 때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마음을 풀어 편안히 한 후 입을 열어 방기(放氣)하고, 몸을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조금씩 움직이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하거나 끝낼 때 모두에서 너무 급하게 하거나 느리게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2)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7>
다리는 결가부좌 형태
인도·중국 자세 달라


실제 좌선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유의해야 할 점은 몸을 바르게 유지하는 것이다. 다리 자세와 손 모양, 허리, 어깨, 목, 혀, 눈 등을 좌선의 행법에 맞게 갖추는 것으로 그 여하에 따라 좌선 전체가 영향받게 된다.

먼저 다리의 자세에는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거나 두 무릎을 세워 껴앉는 형태 등 여러 자세가 있으나 양쪽 다리를 교차해 앉는 결가부좌와 한쪽 다리만을 다른 쪽 위에 올려놓는 반가부좌가 주로 사용되며, 이중에서도 핵심은 결가부좌이다.

결가부좌의 좌법은 부처님께서 수행시나 설법시에 취하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권했던 방법으로, 이는 〈중아함경〉의 ‘수행자들이여, 나는 결가부좌로 열반에 들었다. 존자 아난도 결가부좌로 열반에 들도록 하라. 그대가 이 방법으로 열반에 든다면 그것이 바로 미증유의 법이다’고 한 구절이나, 나운존자에게 결가부좌를 하도록 권하고 있는 〈증일아함경〉의 내용 등 수많은 경전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러나 경전상에는 ‘결가부좌’라는 용어만 말하고 있을 뿐, 자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취하라는 등의 그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비바사론〉과 같은 논서에서도 ‘두 발을 좌우로 교차하여 중첩되게 앉는 것’ 정도로만 밝히고 있을 뿐 자세하지는 않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들은 거의 대부분 후대 중국의 전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는 왼발을 오른발 위에 얹고 그 위에 오른발을 놓는 형태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그 반대의 방법이라고 좌선주석서들은 밝히고 있다.

중국에서도 초기에는 인도법과 같은 자세를 취하다 후대에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수(隋)의 지의는 왼발을 오른발 위에 놓고 그 위에 오른발을 놓는 방법을 설하고 있고(〈천태소지관〉), 당대 혜림은 〈일체경음의〉에서 왼발 위에 오른발을 놓는 것(혜림은 이를 길상좌라 하면서 여래가 보리수하에서 성도할 때의 좌법이라 하고, 그 반대의 좌법을 항마좌라 하면서 항마좌는 때에 따라 가끔씩 사용되는 방법이라고 하고 있다)을 언급하고 있으나 송대의 종색은 왼발이 위에 올라가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좌선의〉) 당대의 인물인 종밀은 전자를 계승하고 있으나 일본의 저술인 도원의 〈보권좌선의〉나 영산의 〈좌선용심기〉들은 〈좌선의〉의 설을 따르고 있다.

종색 이후이지만 중국에서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올라가는 형태를 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청관음경〉 주석이나 〈수선요결〉에서는 오른쪽은 동(動)인 양, 왼쪽은 정(靜)인 음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들고, 동을 정으로 다스려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중국적 해석이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3) - 다리의 자세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8>
반가부좌도 좌법의 기본
수행자 상황 맞춰 선택해야


결가부좌와 함께 좌법의 기본 형태가 되고 있는 것이 반가부좌이다. 이 역시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려놓는 것과 왼발을 오른발 위에 놓는 것의 두 가지 방법이 설해지고 있는데, 〈무외삼장선요〉는 오른발을 위에, 그리고 여타 〈수선요결〉이나 〈천태소지관〉, 〈좌선의〉, 〈보권좌선의〉, 〈좌선용심기〉 등은 왼발을 위에 올려놓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선요결〉에서는 ‘결가부좌가 편하지 않으면 반가부좌를 해도 좋다’고 하고 있고, 〈천태소지관〉에는 ‘왼쪽 다리를 구부려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고 이를 끌어당겨 몸 가까이 붙이되 왼쪽 발가락과 오른쪽 넓적다리가 가지런히 되도록 하고, 오른쪽 발가락과 왼쪽 넓적다리가 가지런히 되도록 하라.’고 하여 양 발가락과 두 넓적다리를 맞춰 앉는 반가부좌법을 설명하고 있다.

