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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해 금산 38경

청원1 2017. 2. 21. 13:57

남해 금산 38

[出處] 남해군청 누리집 문화관광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1. 망대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그 광활한 경치가 황홀하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금산 삼십팔 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한 눈으로 굽어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방 조망(四方眺望)이 비길 데 없이 넓고 아름답다.  


2. 문장암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명필 바위라고도 한다. 문장암은 남해 금산의 정상에 있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에 '유홍문 상은 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 1522(중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했다. 1541년에 풍기군수가 되어 풍기 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를 이전하고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1543년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소수서원)을 건립했다. 이 서원이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다. 홍문관, 성균관 등 학문 기관에서 관직을 맡았고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교학 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3. 대장봉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4. 형리암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있으며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 바위라고 한다.

보리암(菩提庵)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

 


5. 탑대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는 탑이 서 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으며 전망이 좋아 봄철의 푸른 나뭇잎과 가을 단풍 경치는 천하절경이라 할 만하다. 가장 탐방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자리다.

보리암전 삼층석탑은 지방유형문화재(地方有形文化財) 74호로 지정되어 있다.  


6. 천구암

 

탑대 바로 북쪽에 있는 바위다.

바위 모양이 비둘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7. 조선태조기단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에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으로 탑대에서 바로 건너다 보이는 삼불암 아래에 있다.

천하를 잡으려는 이성계는 전국 명산을 찾아 기도를 드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금산에서의 백일기도로 등극하게 되자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8. 가사굴

 

탑대 동쪽에 있는 바위 굴.  

옛날 낙서대사 때 천동천녀(天童天女)가 가사를 입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물을 길어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어 가사굴이라고 한다. 길이 약간 험하기 때문에 대개 못 보고 가는 사람이 많다.

이 가사굴에는 많은 샘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수양이나 기도를 하는 분들이 토굴을 짓고 몇 달씩 지내는 일도 있다.

가사굴은 백명굴, 삼사기단과 함께 금산 38경 중 가장 조용한 선경(仙境)으로 이름이 높다.  


9. 삼불암

 

조선태조기단 왼쪽 깎아지른 높은 곳에 바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의 좌상 같다고 해서 삼불암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모두 일어나 앉았다. 만약 세 개 모두 일어났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10. 천계암

 

조선태조기단 뒤편에 있으며 이성계가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뜻밖에 맑고 고운 닭 울음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그 자리에 닭 모양의 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11. 천마암

 

망대 아래 동쪽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이성계가 기도하고 있을 무렵에는 회두암(回頭岩) 이라 불렀다고 한다.

 



12. 만장대

 

탑대 서남쪽 깎아 세운 듯 천인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홍문의 오른쪽에 있다.

 



13. 음성굴

 

만장대 바로 북쪽, 높이 2m, 길이 5m 정도 되는 조그만 바위 굴.

 

굴 속에 들어가 굴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 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음성굴이라 했다.

 


14. 용굴

 

음성굴 오른편에 50m의 길고 넓은 굴이 있는데 옛날 용이 살다가 하늘에 올라갔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굴이다.

 




15. 쌍홍문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이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 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16. 사선대

 

쌍홍문에서 바로 아래 오른쪽에 서 있는 네 사람 모습으로 생긴 바위.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사선대라고 한다.

 

17. 백명굴

 

사선대 북쪽에는 입구는 그다지 넓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100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굴이 있다. 정유재란 때 100명 내외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피난한 곳이라 백명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에 방을 놓았던 아궁이 흔적이 남아있고 굴의 드나드는 문은 적으나 들어가면 놀랄 만큼 넓은 굴이다. 이 굴은 찾기가 어려워 사람의 발길이 끊인지 오래되었다.  


18. 천구봉

 

일월봉 아래쪽에 있는 바위로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천구봉이라 하며 일월봉을 마주 보고 있다.

 




19. 제석봉

 

천구암 왼쪽에 있는 바위로 무당의 신인 제석님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바위로 금산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20. 좌선대

 

좌선대는 원효대사 등 고승들이 수도 좌선(修道坐禪) 했다는 장소.

실제로 바위 윗부분은 가부좌한 자세로 앉은 사람이 쏙 들어갈 만큼 파여 있다. 바위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산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시도해볼 만하다.

 

21. 삼사기단

 

좌선대 아래쪽에 있다.

유명한 세분의 큰 스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 거사가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삼사기단이다. 삼사(三師)가 앉았던 자리가 바위 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22. 저두암

 

금산 산장 바로 뒤에 있는 바위로서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를 업고 있는 모양의 바위.

바로 오른쪽 코끼리 바위가 있다.

   


 

23. 촉대봉

 

향로봉 옆에 있는 촛대 모양의 작은 바위.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24. 향로봉

 

삼사기단 왼편에 있으며 마치 향로와 같다고 해서 향로봉이라 부르며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촉대와 함께 향로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25. 사자암

 

좌선대에서 상사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자 모양의 큰 바위.

  





  

26. 팔선대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덟 개의 바위.

서 있는 모습이 여덟 신선들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한다.

   



 

27. 상사암

 

장한 바위도 볼거리지만 바위 위에서 보는 남해 다도해의 풍광은 천하일품이다.

주인 딸을 사랑하다 죽은 슬픈 사랑 이야기, 과수댁이 총각의 상사를 풀어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28. 구정암

 

상사암에 구정암이 있다.

