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이차(普 茶, p rch , 푸얼차)
보이차(普 茶)는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에서 운남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드는 후발효차(後醱酵茶)로 중국식 발음은 푸얼차(p rch )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명차(名茶)들은 대체적으로 차 산지의 이름을 따서 명명(命名)되었는데 가령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은 벽라봉(碧螺峰)의 이름, 서호용정(西湖龍井)은 서호 용정사(龍井寺)의 이름을 딴 대표적인 명칭법이다. 보이차 역시 과거 차의 산지였던 운남성 서쌍판납(西雙版納) 및 난창강(瀾滄江) 부근에서 생산된 찻잎을 보이현(普 縣)에서 모아 출하(出荷)함으로 인해 [보이차(普 茶, 푸얼차)]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이다. 보이차라는 이름에 관해서는 명(明)나라 말년 방이지(方以智)의 {물리소식(物理小識)} 원고(原稿) 중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데 [보이차(普 茶)는 쪄서 덩어리로 만들고, 서번(西蕃)지역으로 판다]라는 글이 있다.
보이현(普 縣)에서 모아서 출하하기 때문에 보이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알칼리도가 높고, 속을 편하게 해주며, 숙취제거(宿醉除去)와 소화(消化)를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체내의 기름기 제거 효과도 강하여 기름기가 많은 음식에 잘 어울리며, 곰팡이균을 번식(繁殖)시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광동지방에서 주로 많이 소비되고 있으며, 오래 숙성시킬수록 가격이 비싸다.
운남성에서는 대엽종(大葉種) 찻잎으로 발효 성분과 탄닌 성분이 많은 보이차로 만드는데 차맛이 아주 진하여 자극성이 있고, 높은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특성이 있으며, 그 향기는 운남성 대엽종 보이차 만의 특이한 향기이다. 입에 감치는 맛과 진한 맛, 오랫동안 우려내도 처음 맛과 그대로인 보이차는 5∼6차례, 심지어는 7∼8차례 우려내어도 처음의 향기와 맛이 변하지 않는다. 그 우려낸 차빛은 진한 등황색을 띠고 있으며, 좋은 보이차는 검은 빛을 띠는 것이 아니라 등황색을 띤다. 찻잎은 충실하고 도톰한데 잎의 색깔은 황록색에 붉은 반점이 있고, 잎의 모양은 여러 찻잎이 뒤엉켜 있으며, 흰빛을 띤 백호(白毫)가 많이 들어 있다.
보이차의 진품(珍品)으로는 모첨(毛尖), 아차(芽茶), 여아(女兒) 등이 있으며, 모첨은 곡우(穀雨) 전에 어린 찻잎을 채취하여 산차(散茶)로 만드는데 맛은 진하지 않으나 고형차(固形茶)인 단차(團茶)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차는 모첨(毛尖) 찻잎보다는 센 잎을 사용하여 주로 단차(團茶)로 만들고, 2냥과 4냥 짜리가 있으며, 운남성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차종이다. 여아차도 아차(芽茶) 종류로 곡우 후에 채취하며, 보이차의 명품 중에 속한다.
보이차가 상품화된 것은 크게 잎차 형태인 산차(散茶)와 형태를 갖춘 고형차(固形茶)가 있으며, 먼저 보이차를 만들면 산차(散茶)가 되고, 그 다음 다시 증기(蒸氣)로 쪄서 압력을 주면 형태를 갖춘 고형차(固形茶)가 된다. 보이긴압차(普 緊壓茶)는 운반의 편의와 장기간 저장을 위하여 찻잎에 수증기를 가한 다음 틀에 넣고 압착하여 일정한 형태의 덩어리로 만든 차 제품으로 마실 때는 칼로 잘게 썰어서 우려 마시며, 버터나 밀크, 소금을 첨가하여 마시기도 한다.
그 형태와 어린잎과 쇤 잎을 섞는 비율의 기호도(嗜好度)는 산지의 습관에 따라 다른데 만두(饅頭)와 같이 생긴 타차( 茶), 아주 단단하게 만든 긴차(緊茶), 떡차인 병차(餠茶), 칠자병차(七子餠茶), 그리고 네모진 형태의 벽돌처럼 만든 전차( 茶), 그릇 모양의 단차(團茶), 평평하고 둥근 원형 모양의 원차(圓茶), 하트 모양의 긴차( 茶), 탁구공 모양의 주차(珠茶), 사람의 머리 크기와 같이 크게 만든 인두차(人頭茶) 등의 종류가 있다.
☞ 보이차(普 茶)에 관한 전설
보이차는 그 화려한 명성에 맞게 황제가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수백년 전 운남의 보이촌 남쪽 수립산에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 하니족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 왕형은 나이가 마흔이 넘었고, 그의 아내는 파한이라고 했는데 이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왕형은 신체가 건강한 사람으로 농사를 잘 지었으며, 조그마한 차밭을 갖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는 아내와 함께 차밭으로 가서 밭을 갈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었기에 차밭은 나날이 커지고 찻잎은 잘 자랐다.
왕형은 인덕이 후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두터운 친분을 나누었고 집안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왕형은 늘 손님들에게 좋은 차를 대접하며 환대했고 손님이 돌아갈 때면 아낌없이 차를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왕형의 차는 노인이 마시면 기운이 나고, 임산부가 마시면 순산을 하고, 아가씨가 마시면 예뻐지고, 병자가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좋아하였다. 이러한 소문은 인근에 퍼져 왕형의 명성이 자자해졌다.
관아(官衙)의 높은 관리(官吏)가 이 소식을 듣고 차를 얻을 욕심으로 하인들을 이끌고 마을로 찾아왔다. 그들은 향기로운 차 향기를 따라 왕형의 집까지 찾아왔다. 마침 이날 왕형은 집에서 찻잎을 비벼가며 차를 만들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니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 벅적이고 있었다. 왕형은 관리에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드리지도 않고 차만 만들뿐이었다. 마을 이장이 왕형에게 [나으리가 오셨는데 얼른 인사드리지 않고 뭐하느냐?]고 다그쳐 말했다. 왕형의 아내는 현명한 여자여서 자기 남편이 대꾸도 않고 있다가는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짐작하고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띠고 물을 끓여 차를 달이기 시작했다.
날마다 기름기 많은 고기로 배를 채우던 관리는 차를 몇 모금 마시니 마치 향기로운 기운이 심장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고 기름이 열 근이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좋은 차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왕형은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차를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차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관리는 그러한 왕형의 태도에도 개의치 않았다. 관리는 왕형의 차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여보게, 자네 차밭을 내가 사겠네]라고 말했다. 왕형은 몽둥이로 맞은 듯이 놀랐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장은 관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왕형에게 말했다. [나으리께서 자네 차밭을 사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은덕인가? 그런데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뭘 하고 있나?] 왕형은 [이 차밭은 내가 만든 것이고, 차나무도 내가 심은 것이오. 차밭을 팔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관리는 노발대발해서 소리를 질렀다. [방자하기 그지없구나!]
이때 왕형의 아내가 [나으리 죄송합니다. 제 남편은 말재주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잘 거슬립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나으리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차를 바치겠습니다.]라고 얼른 예를 갖추어 관리에게 절을 했다. 파한은 집으로 들어가 대바구니에 가득 차를 담아 가지고 나왔는데 이것은 왕형이 자기 몸처럼 아끼는 차였다. 관리는 좋은 차를 보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욕심이 생겨서 혹시 숨겨둔 차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하인들을 시켜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관리는 왕형의 아내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은전 두 닢을 던져주면서 [이제부터 일년에 200 바구니의 차를 만들어 내도록 하여라. 그 양을 채우면 합당한 가격의 찻값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양에 미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할 것이며, 벌금을 내지 않으면 목을 자를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마차를 타고 관아로 돌아갔다.
관리가 돌아가자 왕형은 바닥에 침을 뱉고 은전을 던져버렸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그 돈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립시다. 남의 처마 밑에 있는 이상 어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살 수 있겠어요?] 왕형은 한숨을 내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한편 좋은 차를 얻어 기분이 좋아진 관리는 싱글벙글하며 밤새 잠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차를 얻었으니 보이성의 상관에게 차를 바치면 보상(報償)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관리는 차를 싣고 가서 제일 높은 상관에게 바쳤다. 상관은 관리의 말을 듣고 얼른 사람을 시켜 차를 끓이게 하여 천천히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좋은 차로구나. 좋은 차야]하며 칭찬했다. 상관은 다시 차를 포장하여 관리를 데리고 운남성의 도독(都督)을 찾아갔다. 운남성 도독은 그들의 말을 듣고 차를 맛본 다음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한 차로구나. 천하의 명차로다.] 도독은 차를 다 마신 후 잠시 생각하다가 [마침 북경에 갈 일이 있는데 이 차를 가지고 가서 황제께 충성의 표시로 드려야겠다]고 했다.
