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주전자는 주물로 제작되어, 직접 불 위에 얹어서 물을 끓이는 도구입니다. 주물은 주형을 제작하고 녹인 금속을 틀에다 흘려 넣어서 만드는 기법입니다. 무쇠주전자의 주원료는 사철砂鐵입니다.
철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강철과 선철입니다. 강철은 철판이나 철골 등에 쓰이며 주물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물에는 선철을 이용하며, 사철은 선철의 한 종류 입니다.
이전에 만들어진 무쇠주전자는 모두 수공제작입니다. 설계부터 완성까지 80가지 이상의제조공정을 거쳐 완성되며 때로는 2개월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무쇠주전자는 본체를 만드는 장인과 손잡이를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고, 이 둘의 조화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손잡이에는 금은으로 세공을 하기도 하며, 가격이 비싼 것은 속이 비어 있어서 물이 끊어도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디자인이 복잡하고 공예가 정교한 것은 주형을 한번 밖에 사용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격도 상당히 고가입니다. 하나의 주형으로 몇 백 개씩 제작되는 것도 있으며, 지금은 기계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고가의 작품은 손잡이를 만들 때 철판을 손으로 두드려서 만들며 속이 비어 있습니다. 무쇠주전자에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900도 정도의 온도로 30분 정도 숯불에 넣어서 산화피막을 만듭니다. 이때 재료는 주로 옻을 사용합니다.
무쇠주전자보다 무쇠솥이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무쇠솥에 주둥이와 손잡이를 붙인것이 무쇠주전자 입니다.
(자세한 제조방법은 다음에 소개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무쇠주전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江戶중기(江戶時代: 1601-1968)부터이고, 京都의 龍文堂에서 납의 주형鋳型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주물제작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1764년 이후의 일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무쇠주전자는 크게 南部鐵器와 京都鐵器가 있습니다.
경도철기의 무쇠주전자는 주로 화로용(火鉢)으로 제작되어 크기가 작고(큰 것이 2L정도), 뚜껑을 동으로 만들며 금은으로 세공을 하기도 합니다. 제일 유명한 곳이 龍文堂과 龜文堂입니다. 龜文堂은 龍文堂의 제 2대 제자가 독립해서 창업한 곳입니다. 이 두 곳은 무쇠주전자의 명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였으나 지금은 모두 폐업했습니다.
화발火鉢
남부철기는 일본의 동북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철기를 일컬으며 岩手縣, 山形縣, 福島縣 등이 유명한 산지입니다. 남부철기의 무쇠주전자는 주로 ‘이로리 囲炉裏’ 라는 화로용으로 손잡이를 고리에 걸쳐 천정 등에 메달아 사용합니다. 상대적으로 경도의 무쇠주전자 보다는 크고, 10L가 넘는 것도 생산합니다.
남부 무쇠주전자는 1659년 南部藩의 번주가 특별히 京都출신의 장인 小泉仁左衛門(初代)을 초청해서 차솥(찻물을 끓이는 솥)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3대 仁左衛門이 1750년경 무쇠주전자 창작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小泉仁左衛門은 현재 10대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남부철기는 江戸時代, 南部藩에서 차솥만들기로부터 발달한 주조물로서, 岩手県 盛岡을 중심으로 생산되어 지금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당시 水沢市에서 만들던 일용품에 기원을 둔 주철물을 포함해서, 현재는 岩手県에서 생산되는 철제품을 총칭해서 남부철기라고 부릅니다.
