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알기쉬운 석탑의 용어

청원1 2010. 1. 22. 23:51

알기 쉬운 석탑의 용어

 

 

1.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우주'란 용어는 한문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모퉁이 '우(隅)', 기둥 '주(柱)' 입니다.
즉 모퉁이(가장자리)에 있는 기둥이란 뜻입니다.
또한 '탱주'란 말은 버틸 '탱(撑)' 기둥 '주(柱)' 입니다.
따라서 '버팀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물이나 탑의 모서리(가장자리)에 있는  기둥을 '우주'라 하고
가운데 있는 기둥을  목조건축물에서는 '평주'라 하고,
탑 건축물에서는  '탱주'라 합니다.
탑에 쓰이는 '탱주'란 용어는 목조건축물의 '평주'를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탑의 구조는 목조건물의 구조를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탑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목조건물의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됩니다.

다음 2개의 그림을 비교하시면 각기 목조건축의 중간기둥인 '평주'와
석탑의 중간기둥인 '탱주'의 위치와 역활이 매우 흡사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주군 법수사지삼층석탑  



위의 우주와 탱주는 탑의 각층 몸돌과 기단석에 자주 새겨져 있는 양식입니다.
목조건축물에서는 건물의 무게를 떠받들기 위해서 있는 아주 중요한 기둥이나, 탑의 우주와 탱주는 사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그냥 목조건축물의 양식을 본뜨기 위해서 하나의 기교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석공들은 탑의 몸돌에 기둥의 모양을 새겨넣은 것입니다
.

이 기교는 곧잘 탑의 건축연대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즉 탱주의 수량이 2개이상일 경우는 통일신라시대와 그 이전의 탑으로 추정하고 1개이거나 없을 경우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탑으로 추정합니다.
예를들면, 익산의 미륵사지탑은 전형적인 목조형식을 빌어서 만든 석탑입니다.
이곳의 탱주는 마치 목조건축물의 평주와 다름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2. 기단부에 대하여

 

 

 

 


탑은 흔히 3등분으로 나누어서 그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편하고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즉, 탑의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탑의 구조중에서 기단부를 설명하겠습니다.
꼭 기억할것은 탑의 원형은 목조건물의 구조를 본떠서 만들었다는것입니다.
따라서 보기그림도 목조건물과 가장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이용하였습니다.

자, 밑의 그림을 한번보세요....


봉정사 극락전의 축대를 이용하여(본떠서) 탑의 밑부분(기단부)를
만든 것을 알수가 있는데요...
목조건물은 사람이 출입을 해야 하는 시설이기에 계단이 있으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출입이 필요가 없는 까닭에 계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경배의 대상이기도 하구요....

한마디로 탑의기단부는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와 상륜부를 올리기 위해
터다짐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정림사지석탑에서 보는 것처럼
축대(기단부)가 단층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오면서
2층의 축대(기단부)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럼 기단부만 자세히 그림을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대석은 울퉁불퉁하고 자연환경에 의해 쉽게 변형되는
땅을 평평하게 유지토록 하기 위해 깔아 놓은 석재를 말합니다.
마치 요즘 건물을 짓기전에 땅을 평평하게 한 다음,
콘크리트를 바닥에 쫙 깔아 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공법입니다. 이 지대석을 잘못 깔면 탑을 건축한후에는
삐뚤어 지거나 세월이 흐른 후에 탑이 기울어 집니다.

다음에 지대석 위로 기단굄석을 놓습니다.
본격적인 축대쌓기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기단부를 아름답게 꾸밀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목조건물의 원형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 라고 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또한 말 그대로 기단을 굳건하게 괴기위해 사용된 돌입니다.

이 기단굄석을 딛고 기단면석을 세웁니다. 기단부의 중심돌이기도 합니다.
면석(面石)이란 뜻은 굳이 한글로 풀이하자면 얼굴돌인데,
이 돌에 여러가지 문양을 새겨 놓았던 까닭에 그렇게 부릅니다.
기단석에는 모서리에 우주라고 하는 기둥모양의 돌을 세웁니다.
위로 부터의 하중을 떠 받들기 위해서입니다.
무게분산을 위해 가운데에도 기둥을 세웠는데,
이것은 탱주라고 합니다.

