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생활, 속박이냐? 자유냐?
1. 자유는 무엇이고 속박은 무엇인가?
오늘날에 있어서 자유란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집단화 된 현대사회는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요 개인은 그 기계의 부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한다. 정신은 불처럼 타오르고 육체는 밀랍처럼 녹아내린다. 연속되는 긴장은 불안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짜증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이를 ‘스트레스’라고 부르며 시시때때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커피는 순간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지만 결국은 스트레스를 누적시킬 뿐이요 음주(飮酒)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렇다면 잠시라도 진정한 자유와 안식(安息)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 해법은 차 생활에 있다.
찻자리에서 피어나는 차향은 불같은 마음을 세속(世俗)으로부터 분리시켜 준다. 한 잔의 차가 입술에 닿는 순간 불길은 사그라지기 시작하며, 한모금의 차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 곧 마음의 불이 진화(鎭火)되고 육체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차분해진 마음이 자유롭게 선계(仙界)를 거닐고 육체는 감로(甘露)를 마시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 중에 이만한 것이 없다. 이는 곧 최고의 안식이다. 당나라의 시인 노동(盧同)은 칠완다(七碗茶)에서 ‘일곱째 잔을 마시려고 하니 양 겨드랑이에서 청풍이 솔솔 이는듯하구나, 봉래산이라는 곳은 어디에 있는고? 옥천자는 이 청풍을 타고 돌아가고자 하노라.’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차 생활은 세속으로부터의 자유와 선경(仙境)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차 생활을 잘못하면 자유는커녕 또 다른 속박이 될 수 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으로 자기의 위상을 높이고 백성을 속박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성에게 자유와 안식을 주어야할 종교가 오히려 속박과 짐이 되었다. 경에는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중략)...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
이를 차 생활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입으로 말만 하고 차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잡다한 내용과 복잡한 형식의 다도를 만들어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이미 그 경지를 넘어선 냥 손가락하나 까딱하려하지 않으며 오직 남을 판단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고 값비싼 다구를 수집하는 일에 골몰한다. 모임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하고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어주기를 바란다....... 선생이라 칭함 받는 다인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결국 버림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진정한 차 생활의 문을 막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
까다로운 예법과 겉치레는 진정한 차 생활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이에 얽매이게 되면 차 생활을 통한 자유와 안식은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차 생활은 빈 마음으로 소박하게 해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허례와 허식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끔찍한 속박이 될 것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차 생활을 하는 까닭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기 위함이요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2. 차 살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차 생활 초기에 처음으로 유명 다인의 다실을 방문했던 경험은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방안에는 찻상과 다기 및 차 관련 도구가 늘비했는데 저마다 작가의 이름이 붙어있거나 골동품에 준하는 것들이었다. 다실 옆방은 전시실을 방불케 했는데 각양각색의 찻잔이 진열장 가득히 전시되어 있었고 다관도 역시 용도에 맞게 제작된 진열장 안에서 그 종류와 수가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로(茶爐), 돌탕관(~湯罐) 등 비교적 크기가 큰 것에서부터 다저(茶箸), 다건(茶巾) 등 소품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들어 찬 수많은 차 용품들은 병아리 다인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도 명차나 고가의 다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것들을 수집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시간을 생각해볼 때 도무지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한동안은 조금씩이나마 차와 다구를 사서 모으는데 열을 올렸다. 수집한 차와 다구를 좌우에 거느리고 큼직한 찻상 앞에 앉아서 스스로 만족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욕심은 끝이 없었고, 자랑, 부러움, 시기, 비난이 교차하는 찻자리의 후유증은 언제나 허탈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차를 마시던 중에 문득 찻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이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차를 마시는 일이 ‘자신과의 만남’으로 경험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속으로부터의 자유요 진정한 안식이었다. 이 때부터 명차나 다구에 대한 집착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잘못된 차 생활로 인한 또 다른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단지 손에 익은 다기 한 점과 손때 묻은 차시 하나가 소중하게 생각될 뿐이었다.
차 생활은 차를 즐기며 그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행검덕’(精行儉德) ‘화경청적’(和敬淸寂) ‘중정’(中正) 등으로 표현되는 차의 정신은 세속적인 것들과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다. 다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화두는 ‘차의 정신’과 ‘물질에 대한 집착’이 병립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다인들이 고가의 명차나 다구에 집착하고 자신을 치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은 다도를 빙자하여 차의 정신을 왜곡하는 자요 단지 헛된 명예와 더러운 이(利)를 좇으며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영달(榮達)을 꾀하는 자이다. 차 문화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스승 아닌 스승을 물심양면으로 추종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허망하게 된 이들이 많다.
상인에게는 많은 차와 다구가 필요하겠지만 다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다인의 사치와 허영은 차 생활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차 문화의 병폐를 불러와서 귀족문화라는 그릇된 선입관을 만들어내며 차 문화의 대중화를 저해한다. 진정한 차 생활을 위해서라면 결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소박한 찻그릇과 몇 점의 다구가 필요할 뿐이다.
