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1. 15. 금) 발표자료
기신론의 구상차제에 대하여
-대총상법문설의 12연기와의 배대를 중심으로-
- 목 차 -
Ⅰ. 서론
Ⅱ. 九相次第가 나오게 되기까지의 내용전개 Ⅲ. 九相次第(三細六麤)와 12緣起의 配對 1. 三細 2. 六麤
Ⅳ. 결론 |
지도교수 : 일초 학장스님
발 표 자 : 사 교 반 고경
Ⅰ. 서 론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 그 자체이므로 불교의 가장 핵심이고 , 그것을 대표적으로 12연기로 표현해왔다. 그런 중요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의미를 알려는 노력이 없었다. 그런데, 대총상법문설에서 우리가 미한 과정을 九相次第로 풀면서 이 12연기와 배대해 놓은 것을 보고, 12연기를 九相次第라는 다른 표현방식으로 접근해서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본론에서는 大乘起信論(이하 기신론) 元曉疏를 중심으로 九相次第가 나오게 되기까지의 내용전개와, 九相次第를 12연기와 배대하여 살펴 보려고 한다.
Ⅱ. 九相次第가 나오게 되기까지의 내용전개
먼저, 기신론에서 구상차제의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대승기신론에서, 大乘이라는 것은 一心이며 그 一心은 바로 衆生心 즉 우리들의 마음이며, 그 중에 心眞如門과 心生滅門이 있어서 두 문이 서로 여의지 않아 각각 一切法을 포함한다고 한다.(이것이 너무나도 유명한 기신론의 핵심내용인 一心二門이다.) 또, 우리 마음의 體는 진여문이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생멸문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일심의 광대한 바다에 생멸의 파도가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면, 기신론에서 말하는 생멸문의 대목에 들어가보자.
심생멸이라는 것은 여래장을 의지한 연고로 생멸심이 있으니 소위 불생불멸이 생멸과 화합하여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어서 이름이 아뢰야식이니라. 그중에 각과 불각의 두 뜻이 있나니라.1)
여기서 여래장이란 번뇌에 덮힌 진여를 말하며, 심생멸이란, 진여가 무명으로 인해 한생각 생멸심이 일어나 진여의 의미를 잃고 불생멸에서 생멸로 떨어져 갖가지로 유전하는 현실계를 말한다. 그러나, 불생멸하는 진여 전체가 움직임을 일으켰으므로 그 진여의 체성은 잃지 않아서, 진여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마음으로서 아뢰야식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게 된다. 즉 기신론에서의 아뢰야식은, 유식학파에서 말하는 단순한 藏識의 의미가 아니라 眞妄和合識으로서 새롭게 등장하여 覺과 不覺의 두 뜻을 지니며 일체법을 섭수하고 일체법을 낳는 근본이 되는 식인 것이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이 覺으로 가면 淨緣起 還滅門이요, 不覺으로 가면, 染緣起 流轉門이 된다. 지금 여기서는, 아뢰야식의 불각의 측면을 통해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마음이 진여로부터 멀어져 중생심이 되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Ⅲ. 九相次第(三細六麤)와 12緣起의 配對
불각은 다시 根本불각인 무명과, 무명에서 비롯한 枝末불각인 三細六麤로 나눠지는데, 이 삼세육추가 바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九相次第다. 따라서 구상차제란, 근본불각인 무명에서 시작된 미혹함이 지말불각인 삼세육추라는 아홉가지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으로서, 우리가 진여라는 본마음에서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와 육도윤회를 거듭해온 연기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삼세육추란, 세가지의 미세한 마음작용과 여섯가지의 거친 마음작용을 말한다. 삼세육추 가운데 최초의 무명업상이 가장 미세한 것이며, 이하로 점차로 거칠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삼세육추가 나오게 되는 원인인 근본무명은 무엇을 깨닫지 못해서 불각이라 하는지 기신론의 구절을 인용해 보자.