이 기단석을 위에서 마치 뚜껑처럼 덮고 있는 돌이 바로 기단갑석입니다.
다시 한번 기단석을 위에서 부터 압박하며 고정시키기 위함이고,
바로 위에서 부터 올려질 탑신부의 평평한 면을 유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기단부는
땅의 수평면을 유지하기 위한 지대석과 본격적으로 탑신부를
받치기 위한 기단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초기석탑의 기단부 그림인데,
통일신라로 들어 오면서 기단이 1층에서 2층으로 바뀝니다.
즉, 똑같은 모양의 기단이 하나 더 얹혀진다는 것인데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 아래기단(1층기단)은 큰반면,
2층기단은 작은 모양으로 이루어 집니다.

자, 밑의 그림을 보세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성주군의 법수사지석탑입니다.
건축연대가 분명한 탑이어서 보기그림으로 사용했는데,
보시다시피 기단석이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탑앞에 서면 어느 부분이 기단부인지를 먼저 보시면 탑의 이해가 빨리 옵니다.
기단부가 파악이 되면 몇층의 석탑인지 금방 알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단석은 전체모양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기에 유심히 보시면
대번에 차이가 납니다.


 
3. 안상(眼象)에 대하여
 
혹, 탑의 밑부분의 돌에 연꽃잎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 조각그림을 안상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그림을 무심하게 지나치시는데 탑의 감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재미가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자, 밑의 그림을 보십시오.



자, 그럼 탑의 밑 기단부의 기단석에 있는 면석에 코끼리문양을 새겨 놓은
이유를 아셨겠지요?

그런데 이 문양이 후대로 오면서 연꽃모양을 가미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지만 명칭은 그대로 안상이라고 부릅니다.

좌우대칭(미술의 데깔꼬마니)의 안상이 어떠한 형태로 변화했는지를
유심히 보시면 탑의 건축연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밑의 사진은 구인사에 세워진 석탑인데 탑과 코끼리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신부를 코끼리 3마리가 떠 받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1983년도에 건축되었지만 안상의 의미를 보다 확연하게 알수 있습니다
.
 

4. 탑신괴임 및 기단괴임
경주 구황동삼층석탑입니다.





 경주 감은사지석탑입니다.





경주 갈항사삼층석탑입니다.



이번에는 탑의 구조물중 눈에 잘 안띄는 부분,
그래서 자칫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괴임석인데요...

'괴임'이란 말은 위의 물건을 좀 바로 놓고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사를 했을 때  장농이나 서랍장을 방에 옮기고 나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장판을 오려서 밑에 받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무겁고 큰 물건일수록 이 수평을 잘 유지해야
오랫동안 이상없이 보존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탑은 수직으로 올라간 구조물이기에 가장 밑에 있는 지대석만 바로 잘 다듬어 놓으면
위의 탑자재들은 절로 수평이 유지되는데 왜 굳이 이 괴임석을 조각을 하여 놓았을까요?

바로 탑의 원형이 목조건축물에서 본떠서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조건축물은 집을 짓는 토대에서 부터 벽면, 창문 곳곳에 평방이라 하여
중강중간 수평을 위한 긴 각목을 받친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층이상의 목조건축물에는 이 평방이 수없이 사용됩니다.

자, 밑의 그림을 보시면 괴임이 목조건물의 어느 부분을 본떠서 만들어졌는지 쉽게 알수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시니 목조건축물의 창방과 평방은 석탑의 탑신괴임으로,
문지방은 석탑의 기단괴임으로 응용이 된것을 알수 있을것 입니다.

이번에는  목조건축물에다가 석탑의 구조 이름으로 붙여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무척 쉽지요?
꼭 기억해둘것은 석탑의 원형은 목탑이고 목탑은 목조건축물에서 그 구조를 빌려
와서 건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5. 옥개받침과 풍탁(風鐸) 그리고 반전(反轉)
 



합천해인사삼층석탑


흔히 '지붕주름', '옥개주름' 이라고도 일컿는 옥개받침은
목조건물의 서까래를 응용한 것입니다.
중첩된 주름의 이미지는 옥개 즉, 지붕의 크기를 강조할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초기에는 받침의 수가 5개이다가 후기로 오면서 차츰 줄어드는 경향입니다
.

