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와 기타

[스크랩] 일본 국보1호

청원1 2017. 2. 23. 08:51





 

일본 국보1호 | 내 맘대로 그림 읽기

알래스카 2010.10.22 09:23



 



   아래에 소개한 일본의 국보라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이도다완>이 우리나라와 연관이 깊은 문화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 학자들까지도 모두 이의 없이 인정하는 사실이니까요.

일본과 관련해서는 초·중·고등학교  다니면서 백제와 신라가 일본에 문화 전파한 내용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죠. 그래서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신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ㅎㅎㅎ 

일본과 다투는 논쟁의 핵심은 고대사에 있어서 한반도의 한강 이남과 일본 큐슈지방이 누구의 '나와바리'였냐는 겁니다. (제가 일본말 좀 쓰겠습니다 이해가 쉽도록.)  지금은 범위를 넓혀서 중국의 요서지방까지도 아우르는 광대한 '해상왕국'이 존재했다는 설이 지지를 받기도 합니다.


   진짜로 그렇다고치면 그 광대한 해상왕국을 경영하던 '오야붕'의 본거지는 어디였을까요?  그것이 관건입니다. 백제였을까요? 일본이었을까요? 일단 중국은 아니라고 보고요. 아니면 또다른 백제·일본의 연합세력이 있었을까요?

우리 역사만이 아니라 일본역사책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삘"이 와닿았을 겁니다. 어렴풋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다만 명쾌하게 증명하지 못할 뿐이죠. 하지만 사실을 안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을 하기엔 껄끄롭습니다. 까딱하단 매국노가 되기 싶상이거든요. 이건 한· 중· 일 국민감정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국수주의적인 발언을 해야만 환호받는 거지 만일 거꾸로 했다간 맞아 죽습니다. ㅎㅎㅎ 


   오래 전부터 한·중·일의 동북아 역사를 함께 쓰자는 얘기가 나왔었고 연구 논문도 많습니다. 동의하고 참여하는 한·중·일 3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 학자들이 가장 적극적인 것 같더군요.  얼마전에 《동북아 역사(?)》책이 첫 출간되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한· 중· 일 3국 학자들의 노력과 성과물을 각각의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런지, 그리고 이후에 전개될 설득과정이 몹시 궁금합니다. 이성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저는 동북아 3國이 자존심에 얽매여서 서로가 아전인수로 과장 ·왜곡 ·선동 ·자극 ·세뇌하여 대척점만 그을 것이 아니라, 혈연 지연으로 맺어진 '인종애(人種愛)'로써 21세기 세계사의 공동주역이 되길바랍니다.

 


  

 

* 아래는 베껴온 자료입니다.

 

 

 

1.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일본의 국보 제1호 / 높이 123.5cm 목조

신라 불상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이는 교토의 고류우지(광륭사, 廣隆寺)에 있다.

반가사유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 시절에 인생무상을 느껴 고뇌하는 명상자세에서 기원하며,

출가 이전의 이러한 태자 모습은 중생 제도를 기다리는 미륵보살 모습과 비슷하므로

미륵보살상도 반가사유의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실존철학자의 한 사람인 독일의 야스퍼스는 이 한국 불상을 찬찬히 살펴본 뒤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불상이야말로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그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있는 예술미의 극치이다."

 

   이 불상이 신라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것은 7세기초이다.

서기 603년에 추고천황(推古天皇, 592-628)의 섭정이었던 쇼토쿠 태자(574-622)가

교토 땅의 신라인 지도자였던 진하승 공에게 전해주었고, 진하승 공은, 즉시 봉강사를 창건했다.

이 봉강사가 현재 교토의 우즈마사(太秦)에 위치한 고류우지(광륭사, 廣隆寺)의 옛 이름이다.

진 공은 이 신라 불상을 모시고 오늘의 고류우지의 전신인 봉강사를 신라인의 씨사(氏寺)로서 창건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본의 고대 기록에 전해지는 동시에 현대의 일본 고대사학자들이나 미술사가들이

한결같이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상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 90Cm)'이 바로

고류우지의 목조 신라불상과 똑같은 형태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학자들도 여기엔 이의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본의 일부 학자가 이 불상이 신라에서 온 것이 아니고, 백제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라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가 백제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현재는 삼국 시대의 것으로만 되어있다.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삼국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국보 제83호/국립 중앙 박물관

 

 

 

   광륭사의 이 신라 목조 불상이 일본 고대 다른 불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적송(赤松)으로 만든

불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적송은 일명 춘양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경상북도 봉화에서만 나는 나무이다.

즉 적송으로 조각한 것은 한국의 목조 불상의 특징인 것이다.

 

고류우지(광륭사)의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목조 불상이 바로

상투미륵상 또는 우는 미륵상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일본의 저명한 불교 사학자인 다무라 엔초 교수 그의 저서 『쇼토쿠 태자』에서

고류우지의 두 국보 목조 불상이 신라에서 보내온 것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쇼토쿠 태자는 신라에서 보내준 미륵상 1구를 진하승에게 주었다.

진하승은 이 불상을 모시고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고류우지이다.

(국보 제1호에 대한 이야기임) 또한 616년 7월에는 신라에서 사자를 파견하면서 불상을 보내주었다.

이 불상 1구도 고류우지에 지금 있는 소형의 미륵상(우는 상투 미륵)일 것이다."

 

고류우지에 있는 2구의 국보 불상 즉, 목조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상투미륵상이 신라 불상이라고 하는 것은

옛 문헌이나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밝혀져 있으나, 고류우지에는 그런 확실한 설명이 없는 실정이다. 

  

 

출처 / 일본의 국보 1호

저자 / 살리자

 


 

 

2. 이도다완(井戶茶碗 진주사발)

 

 

 

  ▲ 일본의 국보로 진주사발. 기자이몽이도(喜左衛門井戶)

 

 

  ▲ 뒷모습.

 

 

일본 국보 중 도자기는 이 사발이 유일합니다.

일본인들은 이 도자기가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며 극찬합니다. 

그런데 이 도자기를 소장하던 일본인들은 모두 병이 걸려서 

일본 대덕사 고봉암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아래 댓글 참조하세요.>

 

 

아래 사진과 댓글 <펌5>의 출처입니다.

http://cafe.daum.net/naturehealth/1kic/987

 

 

 

건수다완


 

 

 

송편분인다완/松平粉引茶碗


 

 

 

 

  

 

기자에몬/喜左衛門

 

 


 

 

 

건수다완

 

 

 

 

 통정통/筒井筒, 쯔쯔이쯔쯔

 


 

 


장속할고대다완/長束割高臺茶碗

 

 

 

 

주정분인다완/酒井粉引茶碗

 

 

 

 

천종이라보다완/千種伊羅保茶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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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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