3. 찻그릇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찻그릇의 가치는 실용가치(實用價値)와 미적가치(美的價値)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찻그릇은 그 용도가 분명하게 정해진 물건이기 때문에 실용가치가 미적가치에 우선한다. 따라서 찻그릇은 무엇보다도 차를 우려 마시는데 있어서 그 기능이 우수해야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다기는 미적가치가 실용가치를 앞서는 것 같다. 형태, 색감, 질감이 독특하여 눈에 띄기는 하는데 얼른 보아도 기능이 걱정되는 다관이나 수구가 많고 괜찮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시용해보면 절수에 문제가 있거나 손잡이가 불편한 경우가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역학적으로 잘못 만들어져서 사용하기 곤란하거나, 다관과 수구와 잔의 용적비가 잘못되어 차를 우려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찻그릇의 실용가치는 사용함으로써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에 의해서 어렵지 않게 평가할 수 있다.
찻그릇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정말로 어려운 것은 미적가치를 따지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미의식(美意識)이다. 미의식이란 ‘미(美)를 느끼거나 이해하고 판단하는 의식’을 뜻한다. 오늘날에 있어서 미의식은 개성이 강조되고 주관성을 띠는 한편 시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데 다인에게는 차의 정신을 근간으로 전통과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미의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나라 다인들의 미의식이 유감스럽게도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발을 극찬하는 일본 다인들의 미의식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의 미의식은 ‘그들의 민족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광기(狂氣)’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부르짖으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민족 전체가 전쟁에 뛰어든 광기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오두막을 닮은 다옥(茶屋)을 짓고 ‘와비’ 즉 ‘간소하고 차분한 아취’를 연출하는 광기와도 통한다. 일본의 종교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이며 민예연구가인 야나기무네요시(1889-1961 년)는 ‘일본 다인의 미적 역량이 아니었다면 이도다완은 단지 조선의 생활 잡기로서 그 존재를 마감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국인(自國人)의 미의식을 찬양하였다. 이는 일본인의 미의식이 ‘민족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인의 미의식은 이 땅의 일부 다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찻사발에 열광하며 특정 작가의 것에만 매달리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미의식의 집단화 성향이다. 집단적인 미의식은 미적가치를 획일화함으로 말미암아 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걸림돌이 되며 풍부한 창의성에 의한 작품 활동을 위축시킨다. 이는 시장에도 영향을 주어 소비자가 다기를 선택하는 폭을 좁힌다. 결국 시장이 왜곡(歪曲)되고, 가격은 극심한 편차를 드러내며, 상업적 수완이 없는 도예가들은 시장 진출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집단적 미의식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다양한 시각으로 자유롭게 미적가치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자유는 ‘소신’ 혹은 ‘줏대’를 뜻한다. 작가 이름이나 타인의 평가 혹은 시류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소신껏 줏대를 세우고 미적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찻그릇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 이런 태도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도예가들의 적극적인 창작 활동과 시장의 올바른 형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차의 정신에 따른 우리의 미의식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소박함’이다. 소박함에는 ‘수수하고 편안하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모양, 색감, 질감이 수수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다기라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첫 대면 시에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이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기교가 넘치는 현란한 모양의 다기, 짙게 화장한 여인 같은 화려한 색감의 다기, 고의성이 엿보이는 거친 질감의 다기는 순간적으로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없다. 값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가 된다. 소박함을 가장한 작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다기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발품을 파는 자유를 누려야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다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차의 정신을 잊지 말고 소신껏 다기와 눈 맞추기를 하다보면 이름모를 도공의 땀이 배여 있는 좋은 다기를 만날 수 있다. 이는 흙 속에 묻힌 보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비록 여러 사람들의 미의식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할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미적가치는 일차적으로 주관적인 것이요 다기를 선택하는 것은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나 남편을 선택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찻그릇을 선택하는 자유는 다양한 쓰임새의 그릇들 중에서 찻그릇을 찾는 것으로 확대될 수 있다. 세월에 밀려난 잡기(雜器)들 중에서 찻그릇으로 어울릴만한 소박한 아름다움과 기능을 지닌 것이라면 그 본래의 용도가 술잔이었든지 종지였든지 대접이었든지 상관없다. 어린시절 밥상 위에 오르던 것들이 한 때 버려질 뻔 했다가 이름 없는 다인에 의해 찻그릇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름답다. 지난 시절 가난한 도공이 생계를 위해 쉼 없이 만들어낸 잡기는 모양이 고르지 못하고 거칠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들의 질박한 삶이 배어 있고, 단조롭지만 작위성이 없는 그림은 어렸을 적에 놀아주던 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4.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다례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한다. 실제로 소위 전문 다인들이 음양오행설이나 주역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은 다례는 그 이름부터 어렵고 부담스럽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례의 종류가 많음에 있다. 궁중다례, 규방다례, 접빈다례, 선비다례, 선다례(禪茶禮)를 비롯하여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행했다는 다례 등이 있고, 또한 관련 단체마다 이들 다례에 대하여 일정 부분 주장을 달리하니 이렇게 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전통다례를 고증, 복원, 재연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러나 원형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데다가 문헌적인 근거마저 빈약한 형편에 저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다례의 본질을 망각한 행태이다. 더구나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한 처지에 외국에까지 나가서 이를 시연하는 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례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추방하려면 속히 우리의 전통다례가 통일된 이론과 형태로 정리 복원되고 잃어버린 다례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다례는 다인의 인격을 예법을 통해 표출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다인이 갖추어야할 고상한 인격을 소유하지 않은 자의 다례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하고 고가의 기물을 사용하여 숙달된 솜씨로 차를 우려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이런 자들은 차 생활 경력이나 고가의 다구 혹은 관련지식으로 자기의 권위를 드러내려 하지만 권위 역시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결국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다례는 소박하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격적인 권위가 배어 있어야한다.
