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에 미친 사람들의 담론
(차의 효능에 얽힌 이야기)
‘배움은 무지(無知)와 무식(無識)의 자각(自覺)’이라는 말이 있다. 요즈음은 차를 마실 때마다 이 말이 그 무게를 더해가며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른다. 차를 마시는 세월이 길어지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정작 알아야할 중요한 것들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차 생활을 시작할 때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것은 차의 역사나 예법, 정신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 자체요 차를 마셨을 때 몸에 나타나는 반응 즉 차의 효능에 관련된 것이다. 차의 냉성(冷性), 재배차(栽培茶)와 야생차(野生茶), 구증구포(九蒸九曝), 차의 기감(氣感), 체질에 맞는 차 등이 그것이다. 이는 다인들 사이에서 관심 있게 거론되고 있는 현안(懸案)들이다. 일부 다인들은 그것들이 차의 효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며 음차(飮茶) 후 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반응들을 그 근거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사고(思考)로 무장한 현대인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정론(正論)이 될 수 없다. 그저 차에 미친 사람들이 찻자리에서 벌이는 담론(談論)일 뿐이다. 현상은 분명히 있는데 그 근거는 담론에 머무르고 있다.
1. 어떤 차를 마시면 몸이 불편하다?
몇 년 전 어떤 도예가를 찾았을 때의 경험이다. 그는 직접 만들었다는 녹차를 정성껏 우려 주었다. 낯 선차를 마셔야하는 것이 곤혹스러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 차를 마시니 이내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내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역하고 동행자의 표정에도 당혹감이 엿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동행자는 근처의 찻집에 들려서 보이차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자신도 가본 적이 없어서 좋은 차를 마실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대만까지 가서 공부했다는 주인장을 믿어보자는 것이었다. ‘녹차로 인한 부작용(?)에는 보이차가 좋다.’는 경험적인 판단과 더불어 ‘어쩌면 좋은 차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찻집을 찾았다. 젊은 주인장은 ‘10 년 된 노차(老茶?)’라는 설명과 함께 보이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끝으로 전해오는 자극적인 차향과 함께 기대는 무너졌다. 사양할 수 없는 처지에 몇 잔을 마시고 일어서는데 중국 운남성의 옥룡설산 고지(高地)에서 겪었던 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고 가슴이 뛰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데 동행자가 옆자리에 올라앉으며 편찮은 표정으로 두 번째 제안을 했다. ‘얼른 두부라도 먹으러 가십시다.’ 그 날의 동행자는 오랜 세월 차를 만들어온 존경하는 다인이요 수행자였다.
음차 후 이상증세 에 대하여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차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차를 마시고 고생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차를 마시고 몸이 불편했던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실제로 다인들 중에는 차를 매우 좋아하면서도 차를 대접받아야 할 때마다 곤혹스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이 내는 차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 사람, 자기가 먹을 차를 아예 지참하고 다니는 사람, 꼭 대접을 받아야할 경우에는 차라리 커피나 대용차를 마시는 사람, 다례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차를 마시고 몸이 불편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부 다인들은 부패 변질된 차, 농약에 오염된 차, 법제(法制)되지 않은 차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차의 부패나 변질은 제조과정이나 저장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보이차는 소위 매변(霉變)으로 인하여 먹을 수 없는 것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농약에 오염된 경우는 그 정도에 있어서 답변하기 곤란하다. 농약 과다사용으로 인하여 중금속이 검출되는 중국차가 수입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기는 했지만 과연 음차 후 곧바로 중독 반응이 일어날 만큼 농약에 오염된 차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제되지 않은 차’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려면 먼저 법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법제란 자연에서 채취한 원생약(原生藥)을 복용하기 좋은 약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뜻한다. 그렇다면 본래 약으로 이용되던 찻잎도 다른 약재들처럼 일정한 처리과정을 통해서 저장이 용이하고 먹기 좋고 몸에 이롭도록 만들어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떡차, 연고차, 잎차 등은 찻잎을 찌고, 빻고, 모양내고, 말리고, 굽고, 볶는 등 일련의 처리과정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 처리과정을 법제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며 차의 법제 여부는 음차 후 이상증세와 관련이 있다. 동다송(東茶頌)에는 이를 추론할만한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중국의 것과 색향기미의 차이가 없고 중국의 육안차의 맛과 몽산차의 약효를 겸했다.’(東國所産元相同 色香氣味論一功 陸安之味蒙山藥 古人高判兼兩宗) ‘법대로 만든 두강차는 이 때부터 성행하고’(法製頭綱從此盛)라는 기록(참조: 윤병상. 다도고전)이 그것인데 ‘색향기미론’이나 ‘법제’는 본초학을 떠올리게 한다.