며칠 후 운남 도독은 북경에 가서 왕형의 차를 황제께 드렸다. 황제는 문무대신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고 있다가 차를 한 잔씩 끓여 주었다. 차를 마신 사람들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 황제는 안질을 앓고 있었는데 이 차를 마시니 눈이 맑아졌다. 황제는 [신차(神茶)로다. 신차야]하며 감탄했다. 황제는 성지(聖旨)를 내려 왕형의 차에 [보이차]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해마다 궁으로 공납(貢納)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왕형의 차밭은 관에서 거두어갔고 그의 차 재배 기술은 곧 인근 보이지방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이때부터 보이차는 천하의 명차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보이차(普 茶)의 명성(名聲)
옛날 보이차는 주로 덩어리차인 단병차(團餠茶)로 제조하였다. 가장 좋은 품질의 차를 아차(芽茶)라고 불렀으며, 3∼4월에 채집한 차를 소만차(小滿茶), 6∼7월의 것을 곡화차(穀花茶)라고 불렀다. 큰 덩어리 차를 긴단차(緊團茶)라고 하였고, 작은 덩어리차를 여아차(女兒茶)라고 하였다. 청(淸)나라 때 조학민(趙學敏)이 쓴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에 의하면 가장 큰 보이차는 [한 덩어리에 5근(斤)으로 사람 머리 만하다고 하여 인두차(人頭茶)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보이차는 생산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중국인들이 생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남송시대(南宋時代, 1127∼1279)에 이르기까지 보이차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남송시대 사람인 이석(李石)이 쓴 {속박물지(續博物志)}에 보면 [서남이(西南夷)는 보차(普茶)를 음용하였는데 이는 당대(唐代)부터이고, 매병(每餠) 40냥(兩)의 가격으로 서번(西蕃)으로 판매되었다. 당항(黨項 : 서하(西夏)를 가리키는 말)에서는 이를 귀하게 여겼으나 이러한 사실을 송(宋)나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서남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보이차를 즐겨 마셨는데 이는 이미 당(唐)나라 때부터이고, 덩어리 차로 만든 이 차를 한 덩어리에 40냥의 가격으로 서번(西蕃), 즉 토번(吐蕃)에게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당시 송(宋, 960∼1270)나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차가 문화의 종주(宗主)인 한족(漢族)만의 것이라고 자부(自負)할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중국차의 원산지가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 등 서남지역에 치우쳐 있는 것을 보아도 차 문화가 처음부터 중원(中原)의 문화가 아닌 지방의 문화로 발전되었으며, 이중 소수민족(少數民族)이나 주변 이민족(異民族)들의 차 문화는 중국 차 문화의 발전에 기여(寄與)한 바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이차의 명성(名聲)은 명·청대(明淸代)에 이르러 중국 전역에 자자해졌는데 {전략( 略)}에 [사서(士庶) 모두 보차(普茶)를 마신다]고 하여 명나라 때에 보이차가 두루 애음(愛飮)되는 차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 때에 이르면 그 명성이 더하여 {전해우형지( 海虞衡志)}에는 [보이차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졌다. ……산에 들어가 차를 재배하는 사람이 수만 인이고 차상인이 차를 매입하여 각처에 운반하느라 길에 가득 찼다]라고 하였다. 완복(阮福)이 쓴 {보이다기(普 茶紀)}에는 [보이차의 명성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맛이 가장 진하다. 경사(京師)에서 더욱 귀중(貴重)하게 여긴다. …2월에 딴 섬세한 잎으로 만든 것을 모첨(毛尖)이라고 하였고 이를 진공(進貢)하였다. 진공한 후에야 민간으로의 판매가 허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보이차의 명성은 명차(名茶) 중의 명차라는 반열(班列)에 올랐는데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였을까? 물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이전부터 보이차는 귀한 차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제조방식과 개성있는 맛, 생산량 등 여러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내지(內地)에서도 똑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는 없다. 독특한 제조 방식과 개성있는 맛은 자칫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과 같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남(雲南) 등 주변지역에서의 보이차 명성이 그대로 중국 전역에까지 이어지게 된 데에는 개성있는 맛과 제조기술의 특징, 효능 등 여러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보이차에게 명차 중의 명차라는 명성을 얻게 해준 것은 만주족(滿洲族)이었다고 해도 과언(誇言)이 아니다. 만주족은 본래 중국 동북지역에서 유목(遊牧)과 수렵(狩獵)을 하던 민족으로 이들의 식습관은 육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중국의 통치자(統治者)로서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한 내지(內地) 지배생활을 하면서 풍부해진 음식문화로 인해 소화작용이 강한 음료가 요구되었다. 여기에 적합했던 음료가 바로 보이차였던 것이다. 보이차의 효능에 관해서는 이미 명청대에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데 조학민(趙學敏)은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에서 [육식의 독을 해소시키는 능력이 강하고, 소화와 담즙을 활성화하며 위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하였다. 이로써 청(淸)나라 조정(朝廷)에서 보이차를 높이 평가하고 운남으로부터 진공(進貢)하게 하자 [보이차는 천하 명차(名茶) 중의 제일이다] 혹은 [보이차의 명성은 천하에 두루 퍼져있고 …… 경사(京師)에서 더욱 귀중히 여긴다]는 등의 보이차에 대한 명성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밖에도 음다(飮茶) 방식의 변화에 따른 영향이 보이차가 자연스럽게 알려지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주지(周知)하다시피 송(宋)나라 때까지는 덩어리차를 갈아서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차의 약용적(藥用的)인 인식에 따른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다법은 원대(元代)를 거치면서 거의 소멸되고, 명대(明代)에 이르면 찻잎을 그대로 넣고 우려 마시는 방식인 포다법(泡茶法)이 정착되었다. 이는 음료로서 기호적(嗜好的)인 측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하겠다. 즉 소금 등 인공적인 맛을 가미하거나 진한 맛을 즐기던 것에서 차 그대로의 맛을 즐기려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보이차와 같이 개성있는 맛을 가지고 있는 차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이어졌고, 보이차는 운남(雲南)과 토번(吐蕃)에서의 명성 그대로 자연스레 중국 내지(內地)에 알려졌던 것이다.
(1) 보이차(普 茶)의 역사(歷史)
보이차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맥(脈)을 같이 할 정도로 역사에 차가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중지왕(茶中之王)으로 불리는 보이차는 3,0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산지에 따라 320여 종류가 생산되지만 크게 몇 가지로 분류하여 타차( 茶), 병차(餠茶), 긴차(緊茶), 산차(散茶), 방차(方茶), 전차(錢茶) 등으로 나누고, 타차는 품질이 가장 좋으며, 타차중 가장 뛰어난 품질은 금과공다(金瓜貢茶)이다.
명대(明代)·청조(淸朝)시기에는 보이차가 사람의 뼈와 살을 바꾸어 장수(長壽)하게 하므로 모든 차나무 중의 봉황(鳳凰)으로 황실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공품차(貢品茶)로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는데 황실의 기타 공품차들과는 비길 수 없이 보기 드문 명차로 알려졌다. 그리하여 황실 및 귀족들의 환심과 사랑을 독차지하였기에 외국사절단(外國使節團)에게도 국가적인 예물로 증정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한편 외국 문헌(文獻)에서도 보이차에 대한 기재를 볼 수 있으며, 세계의 저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그의 명작 {전쟁(戰爭)과 평화(平和)}에 보이차를 써넣었다.
1) 상고시대(上古時代)
상(商, BC 1711∼1066), 주(周, BC 1066∼256)시대부터 운남(雲南)에 살던 복족 사람들은 차를 심었고, 찻잎을 생산하여 제다(製茶)하였는데 이것이 보이차(普 茶)에 대한 시초이다. 문헌에는 [복족 사람들이 상왕(商王)에게 작은 개를 바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상나라 때 이미 복족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주무왕(周武王)은 기원전 1066년에 남방의 8개 작은 나라를 거느리고 주왕(紂王)을 토벌(討伐)하였었는데 동진(東晉) 상거의 {화양국지 파지(華陽國志 巴志)}에는 [주무왕(周武王)이 주(紂)를 토벌하여 파(巴)와 촉(蜀)의 군대를 전부 얻었고 ... 물고기, 소금, 동, 철, 붉은 색의 옻칠, 차(茶), 꿀 등을 모두 하였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파촉지사(巴蜀之師)는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 3개성의 여덟 개의 작은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었고, 그 중에 복족사람들은 운남성 경계내에 살고 있었다. 오늘날 운남성의 여러 민족 중 포랑족(布朗族), 합와족(哈瓦族)은 모두 복족인의 후예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운남(雲南)은 차의 고향이며, 3천여년전 상(商)·주(周)시대부터 운남의 복족(茯族) 사람들이 이미 다엽(茶葉)을 생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복족인의 조상이 운남에서 대대로 살아온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고, 분포 면적도 넓었으며, 당시에는 차를 심을 수 있는 적당한 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족인이 운남에서 차를 심은 시조(始祖)라는 학설이 있는데 이것은 상주시대(商周時代)에 차를 공물(貢物)로 하였다는 것과 일치한다.