반전(反轉)은 처마끝이 위로 치켜올라간 정도를 말하는데
'반전이 심하다'라고 하면 처마끝이 위로 급하게 치켜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탑은 반전이 약하고 다소 밋밋했으나,
후기 고려로 넘어 오면서부터는 옥개석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낙수면의 흐름이 급해졌습니다. 또한 반전이 심하여 경쾌하면서도
상대적으로는 왜소한 느낌을 줍니다
.

풍탁(風鐸)이란 말은 법당안에서 스님이 예불을 모실 때 쓰는
목탁을 응용하여 생긴 용어로,
'바람이 불어 와서 종을 친다'는 말입니다.
흔히 탑의 처마끝에는 구멍을 내어 이 풍탁을 달았는데
이는 치장의 의미입니다
.


 

 

6. 낙수면(落水面)과 우동(隅棟)

 



국보99호   갈항사지삼층석탑     통일신라 경덕왕  



국보10호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이번에는 탑의 낙수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잘아시다시피 탑은 별도의 건축물이나 구조물 내에서 보관하는
그런 형식의 문화재가 아닙니다. 산이나 들녁에 서서 그대로 자연의 풍상을 겪어야 하는 노천(露天)문화재 입니다.
따라서 자연환경중에서 비에 대한 구조적인 배려가 가장 중요합니다.
탑을 자세히 바라다보시면 기단갑석이나 옥개석 밑의 첫 옥개받침의 모양이
빗물의 흐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한 흔적을 찾아 보실수 있습니다
.

예를들어,
탑신석 밑의 탑신괴임이 각형에서 원형으로 변천을 하였다든지,
옥개받침의 첫 주름이 다른 주름보다 약간 원형으로 처리된 것은
빗물이 아래로 흘러 내릴 때 보다 수월하게 떨어지도록 하고
맺힌 물방울이 돌 윤곽을 따라 이음새 부분을 통해
탑 내부에 스며들지 않도록 처리된 것을 보시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

또한 우동(隅棟)은 옥개석이 4면의 낙수면으로 형성되었는데,
이 4곳의 낙수면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의 경계지점을 일컬는 말입니다.
우동의 반전이 심하다는 뜻은,
이 낙수면들이 위로 급히 치켜드는 상태에서 서로 만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

이와 유사한 용어로는,
'전각의 반전이 심하다' 라는 설명을 들어보셨을텐데,
이는 우동이 밑으로 내려오다 귀마루 끝지점에서 급히 위로 치켜올라가는
정도를 말함이니
우동의 반전은 낙수면(옥개석)이 옆으로 가다 치켜드는 정도를 말하고
전각의 반전은 우동(옥개석)이  밑으로 내려오다 위로 치켜드는 정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

이 두곳의 반전(치켜듦)은
탑의 건축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즉, 이 두곳의 반전이 심하면(급하면) 후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반전이 약하면 초기의 탑으로 판단합니다
.

혹, 고려시대의 탑을 보셨는지요?
자세히 보시면 이 시대의 탑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매우 급하게 밑으로 흐르고
우동의 반전은 날카로와서 마치 목조건물의 용마루를 느끼는 듯합니다
.

그럼, 위의 그림에 나오는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들이었기에
각각의 반전이 약했으나, 이번에는 고려시대의 경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국보100호   남계원칠층석탑   고려시대



어떻습니까?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인 남계원칠층석탑은
마치 옥개석의 반전이 매우 약해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로켓트를
쏘아 올리는 모습을 연상시키지요?