음차 후 이상증세는 같은 차를 마셔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상당한 중세를 경험하는데 반하여 어떤 사람은 전혀 증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성(耐性)에 있다. 내성이란 독기나 독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그에 대한 감수성이 점차 감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울수록 담배가 지닌 독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나 반대로 산속에 사는 사람이 도시의 오염된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과 통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는 체질, 인성(人性)과 관련이 있다. 또한 음주, 흡연, 육식, 가공식품을 즐기는 사람이나 오염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내성이 강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증세를 느끼지 못하던 사람도 법제된 차를 지속적으로 마시게 되면 민감해진다. 이는 인체를 정화(淨化)해 주는 차의 효능과 관계가 있다. 이와는 다른 경우이지만 차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거나 체질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이 불편한 증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법제된 차일지라도 연하게 우려서 조금씩 마셔야한다.
2. 차는 냉冷하다?
차의 냉성(冷性)에 대한 견해는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다. 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가 ‘손발이 차고 속이 냉한 사람에게는 녹차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차와 과학이라는 등식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최소한 일부 다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식재(食材)나 약재(藥材)를 냉 ․ 온성(冷溫 ․ 性)으로 분류하는 것은 음양오행설을 근간으로 하는 한의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오랜 옛날부터 약재로 사용되어 온 차가 한의학의 영역 안에서 그 성질과 효능이 정리되는 것은 당연하며 역시 동일한 사상적 범주 안에서 쓰인 다서(茶書)에서 유사한 기록을 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의서나 다서에서 말하는 차의 성질은 대체로 '고감미한(苦甘微寒)' 즉, ‘차는 그 맛이 쓰고 단맛이 있으며 성질은 조금 차다.’는 것이다. 육우의 ‘다경’에는 "차가 본래 냉하다(茶之爲用味至寒)"고 했고, ‘본초강목’에는 ‘차는 그 맛이 쓰고 달며 성질은 차고 음(陰) 중의 음으로 가장 열을 잘 내린다.’고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차는 성질이 조금 차며 그 맛은 달고 쓰면서 독이 없다.’고 했다.
근래에 들어서도 차의 냉성에 대한 견해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혜우 스님은 ‘다반사’에서 ‘차는 찬 성질이 있다.’고 했고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역시 '차 자체는 냉한 성질이 있다.’고 했다. 고명석 교수는 ‘현대생활과 차의 효능’에서 ‘차나무는 상록수이며 음지에서 잘 자란다. 겨울 동안 동설(冬雪)을 머금고 난 새싹을 취하여 제조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한(寒)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영선 교수는 ‘한국 차 문화’에서 ‘저혈압 환자나 손발이 차고 찬 음식을 먹어서 설사를 하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하며 차의 냉성을 짐작케 하는 견해를 피력했다.(참조 : 붓다뉴스 2005. 6. 10)
차의 유해성에 대한 중국 한의서의 기록을 근거로 무분별한 음차생활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는 글도 눈에 띤다. 저자는 건강을 위해서 차를 알고 마셔야 한다면서 본초강목과 본초구진의 기록을 차례로 소개했다. “(氣)가 허(虛)하고 차(寒)며 혈압(血壓)이 약한 사람이 이미 차(茶)를 마신 지가 오래면, 비위(脾胃)에 오한(惡寒)이 나며, 원기(元氣)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상(損傷)된다.” “많이 복용하면 수면이 적고, 오래 복용하면 몸이 마르고, 공복(空腹)에 차(茶)를 마시면 신장(腎臟)으로 들어가 화(火)를 삭이며, 다시 비위(脾胃)로 들어가 한기(寒氣)가 생겨나니, 결코 복용에 적당치가 못하다.” (박영환. ‘옛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 본 차의 효능과 유해성’ 중에서)
이상과 같은 기록이나 견해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한의학은 우리의 정서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지금도 공인된 치병(治病)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견도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차의 냉성’에 대한 관심은 음차 후 이상증세와 맞물려 서서히 증폭되어가는 느낌이다.
