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연회 6월 차회 및 불교문화 답사 통도사, 사명암 2014. 06. 13. 13:00 ~ 18:00 이번 사명암 차회에서 통도사 불교문화재를 답사한 것은 1,700여년전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이래로 우리 선조들의 당신들 자신과 지금 우리같은 후손들의 번창과 행복을 위한 기원과 염원과 혼이 불교문화재에 녹아 내재되어 있고, 또한 우리 문화재의 대부분이 불교문화재이기에 불교문화재를 안다는 건, 바로 우리 문화재를 알고 선조들의 염원과 혼을 되새기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다선일여(茶禪一如)', 차(茶)와 선(禪)이 같다는 말이 의미하듯이 한·중·일 불교 수행의 한부분을 차(茶)가 차지하고 있고, 특히 일본 다도의 경우 그 핵심인 초암차(草庵茶)의 원형은 경주 남산 용장사(茸長寺)에 칩거하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는 1930년대에 일본의 아사카와 교수의 주장이 사실로 추정되는 데서 보듯이, 불교와 차는 예나 지금이나 같이 하기에, 이번에 통도사 사명암 차회에 앞서 간략히 1시간 정도, 순천의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구례의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와 함께 국가 지정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불교문화재를 답사하도록 하였다.
지산님과 함께 조금 일찍 통도사에 도착하여 점심공양후 모임장소인 일주문 앞에서 회원들을 기다리며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서 자라는 나무가 이채로워 관심 있게 봅니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삼보사찰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불보사찰의 위치를 갖게 되었으며, 통도사를 한국불교의 으뜸인 불지종가(佛之宗家)요,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제1적멸보궁이기에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통도사의 가람형태는 창건 당시 신라이래의 전통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된 산지도 평지도 아닌 구릉형태로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上爐殿)과 통도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中爐殿), 그리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下爐殿)으로 구분되어 있다.
通度寺(통도사)라는 사명(寺名)은 첫째,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지었다(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둘째,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곳의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다(爲僧者通而度之). 셋째,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通諸萬法度濟衆生)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 이름지었다 한다.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이 3칸이고 가운데 칸으로만 다니게 한 의미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靈鷲山通度寺(영축산통도사) 이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며 통도사에는 곳곳에 그의 글씨가 걸려 있다. 일주문 기둥의 佛之宗家(불지종가) 國之大刹(국지대찰)은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이다.
통도사 불교문화재 답사는 조금 깊이 들어가면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5시간 정도 소요되나 1시간정도로 줄여서 진행되었다.
이번 답사 해설은 포교사단 중앙홍보위원이자 부산지역단 통도사 사찰문화 해설팀이며 내가 소속된 팀인 제석천팀의 팀장인 석암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1937년 경봉스님께서 극락암에서 새벽예불 오시다가 하늘에 떠있는 별 3개와 초생달을 보고 心자를 떠올리며 세웠다는 삼성반월교(參星半月橋)를 보며 해설 중입니다. 삼성반월은 마음 심(心)자의 파자(破字)이니 곧 '일심교'를 의미하고 물에 비친 반원은 여래장(如來藏)을 뜻하기도 합니다. 조용필이 경봉 선사로부터 받은 꾀꼬리 화두를 가슴에 품고 다니다가
만든 노래가 ‘못찾겠다 꾀꼬리’라는 일화도 들려줍니다. 아래에 작년 초파일 삼성반월교 사진과 낙화놀이 사진을 첨부합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각에 관하여, 그리고 왜 전면이 담과 일직선이 되어 있는지를 설명중입니다. 내가 통도사에 오래 다닌 보살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부동산 관련 업에 종사하거나 부동산을 매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참배한다고 합니다. 통도사 신도들은 대개 천왕문 다음에 이리로와 서서 삼배후 법당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가람각 참배 여부로 통도사에 오래 다녔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통도사 극락보전 뒷벽 반야용선도에 대하여.......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인도하는 반야용선에 승선하여 극락으로 가는데 한분만(아래사진♣표시) 뒤를 보고 있는데 두고온 처자 때문인지, 아니면 인급 노차를 아끼다 아끼다 못먹고 와서인지......?
극락암에서 1시간 정도 급경사를 걸어 올라 가야 하는 백운암에서 수행하던 스님과 그 스님을 흠모하다 상사병으로 숨을 거두고 영축산 호랑이가 되었다는 처녀에 관한 설화상의 호혈석에 물을 끼얹어 호랑이 발자국을 보며 설화를 듣습니다.
영산전(靈山殿), 극락보전(極樂寶殿), 약사전(藥師殿), 만세루(萬歲樓)로
이루어진 하로전(下爐殿)에 대해 설명중입니다. 만세루의 현판은 6세 신동의 글씨라고 합니다. 대들보가 놓이지 않은 중앙으로 호랑이와 코끼리가 서로 마주보며 이마로 종보를 떠받들고 있는 불이문에서 호랑이가 등장한 연유를 들으며 중노전으로 향한다.
용화전 앞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석조 봉발의 네모난 지대석을 보면 약간 비틀어져 있는데 그 연유설명하고 있다.