고려시대의 탑은 대부분 옥개석의 크기가 줄어드는 추세이므로
작은 옥개석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반전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그럼, 이 탑의 옥개석을 가까이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




보시다시피 옥개석의 전체적인 윤곽은 뭉뜨그리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반전의 정도는 심해서 옥개석의 모습이 뚜렷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

다음에는 탑의 기단부에 사용된 사자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7. 상륜부相輪部에 관해서(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



탑의 가장 맨 꼭대기 부분= 상륜부



탑에 대해서 좀 알려고 하는 분들이 책을 통해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열람하면 제일 먼저 골치를 썩는 것이 탑의 상륜부에 대한 이해부분입니다.
여러가지 장식과 복잡한 구조로 인해 지레 겁을 먹는 분들이 있는데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가며 공부하면 많은 정보가 숨어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

어떤 곳에서는 탑의 상륜부를 한문으로 '上輪部'라고 표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큰 잘못입니다.
정식명칭은 相輪部'입니다. 아마 탑의 윗부분을 칭한다 하여 上자를 쓰는 모양인데 그러하지가 않습니다
.

먼저 상륜부의 명칭부터 이해를 해봅시다.
'상륜'이란 말은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相자는 서로의 의미도 있지만 불교적 측면에서는 '사물을 보고 다스린다'라고 이해를 합니다. 스님들이 잘 쓰는 말로 '상을 갖지 마라 '는 말이 있습니다.
즉, '함부로 자기의 판단으로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지 마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아상(我相)을 버려라'고도 씁니다
.

결론적으로 '相'이란 판단과 교육의 지표를 말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경전을 말합니다
.

륜(輪)자는 바퀴를 의미하는 한자인데, 불교에서는 윤회의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돌고돈다'는 이야기이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계속되며, 사람의 인생도 윤회로 돌고돈다는 이야기입니다
.

불교시초국인 인도나 티벳, 네팔에 가보면 돈독한 불교신자들이 모인 나라이어서 부처님의 경전을 새긴 동그란 판을 막대기에 여러 장을 끼워 빙빙 돌립니다. 잉잉 소리가 나도록 해서 말이죠.
막대기에 경전판을 많이 끼워서 돌리는 사람이 당연히 신앙심이 깊다고
인정하고 부처님의 경전을 돌리니 다음 생에는 더욱 좋은 모습으로 다시 환생한다고 믿기에  너도나도 할것없이 막대기에 경전판을 끼우는데 9장을 넘지 못합니다.


10이란 숫자는 완벽한 의미로 부처님만이 이룰수 있는 경지로 판단하여
범부(보통사람)는 9까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동그란 경전판을 겹겹히 쌓아 올린 것이
바로 탑의 꼭대기에 있는 보륜(寶輪)이라는 것입니다
.


다른 말로 상륜(相輪)이라고도 합니다.
이 보륜(=상륜)이 제일 중요한 부분임으로 탑의 윗부분을 통틀어
상륜부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탑의 보륜을 9까지 쌓아 올렸는데
후대로 오면서 그 숫자가 작아지더니 5개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

그럼, 상륜부만 자세히 그림을 보도록 하세요....




위의 그림은 보림사삼층석탑의 상륜부입니다만,
피뢰침같이 생긴 찰주부분은 훼손되고 없는 상태입니다.
대개의 석탑이 그러하듯이 탑의 상륜부는 구조 자체가 세밀하고 파손되기 쉬운 까닭에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망실되어 사라지고 없습니다
.






노반:  탑의 상륜부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탑신부의 맨 위 옥개석 위에 사각의 모양으로 붙어 있습니다.
         모양은 마치 지붕위의 굴뚝처럼 보입니다.
         노반의 의미는 탑신부와 실제의 상륜부와 경계를 짓기 위한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며 용도는 경사면의 옥개석 위에 상륜부를

         반듯하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복발:  노반 위에 올려진 둥그란 반원형의 모양입니다.
         마치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모양새인데 최초의 탑인 인도 산치탑

         의 지붕모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노반이 바닥의 용도로 쓰여졌다면 복발은 위의 구조물을 한껏

         추앙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앙화:  앞서 말씀드렸듯이 상륜부에서 가장 고귀한 구조체는 보륜입니

         다.  이 보륜을 밑에서 포근히 감싸안는 모양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앙화입니다.
         소중한 보물을 보관하고 있는 형국인데 꽃잎모양새로 보륜을

         우러러 모시고 있다고 해서 '우러러 받든다'의 한자어인

         앙(仰)자를 씁니다.





