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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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의 茶이야기 <43> 日 승려들의 조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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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했던 일본 승려들의 활약상은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423년에서 1560년까지 일본의 승려가 외교 사절의 책임자가 되어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였습니다. 승려가 책임자로 올 경우 수행원 대부분도 승려였는데 많을 때는 40여명을 넘었고 적을 때는 10여명 정도였지요.
137년 동안에 조선을 방문한 일본 승려들은 2천5백여명이 넘어 보입니다. 그들 중에는 여러 해 또는 여러 달씩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 곳곳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임무도 매우 다양해서 대장경과 범종을 구해 가는 일에 그치지 않았지요. 조선 정부의 관리 외에 조선의 서민들이나 승려들을 만나거나 지방에 은거하고 있는 학자와 소문난 사람들도 찾아갔습니다.
그 승려들 중에 ‘준초(俊超)’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도 있었습니다.
‘세조실록’ 세조 10년 2월 17일 경자 조에 기록된 인물인데, 1464년의 일입니다.
실록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왜국 사자(使者) 중(僧) 준초(俊超) 등이 전년(前年)에 하직하고 돌아갔는데, 영등포에 이르러 바람에 막히어 머물러 있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예빈 소윤 정침을 보내어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 “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간고(艱苦)가 반드시 많았을 것이다. 지대(支待)하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 하였다.’
‘준초’라는 승려가 조선에 왔던 때는, 저 ‘일동승(日東僧) 준(俊) 장로(長老)’가 매월당 김시습을 찾아가 차를 대접받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준초 일행은 1463년 여름에 조선으로 왔다가 태풍 때문에 이듬해까지 조선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승려들은 남해안 지방의 삼포왜관 안에 거처하는 승려들을 통역으로 데리고 다녔는데 주로 제포 왜관에 사는 승려를 이용했습니다.
제포 왜관에는 수십 년씩 조선에 거주해 온 승려들이 많았고 그들의 조선 말 솜씨나 조선 풍속을 아는 정도는 무지한 조선 서민들보다 앞서 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월등한 경제력으로 왜관 가까이에 사는 웅천의 조선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외교사절이라는 신분은 예나 지금이나 방문국으로부터 특별한 예우와 보호를 받기 때문에 준초는 통역을 데리고 당시 조선에서 기이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매월당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일본인명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준(俊)’은 사람 이름이 아니고 특별한 역사를 지닌 성씨입니다. 그리고 매월당집에 수록된 시편들 가운데서 조선 스님들의 이름을 적을 때 매월당은 모두 외자로만 표기하고 있어 ‘준’이 일본인의 성씨라는 일본 기록과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준’씨는 매우 특별한 가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말로 ‘토시’ 또는 ‘쥰’으로 발음하는 준씨(俊氏) 가문은 승려 집안으로 판단되는데, 세속인들처럼 혼인하여 가족을 두고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집안이라기보다는 어느 불교 종파를 주도하는 사찰의 법통을 상징하는 성씨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승문(僧門)의 성씨라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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