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 친한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여느 국가나 다름없습니다.
어젯밤 선생님이랑 같이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면서 제가 중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장래의 계획과 방향에 대해서 의논을 하던 중 선생님이 창고에서 뭔가를 꺼내옵니다.
가만 보니 예전에 뭔지 몰라서 사진만 올렸던 R. TWININGS의 홍차미전(紅茶米磚)을 건네 주면서 “네가 중국에 와서 지내는 몇 년 동안 별다른 수입이 없어서 힘들 텐데 내가 돈으로 도와줄 수는 없고 해서 그냥 이 차를 줄 테니 필요하면 경매시장에 내다가 팔아서 쓰던지, 아니면 후손들에게 물려주던지 알아서 해라.”하십니다.
예전에 이차의 가치를 잘 몰랐을 때는 그냥 덥석 받고 보겠지만, 최근에 들어 온 경매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면 광동의 경매시장에서 봉황미전(鳳凰米磚)이라는 이름으로 인민폐 48~58만원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한화로는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이고, 몇년만 더 지나면 다이아몬드와 맞먹는 가격에 팔릴 물건인지라 두 손을 내저으며 “다른 물건이라면 몰라도 이 차는 너무 비싸서 받을 수 없다.”라고 손사래를 치자 “네가 내 형제이자 제자인데 왜 안되느냐? 그냥 받아둬라.”하시며 기어이 가방 속으로 밀어 넣어 주십니다.
▲어제 받은 봉황미전 앞에는 선생님의 친필 사인이, 뒷면의 포장지에는 양각된 매듭의 문양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포장을 벗겨서 보고 싶지만 꾹 눌러 참습니다. 오랜 세월의 흐름 때문에 모서리가 닳고 헤졌습니다.
평소 제 눈에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늘 수수한 정도가 아니라 꾀죄죄한 옷차림과 간단한 식사 그리고 차 마시고 틈나는 대로 기공수련 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인민폐 몇 만원의 선물을 선뜻 건네는지라 통이 큰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저도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오늘과 같은 이 정도의 비싼 물건을 선물로 받아 본 일도 없고, 줘 본 작은 더더욱 없는지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고마움과 부담감으로 인하여 꿀먹은 벙어리마냥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마음에 담아 둔 한마디를 하십니다.
“너를 오랫동안 지켜봐서 그 성격을 조금은 알기에 한 마디 충고를 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네 가슴속에 있는 자존심을 내려놓아라. 나도 십 수 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오늘날 성공하기까지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왜 업었겠냐. 모든 것을 네 안으로 받아들이고 소화를 시키면 너도 편해질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네가 꿈꾸는 대로 변할 것이다.”라 하십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放下와 海納百川의 두 가지 요점으로 정리했습니다.
▲봉황미전의 경매에 관한 내용입니다. 차의 규격 및 생산년대와 함께 R. TWININGS의 의뢰를 받아 호북성의 자오리치아오(趙李橋)차창에서 제조하여 영국 및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 이 차를 예쁜 틀 속에 넣어 로비나 거실에 진열해 놓고 감상하던 예술품이라는 내용과 함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이후로 영국의 공장이 중국에서 퇴출되는 통에 영국인들이 이 봉황미전에 대해 오매불망 잊지 못하고 있던 중에 1981년에 중국으로 사람을 파견해서 이 제품을 찾아내 소장가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후일 다시 기념차를 제조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009년 6월부터 이곳 상해에서 보낸 반년 남짓한 시간들은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경험과 인연들이 만들어졌고, 가슴속에 각인되어 남아있습니다.
블로그나 카페 등 온라인을 통해서 알게 되어 후에 직접 대면한 분도 계시고, 전화통화로 걸걸한 목소리를 남겨주신 분들과 아직 못 뵈었지만 텔레파시를 통해 느껴지는 깊은 내공을 가진 분들은 후일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분들 모두가 다 스승이고 도반이기에 어제 받은 선물도 여러분들이 성원해 주신 덕분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고마움을 몇자의 글로나마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 촬영했던 봉황미전의 모습입니다. 잡지의 사진과 동일한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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