보륜:  상륜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제 이 부분을 의미하기 위해 상륜부의 용어가 정해졌을 정도로
        보륜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공덕을 의미합니다.
        주로 원판형의 구조물을 겹겹히 쌓아 올려 그 의미를 강조하는데
        그 갯수는 보통 5개정도입니다
.






보개:  '개'자는 한문으로 '蓋'를 쓰는데 '덮다'의 뜻입니다.
          즉, 소중한 보륜을 위에서 덮어 보관하는 의미입니다.
          스님들이 절에서 큰 행사를 할때 절에서 귀한 보물을 전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운반하는 도중에 옆에서 스님들이

          큰 우산 모양의 파라솔을 들고 따라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용도와 의미로 보시면 무난합니다.
          TV의 사극에서도 왕을 옆에서 가리개를 들고 서잇는 궁녀를

          보신적이 있지요?
  


  

            


8. 옥개석과 체감률
 
 우선 우리나라 석조문화재중 탑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탑의 옥개석 부분은 탑의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어왔지만
대개는 학술용이거나, 논문을 위한 연구이어서
일반일들이 이해를 하는데 무척 어렵습니다.

뭐, 대충 옥개석 부분만의 그림을 보고 설명해봅시다....




참 거창하게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어려운것 하나 없습니다.

1. 옥개석에는 옥개받침 부분이 있습니다.
    마치 기와지붕의 서까래처럼 보이는데요....
    우리나라 석탑의 원형은 백제의 목탑에서 가져왔고, 이 목탑의 원형은
    목조건축물에서 본떠 왔습니다.
    따라서 초창기의 석탑에는 이 옥개받침이 5개입니다,
     (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중기까지...)
   그 후 통일신라중기부터 고려초에는 4개로 줄어들다가 고려말에는
   3개로 작아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탑들이 별로 없습니다.
   임진왜란이후 탑을 조성한 기록이 없거든요....

2. 반전이라 함은 옥개석의 귀마루 부분인데 구조명칭은 아닙니다.
    즉, 귀마루(우동) 선이 밑으로 내려오다
    그 끝에서 위로 갑자기 치켜오르는 각도(정도)를 말하는데
    초창기의 석탑에는 이 반전의 정도가 아주 약합니다.
    후기 통일신라시대에 오면서 반전은 심해지고
   고려시대의 탑들은 너무 심해서 날카롭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고려시대의 탑 옥개석은 상대적으로 왜소한데다가 반전이 심하니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몽땅그리한 옥개석입니다.

3. 전각이라고 나와 있는 부분은 옆에서 보면
  옥개석의 두께를 말하는것처럼 보입니다.
  초창기의 석탑에는 이 전각의 높이가 아주 약합니다.
  부여 정림사지 석탑을 보시면 참 갸날프고 애처로워 보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에 넘어 오면서 높이는 차츰 높아지다가
  고려시대에는 몽땅그리한 옥개석의 모양에다 전각도 한층 높아집니다.

4. 낙수면은 비가 오면 빗물이 흘러내리는 경사면을 말합니다.
    초창기 석탑일수록 경사면은 완만합니다.
   어찌보면 평평한 느낌이 올 정도입니다.
   후기에는 이 낙수면이 가파라집니다.

5. 밑의 그림처럼 체감률이라고 있습니다.
    즉, 각층의 옥개석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작아지는가? 의 비례치입니다.
    1층의 옥개석부터 3층의 옥개석까지 작아지는 비율이 급할수록
    고려시대에 가까운 탑입니다.
   최근에는 이 체감률로도 어느 시대의 탑인지 알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밑의 부분(1층)이 넓은 반면에 위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지면서
낮으막한 삼각형을 이룰 때 체감률이 심하다고(급하다고) 합니다.





출처 : 김포 들꽃풍경
글쓴이 : 파아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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