상사암에 이어진 바위에 아홉 개의 확()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 개의 샘처럼 보인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어보면 실제 동글동글한 구멍이 아홉 개도 더 되는 듯싶다.

구정암의 물은 바로 상사풀이할 때 썼던 물이라고 한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숙종 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 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하고 감탄했다.  


29. 감로수

 

상사암에서 조금 남쪽에 있는데 바위 밑에서 실오라기처럼 새어 나와 고이는 물을 말한다.

조선 숙종 대왕이 병중에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하여 구군천(求君泉)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이후 사람들은 임금을 구한 이 물을 만병통치의 감로수라 한 것이다.

 

30. 농주암

 

대장봉 왼편에 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두 바위의 한복판 위에 한 개의 구슬처럼 서 있는 것이다. 왼편에 용, 오른 편에 호가 있어 용호가 농주 하는 모양이어서 용호 농주형이라고 한다.

    


 

31. 화엄봉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32. 일월봉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자 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자 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33. 요암

 

일월봉 왼쪽 제석봉 뒤쪽 맞은편에 있는 흔들바위로 거북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구암(龜岩)이라 하였으나 한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인다 하여 흔들바위라고도 부른다.

바위의 무게는 35톤가량 된다. 거북 모양의 목부분을 위로 추켜 세우듯 밀면 가장 잘 흔들린다.

 

34. 부소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법왕대라고도 한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문득 엄청나게 큰 바위가 하늘로 해처럼 솟았다. 그럴듯한 이름 하나 주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으니, 이름하여 "부소암"이다. "부소"는 중국 진시 진시황의 태자 이름이다. 남해 외딴섬 바위에 어이하여 진나라 시황의 큰아들 이름 부소가 붙었을까? 누가 붙인 이름일까? 유배객이 붙인 것은 아닐까? 이 금산에 올랐던 류의양이 붙였을지도 모르고, 남구만이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신배의 참소로 억울하게 이 고독한 외딴섬에 귀양 온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임금이 콩과 보리를 가리듯이 충신과 간신을 가리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말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진나라 시황의 태자 부소이다.

 

진시황의 두 아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덩한 호해가 그 두 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다.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으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다. 신령스러운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 역사에서 부소는 진시황이 보낸 사약을 받고 변방에서 죽고, 둘째 아들 호해가 임금 자리를 계승하였다. 호해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움막이 지금도 있다. 부소가 살았던 그 움막일까?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속세 사람의 집이 아니다. 도 닦는 사람일까, 부소처럼 쫓겨와서 숨어사는 사람일까? 예나 지금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이는 끊이지를 않는구나.  


35. 남해 양아리 석각

 

양아리 두모에서 부소암으로 오르는 골짜기 큰 바위에 새겨진 고문자.

 

양아리 석각,"서불 과차"라고 하는 이 고문자는 진시황의 사신 서불이 선남선녀 500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캐려고 이곳에 와서 새겨놓고 간 글자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또 거란 글자라는 이도 있고, "이곳은 그 어른의 사냥터" 표시라는 설도 있으나 판독이 어려워 아직껏 베일에 싸여 있다.  


36. 세존도

 

세존이 금산 쌍홍문에서 돌배를 타고 이 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상주 은모래 비치에서 40km나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아득히 세존도를 볼 수 있다. 이 섬에는 한복판에 원형으로 된 해상 동굴이 있다. 섬 전체가 바위이며 나무도 식수도 전혀 없는 무인도(無人島)이다.

남해에서는 오래 가물고 한발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을 본다고 하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오고 있다.

남해의 섬 중에서 낚시가 가장 잘 되기로 유명하여 낚시철이 되면 수많은 꾼들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꼭대기에 올랐다. 꼭대기가 봉수대이고 봉수대에서 다도해가 발아래로 보인다. 류의양이 남해문견록에 이를 적고 있다.

 

"그 봉에 적정을 살피는 높은 대를 쌓았으니 배가 오는가 사람을 두어 살피는 곳이리라. 이 봉에서 대마도를 보고 일출도 본다고 하고 서쪽으로는 전라도 좌수영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바다가 가이 없는데 바다로 수백 리는 한데 큰 뫼 하나가 있는데 그 뫼 가운데 구멍이 크게 분명히 보이니 그 뫼 유혈도라 일컫는다.“

 

유혈도는 지금 세존도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모양은 변함이 없다. 옛날에는 구멍이 뚫렸고 지금도 구멍이 뚫렸다. 지금도 비가 오지 않으면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올린다. 그러면 세존도는 옛날처럼 비를 내려준다고 한다.  


37. 노인성

 

노인성은 춘분, 추분절의 전후 3, 7일 동안 남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별이다. 이 별은 사람의 목숨을 맡고 있는 별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별을 자주 보면 장수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일년 중 춘분, 추분절만 되면 금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38. 일출경

 

금산 38경 중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정상과 보리암에서 보는 일출. 상사바위에서 보는 일출도 그에 못지않다. 수평선과 구름 사이를 뚫고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일출은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수면 위로 침묵을 지키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깨우면서 붉은빛으로 피어오르는 금산 일출.

전국 어느 곳의 일출보다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한 금산 절경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出處] 남해군청 누리집 문화관광

 


출처 : 용형호제(容亨互悌)
글쓴이 : 同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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