{운남성다엽진출구공사지(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志)}에 보면 한무제(漢武帝)는 기원전 109년에 상강(賞羌)을 진왕으로 봉하고, 진왕에게 인장을 하사하였으며, 진왕은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하고 진지현을 다스렸다. 삼국(三國)의 오진(吳晉)은 그의 책 {본초(本草)} 중에서 [고채(苦菜)는 일명 다(茶)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선(選)이라고 부르며, 또 하나는 유동(游冬)이라고 부르는데 익주군 골짜기와 산 능선에서 난다. 겨울에도 죽지 않으며, 3월 3일에 따서 말리운다]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오진이 말한 다(茶)자는 글자의 뜻에 따르면 곧 찻잎이어서 운남이 한(漢)나라 시기에 차를 생산하였다는 것을 실증(實證)하는 셈이다.
2) 삼국시대(三國時代)
삼국시대에 [무후(武侯)가 종자를 선사하였다]고 하여 1700년 전의 음력 7월 23일에 보이차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고있다. [다산(茶山)에는 다왕수(茶王樹)가 있고 다섯 산의 것보다도 유독 크다. 본래는 무후가 종자로 선사한 것인데 지금까지 이곳 사람들은 제사 지내고 있다]고 단췌(檀萃)는 그의 {전해우형지( 海虞衡志)}에 기록하고 있다. 무후(武侯)는 제갈공명(諸葛孔明)으로 그는 서기 225년에 남만(南蠻)을 정벌하러 지금의 운남성 서쌍판납 자치주(西雙版納自治州), 맹해현의 남유산에 이르렀다. 그의 <출사표(出師表)> 중에서 [일찍 5월에 노수(瀘水 : 지금의 금사강(金沙江)을 말함)을 건너 불모지(不毛地)에 깊이 들어갔다]고 기록한 것은 곧 전남( 南)에 진입하였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공명선생이 남나산에 와서 보이차 나무를 심었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 점은 현재로서는 고증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이들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차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대대로 전수하면서 제갈공명을 차의 조상으로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8년 12월 26일 운남일보(雲南日報)의 [운남(雲南)의 다사(茶事)]라는 글 가운데는 [공명(孔明) 다산(茶山)은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맹해 남유산을 지날때 병사들이 풍토가 맞지 않아서 눈병이 났었는데 제갈공명이 지팡이를 산 위에 꽂았더니 즉시 차나무로 변하여 잎이 자라났으며, 병사들은 그 잎을 따서 끓여 마시고 병이 나았다. 이후 남유산을 공명산(孔明山)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 보이현의 동남쪽에 무영수산(無影樹山)이 있었고, 그 망지산은 공명이 화살을 두는 곳이었으며, 산에는 제풍태가 있고, 산 위에 큰 차나무가 있는 것은 무후(武候)가 종자를 선사한 것이어서 이 민족들은 제사(祭祀)를 지낸다고 말하고 있다. 운남의 6대 다산의 하나인 유락산(攸樂山)도 공명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음력 7월23일에 공명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공명등(孔明燈)을 걸어놓는 행사를 거행하는데 "다조회(茶祖會)"라고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원래 풍문(風聞)으로 전해지고 있는 말이지만 보이차의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없을 때에는 아주 설득력(說得力)이 있는 말이다.
3) 당(唐)나라
당(唐) 함통(咸通) 3년(862년)에 번작(樊綽)이 외교사절(外交使節)로 운남의 남소지에 갔다가 쓴 {만서(蠻書)} 제7권 중에는 [차는 은생성(銀生城)지역의 여러 산에서 나고 각기 거두어 들여 일정한 제다법이 없었다. 몽사(蒙舍 : 옛날 중국의 남방민족을 일컫는 호칭)사람들이 산초나무, 생강, 계피나무와 함께 끓여서 마신다]는 기재가 있었다. 고증(考證)에 의하면 은생성은 지금의 운남성 남부의 경동(景東), 사모(思茅)와 서쌍판납(西雙版納) 일대이다. 이 일대 지역에는 이미 차가 생산되었고, 또 5백여리 거리 밖으로 판매 공급되어서 이해 부근의 몽사(蒙舍 : 지금 운남성의 외산(巍山) 남동현(南洞縣) 일대의 만족)들이 마신다는 것은 당시 운남에 이미 다엽이 생산되었고, 운송 판매의 상업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은생성(銀生城)에서 그 당시에 생산한 차가 어떤 다엽(茶葉)인지에 관해서는 고증(考證)할 길이 없으나 운남의 지리적 환경 및 고대 차나무의 연구로부터 은생성의 차는 마땅히 운남의 대엽종차 종류이어야 된다. 그것은 대엽종차(大葉種茶)의 종자는 운남의 원시차(原始茶)의 종자이고, 보이차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생성에서 나는 다엽은 당연히 보이차(普 茶)의 선조이어야 한다.
청(淸)나라의 완복(阮福)은 {보이다기(普 茶記)} 중에서 [보이차는 고대에는 은생부(銀生府)에 속하였고 서번(西蕃)에서 사용되는 보이차는 당(唐)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당나라 때 은생성에 이미 보이차가 있었으며, 일찍 당나라 때 멀리 서번에까지 팔렸기 때문에 그 시기의 서남의 비단길을 실제로는 [비단과 차의 길]이라고 고쳐야만 정확할 것이다.
4) 송(宋)나라
송(宋)나라의 이석(李石)은 {속박물지(續博物志)}에서 [차는 은생의 여러 산들에서 나고 산초나무와 생강을 섞어서 끓여 마신다.]고 기재하였다. 이 말은 당나라 번작(樊綽)의 기재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그의 견해(見解)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송나라 때에도 운남성의 다엽(茶葉)은 고정된 이름이 없었다. 보이차는 이미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당나라의 다신(茶神) 육우(陸羽)가 {다경(茶經)} 중에서 13개 성(省), 42개 주(州)의 명차(名茶)를 소개하면서 운남성 은생성의 보이차만 빼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당·송대(唐宋代) 단차(團茶)의 법통(法統)을 잘 이어받은 것은 오히려 운남의 보이차이다.
차문화 역사의 가도(街道)에서 보면 차는 당나라에서 흥기(興起)하고, 송나라에서 성행하였다. 중국 다엽의 흥성은 차를 마시는 것에 대한 풍습 외에 더욱 중요한 점은 차마시장(茶馬市場)이 송나라의 차문화 발달에 높은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다엽으로 서번(西蕃)의 말을 쉽게 교환하였고, 서방에 대한 상업거래의 번영을 개척한 것은 보이차의 공로라고 할수 있으며, 서번이 보이차를 마신다는 이 한마디의 말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송나라의 시인(詩人) 왕우칭은 [아홉 원(園 : 고대 농지의 면적단위로 1원(園)은 30무(畝)이다)은 난초(蘭草)의 향기보다 향기롭고, 음력 구월의 밝은 달보다 둥글도다. 없어질까 걱정하며 아껴두지만 백발(白髮)의 부모를 봉양(奉養)하기 위해 남겨 두노라]라는 보이차를 찬미하는 한 수의 다시(茶詩)를 썼었다. 송나라 때에는 운남의 찻잎 수출은 대부분 서역(西域)과 인도(印度)를 위주로 하였으며, 말과 사람의 왕래가 많았기 때문에 도로가 생겼다.
그 중 하나는 서쌍판납(西雙版納)의 6대 다산 남쪽 끝의 이무진(易武鎭)으로부터 북쪽으로 가서 보이진을 거치고, 대리(大理)를 거쳐서 여강(麗江)의 남쪽에 도착하여 금사강변(金沙江邊)의 석고진(石鼓鎭)에 이른다. 이러한 운남의 경내(境內)를 지나는 것을 [고다도(古茶道)]라 부르고, 이무진에서 석고진으로 이르는 돌로 포장한 길은 [석괴고다도(石塊古茶道)]라고 부르며, 다시 석고진으로부터 티벳의 납살(拉薩 : 라싸)을 거쳐 곧바로 인도에 이르는 운남 이외의 지역을 [차마대도(茶馬大道)]라고 부른다. 차마대도는 이외에도 미얀마로 통하는 길도 있고, 베트남으로 통하는 길도 있었다.