또 〈남전소품〉에는 ‘비구들이여, 비구니에게는 반가부좌를 허용하라’는 남녀의 성별에 따른 좌법 구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현대의 주석자들은 남녀의 육체적 구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나 전거에 바탕해 정확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또한 〈무외삼장선요〉에서는 ‘초학자는 반가부좌를 취하고 결가부좌를 하지 말라. 결가부좌를 할 수 있다면 가장 미묘한 방법이지만 많은 통증이 오게 되고, 통증으로 인해 선정을 얻기가 어렵다’고 하며 반가부좌의 행법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설명 그대로 결가부좌를 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 자세를 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고, 몇 분만 지나면 다리가 저려 정신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라 하겠으며, 또 초입자는 결가부좌로 장시간 지속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릎 등의 통증이 심해 외형은 좌선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고통만을 참고 있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반가부좌도 균형을 잡기가 어렵고 한쪽 어깨가 올라간다던가 척추가 틀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정 기간 참고 견디는 연습도 필요하다.

초입자의 경우, 일단 결가부좌든 반가부좌든 수선자의 상황에 맞춰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결가부좌가 가능한 사람은 결가부좌의 행법을, 안되는 사람은 반가부좌를 택해 하도록 하며, 특정 형태만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자세를 바꿔가며, 그리고 처음부터 오래 앉아 있는 것보다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며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부 지도자들도 무리한 결가부좌의 고집이나 한쪽 반가부좌만을 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다리를 바꿔가며 시간을 늘려 앉도록 가르치고 있다. 결가부좌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특히 나이 들어 늦게 시작한 경우 오히려 몸에 무리를 줄 수 있고, 또 편하다고 한쪽 반가부좌만을 취하는 것도 골반이나 나중에 척추까지 틀어져 허리가 아프거나 다른 통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4) - 손의 자세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19>
중국·인도, 전통 따라 형태 달라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 ‘정답’


좌선시 손은 어떤 자세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오늘날에는 이른바 법계정인(法界定印)라는 형태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전적이나 불상의 수인(手印) 모습들은 다름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도 몇몇 다른 형태들이 있지만 크게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는 것과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는 두 가지 방법으로 구분되며, 이 역시 인도와 중국의 차이점으로 설명되고 있다. 즉 오른손을 위에 올려놓는 것은 인도의 법이고, 왼손을 위에 놓는 것은 중국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도의 방법을 경론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곳은 없으나 인도나 태국, 스리랑카 등 남방지역 불상, 그리고 기원 전후의 불상이나 간다라 출토 및 후대 보로부두르 불상의 선정인(禪定印)들이 모두 오른손을 왼손 위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도의 선정인이라 하고, 중국의 여러 전적들은 이와는 달리 왼손을 위에 놓는 반대의 형태를 설하고 있어 중국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법과 달리 중국의 전적들은 거의 대부분 ‘왼손 위’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후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천태(〈소지관〉)는 ‘왼쪽 손바닥을 오른손 위에 놓고 양손을 겹쳐 마주 대하여 편안히 한 다음,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고 몸 가까이 바짝 끌어당기어 아랫배에 닿게 해 안정토록 하라’고 하고 있으며, 〈좌선의〉에서도 ‘오른손을 왼발 위에 올려놓고 왼쪽 손바닥을 오른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양손의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어 지탱하라’고 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좌선시의 손 자세는 ‘오른손 위에 왼손을 놓고 엄지손가락 끝을 맞댄 후 아랫배 쪽으로 끌어당겨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는’ 형태이다. 왼손 위는 〈선비요법경〉 권상에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이들 전적 이외 혜림의 〈일체경음의〉(길상좌법에서의 ‘오른손 위’ 법도 언급하고 있다)나 종밀의 〈수증의〉, 도원의 〈보권좌선의〉 등에서도 모두 같은 형태를 설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오른손 위’는 오른손은 청정하고 왼손은 부정하다는 전통적 관점에서 청정함으로 부정을 누른다는 의미에서라 하며, 중국에서의 ‘왼손 위’는 가부좌법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은 움직이는 양, 왼쪽은 고요한 음으로 산란하고 요동하는 양을 고요한 음으로 눌러 가라앉힌다는 음양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으나(〈청관음경〉 주석) 불교의 시각이나 선의 관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수인은 특히 밀교에 의해 정착된 것으로 오른손은 불타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의미하며, 이 둘을 포갬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것을, 또한 태아가 모태에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선의 관점은 아니며 선에서는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수행에 효과적이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5)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20>
몸·호흡·마음 세 요소 모두
바른자세 유지해야


좌선 입문서들이 다리와 손에 이어 언급하고 있는 것은 허리와 어깨, 목 등에 대한 것이다.

