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흥국사의 명칭은 사적기에 의하며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는 뜻으로 나라의 번영을 비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숙종 17년(1691년)에 작성된 사적기에는 1196년 보조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있고 숙종 29년(1703년)에 작성된 중수사적비명에는 1343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 몽고의 침입으로 폐사된 후 1560년에 이르러 법수(法修)스님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의 승려가 임진란에 승군으로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수군에 참여하였다. 정유재란 때 흥국사가 전소되어 인조 2년(1624년) 계특戒特대사에 의하여 법당과 요사가 중건되었다. 인조 17년(1639년) 입구에 있는 홍교를 축조하고 인조 23년(1645년) 산문과 강당인 봉황루를 건립하였다. 현 대웅전은 1690년 법당이 좁아 다시 지은 것이다
오전 9시 40분경 흥국사에 도착한 우리 고찰순례단은 10시 부터 이감사님이 육법공양을 올리고
이어 영인스님의 집전으로 사시불공을 올렸다. 이번에는 일부 단원들의 희망에따라 1일 가족 축원
희망자 접수를 받아 사전에 팩스로 종무소에 송부하여 축원자 가족에 대한 사시불공시 스님의 축원이 있었다
사시불공후 각 전각을 참배하고 공양후 12시 20분에 대웅전에 다시 모여 영인스님의 법문을 듣기로
하였다.
흥국사 원통전. 정유재란(1597) 때 불탄 것을 1624년에 다시 지었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처럼 독특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흥국사의 위치와 저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 문고리에는 한번 잡기만 해도 ‘삼악도’를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문고리에 전해오는 이야기의 내력은 이렇다. 1624년 대웅전을 지을 때 편수로 힘을 보탠 마흔한명의 승려들이 천일기도를 하면서 누구든 이 문고리를 잡는 중생들이 삼악도를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흥국사 대웅전은 반야용선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계단의 소맷돌에도 용머리를 새겨놓았고 기단의 좌우측 끝에도 용(워낙 마모되어 형태를 알기 어렵다.)의 모습을, 그리고 기단에도 거북, 게 등을 새겨놓았다는 것이다. 계단 양쪽의 용머리는 신성한 이 배를 용이 수호하고 호위한다는 뜻입니다. 축대는 바다를 의미하는데, 이곳에는 게 해초 등 바다고기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 석등은 향로를 밝히는 등대로서 기존의 사찰과는 달리 거북이 등위에 조성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반야용선에 승선하면 지혜를 깨달아 고통 없는 부처님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문중인 영인스님
흥국사 홍교. 1639년 지었다.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다리로, 기능성은 물론 미관이 뛰어나다. 당시 흥국사의 사세와 위치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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