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는 신라 문무왕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의상대사는 당나라 종남산 지엄화상으로부터 8년간 화엄경을 배워 돌아온 후 해동에 화엄학을
펴기 위해 <화엄전교십찰(華嚴傳敎十刹>을 창건하였는데, 그 때 건립된 사찰의 대부분이 반
신라적 기질이 농후한 옛 고구려, 백제의 수도 근교에 배치되어 있다. 이 곳 고성군에
<화엄전교 십찰>의 하나인 옥천사가 창건된 것은 이 지역이 소가야 지역으로 금관가야가
멸망한 진흥왕 23년(562)까지도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에 항거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 소가야지역 주민들을 선무하기 위하여 옥천사를 창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상대사가 통섭만법 명일심(統攝萬法 明一心)의 화엄사상으로 우리민족의 사상을
통일하고자 한데 비추어 신라 조정은 통일된 3국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라 조정에
복종케 하는 데 뜻이 있었다. 양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사찰을 건립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므로
의상대사는 신라조정의 도움을 받아 <화엄전교십찰>을 창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화엄전교 십찰>이 성립된 시기는 신라 하대에 이르러 의상대사의 제자들에
의하여 완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옥천사에는 창건되기 전부터 맑은 옥천이 샘솟고 있어 옥천사(玉泉寺)라는 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옥천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예부터 각종 병을 고치는
감로수(甘露水)로 유명하다. 물은 수평일 때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지만 이 옥천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특징이 있다. 한국 100대 명수(名水) 중의 하나. 많은 사람들이
옥천 샘물을 마시기 위하여 옥천사를 찾고 있다. 옥천은 암수 2개의 샘이 있는데 연화산
산속 물무듬이에 수샘이 있고 옥천사의 옥샘은 암샘이라 한다.
옥천사는 예로부터 나한도량 및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옥천사 나한전 상단불상의 좌우에는
각 여덟 분씩, 16분의 나한님이 모셔져 있는데 그 중 9분은 조선 전래의 목조 나한님들이다.
도량석이 늦어지면 목탁소리가 들리고 경을 읽다 잠이 들면 잡아끄는 수가 있으며, 밤중에 불을
켜놓고 깜박 잠이 들면 “누구 계십니까?” 하고 깨우기도 한다.
사진에는 없지만 회원인 박교수님이 스님을 대신하여 순례단 회원들을 대웅전 앞에 모이게 한후
해박한 상식으로 옥천사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교수불자회 회장을 엮임한 박교수님의 설명속에
옥천의 감로수를 정월 보름 子時에 볼 수 있으며, 황토냄새가 약간 올라오며 물이 일렁인다는
설명에 모두들 신기해 하는 표정이었다.
나무에 가려져 보이는 가장 오른쪽이 0.8평 짜리 한국에서 가장 작은 산신각이라 한다.
겨울 산새들이 먹도록 따지 않은 감이 더욱 붉어 보인다.
옥천사 순례를 마지막으로 제8차 고찰순례의 일정이 끝났다.
지금껏 순례중 처음으로 2시간이라는 장시간 보리암에서의 사시불공으로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고찰순레단 모두에게 내려진 날이다.
여래지 보살님이 보시한 떡과 밀감으로 오후의 허기를 메꿀 수 있었고, 박교수님의 해박한
설명이 돋보인 순례였다. 또한 여래지 보살님의 부군인 스타코(주) 회장님은 공사다망함에도
불구하고 옥천사까지 순례하였으며, 귀가 버스에 탑승한 우리 고찰순례단원에게 앞으로 남은
고찰순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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