차의 길 주변에는 많은 성시(城市)가 형성되었다. 보이부는 보일부(步日部)로 개명한 이래 점차적으로 운남 다엽의 제일 중요한 집산 중심지로 개척되었고, 점점 상인들로 하여금 운남 다엽과 보이부가 상인들에 의해 밀접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차(普茶)의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후에 명나라 말년에 이르러 다시 보이차(普 茶)로 바뀌었다. 이후 운남 경내의 키가 큰 차나무의 차청(茶靑)으로 제조한 차의 제품은 모두 보이차라고 통칭하였다. 보이부를 중심으로 고다도와 차마대로는 빈번한 동서교통의 왕래를 가져오고, 방대한 차마교역(茶馬交易)을 진행하였다.
5) 원(元)나라
원(元)나라는 중국차 문화의 전수, 계승의 기복, 전환의 과정 중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하나의 왕조(王朝)이나 전체적인 보이차 문화를 말하면 원나라는 중요한 시기이다. 관습상으로 보이차의 기원을 삼국시기의 [본래 무후가 종자로 선사하였다]로 보는데 사실 보이차의 뿌리는 중국차를 마신 최초의 사람까지 올라가면 어느 그루 차나무의 찻잎인가에는 관계없이 운남대엽종 차종자의 후대일 것이며, 다시 말하면 보이차일 것이다. 왜냐하면 운남 보이차는 대엽종차를 쓰고, 가장 원시 차종자의 차청(茶菁 : 정화된 찻잎)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국차의 역사는 곧 보이차의 역사와 같다.
원(元), 명(明) 이전에 마시던 보이차는 모두 낙관(落款)이 없는 보이차였는데 그 실물은 있으나 고정된 명칭이 없었으며, 원나라에서부터 그 진짜이름을 얻게 된다. 원나라에는 보일부(步日部)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었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보이부(普 府)로 되었다. [보이(普 )]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타났고, 이때부터 진짜 이름으로 역사에 써넣을 수 있었다.
원나라의 보이부가 이름지어진 얼마 후 고정적인 명칭이 없는 운남의 찻잎을 보차(普茶)라고 불러서 다시 보이차의 이름에 근거를 얻게 하였다. 순수하고 진한 보이차는 점차적으로 티베트를 비롯한 서장(西藏), 신강(新疆) 등 지역의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수민족의 필수식품이 되었고, 이 지역에서 시장매매를 하는 필수상품이었다. 보차라는 이름도 이때부터 이름이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명나라 말년에 이르러서 보이차라고 고쳐 불렀다.
6) 명(明)나라
명(明)나라 만력년간(萬曆年間, 1573∼1620년)의 사조제(謝肇 )는 {전략( 略)} 중에서 [사대부와 서민이 사용하는 것은 모두 보차(普茶)이고, 쪄서 덩어리로 만든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보차의 이름이 처음으로 문자로 보이는 것이다. 명나라 말년에 방이지(方以智)는 그가 쓴 원고(原稿) 중에서 두 아들 방중통(方中通), 방중리(方中履)가 1664년에 출판한 {물리소식(物理小識)} 중에서 [보이차는 쪄서 덩어리로 만들고 서번(西蕃)에 판다]라고 기재하여서 보이차의 이름이 정식으로 문자화 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명의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방목하는 목동(牧童) 시절에 사람들이 단차(團茶)를 제다하고 투차(鬪茶)를 쾌락으로 삼는 사치한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즉위한 후 즉시 단차를 폐지하고 산차(散茶)를 진흥시키라고 하였으며, 1391년에는 용단(龍團 : 황제만 마시게 전문적으로 만든 단차)의 제조를 중지하고, 오직 아차(牙茶)만 따서 바치라고 하는 최상품 차를 개혁하라는 명령을 내려 순수하고 소박한 사회적 민풍(民風)을 선도하였다.
그러나 남방의 변경지역(邊境地域)에서 생산하는 보이차만 명나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여 여전히 옛스런 맛이 넘쳐흐르는 단병차(團餠茶)의 모양을 보유할 수 있었다. 당·송 이래 차마시장(茶馬市場)이 운남에서 발생되어서 운남(雲南)과 서역(西域) 사이를 빈번하게 대상들이 왕래하였다. 대상(隊商)들은 한번 왔다 가는데 꼬박 4∼5천리 길을 걸어야 하는데 상인들은 대량의 모피, 피륙, 종이, 칼, 그리고 마필(馬匹) 등 일용품들을 운반하여 왔으며, 교환한 찻잎은 사람이 지고 말에 실어서 운송하였다.
7) 청(淸)나라
청나라의 보이차는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귀중해져 국내외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공다(貢茶)로서 황실의 총애(寵愛)를 배로 받는 최상품 차로 되어 흥성한 시기였다. 특히 보이차에 관한 저서도 역대(歷代) 이래로 제일 풍부하였으며, 보이차를 서술하고 기록한 문장도 무척 많이 나왔다.
옹정황제(雍正皇帝)는 1726년에 만주족(滿洲族)인 심복대신 악이태(鄂爾泰)를 운남총독(雲南總督)으로 임명하고, 3년 뒤에 [보이부치(普 府治)]를 설치하여 보이차의 매매권(賣買權)을 장악(掌握)하였다. 또한 "그 해의 가장 여린 잎으로 만든 차를 진상(進上)"하도록 하는 정책을 써서 가장 좋은 보이차를 북경에 공납(貢納)하여, 황제의 환심(歡心)을 얻어 수 차례 황제로부터 하사품(下賜品)을 받기도 하였다.
매년 보이차(普 茶)의 제조와 운영을 위해 청(淸)나라 조정(朝廷)은 보이부(普 府)의 영이(寧 )지방에 보이공다(普 貢茶) 공장을 건립하여 매년 청나라 조정에 공다를 진상(進上)했는데 그 가치는 당시에 쌀을 십 여만 섬을 살수 있는 금액이었다. 공다의 종류는 여덟 가지로 오근단차(五斤團茶), 삼근단차(三斤團茶), 일근단차(一斤團茶), 사량단차(四兩團茶), 일량오전단차(一兩五錢團茶), 병장아차산차(甁裝芽茶散茶), 예차산차( 茶散茶), 갑장차고(匣裝茶膏) 등이다.
공다(貢茶)는 보이현 서문산에서 생산되었으며, 그 수량이 많지 않았고, 품질이 우수하여 역대로 수도에 헌납하는 1순위의 차였다. 보이현 동문산의 모목수다원 복통나무차는 보이의 제2진품에 속하였으나 본고장의 토착민들이 맛보고 팔기를 아쉬워하였다. 보이 맹선의 소판산(小板山) 다원은 차왕(茶王)의 탄생지로 차를 따서 제를 지내며, 해방 후에 맹선차공장이 설립되는데 역시 역대 공다(貢茶)의 하나이다.
보이공다(普 貢茶)는 궁중에서 황궁(皇宮) 귀족들의 특별한 주목과 총애(寵愛)를 받는 동시에 국가선물로 외국사절(外國使節)에게 주었다. 1793년 영국이 전 인도, 말레이시아의 총독(總督) 일행 95명을 특파하여 건륭황제(乾隆皇帝)의 80세 생일을 축하하러 왔을 때 중국은 만수원(萬樹圓)에서 영국 사절단을 접대하면서 대량의 선물을 보냈는데 그 중에는 보이여아차(普 女兒茶), 보이다고(普 茶膏) 등이 있었다. 동시에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도 그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보이차에 대해 쓰고 있다.
보이차는 옹정(雍正) 10년(1729)부터 정식으로 공다(貢茶)가 되었으나 정권 말기에 혼란(混亂)과 소요(騷擾)가 심해지면서 광서(光緖) 30년(1908) 운남 지방이 혼란하고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공다(貢茶)가 곤명(昆明) 부근에서 강도들에게 모두 약탈(掠奪)당하게 되자 조정(朝廷)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보이차 공납(貢納)은 폐지되었으나 보이공다는 청나라 궁중에서 거의 200년 동안 마셔왔다. 조공(朝貢)으로 바쳤던 공다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들의 사업은 계속 이어져 당시 운남에서 보이차를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이무(易武)라는 곳에 모였다. 가게에 따라 취급하는 품목의 질도 달랐으나 대체로 품질이 좋은 것은 해외로 수출되고, 품질이 낮은 것은 티베트, 몽골, 위구르 등 빈민지역으로 판매되었다.
완복(阮福)의 {보이다기(普 茶記)} 중에는 [보이차(普 茶)는 이름이 온 천하에 퍼지고, 맛이 가장 진하며, 수도(首都)에서는 더욱 비싸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전해우형지( 海虞衡志)}에는 [산에 들어가 차를 만드는 사람이 수십만이 되고, 차객(茶客)들이 구입하여 각지로 실어갔으며, 서역시장(西域市場)의 필수상품(必需商品)으로 국내에서는 차를 마시는 계층(階層)들에게 유행(流行)이 되기까지 하였다]라고 하였다. 자연히 보이차를 만드는 상점이 한꺼번에 많이 생겼는데 운남성(雲南省) 내에서 유명한 상점으로는 동경호(同慶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송빙호(宋聘號), 동흥호(童興號), 영춘호(迎春號), 동창호(同昌號), 동태창(同泰昌), 가이흥(可以興), 동순상(同順祥), 원태풍(元泰豊) 등의 차 가게들이 있었다.
