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동화사와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인사찰이다. 신라 41대 헌덕왕의
원찰(願刹)로서 809년에 창건되었다.
은해사의 옛 이름은 해안사(海眼寺)이며 운부암에서 가까운 해안평이 그 옛터이다. 해안사는 조선
인종 원년(1545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모두 타 버렸다. 인종이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어서 이듬해
나라에서 하사한 보조금으로 천교화상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로 절을 중창하고 은해사라 이름을
고쳤다.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후불탱화, 괘불, 신장탱화, 금구(쇠북)등 많은 성보문화재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대웅전과 보화루 그리고 불광이라는 친필현판이 유명하다.
산내암자인 백흥암 현판은 물론 주련까지도 모두 추사의 친필이므로 은해사는 추사체의 보고이다.
▲아미타불
대웅전 주존으로 아미타여래와 그 좌우로 관음·세지 보살상이 협시하고 있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상은
높이 136㎝로서 목조로 제작되었다. 후불탱의 구도로 보아서는 본래부터 삼존상으로 조성된 듯한데,
언제인가 좌우 협시보살상은 없어졌다가, 최근에 관음·세지보살상을 봉안하여 지금처럼 삼존상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가 봉안되는 것이 원칙인데 지금처럼 아미타여래가 모셔진 것은 1847년의
화재와 관계있는 듯하다. 1862년(철종 13) 혼허 지조 스님이 지은 「은해사중건기」에 따르면 1847년에
극락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해에 바로 중건 불사에 들어갔는데,
이 때 극락전에 있던 아미타여래 및 탱화들을 새로 지은 대웅전으로 이운해 온 듯하다.
대웅전이 불사(보수)중이어서 참배만하고 설법전으로 가서 육법공양과 연수국장이신 대웅스님의
집전으로 사시불공을 올렸다
▲사시불공후 돈관 주지스님께서 점심공양도 미루고 12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우리 고찰순례단원들을
위해 귀한 법문을 해 주셨다.
▲보화루
▲은해사 성보 박물관에서........
▲동곡당 일타 대종사 께서 쓰시던 다구입니다.
▲은해사로 들어가는 솔밭길
은해사 순례시,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법문을 해주신 돈관 주지스님, 저희 순례단원들을 기다려가며
사찰안내와 사시불공을 집전해 주신 대웅스님, 공양물 운송시 차량제공을 해주신 총무부장님,
성보박물관에서 해설을 해주신 문화해설사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사시불공시 대웅스님께서 이번에 육법공양물을 올린 善應거사님 가족의 주소, 생년, 성명 등을
거명하며 축원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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