불각이라는 것은 이른바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망념이 있나니라. 그러나 망념은 자체의 모습이 없어서 본각을 떠나 있지 않나니라.2)
라고 하고 있다. 즉 불각은 진여 혹은 진리가 절대적이고 평등하여 생각 이전의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근본불각에 의해 진여는 평등한 것에서 조금씩이나마 움직여간다. 그리하여 지말불각인 삼세 육추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1. 三細
그러면, 세가지 미세한 마음(삼세)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이다. 기신론은 무명업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무명업상이다. 불각에 의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업이라 이름하나니라. 깨달으면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 고통이 있으니, 과보는 원인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니라.3)
무명업상을 간단히 업상이라고도 한다. 이는 어두운 길에서 꿈틀거리는 미혹의 시작이다. 무명의 망념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업상이다. 아직 객관과 주관은 전혀 의식되지 않는다. 이 업상은 12연기의 行에 해당한다. 따라서, 行은 바로 마음의 첫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상윳따니까야』에서 ‘行은 有爲를 조작한다는 뜻’이라고 한데서4) 5), 업이란 유위적인 의도라는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6)
이 움직임에 의해 사물을 보는 작용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두번째 능견상이다. 이때의 보는 작용이라는 것은 실제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 극히 미세한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다만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7) 이제 보는 작용이 생기면, 그것에 따라 객관의 대상이 보여진다. 마치 거울이 있으면, 일체의 사물이 비춰지는 것과 같은데, 이것이 경계상이다. 그리하여, 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능견상이니 움직임을 의지하는 연고로 능히 보는 작용이 생기나니, 움직이지 않으면 보는 작용도 없나니라. 셋째는 경계상이니 능견상을 의지하는 연고로 경계가 망령되이 나타나니, 보는 작용을 여의면 경계도 없나니라.8)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의 삼세를 거울에 비유하면, 거울면은 무명업상, 거울면이 모든 대상을 투영하는 작용은 능견상, 거울에 투영된 여러가지 모습은 경계상인 것이다. 12연기로는, 능견상은 識에, 경계상은 名色과 六入에 해당된다. 즉, 식이라는 주관과 명색․육입이라는 객관대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명색․육입 즉 우리의 정신(名)과 육체(色)라고 하는 것과 육입처가 거울에 비춰진 상과 같아서 실체가 없는 그림자라는 점이다. 이는 기신론에서 우리가 보는 객관대상이 ‘轉識이 나타낸 것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대상이 있다고 여긴다’9)라는 말과 상통한다.
2. 六麤
이상과 같이 불각에 의해 삼세의 세가지 미세한 마음작용이 일어나면, 이어서 허망하게 나타난 삼라만상의 경계상에 의해 여섯가지 거친 마음작용인 육추가 일어난다. 여섯가지란 智相, 相續相, 執取相, 計名字相, 起業相, 業繫苦相을 말한다. 먼저 기신론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경계의 연이 있는 까닭으로 다시 여섯가지 상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첫째는 智相이니, 경계에 의해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니라.
둘째는 相續相이니, 지상의 분별에 의해 고통스럽거나 즐겁다는 느낌이 생겨 망념이 일어나 끊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세째는 執取相이니, 상속상에 의해 경계를 반연하고 생각하여 苦樂心이 머물러 마음에 집착이 생기기 때문이니라.
네째는 計名字相(명자를 헤아리는 모습)이니, 허망한 집착에 의해 가명과 언설의 모습을 분별하기 때문이니라.
다섯째는 起業相(업을 일으키는 모습)이니, 名字에 의해 이름을 찾아 집착하여 갖가지 업을 짓기 때문이니라.
여섯째는 業繫苦相(업에 매여 괴로워하는 모습)이니, 업에 의해 과보를 받아서 自在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10)
육추의 처음인 지상에서의 ‘智’는 ‘지혜’라는 의미가 아니라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거울에 비춰진 萬相을 진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분별하는 것이 智相인 것이다. 상속상은 그 분별심으로 인해 즐겁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생겨 망념이 계속 이어짐을 말한다. 원효스님의 疏에 의하면, 지상과 상속상은 제 7식에 해당되며, ‘지상은 안으로 반연하여 머무르고 바깥경계는 계탁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잠자는 것과 같으나, 상속상은 안밖으로 두루 계탁하여 각관하여 분별함이 마치 깨어있는 것과 같다’11)고 한다. 즉 지상은 미세한 분별작용이고, 상속상은 거친 분별작용임을 알 수 있다. 12연기로는 지상에 해당하는 것은 觸이다. 촉에 대해 『잡아함294경』에서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신다.12)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무명에 가리우고 애욕에 묶여 이 識이 생기면 ‘몸 안에 이 識이 있고, 몸 밖에 名色이 있다’고 분별한다. 이 두 인연으로 촉이 생긴다.