청(淸)의 전기와 중기 약 1660년부터 1870년까지는 보이차 역사에서 가장 전성기(全盛期)로 서쌍판납(西雙版納)의 육대다산(六大茶山)의 연간 최고 생산량(生産量)은 8만여석에 도달하였다. {판납문사자료선집(版納文史資料選輯)}에서는 [집집마다 차나무를 심고 팔았으며, 대상(隊商)이 길을 점유(占有)하고, 행상(行商)들이 북적대었다]고 한다. 차시장에는 조정의 공다(貢茶) 관리(官吏)들 외에 티베트,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베트남, 캄보디아와 국내의 상인들도 있었다.
매년 적어도 5만 필의 짐수레가 6대다산을 드나들었다. 그 중 궁중으로 들어가는 보이공다(普 貢茶)는 약 700석이고, 서역으로 파는 것이 약 3만석이 되었으며, 극소수의 양이 다른 나라에 팔리는 것 외에 대부분은 국내시장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므로 6대다산 차의 생산품 약 2∼3만석이 해마다 국민들에 의해 소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 운남지역 내의 많은 다산들에서 더욱 많은 차를 생산하여 마시는 풍조가 성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서(光緖) 말년에 와서 보이차는 과거의 8만석에서 5만석으로 감산되었는데 원인은 청 말기에 차세금(茶稅金)이 너무 과중(過重)하여 차농(茶農)들이 손해를 입었고, 차를 파는 상인들도 취할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차상인들과 대상들은 다른 일을 찾게 되고, 오랜 차농들도 잇달아 다원(茶園)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구하였으며, 과거에는 빈번하게 왕래하던 대상(隊商)들의 모습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무(易武)에서 발생한 전염병(傳染病, 온역瘟疫)으로 전염병이 두려워 각지의 마부(馬夫)들이 이곳의 출입을 거부하는 사태는 운송수단인 마방(馬幇)까지 미치게 되어 과거에 빈번하게 왕래했던 마방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보이차 상점들도 잇달아 휴업(休業)를 하게 되었다.
☞ 육대다산(六大茶山)
보이차(普 茶) 역사 중에서 육대다산(六大茶山)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뒷날 육대다산은 이무다구(易武茶區)로 개칭되었으며, 원(元), 명(明)에 이어 청조(淸朝)에 이르러서는 5대다산이 유명하게 알려졌다. 만송산(曼松山), 만공산(曼拱山), 만전산(曼專山), 이무산(易武山), 우곤당산(牛滾塘山)의 반쪽과 만랍산(曼臘山) 반쪽을 합하여 5대다산이라고 하였다. 그중에서 만송산, 만공산, 만전산, 우곤당(牛滾塘)의 반쪽 산(半山)을 합쳐 의방다구(倚邦茶區)로 분류하였다. 청나라 중기 이전에는 이곳 의방다구의 보이차 생산량이 최대량이었으며, 품질 또한 최우량품이었다. 훗날 위의 5대다산과 인접해 있는 유락산(攸樂山) 일명 공명산(孔明山)을 포함해 6대다산이라고 하였다. 청나라 초기 석병(石屛) 사람들이 이곳 의방다구(倚邦茶區)에 와서 차밭의 열기(熱氣)를 일으켰으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초기에는 이미 사천성(四川省)의 차농가가 이곳으로 대량 이주하여 소엽차종(小葉茶種)의 주류를 이루는 의방다구를 만들었다. 의방차(倚邦茶)와 이무차(易武茶)를 비교하면 의방 찻잎은 가늘고 잎이 작고 짧고 부드러우며, 운남성(雲南省) 내에서 처음으로 소엽차종을 생산한 다산이다.
8) 현대(現代)
중화민국(中華民國)이 건립되면서 본래 보이차의 생산과 판매를 재정비(再整備)하고, 지난날의 위풍(威風)을 회복할 수 있었는데 처음 운남성(雲南省) 정부에서는 찻잎에 대하여 정부가 관리하고, 민간에서 경영한다는 정책을 실행하였다. 지방정부에서 관리를 배치하고 세금을 받게 하였으며, 차 상인들이 가게를 차리고, 차를 만들게 하고, 민간에 운송하여 판매하게 하였다. 이것은 보이차의 생산, 판매, 경영에 대하여 적극적인 작용을 일으켰으나 이후 40년간 일본과의 전쟁, 내전(內戰)으로 인해 극심한 피폐(疲弊)에 시달리게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변방(邊方)에서 생산된 보이차가 중앙에 공급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되었으며, 결국 보이차는 중앙지배계층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으나 광활한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 서역(西域)의 소수민족(少數民族)들이 주 소비층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당시 운남 현지의 보이차 생산은 위축되지 않았다. 이러한 광대한 서역시장의 수요는 보이차의 생명력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었고, 보이차를 취급하는 상점 또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개인 상점마저 허용하지 않는 정책으로 이무의 보이차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그 화려했던 영화(榮華)를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여긴 옛 보이차는 문화대혁명 때 모두 불태워졌고, 그 나마 지구상에 남아 있는 것은 모두 50여 년 전 다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동남아를 거쳐 홍콩 상인들 손에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후 인민정부(人民政府)에서도 보이차의 가치를 인정하여 우수한 보이차(普 茶)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 보이부(普 府)의 차(茶) 생산(生産)
운남민족이론학회 사모분회보이소조(思茅分會普 少組)에서 1988년 7월에 편찬(編纂)한 <다시 보이차(普 茶)의 놀라운 역사(歷史)를 논함>이라는 소책자(小冊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보이부지(普 府志)}에는 보이에 속하는 곳은 영이(寧 ) 1개 현(縣), 사모(思茅), 위원(威遠), 타랑(他郞)의 3개 청(廳)이라고 기재하였다. 보이가 바로 그때 관할하고 있던 영이(寧 , 지금의 보이현 사모), 위원(지금의 경곡현)과 타랑(지금의 묵강현)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옛날부터 보이는 사모를 관할하고, 사모는 또 여기서 판납으로 나뉘었으며, 그때 6대 다산은 마침 난창강(蘭滄江)이내의 맹랍, 강성 일대에 있었다. 보이부(普 府)는 변방 관문(關門)의 소재지였으며, 정치문화의 중심이었고, 상품경제의 제일 큰 집산지여서 차의 이름은 자연히 보이가 되었다. 또한 보이 본지방에서 같은 찻잎을 생산하고 있었고, 보이 맹선 소반산의 차나무왕이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자 보이차 고유의 맛과 품질은 6대다산의 차를 압도(壓倒)하였다.
봉건시대의 고대 보이 일대에서 상품의 시합이 없었고, 차나무왕의 존재가 없었으며, 보이부의 관할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찌 보이차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질 수 있었겠는가? 보이차의 생산 수량은 비록 적었지만 품질의 뛰어남은 일찍부터 다른 차를 압도하고 있었다. 보이 봉황산에는 여러 가지 차들과 시합에서 승리한 전설이 남아 있다. 이것은 고대에 보이차 명명의 내력에 대한 한가지 증거일 따름이라고 기재하였다.
보이차는 공다(貢茶)였다. 청나라 완복(阮福)의 {보이다기(普 茶記)}에서는 보이차는 이름이 온 천하에 퍼지고 맛이 제일 진하여 수도에서는 더욱이 비싸다고 기재하였고, 또 공다책(貢茶策)으로 해마다 공물(貢物)로 바치는 차는 시정금고에서 은 이천냥을 지불하였다. 당시 영이현에서 가을 곡식을 매 짐에 은 두냥으로 환산한다는 것에 따라 계산하면 곧 지금의 12만근의 입쌀과 같다. 그러므로 수도에 헌납하는 책임과 부담은 아주 컸던 것이다.
{서산비고(西山碑考)}에서는 [보이의 공산차(貢産茶 : 공물차를 생산하는 다산의 차)는 그 수량이 많지 않았고, 보이현 서문산에서 생산되었으며, 품질이 우수하여 역대로 수도에 헌납하는 1순위의 차였으며, 이미 역대의 황제들한테 진기한 보물로 보여서 많은 차들의 으뜸이다.]라고 하였다. 이 차는 보이부 내에서 생산되었는데 공산차의 역사에 대해서 논할 때 보차는 보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며, 그 품질의 섬세함과 그 맛의 향기를 많은 차들 중에서 어떤 차와도 비교할 수 없다.