다례의 정신이나 행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손’(恭遜)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공손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분고분하다’로서 여기에는 ‘얌전하다, 직수굿하다, 겸손하다, 순종(順從)하다, 섬기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다례를 행함에 있어서 예법이 그 행위 안에 녹아 있고, 자연스럽고 소박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절제된 모습이 그것이다. 공손하게 차를 우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이는 나이,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차를 우려낼 때마다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할 덕목(德目)이다.
오랜 경력을 지닌 다인을 위해서 차를 우릴 때면 언제나 시험을 치루는 학생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다보니 허둥대고 실수를 연발하게 되어 찻자리가 끝난 후에는 언제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공손’이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되면서 다례의 복잡함과 까다로움에서 자유로워졌다. 공손이란 행위 이전에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니 잘못될 것이 없고 여기에 기본적인 예법을 더하여 자연스럽게 차를 우리니 찻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이 피차에 쓸데없이 긴장하거나 불편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례는 차를 마시되 서로 예의를 갖추고 마시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방편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례에 얽매여 시간과 금전을 탕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통다례를 복원하고 계승하는 일은 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게 하라. 그러나 차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다례는 공손하게 행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5. 명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차는 색향미(色香味)가 좋아야 한다. 그러나 선호하는 색향미는 각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명차라도 특정한 차를 누구나 다 좋아할 수는 없다. 또한 명차라고 인정받는 차는 가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명차는 그 진위(眞僞) 여부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범인(凡人)들은 돈이 있어도 선 듯 구매하기 어렵다. 감미(甘味)로운 맛과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일수록 뛰어나니 굳이 명차가 아니라도 이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진정으로 자연과 함께 숨쉬고 싶다면 거칠고 투박한 맛과 향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떨떠름하고 씁쓰름하고 풋풋한 맛과 함께 풀냄새를 닮은 자연의 향기와 친해진다면 굳이 명차에 매달릴 필요가 없고 우전이나 세작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분명히 명심해야할 사실은 색향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운(氣運)이라는 점이다. 차는 예로부터 맛보다 기운이 강해서 음식이 아닌 약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기운은 색향미보다 중요하다. 오염되지 않은 찻잎을 잘 법제하여 만든 차는 기운이 좋다. 이런 차를 마시면 기가 하강하여 단전에 모이고 단전에 모인 기는 몸 전체로 운행되어 심신이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진다.
어느 해인가 지리산 근처의 다원을 몇 군데 순회한 일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차 대접을 받다보니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일부 기운이 좋지 않은 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주는 대로 마셨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다원을 찾아들었다가 ‘잭살’을 닮은 차를 만났다. 거의 다 자란 찻잎으로 열처리도 하지 않고 만든 그 차는 소위 구증구포(九蒸九曝)를 염불처럼 되뇌는 다인들에게는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차였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로 하늘이 내린 차였다. 거칠고 투박한 맛과 향을 느끼는 순간 상기(上氣)되어 화끈거리던 얼굴이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고 한 잔의 차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니 이내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밝아졌다.
명차에 매달리고 우전이나 세작만 고집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운이 좋은 차를 만나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 기쁨을 알아야 차를 선택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이 자유가 진정한 차 생활을 가능케 한다.
6. 맺는 말
서울의 어느 대학교 다도동아리 학생들이 배움을 위해 남녘의 유명 다인을 찾아갔다가 차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돌아와서 평하기를 ‘그들은 마치 교주(敎主)와 그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사교(邪敎) 집단 같았다.’고 했다. 다인들 사이에는 ‘200여 명 정도의 제자를 거느린 차 선생은 교주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갔고 간혹 그런 모습이 엿보이는 다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젊은이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이것이 일부 빗나간 다인들의 모습일지라도 이는 우리 차 문화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차 생활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차 살림의 부요(富饒)함으로 인한 자기만족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차 생활을 하는 이유 중에 이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 다른 속박이 되기 때문이다. 차 생활은,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과 교감을 나누는 자유를 위해서, 진정한 안식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수행(修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차 생활을 통해서 세속으로부터의 자유와 안식을 얻기 원한다면 먼저 차 생활 자체가 얽매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매이려거든 허례와 허식으로 매이지 말고 오직 차의 정신으로 매여야 한다.
(월간 Tea & people 2006. 9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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