해장보각 벽의 민화 까치호랑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각 전각의 처마 아래에 소금단지를 올려 놓는데 해마다 단오날 용왕재시 새소금으로 갈아 넣으며 일년간 통도사를 화재로 부터 지킨 전년도 소금은 신도들에게 나누어져 신도들의 가정에서 화재와 액운을 맊는 역할을 한다.(이 사진에서는 단지가 안보이는데 다음의 명부전 외벽 삼국지 벽화옆에서 볼 수 있다.) 통도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광명전 내부의 좌우 천장 아래 도리 위에는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이라 할 다음의 오언절구(五言絶句)가 쓰여 있으니 통도사에 들리시면 한번 눈여겨 보세요.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定是海中人(정시해중인) 口呑天藏水(구타천장수) 能殺火精神(능살화정신) 내 집에 한 손님이 있으니 정녕 바닷사람이구나 입으로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능(能)히 불의 정신(精神)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단오날 받은 소금인데 우리집 씽크대 진열장위에 두었습니다. ㅎ~~
대광명전 앞 파초를 보며 파초가 절에 있는 연유와 혜가(慧可) 단비구법(斷臂求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상로전(上爐殿) 영역에 들어서서, 국보 제290호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을 살펴보면 대웅전을 화사한 꽃밭으로 만드는 기단만은 신라시대 창건 당시의 것이고, 대웅전 지붕은 북쪽을 제외한 삼면에 합각이 생기는 丁자 모양으로 만든 특수한 모습이며, 丁자 지붕의 중앙에는 큰 절집임을 상징하는 찰간대(刹竿臺)를 세웠고, 활주가 건물 네 귀퉁이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다. 건물의 동서남북에 걸린 현판이 모두 다른데 금강계단을 직접 대하는 북쪽에는 '寂滅寶宮', 남쪽 면에는 '金剛戒壇', 동쪽은 '大雄殿', 서쪽에는 '大方廣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를 존재케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사리를 친견하고자 이곳을 찾았으며,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발길이 끊이지않았고, 원나라의 황실도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구룡지에 관한 전설과 삼성각의 경우 여느 사찰에서는 독성, 산신, 칠성을 모시는데 통도사 삼성각은, 고려 말의 고승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을 모신 전각이라는 설명으로 이어졌다.
명부전의 외벽에는 삼국지에 관한 벽화가 두점이 있다. 삼고초려도(三顧草廬) 차간유복룡봉추한제삼고(此間有伏龍鳳雛漢帝三顧) 복룡은 제갈량 ,봉추는 방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나라 황제가 둘 가운데 하나를 세번 방문했다는 뜻. 초가집에서 낮잠을 자는 제갈량, 마당의 동자, 사립문 밖에 선 유비일행을 표현
오른쪽에 소금단지가 보입니다.
탄금주적도(彈琴走賊) 서성월야탄금퇴위병(西城月夜彈琴退魏兵) 서성에서 달밤에 거문고를 타서 위나라 병사를 물리쳤다 성문 위 2층 누각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제갈량과 성문 앞에서 청소하는 군사 그리고 성문 밖 깃발이 그려진 세 곳은 이를 지켜보는 사마의의 군대를 표현한 것이다.
시간상 서둘러 차회 장소인 산내 암자인 '사명암(四溟庵)'으로 향합니다.
사명암은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이라고 하며,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泗溟大師)를 흠모(欽慕)한
이기(爾奇)ㆍ신백(信白)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통도사, 수덕사, 화엄사, 안압지, 분황사, 불국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경복궁 향원정, 우정국 진열실, 남한산성등 우리나라 주요 건물의 단청을 담당하였고,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받은 단청장 혜각(慧覺,1905~1998)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도 하며,
현 사명암(四溟庵) 주지이신 동원스님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으로 혜각스님 에게 행자 시절부터 단청과 탱화를 직접 전수받았다.
그 때부터 동원스님의 수행법은 단청과 탱화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조계사 대웅전 탱화는 꼬박 3년 동안
6명의 제자와 조성한 높이 8m, 폭 5m 크기의 국내최대 후불탱화이다.
캐나다 서광사, 청도 운문사, 대구 동화사 등 100여 사찰에 단청 불사를 했고,
전국의 많은 법당에 동원스님의 손길이 스며있다. 고려불화에 준하는 세밀한 탱화를 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승대(日昇臺)
사명암에는 연못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두 정자가 있다. 오른 쪽엔 일승대(日昇臺), 왼편엔 월명정(月明亭)이다.
일승대에는 해가 뜨는데 월명정에는 달이 밝으니,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로 들어갑니다.
월명정(月明亭) 월명정(月明亭)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다른 한쪽은 자유롭게 살려면 일을 만들지 말라는 뜻의 무작정(無作停)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극락보전 극락보전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사명대사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영각
일승대에서 동원스님의 법문을 듣고, 일승대에 아쉬움을 남겨 놓고 큰방으로 ...... 문혁 전차입니다. 오늘의 팽주는 우리 다연회에서 노차등 귀한 차를 선보이는 다암님입니다.
78년 홍인 산차입니다.
다암님의 70년대 청병입니다.
저녁 공양입니다. 공양주 보살님이 많이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산중 암자임에도 연못위에 위치한 정자가 고즈넉한 사명암의 정취에 고고한 멋을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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