보이 동문산의 동탑이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운 경치와 역대로 많이 생산되는 묘목수, 다원, 복통나무차는 보이의 제 2진품에 속하여 본 고장의 토착인들이 맛보고 팔기를 아쉬워한다. 보이 맹선의 소판산의 다원은 차왕의 탄생지여서 차를 따서 제를 지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후에는 맹선차공장이 성립되는데 이것은 역대 공다(貢茶)의 하나였다. 이외에 아직도 다암당(茶庵堂), 서살(西薩), 관홍(寬洪), 동심(同心)의 찰랍아구, 용담구(龍潭區), 덕화(德化) 등이 있었고, 모두 최상품 차의 찻잎을 따는 곳이다.
{보이다기}에서는 [2월에 모첨(毛尖)을 따서 공물(貢物)로 바치고, 공물을 바친 후에야 팔 수 있었으며, 둘째는 화색(花色)을 추구하고, 셋째는 예차이며, 넷째는 수량이었다고 말하였다. 만약 보이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귀중한 최상품 차의 공납 부담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어디로부터 오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상의 자료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보이지방에서는 본래 보이차를 생산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공다(貢茶)도 만들었으며, 보이 맹선 소판산의 차나무왕은 국내외를 압도하였고, 보이차의 맛과 품질은 오래 전부터 6대 다산의 차를 압도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보이에서 보이차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 말이 사실일 수 있으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공다(貢茶) 중에서 네모난 덩어리 모양의 방차(方茶)는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상을 주려고 준비해둔 것인데 받는 사람에게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증압(蒸壓)하여 정방형의 크기로 길이와 너비가 각각 10.1Cm이고, 매 편의 순량이 250g 되게 만들었는데 압제차(壓製茶) 중에서 고급품이었다. 청나라 때 민간에서는 보이공다(普 貢茶)라고 불렀고, 황제가 신하들에게 하사(下賜)하는 선물이었다. 보이공다는 청(淸)나라의 황실(皇室)에서 사용하는 것 외에 각 나라의 사절들에게 보내는 외교선물로 썼으며, 조정의 하사품으로도 쓰여지는 등 여러 용도로 쓰였다.
1963년 북경에서는 2톤 남짓 청나라 궁중의 공다(貢茶)를 처리하였는데 그것들은 크고 작은 단차(團茶)들이었다. 단차들 중에서 제일 큰 것은 수박만 했고, 무게가 5근 반이었으며, 작은 것은 탁구공 크기만 하였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보존상태가 양호하였으며, 단차의 표면에는 줄지어 찍힌 천의 무늬 흔적이 있었다. 중화차인친목회 비서장 왕욱봉선생이 여러 번 시험삼아 끓여 보았는데 그는 [탕색(湯色)은 색깔이 있으나 차의 맛이 너무 오래되어 담백하다]고 하였다. 보이공다를 추산하여 보면 적어도 자희태후(慈禧太后) 시기에 남겨둔 것이거나 훨씬 이전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약 150년 이상 묵은 것도 있었다.
60년대 초기에 대륙의 다엽이 감산되고, 국내시장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여 많은 보이공다를 가늘게 부수어 보이차에 섞어 팔아버렸다. 북경의 노전문가 단사원(單士元)선생은 오직 단차와 차고 만이 견본(見本)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한 두 개의 보이공다단차(普 貢茶團茶) 견본과 금과공다단차(金瓜貢茶團茶) 모양의 크기가 마치 사람 머리 같다고 하여 인두금과공다(人頭金瓜貢茶)라고도 부르며, 국보급이다. 연구와 보존을 위하여 80년대 중반 북경에서는 보이금과공다를 중국농업과학원다엽연구소에 보내어 보관중이다. 보이금과공다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가장 오래된 보이차인데 표면을 보면 각 덩어리의 연대는 모두 다르며, 적어도 백년 이상 된 것이다.
(2) 보이차(普 茶)의 원료(原料)
보이차의 운남의 대엽종(大葉種)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을 가공한 쇄청모차( 靑毛茶)를 원료로 하는데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高山地帶)에서 자라는 300∼400년 이상 된 노목(老木)이 가장 이상적이나 야생(野生) 차나무의 찻잎은 차성(茶性)이 너무 강해 주로 재배형 교목(喬木)의 찻잎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보이차 생산확대로 너도나도 차를 채취하는 바람에 차밭이 황폐화(荒廢化) 되고 수확도 반감되어 관목형(灌木形) 차나무로 개량함에 따라 교목노차(喬木老茶) 밭은 점차 사라지게 되어 오래된 고차원(古茶園)의 차나무는 귀하고, 특히 몇 백년 이상된 교목형 차나무는 일부 원시(原始) 삼림지역(森林地域)의 오지(奧地)에만 약간 남아 있다. 1979년 중국의 개혁과 개방에 따라 차밭도 경제원리를 좇아 밀식재배(密植栽培), 인공시비(人工施肥), 기계채취(機械採取) 등으로 교목 노차수(老茶樹)의 찻잎을 구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운남 대엽종(大葉種)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은 여리고 쇤 정도에 따라 1등급에서 10등급까지로 나뉘어지는데 그 정도에 따라 차의 향(香)과 맛, 기(氣)가 다르며, 어린 새싹으로는 주로 산차(散茶)를 만들고, 쇤 잎으로는 주로 긴차(緊茶)를 만든다. 상품은 4등급까지의 잎이 갖 피어난 작고 여린 싹으로는 주로 타차( 茶)를 만들고, 중품은 5등급∼8등급의 중엽(中葉)으로 주로 병차(餠茶)를 만들며, 하품은 9등급∼10등급의 억센 대엽(大葉)으로 주로 긴차(緊茶)를 만든다. 처음에는 같은 등급의 찻잎만으로 차를 만들었으나 1960년대 황인(黃印 : 운남중차패공사의 제품)부터 여러 등급의 찻잎을 섞어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제다학(製茶學)에서의 표준은 칠자병차(七子餠茶)의 경우 3급 5%, 4급 10%, 5급 15%, 6급 20%, 7급 25%, 8급 25%의 비율로 찻잎을 섞어서 만들도록 되어 있으나 현재는 각 제조차창마다 각각 그 비율을 달리하여 만들고 있다고 한다.
1) 대엽종(大葉種) 차나무의 종류(種類)
운남(雲南)의 대엽종 차나무는 소엽종보다 폴리페놀, 카데킨, 카페인, 아미노산 등을 비롯한 수용성 물질들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깊고 풍부한 맛이 나는 보이차의 독특한 품질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야생형과 재배형으로 나뉘어진다. 야생형 차나무는 순수한 야생은 거의 없고 오래 전에 심은 나무들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야생처럼 방치된 교목(喬木) 또는 소교목으로 줄기는 비교적 곧게 자라고, 면이 평평하거나 약간 돌출된 잎은 지름이 10∼20cm 정도로 크며, 잎의 가장자리는 드물게 톱니 모양이 있다. 재배형 차나무는 대량 생산을 위해 다원을 조성하여 밀식재배한 관목(灌木) 또는 소교목으로 잎은 야생형보다 작아 지름 6∼15cm 크기의 두텁고 약간 질긴 혁질(革質)에 가장자리는 가는 톱니 모양을 하고 있으며, 줄기는 가지가 많이 펼쳐지거나 반쯤 펼쳐진 형태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양질의 제품 생산과 건강식품으로서의 요구조건에 맞추고자 비료와 농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재배형 차나무에 비해 오염이 상대적으로 적은 유기농 방법으로 차나무를 재배하는 다원이 늘어나고 있다.
보이차(普 茶)를 만들기에 적합한 품종은 폴리페놀, 아미노산 등의 중요 화합물 함량이 높을수록 우수한 품질의 차를 만드는데 유리하며, 차엽(茶葉)이 튼튼하게 두텁고 융모(絨毛)가 많은 것을 상품으로 친다. 보이차를 만들기에 적합한 품종으로는 맹해대엽( 海大葉), 원강나차(沅江 茶), 이무녹아(易武綠芽), 운항(雲抗) 10호(號), 운항 14호(號), 운선(雲選) 9호, 경곡대백(景谷大白), 쌍강맹고(雙江 庫), 봉경대엽(鳳慶大葉) 등을 들 수 있으며, 이 품종들이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2) 보이차(普 茶)의 차향(茶香)
일반적으로 차향이라고 하면 차향(茶香), 차운(茶韻), 차기(茶氣) 등의 풍미(風味)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정기간을 경과하여 진화(陳化)한 차의 향기와 맛을 진향(陳香), 진운(陳韻)이라고 하며, 보이차는 차가 오래 묵을수록 맛과 향기가 아름답다고 하여 월진월향(越陳越香)이라고 하여 진년보이차(陳年普 茶)를 선호하고 있다. 보이차의 진운(陳韻)은 맛을 보고 느끼는 하나의 형태로 반드시 일정한 지식과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 마치 와인 감별사가 혀와 감각으로 와인을 감별하듯이 감각적 경험이 있어야 독특한 맛을 미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수년전에 국내에 번역된 등시해 교수의 저서 {보이차(普 茶)}에서는 좋은 보이차는 운남 대엽종 교목(喬木)의 찻잎을 일광건조(日光乾燥)로 만들어 적정한 온도의 방습통풍(防濕通風) 조건에서 장기간 보존한 것이어야 독특한 향과 맛, 약효가 있으며, 건강에 유익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완전발효, 중발효(重醱酵)로 아주 약하게 남아있는 진성(眞性)의 원래의 향은 찻잎의 등급, 제작과정의 신선도, 적정한 보존과정에 따른 결과이며, 독특한 차향이 나는 원인과 원향(原香)을 암시하므로 이것을 아는 것이 보이차의 진성을 아는 것이고, 보이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느끼는 향을 충족시켜준다고 한다.