황제내경 소문편 음양응대론(陰陽應象大論)에 의하면 ‘음양이란 천지의 도이며, 만물의 근본이며, 변화의 원천이며, 생사의 시본이며, 신명의 부이니, 질병을 고치는데 있어서도 이 원리 원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양은 따듯함과 밝음이요 음은 차가움과 어둠이다. 한의학에서는 음양의 평형이 건강을 보증하는 필수조건이며 음양의 실조(失調)를 질병 유발의 근본 원인으로 본다. 그렇다면 차의 냉성은 인체를 구성하는 음양의 조화에 영향을 끼치며 음차 후 이상증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의사 ‘신도 요시하루’는 그의 저서 ‘냉기제거 건강법’에서 이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돕고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음과 양, 두 종류의 에너지가 체내를 순환하고 있으면 건강하다고 본다. 이 순환이 흐트러지고 정체현상이 일어날 때 발병(發病)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의 순환이 나빠지는 것이다. 혈액은 에너지와 함께 순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순환이 나빠지면 혈액의 순환도 함께 나빠진다."
3. 구증구포九蒸九曝에 대하여
오늘날 일부 다인들은 소위 ‘구증구포’를 명차의 필수조건처럼 여기고 있다. 구증구포라는 글귀가 인쇄된 차통(茶桶)이 시중에 많이 보이고 이런 차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회의(懷疑)적인 견해를 피력하거나 구증구포 불가(不可)를 주장하는 다인들도 많다. 이들의 주장은 주로 제다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구증구포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풀이해 본다면 아홉 번을 찌고 아홉 번을 말린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구증구포로 만든 차는 우리 전통차인 덖음차가 아닐 뿐만 아니라 찐차도 아닌 실체가 없는 제다(製茶)의 또 다른 유령일 뿐이다.’(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④ 한국 차의 전래와 역사) ‘너무 오랫동안 덖게 되면 비타민C, 비타민B, 니아신, 사포닌, 카테긴스, 카페인, 탄수화물, 무기질 등 중요한 유효성분들이 손실 또는 파괴되기 쉽기 때문에 생약을 법제하는 구중구포식 제다방법은 결코 자랑할 바가 못 된다.’(강우식. '다신전' 월간Tea & People 2006. 7) ‘고온의 가마솥에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빈다면 찻잎은 모두 부서지고 만다. 적당히 흉내만 낸다면 더는 못하겠느냐?’ ‘덖고 비비기는 횟수보다 찻잎의 함수량 감소에 따른 솥의 열도 조절, 전체 가열량, 비비기의 강도와 횟수 등의 요소를 잘 맞추어야 한다.’
이에 비하여 구증구포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현실성에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구증구포란 한약을 법제하는 방법 중 하나로 몸에 이로운 차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 튼실한 야생 찻잎을 적정한 온도로 덖고 적절하게 비비기를 하면 구증구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헌적 근거로는 2004 년 8 월 27 일 순천 선암사에서 열린 한국전통차문화 심포지엄에서 호남의 차문화전통을 발표한 동국대학의 김상현(金相鉉) 교수가 조선 말기 문신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를 열람하다가 구증구포에 대한 기록을 발견한 사실을 들기도 한다.(월간 차의 세계 2004. 11)
차를 평가함에 있어서 오직 색향미(色香味)와 영양가만을 따진다면 구증구포는 제다법과의 관련 유무와 상관없이 별로 가치가 없다. 생산성도 없고 상업적으로 만족하기도 어려운데 공연히 한약을 만드는 까다로운 방법에 매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분명한 사실은, 굳이 구증구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아주 오래 전부터 차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생화학적인 성분과 효능만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생엽을 그냥 먹거나 나물로 무치든지 국을 끓여서 쉽게 많은 양을 먹을 수 있고 저장을 위해서는 단순 건조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정한 원칙에 의해 현묘(玄妙)한 방법으로 제다(製茶)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구중구포 이전에 법제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초제(炒制)는 본초학에서 말하는 법제의 한 방법이니 찻잎을 가마솥에 덖는 것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몇 번을 덖고 비비든지 차가 건강과 직결되는 음료인 만큼 찻잎을 법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찻잎의 이로운 기운이나 요소를 증강시키고 반대로 해로운 기운이나 요소를 감소시키거나 제거하는 과정 즉 법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로 보건데 차의 법제와 음차 후 이상증세와의 관련성은 부인할 수 없다. 혜우 스님은 ‘찻잎의 본래 성질은 차(冷)나 덖음차 제다법에 의해서 차로 만들어진 후에는 그 성질이 평해진다.’고 하였다. 혹자는 ‘초(炒)의 목적은 치료효과를 높이고 약성을 누그러뜨리고 개선하여 주며 독성과 자극성을 감소시키고 향과 미(味)를 찾아 교취교미(橋臭橋味)하여 준다.’고 했다.