〈좌선의〉에서는 ‘몸을 서서히 전후 좌우로 반복해서 흔들어 준 후 바르게 하여 앉는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거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며, 앞으로 굽어지거나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허리와 등뼈, 머리와 목의 골절들이 서로 지탱하여 마치 부도(浮屠)와 같이 하라. 또 몸을 지나치게 반듯이 세우거나 신경을 곤두세워 불안하게 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귀와 어깨가 직선이 되게 하고 코와 배꼽이 수직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 하고 있고,

〈소지관〉에서도 ‘다음으로 몸과 팔다리를 7∼8회 정도 스스로 안마하듯이 흔들어 수족을 편안하게 한다. 그런 다음 전신을 단정히 하고 척추를 반듯하게 하되 앞으로 굽거나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한다. 머리와 어깨를 바르게 하고, 코와 배꼽이 수직이 되도록 하면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도록, 숙여지거나 뒤로 굽혀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고 있다.

몸을 흔들어 주라는 것은 선종 최초로 집단 생활을 하며 수행자들을 지도했던 4조도신의 가르침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몸을 7∼8회 흔들어 움직이고 뱃속의 탁한 공기를 토해버리면 몸과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아 호흡이 편안해지며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상쾌해진다고 설하고 있다.

몸을 몇 차례 전후 좌우로 흔들어주는 것은 일단 신체상에 긴장을 풀어주어 굳거나 힘이 들어간 부분을 없애고 마음을 편안하고 여유로운 상태로 만들어 좌선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현대의 주석서들은 이런 운동을 통해 신체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몸의 기혈이 유통되며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이 조화롭게 된다고 하고 있다.

또 몸이 앞으로 숙여지거나 뒤로 젖혀진 자세, 좌우의 어느 한쪽으로 기운 형태도 효과적인 좌선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신체의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불안정한 호흡은 마음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쳐 잡념이나 망상이 쉽게 들게 된다. 몸과 호흡, 마음의 세요소 중 어느 하나가 바르지 못하면 다른 것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셋 중 가장 먼저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몸의 자세인 것이다.

귀와 어깨, 코와 배꼽이 일직선이 되도록 하는 것 역시 몸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언뜻 어깨를 앞으로 조금 굽히고 척추에 힘을 빼고 앉으면 순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나 일시적인 편안함일 뿐 오히려 몸에 무리가 오게 되며, 오랜 시간 좌선을 행할 수가 없게 된다. 허리를 펴고 턱을 조금 당겨 목을 반듯이 세우면 귀와 어깨, 코와 배꼽이 자연스레 수직 상태가 되고, 그 자세에서 힘을 빼면 극히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6) - 눈의 형태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21>
뜨지도 감지도 않고
산란한 마음 다스려야


좌선시의 혀와 입, 눈의 자세에 대해서는 ‘혀는 윗 입천장을 지탱하듯 하며, 입술과 이는 서로 맞대라. 눈은 반드시 조금만 떠 졸음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좌선의〉)’고 되어 있다.

이나 혀는 〈중아함경〉 ‘염신경’의 ‘몸을 관찰해 수행하는 비구는 이와 이를 서로 붙이고 혀는 윗 입천장에 갖다 붙인다’라는 구절을 포함해 〈선비요법경〉이나 〈좌선용심기〉 등 이를 언급하고 있는 모든 자료에서 일치하고 있는 내용으로 ‘입을 다물고 이를 마주 대며, 혀를 윗 입천장에 갖다 붙이는’ 형태를 말하고 있다.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떠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위 〈좌선의〉와 〈소지관〉에서도 달리 말하고 있듯 상이함이 있다. 일단 〈선비요법경〉을 비롯한 수많은 선경(禪經)과 〈정심계관법〉 등 일부 전적에서는 감는 것을 말하고 있고, 오늘날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포함해 인도의 전통적 방법은 감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남악혜사는 15년을 눈을 뜨고 좌선한 혜성에게 3년만에 삼매에 들어 일체의 장애를 소멸케 하면서 “좌선할 때 눈을 감으면 도가 분명해지지만 눈을 뜨게 되면 곧바로 도를 잃게 되며, 이 둘을 비교하자면 천지만큼 차이가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러나 〈무외삼장선요〉에서는 ‘눈을 완전히 떠서도 안되며, 완전히 감아서도 안된다. 크게 뜨면 마음이 산란해지게 되고, 감으면 혼침에 빠지게 된다’고 하며 눈을 적당히 뜨라고 하고 있고, 이는 〈수선요결〉이나 〈좌선의〉, 〈보권좌선의〉, 〈좌선용심기〉 등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종색선사는 법운원통선사의 말을 인용하며 눈을 감고 할 경우 모든 빛이 차단되어 캄캄한 흑산의 귀신굴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고 있으며, 천태의 설을 계승하고 있는 종밀도 ‘천태가 겨우 바깥 빛을 차단할 정도라고 하고 있는 것은 완전히 눈을 감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원각경도량수증의〉)라고 하며 눈을 감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로 보면 전래의 방법은 눈을 감는 것이었으나 중국으로 건너와 눈을 뜨는 방법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뜨는 것이 아니라 미개(微開), 혹은 반개(半開)라고 하듯이, 조금만, 위의 내용처럼 빛을 차단할 정도로 뜨는 형태이다.

