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에 비친.....

[스크랩] [茶器 시리즈] ⑥찻사발의 미학(1)-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미

청원1 2017. 11. 15. 06:22
[茶器 시리즈] ⑥찻사발의 미학(1)-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미  

찻사발은 동양 정신을 담는 그릇

차는 그 덕성을 가장 잘 살려 주는 도자기를 만남으로써 다인들의 정신 영역을 확장시켜 주고, 영성(靈性)을 적셔주는 동양의 고전(古典) 음료이다. 도자기 또한 차와 만남을 통해 찻사발이라는 형이상학을 담는 철학적 그릇으로 변모한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다. 흙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보다 더 많은 철학성을 내포하고 있다. 흙은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를 그 안에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성서에도 하나님이 흙을 취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흙은 자연을 낳고 기른다.

그래서 흙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어미가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죽은 후에도 다시 품속에 모두를 받아들인다.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과, 흙에서 만들어짐이 시작되는 도자기의 운명이 ‘도자기와 인간과의 관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시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찻사발이라는 도자기는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다. 흙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보다 더 많은 철학성을 내포하고 있다./ 왕방요 신용균 作 변희석 기자

찻사발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대지의 한 줌 흙으로 만든 아주 작은 공간이다.그러나 이 작은 공간은 채우기 위해 비어 있어야하고, 비우기 위해서는 채워져야 하는 진리 의 법기(法器)이기도 하다. 노자의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흙을 반죽해 그릇[器]을 만든다. 그 무(無)에 기인하여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 어 방을 만든다. 그 무(無)가 있음에 방의 쓰임이 있다.’

그릇은 점토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어 그 기능이 있고, 방은 벽으로 막아놓은 공간에 의해 그 효용이 있다는 뜻이다. 찻사발의 본질 또한 공간이라는 무(無)에 있다. 이때 찻사발의 형 태는 안쪽에서 작용하는 ‘무(無)의 충실’이 외면으로 나타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 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공간’은 다인의 삶과 꿈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찻사발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미(美)

동양 정신은 근본적으로 자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의 명품 찻사발 또한 자연주의 정신을 담아내던 그릇이였다. 조선의 찻사발은 형상의 원형과 그 변형의 미학적 의미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다른 자연’이란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런 자연주의 미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미(美)다.

무위(無爲)란 글자 그대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새삼스럽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작위(作爲)가 없고 자연 그대로라는 뜻이다. 또 선종(禪宗)에서는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이상적인 경지를 무위라고 한다. 무위자연은 타고난 그대로 꾸밈이 없는 상태로서 천연의 모습이 자연에 합일되는 것이며, 차 정신의 심미적 요구에 부합되는 개념이다.

우리 찻사발을 말할 때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무심, 무기교의 기교, 불완전의 미, 질 박과 소박미 등의 수사는 무위자연의 미를 표현하는 구체적 언어다. 이와 같은 수식어들은 사기장들이 찻사발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손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만들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기교를 넘어선 무기교, 완전을 이해한 불완전, 모든 설명적 요소를 걷어낸 후에 얻어 지는 생략의 아름다움으로서의 소박미는 익을 대로 익은 숙련된 손만이 만들어 낼 수 있고, 유심과 무심의 경계를 넘어선 자만이 얻어내는 ‘무위자연의 미학’인 것이다.

▲ 우리 찻사발을 말할 때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무심, 무기교의 기교, 불완전의 미, 질 박과 소박미 등의 수사는 무위자연의 미에 대한 구체적 언어다./ 변희석 기자

사람의 손이 덧붙여졌을 뿐, 무위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해낸 최고의 사발을 무 작지작(無作之作)이라고 한다. 만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만들어진 것같은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발 중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이도다완’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이 사발을 아인 (亞人) 박종환님이 걸림이 없다는 뜻에서 ‘무애(無碍)사발’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 조선의 명품 찻사발 또한 자연주의 적 정신을 담아내던 그릇이였다./ 변희석 기자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미국내 두번째 규모이고 동양 예술로는 첫째가는 박물관) 관장을 지낸 셔먼 리(Sherman Lee, 관장 재임기간 1952 - 1983년)박사는 우리 찻사발을 중국과 일본의 찻사발과 비교하면서 그 무위자연주의적 특징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한국 다완은 자연스럽고 순박한 민중들의 요구에 맞도록 신속하고 간단하게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국인들에게는 고려 청자에서도 보여 주었듯이, 중국 다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모든 요소에 있어서 완전성(everything perfection)이 있어야 한다는 바탕에 우려하지 않는 전통이 있는 것 같다. 한국 다완에는 '접근의 자유(Freedom of approach)'랄까, ‘생긴대로 그대로 둔다(let things happen)'라는 저변이 깔려있다. 완전성을 우려치 않고 변형을 수긍(acceptance of accidence)하는 한국 다완의 기질(quality)에는 분명히 사실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 일본 다완은 이러한 한국 다완의 자연스런 ‘변형의 수긍’에 영향을 받았지만 지나치게 왜곡 과장한 감이 없지 않다.”

찻사발에 담긴 연두빛 찻물은 그 속에 차의 정취가 솔바람 소리, 물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릇이 갖는 본래의 기능 속에 이런 차라는 자연의 풍정이 보태어질 때, 그 그릇은 비 로소 완전한 예술품으로서 생명을 얻고, 이것에 담긴 차는 인간이 마시는 녹색의 보석이 된다. 그리고 다인은 이 한잔에 담긴 차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동현 (차문화 연구가)

김동현은 다회(茶會) '작은 다인들의 모임' 회장이고 차문화 공예연구소 운중월(雲中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흙과 나무로 차 생활에 소용되는 기물을 만들며 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생기 있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

(출처: 조선일보 200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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