차향(茶香)은 차나무의 종류, 지역에 따라 다양한데 하향(荷香 : 연꽃향)은 차의 햇순 본래의 향이고, 청향(靑香)은 차의 향이다. 관목(灌木) 신차원에서 생된 차의 차향은 하향(荷香)과 청향(靑香)이며, 난향(蘭香)과 장향(樟香)은 운남(雲南)의 노차원(老茶園)에서 장목(樟木 : 우리나라에서는 녹나무, 장뇌나무, 예장나무라고 한다)와 함께 자란 교목(喬木)에서만 난다. 그러나 이러한 향은 반드시 우수한 보이차청과 신선한 생산품, 자연적인 진화과정 등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만 우러나온다.
① 하향(荷香 : 연꽃향)
운남 대엽종의 여린 차에서 느낄 수 있는 차향으로 1급의 차청은 처음에는 강열한 청엽향이 나지만 적당한 시간이 경과하여 발효가 이루어지면 은은한 연꽃향으로 바뀌며, 대표적인 차는 백침금련산차(白針金蓮散茶)이다. 양자강 남북의 소엽종 차에서는 이와 같은 향을 느낄 수 없으며, 특히 맹해지구의 운해백호(雲海白毫)의 아주 어린 보이녹차에서는 짙은 청엽향(최근에는 일명 나미향( 味香 : 찹쌀향)이라고도 한다)을 느낄 수 있어 세월이 흘러 발효가 이루어지면 은은한 하향(荷香)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하향과 난향은 마른 찻잎으로는 분별하기가 어려워 동시에 같은 방법으로 차를 타서 비교하여 하향과 난향을 구별할 수 있다.
② 청향(靑香)
청향은 운남성과 인접한 미얀마, 라오스, 태국, 월남의 북부지방에서 생산되는 변경(邊境) 보이차에서 느낄 수 있는 차향으로 장수림과 같이 재배하지 않고 차나무만 재배하여 차나무가 보유하고 있는 본래의 향이다. 이곳의 우수한 보이차는 난향과 장향이 미약한 일종의 청엽향이 장기간 경과되어 진화 후에는 청향으로 바뀌며, 다만 어린 찻잎은 맑고 연한 연꽃향이다.
한편 소엽종 보이차가 진화되면 아주 좋은 청향이 되는데 의방차산 소엽종 교목(喬木)의 차청(茶靑)으로 만든 양빙원차(楊聘圓茶), 동창황기(同昌黃記) 등이 이에 속하며, 잘 진화된 정흥호(鼎興號)의 홍자(紅字)·남자(藍字)차에서 유장향(油樟香)이 나는 것은 장뇌나무와 공생(共生)한 찻잎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0년대의 일부 대자녹인(大字綠印)에서는 장향(樟香)이 없고 보이차 본래의 향인 강렬한 청향(靑香)이 나는 것은 운남지방의 차청 중에서 장수림과 함께 자라지 않은 차밭의 차청을 사용한 결과이며, 대자녹인의 난향(蘭香), 청향(靑香), 장향(樟香)이 뒤섞인 특유의 차향은 변경지역과 운남성 광역의 차청을 수집하여 맹해( 海) 차창에서 제조한 때문이다.
③ 난향(蘭香)
운남 보이차의 3∼5등급 찻잎으로 산차(散茶)나 원차(圓茶)를 만들면 난초향(蘭草香)이 나는데 소년기와 청년기에 접어든 청년차의 보이차향인 난향은 하향(荷香), 난향(蘭香), 장향(樟香)을 모두 함축한 향이다. 일반적으로 난향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청엽향(靑葉香)과 혼동하기가 일수인데 청엽향은 코를 자극하여 뇌를 뜨겁게 하고 말릴 때나 살청(殺靑)할 때 대량으로 날아가며, 이때 질식감(窒息感)이 있고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의식을 배척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난향은 그윽하고 자연스러워 맑고 상쾌하여 머릴를 맑게 하며, 전신의 감각이 서서히 활기를 찾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생기게 한다.
아주 어린 차싹으로 만든 보이차는 맑고 은은한 연꽃향이 나고, 완전히 성숙한 찻잎의 차는 그윽하고 우아한 장향이 난다. 신선한 보이차의 어떤 청엽향은 진화 후 청향이 되고, 장뇌나무와 함께 자란 차나무의 차는 장향이 약하게 융합(融合)되어 청향성 난향이 되기도 하는데 3∼5등급의 찻잎에 장향이 강하게 융합된 청향은 장향의 차가 되고, 장향이 약하게 섞인 차는 난향의 차가 된다. 한편 변경지방에서 나는 보이산차도 우수한 차는 난향이 있으나 운남의 늙은 차나무의 청아하고 탈속적인 난향과는 차이가 많으며, 품질도 고르지 못하고, 구하기도 어렵다.
동경노호(同慶老號), 조기홍인(早期紅印), 대자녹인(大字綠印)은 모두 다음 등급의 차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난초향이 나지만 각기 다른 난향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경노호는 순정하고 그윽한 난향이 특징이나 너무 오랜 세월동안의 보관 숙성으로 차성(茶性)이 하향추세에 있어 난향이 소실되고 있는 중이다. 홍인(紅印)은 1939년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이래 1950년대 말까지 생산 판매되어 조기홍인과 후기홍인의 구별이 쉽지 않은데 난향 외에 청장향(靑樟香), 야장향(野樟香)의 차도 있으나 조기홍인이 난향이며, 단조롭고 강렬하여 동경노호처럼 청아한 맛이 없다. 대자녹인은 짧은 진화기간으로 인해 발효정도가 낮아 청순한 난향이 밝게 나타나지만 너무 강렬하여 동경노호의 난향과는 서로 다르며, 매력도 덜하다.
④ 장향(樟香)
운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높고 큰 장수림과 차나무가 공생하는데 차나무는 키가 큰 장나무의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에 장나무가 병충해도 막아주고, 직사광선도 차단시켜 차나무의 생장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차나무와 장뇌나무의 뿌리가 서로 뒤엉켜 자라면서 차나무가 장나무의 향기를 흡수하여 찻잎에서 아름다운 장향을 느끼게 하는 보이차가 생산되고 있다.
보이차는 차청(茶靑)의 노소(老少) 정도에 따라 장향(樟香)의 농도가 달라지는데 차청의 노소, 장향의 농담(濃淡), 진화(陳化)의 장단(長短)에 따라 청장향(靑樟香), 야장향, 담장향(淡樟香)으로 나누어진다. 대략 4급의 차청에서는 하향(荷香)이 없어지고 장향으로 바뀌며, 6∼7등급 차청의 장향이 가장 강하고, 9∼10등급의 차청은 이미 노쇠(老衰)한 잎이어서 장향이 엷어진다.
청장향은 청아수려하고 활력적인 자연 신선미로 표현되는데 대표적인 차는 1950년대 운남 대리(大里)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맹해차창의 모차를 공급받아 품질 좋은 4∼6등급의 차청으로 만든 원차철병(圓茶鐵餠)이며, 1940년대에 가이흥호(可以興號) 차창에서 만든 전차( 茶)는 가장 훌륭한 청장향의 보이차이나 시중에는 그 수량이 거의 없고, 수장가(收藏家)의 손에 있다.
야장향은 장년에 해당하는 3∼4급의 차청에서 나오는데 의방산구의 보이차향을 최고로 치며, 장향 중에서 가장 강하고 성숙하여 풍요롭고, 짙다. 야장향의 차는 비교적 많은데 동경호(同慶號), 정흥호(鼎興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송빙호(宋聘號) 원차(圓茶)와 홍인(紅印) 및 녹인(綠印)이 가장 좋은 야장향 차종이며, 홍색(紅色), 남색(藍色) 내비(內飛)의 정흥호(鼎興號) 원차가 포만(飽滿) 순후한 유장향(油樟香)이다.