岩手県은 원료인 사철(砂鉄)과 철광석뿐만 아니라 목탄, 주형(鋳型)의 원료가되는 강모래, 점토, 녹방지용의 옻 등 자원이 풍부해 옛부터 철기가 제조되던 지방입니다. 특히 盛岡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江戸時代, 南部藩에 속하고, 그 비호아래 발달한 철기는 오늘 날에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江戸時代 초, 南部藩은 江戸(지금의 동경)로부터 쫒겨난 문화인들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盛岡에서는 무사계급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다도가 성행했습니다. 다도가 융성해지면서 南部藩은 본격적으로 차솥을 내부에서 생산할 것을 고려하다가, 1659년에는 경도계의 차솥 제작자 小泉五郎七清行을 南部藩의 ‘솥장인’ 으로 초빙했습니다. 이후 小泉家는 대대로 藩主의 비호아래 제작활동을 계속하다가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차솥
이 小泉家의 차솥 제작으로 의해 南部藩의 다도는 더욱 발전하고, 제작된 차솥은 幕府나 기타 다른 지방으로 선물용으로 활용되기도 하여 ‘남부’라는 이름이 세인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남부철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무쇠주전자인데, 1772년 小泉家의 3대 小泉仁左衛門이 창안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3대 小泉仁左衛門 때에는 종래의 말차(분말차)에 의한 다도 이외에 전차법(煎茶法)도 행해져 영내의 관료나 문인중에도 전차법을 배우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기서 小泉仁左衛門은 전차법에 사용되는 토기 주전자를 대신해 철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말차용 차솥을 작게해서 도안을 만들고 손잡니와 주둥이를 붙인 것이 남부 무쇠주전자의 시작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代 小泉仁左衛門清光作
이렇게 탄생된 무쇠주전자는 藩主에게 인정되어 4대 째의仁左衛門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5대, 6대, 대를 거듭하면서 수요도 증가하고 무쇠주전자를 만드는 기술자도 늘어나게 됩니다. 무쇠주전자는 차의 세계 뿐 아니라 일상의 도구로서도 일반인은 물론 농민에게도 사랑받는 물건이 됩니다.
남부철기가 현재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것은 明治時代(1968-1912)에 들어서 입니다. 盛岡, 水沢은 盛岡藩, 仙台藩의 비호아래 발전해 왔지만 이후 明治維新에 의해 藩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쇠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생산, 유통체계를 정비하고, 전람회에서 입상하는 등 명성이 오르자 각지로부터 주문량이 늘었습니다. 1890년 동북간선(열차)이 개통되면서 물류가 편리해지자 더욱 호전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다시 상황은 악화됩니다. 쇠붙이는 전쟁용으로 공출되어 자원 조달이 어려워졌고, 전후에는 알루미늄 등 가벼운 제품의 보급에 눌려 수요가 감소합니다. 최근에는 해외에 수출도 하고,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미적 아름다움의 추구, 철분섭취가 가능하다는 건강상의 이유로도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남부철기의 재료는 이전에는 전부 그지역에서 조달,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선철이나 철광석, 옻 등은 수입해서 사용하지만 주형을 만드는 강모래와 점토는 지금도 그지역의 것을 사용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부철기의 소재인 철은 岩手県 북부의 久慈에서 나는 砂鉄을 주로 사용했으나 19세기 중엽 南部藩의 한 사람이 철광석으로부터 선철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는 남부철기의 재료가 사철에서 선철로 변해 현재의 대량생산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
有坂家
초대는 京都 사람으로 7대 때 甲州(현재의 山梨県)로, 13대 때 盛岡으로 이주하였다.
鈴木家
甲州에서 1641년에 초대받은 鈴木縫殿家綱을 초대로 한다. 재조 한 것은 범종이나 등롱
등의 대작이 알려져 있고 江戶말기에는 대포를 제작 함. 1646년에는盛岡城의 時鐘을 제작, 당시의 유명도를 알 수있다. 이 종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어 현존하고 있다..
藤田家
甲州 출신으로 2대 때부터 盛岡에 이주, 냄비를 주로 제조했는데 그 품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小泉家
藩主가 차를 즐기므로 1659년 초빙되어 차솥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초대는 경도 출신의 小泉五郎七清行이라고 한다. 본업은 차솥이었으나, 지금도 현존하는 時鐘 등 수많은 제품을 제작했다. 3대 仁左衛門은 남부 무쇠주전자의 창시자라고 전해지고, 4대仁左衛門은 대포주조의 기술을 江戸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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