차는 반드시 법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만의 비법(秘法)을 내세우며 터무니없는 고가로 차를 판매하는 것은 법제가 아니라 상술(商術)이다. 법제는 온갖 잡다한 방법이 동원된 복잡한 과정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차가 모든 기운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선의 법제 방법은 무엇인가? 구증구포인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몸에 전적으로 이롭고 누가 마셔도 이상증세기 나타나지 않는 차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나 방법을 법제라고 하는데 법제의 방법은 차의 종류, 생엽의 상태, 기후 등에 따라 부분적인 차이가 있다. 법제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요하며 반복되는 연구와 실험을 필요로 한다. 법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정직하게 지극정성으로 차를 만드는 것은 제다인들의 몫이다. 또한 법제된 차의 가치를 인정하고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몫이다.
4. 차의 기감氣感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차의 효능에 대하여 ‘기(氣)를 내리고 오랜 식체를 삭히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 또한 소갈증을 낫게 하고 잠을 덜 자게 한다. 그 밖에 굽거나 볶아서 먹어 생긴 독을 푼다.’라고 했다.
차의 효능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차의 생화학적인 성분에 기초한다. 차의 성분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그에 따르는 약리작용들이 밝혀짐으로써 많은 효능들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기(氣)를 내려준다’는 효능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현대인들이 한의학적인 효능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가 거의 없고 단지 일부 다인들이나 기수련(氣修練)을 하는 사람들만이 ‘차의 냉성’과 더불어 관심을 보일 뿐이다.
2003 년도 한국차연구회 학술발표 자료 중에 ‘차나무 품종․차 제품의 종류 및 이용을 위한 기감(氣感)에 관한 연구‘라는 전라남도 농업기술원 차 시험장 김주희 씨의 글이 들어있다. 그는 더 많은 연구와 과학적인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차의 기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한국의 차나무는, 한국 산하에 있는 재래종 차나무는 많은 기감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세계 6대 다류를 이루는 차나무의 대부분이 한국산을 제외하고는 거의 기를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기감(氣感, Energy)이란식물과 동물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원소로 구성되어 다. 그 원소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 에너지는 빛과 파장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마그네슘과 유황화합물 및 많은 원소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재래종 차에는 기가 많아서 인체 내의 기를 원활하게 소통시켜주고 있다..... 장부는 각 부분마다 기를 발산하고 있으며 그 균형 유지를 위해서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차가 관여하는 기관은 12개이며, 관여하지 못하는 기관은 8개 기관으로 보인다.”
자연과학적인 사고로 기(氣)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만물이 탄생하고 자라고 운동하는 모든 것이 기의 작용이며 형체는 없지만 작용은 있는 것이 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를 내려주는 효능’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진 다인들의 견해는 대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법제(法製)된 차를 마시면 기가 하강하여 단전에 모이고 단전에 모인 기가 몸 전체로 운행되면서 혈(血)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진다. 이렇게 되면 머리와 눈이 맑아지고, 몸이 따듯해지고, 체내의 독소나 독기가 배출되고, 온몸의 구석까지 영양이 공급되면서 피로가 풀리고 심신이 편안해 진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생화학적 효능을 능가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소위 성인병이라 불리는 각종 대사성질환의 근본 원인이, 공해와 스트레스로 인한 기의 상승(上乘) 정체(停滯)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이 효능은 현대인들이 차를 마셔야하는 명제를 만족시켜 주는 최고의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차의 효능은 원료인 찻잎과 법제 여부에 의해서 결정된다. 산삼과 재배한 인삼은 성분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청난 효능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성분의 차이가 아니라 기운(氣運)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약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찻잎만 예외일 수 없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는 야생차가 상품이며 차밭에서 딴 것이 버금간다.'고 했다. 그러나 재배한 차라도 당시의 것과 작금의 것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당시에는 다수확을 위해 화학비료나 농약을 살포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야생 찻잎의 순수성에 대한 시비(是非)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장뇌삼과 인삼의 차이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비료나 농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찻잎을 법제하여 만든 차의 품질이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차의 성분과 효능에 대한 생화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차의 생리활성기능에 대하여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차의 세 가지 기능〔일차기능: 영양기능, 이차기능: 감각기능, 삼차기능: 체조절기능 중에서 삼차기능에 해당하는 것인데 근래 들어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것은 생체방어, 질병의 예방, 회복, 체조절 리듬, 노화억제 등이다.(참고: 정동효ㆍ김종태 편저. 차의 과학) 이는 몸의 신진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선인(先人)들은 이미 오래 전에 신진대사에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차의 효능을 이야기했으니 그 지혜가 놀랍다.
지금까지 거론한 내용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대부분 담론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차에 미친 사람들의 담론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현상에서 비롯된 담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현대과학의 오만과 상업적 이해 관계에 가려서 영원히 담론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월간 Tea & People 2006.10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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