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보이차가 근세기에 들어와 이렇게 웅비(雄飛)할 수 있는 것은 홍콩, 마카오, 타이완 등지의 상인들이 그 중심자리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별한 맛’을 상징하는 보이차를 더 매혹적이고 화려해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상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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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중국 내의 보이차 소비시장은 티베트, 몽고, 위구르 등 서부소수민족지역이었으며, 해외의 주요시장은 홍콩과 마카오였다.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홍콩과 마카오는 자유무역과 항만기능을 이용하여 세계의 물류중심지로 각광을 받은 것은 50년대의 일이었다. 당시 이곳은 수많은 보세창고가 있었으며 여기에 필요한 하역 인부의 수는 상당했다. 이들이 해갈용으로 마시는 차는 대부분 부담 없이 주전자에 끓여 마실 수 있는 값싼 육보차(六堡茶)와 보이차였다.
공산중국 초기의 차 수출에 관한 업무는 주로 상해시와 복건성의 하문(厦門) 그리고 광동성의 광주(廣州)의 수출입공사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운남에는 세관의 검사를 거친 수출입화물에 대해 관세를 납부하고 면장을 발급받는 통관허가증이 없어 보이차에 관한 수출은 모두 중국광동성차엽진출구공사(中國廣東省茶葉進出口公司)에서 도맡아 대행해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소위 인자보이차의 수출은 대부분 이 경로를 통해 홍콩과 마카오로 갔다.
광동에 있는 차엽진출구공사는 운남보이차에 관한 수출 건만 담당할 뿐만 아니라 운남에서 보이차 원료를 공급받아 자체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 기관은 수출통관을 무기로 삼아 운남에 보이차 원료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운남에서는 부득이 매년 수 백톤의 보이모차(1차 가공된 반제품 잎차)를 이곳에 공급하게 되는데, 이러한 조달관계는 1973년 운남 자체에서 자영(自營)으로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광동지역은 예로부터 자체적으로 차를 만들었다. 물론 주 판매지역은 홍콩과 마카오였다. 그들은 광동의 찻잎, 심지어 월남의 찻잎(越南靑)을 가져와 차를 만들었으나 반응이 좋지 않자, 운남 찻잎(雲南靑)의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여 잎차인 산차(散茶) 그리고 보이원차와 같은 병차(餠茶)를 만들어 홍콩 등지에 팔았다. 시장에서 이 병차를 가리켜 광동병(廣東餠)이라 한다.
광동병의 내비(內飛)는 인자보이차의 ‘팔중차(八中茶)’를 본떴으나 포장지 없이 7편을 쌓은 형식은 골동보이차와 같다. 죽순껍질로 포장하여 홍콩 등지에 팔았는데, 반응은 꽤 괜찮았다고 한다. 금속틀로 압제해 운남의 것 보다 단단했으나, 운남 찻잎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일정한 고객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물론 운남이 아닌 광동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었기에 운남보이차보다는 몇 갑절 싸게 유통되었다.
오늘날 시장에서 연도 있는 보이차 중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차가 바로 이 ‘광동병’이다. 광동병은 1990년대에 들어와 상인들의 각색으로 ‘광운공병’이라는 이름으로 환골탈퇴하게 된다. ‘광(廣)’은 광동지역에 만들었다는 뜻, 운(雲)은 원료가 운남의 것, 공병(貢餠)은 조공으로 바칠 만큼 질이 좋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운공병의 ‘짝퉁’이 많다는 것이다. 짝퉁 보이차란 아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에만 해당되면 성립된다. 하나는 보이차의 상표 또는 제작연도를 속이는 것, 다른 하나는 보이차의 산지원료를 속이는 것. 여기서의 ‘보이차 원료’란 운남지역에서 생산된 찻잎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운남 이외의 지역에서 난 찻잎은 보이차의 모양을 흉낼 수 있어도 보이차의 진미(眞味)를 재현할 수 없기에 짝퉁이라 부른다.
지금 시중의 짝퉁 보이차는 ‘광운공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973년, 운남에서 자체적으로 수출업무의 기능이 생기자 광동이란 지역적 이용가치가 떨어져 보이차의 원료공급을 중단시켰다. 이에 73년 이후 만든 모든 ‘광운공병’의 원료는 운남의 것이 아니기에 전부 짝퉁으로 분류된다. 만약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보이차는 어느 지역의 찻잎으로 만들어졌는가?운남인가 아니면 광동 또는 동남아의 찻잎인가. 그 판단의 가름선이 바로 1973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