이 대목은 기신론 원효疏에서 ‘智相은 제8식을 나라고 생각하고 제8식이 나타낸 경계상을 我所 즉 바깥대상이라고 생각한다’13)라고 설명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지상과 촉은 아뢰야식(촉의 경우, ‘이전의 삶을 통해 형성된 마음’이라고 표현함14))을 반연하여 ‘나’라는 주체가 있다고 여기고, 그 ‘나’의 바깥에 온갖 사물(名色)이 존재한다고 분별하는 것이다. 즉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촉에 의해 고락의 느낌인 受가 나오는데, 구상차제 중 상속상에 해당되며, 이는 기신론의 상속상에 대한 설명과 같다.
상속상의 苦樂의 느낌에 의해, 苦의 대상은 피하려하고 樂의 대상은 자기 것으로 할려는 갈망, 즉 집착이 생기는데, 이를 愛라 하며, 집취상에 해당한다.
다음, 계명자상은 좋고 싫은 대상에 헛된 이름과 평판을 붙여 그 말에 집착하는 것이다. 12연기로는 取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마찬가지로 갈애의 대상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15)
이 헛된 이름과 집착에 의해 여러가지 선악의 업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起業相으로 12연기로는 有(존재)에 해당한다16). 기업상과 有는 잘 배대가 되지 않는 것 같으나, 태생학적 연기관에 따르면 有는 愛․取의 번뇌에 의해 여러가지 업을 지어 來世의 果를 정하는 位로서, 업의 의미가 있는데, 이때 업은 내세의 果를 所有하는 까닭에 有라 이름한다고 한다.17) 따라서, 12연기의 有가 구상차제의 기업상과 같은 뜻을 가짐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단계로, 이미 지은 업에 매여 고통을 받는 우리의 현실인 業繫苦相이 나타난다. 이는 12연기중 生老死에 해당한다. 生老死는 자아와 세계를 고정화된 실체로 대상화함으로써 발생하는 “나는 이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한다”, “나는 늙어 죽는다”는 의식이라고 한다18). 이 또한 무명에서 연기해 나왔으니, 망념에 의해 규정된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깨닫지 못하여 생사라는 개념에 스스로를 매어 놓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업계고상이다.
Ⅳ. 결 론
이상 우리의 마음이 진여로부터 멀어져 중생심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신론의 구상차제에 12연기를 배대하면서 알아보았다. 다시 구상차제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근본무명에 의해 한 생각이 움직여서(業相), 주관(能見相)과 객관(境界相)이 생긴다. 이 주관을 自我로 삼고 객관을 실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자아의식이 생기며(智相), 이 분별심에 망념을 계속 이어가서(相續相) 집착하고(執取相), 대상에 이름과 개념을 붙여 헤아리면서(計名字相) 그 개념에 따라 선악의 갖가지 업을 짓고(起業相), 그 업에 매여 고통을 받으며 육도윤회를 한다(業繫苦相)는 것이다.
구상차제와 12연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계는 그 처음이 근본무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실로 있다고 여기는 이 현실세계가 우리의 망상에서 나온 환상임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신론에서 ‘이 세계는 헛된 거짓이며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일 뿐’19)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계가 이렇듯 무명이라는 전도망상에 의해 이루어진 가상 세계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진여를 향하여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기를 발원해 본다.
< 참고문헌 >
진제역, 원효소,『대승기신론기회본』
이중표, 『근본불교』, 민족사, 2002.
이중표, 『아함의 중도체계』, 불광출판부, 1997.
전재성, 『초기불교의 연기사상』,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9.
법주사강원, 『대총상법문설주해』,1999.
가마타 시게오,『대승기신론이야기』,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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