감을 것인가, 아니면 뜰 것인가의 외형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혼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계층의 지도 경험에 의하면 처음엔 눈을 뜨는 것보다 감고 하는 것이 잘된다고들 한결같이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금방 조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조금 뜨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10. 좌선의 방법(7)
종호 스님의 참선교실 <22>
중생제도의 마음가짐 ‘우선’
‘제맘대로’아닌 스승 가르침 받아야


좌선시의 몸을 바르게 갖추는 방법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본다.

참선자에게 있어 가장 명심할 것은 자기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생제도를 위해서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중생제도의 서원을 세운 다음, 음식이나 수면 등 내적 준비와 주변 정리 등의 외적 정비를 하고 방석을 준비해 앉는다.

다리는 결가나 반가부좌의 형태를 취하는 데, 결가부좌는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은 다음 왼발을 그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고, 반가부좌는 오른쪽 발을 몸 안쪽으로 끌어당긴 후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는 형태이다. 집중해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한 자세만 오랫동안 고집하지 말고 번갈아 취하며 좌선력을 키우도록 한다.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놓고, 엄지손가락을 맞댄 후 아랫배 쪽으로 끌어 당겨 왼발 위에 놓는다. 이후 몸을 전후 좌우로 7∼8회 정도 안마하듯이 흔들어 온 몸이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가 되게 한다. 다음, 전신을 단정히 하고 몸이 앞으로 굽거나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다.

머리와 어깨가 직선이 되게 하고, 코와 배꼽도 수직이 되도록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고 숙여지거나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한다. 턱은 앞으로 내밀어지지 않도록 가볍게 끌어당긴 후 몸에 긴장된 부분이 없도록 힘을 뺀다.

입을 열어 몸 속에 좋지 않은 일체의 모든 것들이 호흡에 따라 나가버린다고 생각하면서 나쁜 기운을 토해내고 입을 다물어 코로 맑은 공기를 들이쉬기를 3회 정도 반복한다. 입술과 이는 아래 위가 서로 살짝 닿게 하고, 입은 다물며, 혀는 들어 올려 위 입천장에 갖다 붙인다.

눈은 감지 말고 뜨되 너무 크게 뜨지 말고 외부 빛이 차단될 정도로 조금만 뜬다. 몸과 머리, 손, 발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서는 안되며, 전체를 조절할 때 너무 조급하게 하거나 느리게 해서도 안된다.

이상이 좌선수행에 있어 신체를 올바로 갖추는 방법이다. 〈좌선의〉에서는 ‘만약 이와 같은 좌선의 행법과 내용을 잘 알고 수행하면 자연히 신체가 가볍고 편안해지며, 정념(正念)이 분명해진다. 또한 선열(禪悅)이 정신을 돕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며, 맑고 즐겁게 된다. 만약 이렇게 하여 마음이 하나의 상태(發明)를 이루면 가히 용이 물을 만난 것과 같음이요, 호랑이가 산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고 하고 있다.

좌선시 신체를 올바로 유지하는 것은 호흡이나 관찰하는 마음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수행법은 수많은 역대 조사들의 경험과 실증을 통해 정립된 가르침들이다.

주관적으로 이해하거나 규정하고, 또는 일시적으로 쉽거나 편안하다고 자의적으로 자세를 취하는 것은 금해야 하며, 선험자들의 지도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좌선
좌법에 집착말라
“좌선을 배우고자 한다면 좌선은 앉아 있는데 있는 것이 아니요,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부처는 일정한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려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대가 앉은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요, 앉아 있는 일에 집착한다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할 것이다.”(회양)

매일 좌선에 열중하고 있던 제자 마조에게 벽돌을 들고 와 갈아보이면서 수행이란 앉아 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질타한 회양의 가르침이다. 그는 수레를 몰고 갈 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아니면 바퀴를 때려야 하는가를 물으며 참다운 수행이란 앉아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다.

〈십이두타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네 가지 자세 중 좌법이 제일이라고 밝히고 있고, 후대 묵조선에서는 지관타좌(只管打坐)를 언급하며 좌선 제일주의를 설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적 수행에 있는 것이지 외형적 자세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회양은 무언가 이룸이나 무너짐, 모임과 흩어짐 등으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결코 바로 깨달을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오직 모든 현상들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 마음법을 통달하여야만 진실로 모든 것에 걸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수행은 중생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부처의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바꾸는 일이다. 소위 삼업(三業)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좌법 자체를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서도 결코 안된다. 이의 타파를 통해 회양은 마조를 중국 선종사에 우뚝 선 거목으로 길러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