담장향은 노쇠(老衰)한 차청에서 나오는데 너무 쇠하여 탈수한 듯 향기가 순하고 자연적인 신선미가 있으며, 진년(陳年) 보이긴차(普 緊茶) 종류가 이에 속한다. 보이긴차(普 緊茶)는 모두 노쇠한 차청으로 만들며, 심지어는 다른 차를 만들다 남은 차청과 섞어서 긴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조기(早期)의 긴차는 원료를 비교적 순정품으로 만들어 말대긴차(末代緊茶)와 같은 것은 담장향에 풍미가 독특하여 보이차를 즐기는 고수(高手)들의 애장품이 되고 있다. 그리고 본래 무장향인 무지녹인원차(無紙綠印圓茶)는 보관창고에 비교적 습도가 높아 쾌속발효되었으나 매변( 變) 없이 차성(茶性)이 크게 변화하여 야장향이 담장향으로 바뀐 대표적인 보이차이다.
▣ 보이차(普 茶)의 교목(喬木)과 관목(灌木), 그리고 장뇌(樟腦)나무
정상적인 보이차는 생산한 후 40∼50년 동안 숙성(熟成)된 후에야 그 참 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할아버지가 차를 만들면 손자가 그 차를 판다]라고 하였다. 이는 "지금 내가 파는 차는 조부(祖父)가 만든 차이고, 내가 만든 차는 손자대(孫子代)에 가서 판다"라는 뜻인데 이러한 세대간(世代間)의 전승(傳承)을 통해서야 비로소 차의 오래된 그윽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차는 바로 복원창호(福元昌號)인데 100년 정도 되었으며, 동경호(同慶號) 역시 100년 정도 된 것이다. 이런 차들의 차창(茶廠)은 모두 200∼300년의 역사(歷史)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파는 차들은 모두 옛날에 만든 것들로 이러한 차들은 역사를 통해 전승되어 내려온 것들이다.
보이차를 생산하는 나무들은 본래 교목(喬木)이며, 교목으로 가장 오래된 보이차 나무는 인공 재배한 것으로 800년 정도 되었다. 진정한 보이차는 이러한 큰 나무에서 생산한 차가 가장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큰 나무에서 찻잎을 채취(採取)할 때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등 관리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고, 경제성(經濟性)이 낮으므로 현재는 키가 작은 관목(灌木)을 심어 재배하고 있다. 큰 나무에서 작은 나무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차의 품질도 크게 달라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교목(喬木)들은 그 수가 적어 차 생산량 또한 극히 적다. 운남(雲南)에 있는 교목들은 멀리 외딴 지역에나 자라고 있어 교목에서 생산된 보이차는 수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로는 개인의 차공장이 없어지고, 정부가 모든 차 공장을 흡수하여 관리하였다. 그때부터 차밭의 형태도 변화되어 큰 교목(喬木)들은 모두 베어내고 관목(灌木)들을 심어서 경제성을 높였다. 교목의 차는 관목의 차와 비교해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큰 나무의 교목은 뿌리가 깊고 관목은 잔 수염뿌리라서 표면에 있다. 그래서 큰 나무의 차는 뿌리가 깊어 자연의 비옥(肥沃)함을 가지지만 관목의 차는 나무를 심은 후에 일정시간이 지나면 토양(土壤)에 남아있는 영양분(營養分)이 없어져서 인공비료(人工肥料)를 사용하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말해 현재 생산되는 차들은 거의 인공비료를 사용하여 생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목(喬木)은 처음에 대부분 장뇌(樟腦)나무의 밑에서 크므로 장뇌나무의 키가 더 커서 찻잎이 지나치게 햇빛을 받는 것을 막아주고, 병충해(病蟲害)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교목이 자라나면 교목의 찻잎은 너무 높아서 살충제(殺蟲劑)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관목(灌木)들은 살충제를 많이 쓰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찻잎에 많은 농약(農藥) 성분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장뇌나무와 차나무를 함께 키우게 되면 장뇌나무와 차나무의 뿌리가 교차(交叉)되고 장뇌나뭇가지에서는 특유의 냄새를 뿜어내므로 차나무의 뿌리는 장뇌나무의 향기를 흡수하고, 찻잎도 장뇌나무의 향을 흡수하여 교목의 찻잎에서는 장뇌나무의 향이 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보이차(普 茶)의 향기를 청장향, 야장향, 담장향 등의 장뇌(樟腦)나무의 향기로 구분하는 이유는 교목(喬木) 보이차는 장뇌나무의 향기를 흡수(吸收)하여 우리가 차를 마실 때 그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목(灌木) 보이차는 장뇌나무의 향이 없고, 차 본래의 청향(淸香)만이 있다. 그리고 교목과 장뇌나무가 함께 자라게 되면 그 약효가 매우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장뇌나무에서 자란 영지버섯이 장뇌의 여러 성분들을 흡수하여 항암(抗癌)에 특효가 있듯이 장뇌나무와 자란 교목에서 채취한 보이차는 우리 인체에 매우 이롭다. 따라서 얼마 전부터 관목을 심을 때는 장뇌나무를 함께 심어 효과를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목(喬木)에서 자란 보이차는 시음(試飮)해 보았을 때 맛이 깊고 관목(灌木)의 보이차는 맛이 비교적 엷다. 예술적인 각도(角度)에서 평가하자면 교목의 보이차는 중후(重厚)하고, 관목의 보이차는 담담(淡淡)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관목에서 자란 차와 교목에서 자란 차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현재 우리가 차를 마실 때 교목에서 생산한 차를 마시고 싶어하지만 교목에서 생산한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대신 초기의 관목은 나무를 심고 얼마 동안은 화학비료(化學肥料)로 인해 오염(汚染)되지 않고 비교적 땅이 비옥하였으므로 이 시기에 생산된 차는 관목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며, 그 이후의 차들이 점차 변화되었을 뿐 초기에 생산된 차들은 양호한 편이다.
예를 들어 광운공병(廣雲貢餠)도 관목에서 생산된 차인데 이미 35년이 되었다. 이런 차의 경우 초기에 새로 심은 토양(土壤)에서 자란 관목(灌木)의 차이므로 현재에 이런 차들을 마실 수 있다면 관목의 차이지만 그래도 맛이 좋다. 물론 복원창호(福元昌號)나 동경호(同慶號)와 같이 교목(喬木)에서 자란 100년 묵은 차가 당연히 좋겠지만 이런 차들은 값이 매우 비싸서 광운공병과 비교하자면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출처 : 중국차 연구가 손성구 씨의 자료>
(3) 보이차(普 茶)의 제다공정(製茶工程)
현재 중국과 대만, 한국,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보이차(普 茶)는 제조법에 따라 크게 청병(靑餠)과 숙병(熟餠) 그리고 미생물(微生物)을 이용한 속성병차(速成餠茶)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차를 연구하고 있는 어느 전문가는 이 세 가지 차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미로(迷路)같은 보이차의 길을 제대로 걸어 갈 수 있으며, 청병(靑餠 : 생차청병(生茶靑餠)으로 생병(生餠)으로도 불림), 숙병(熟餠 : 숙차청병(熟茶靑餠)을 말함), 미생물속성병차(微生物速成餠茶)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이차의 제조공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助言)하고 있다. 1973년 이후 최근까지 중국의 모든 보이차 제다공장들이 효율성을 이유로 악퇴(渥堆)에 의한 미생물발효에 의한 제다만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보이차 제조법인 생차청병(生茶靑餠)은 소개되지 않아 많은 보이차 애호가(愛好家)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였다.
보이차의 전통적인 제다공정(製茶工程)은 신선한 다엽채취(茶葉採取) - 살청(殺靑) - 유념( 捻) - 건조(乾燥) 후 모차제작(毛茶製作, 모청(毛靑) 또는 진청(眞靑)이라고도 한다)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차(毛茶)로 차를 만들면 차성(茶性)이 너무 강해서 바로 마시기에는 부적합하므로 일정기간의 보존과 저장을 통하여 자연적인 진화(陳化)를 꾀하는데 청병(靑餠 : 생차)의 경우 진화과정이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보존 환경의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해야 차내의 여러 화합물질(化合物質)이 완전히 기화(氣化)하여 깊은 향과 좋은 차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보이차의 청병과 숙병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청병(靑餠)은 녹차(綠茶)처럼 덖어진 생차(生茶) 잎으로 만든 병차(餠茶)이고, 숙병(熟餠)은 증제차(蒸製茶)처럼 살청(殺靑)할 때 몇 분간 증제한 숙차(熟茶) 잎으로 만든 병차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복원창호(福元昌號), 동경호(同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강성호(江城號), 송빙호(宋聘號), 광운공병(廣雲貢餠), 홍인(紅印), 녹인(綠印), 맹경긴차( 景緊茶) 등 보이차의 고전적인 명품들은 모두 생차로 만든 청병(靑餠)이다. 그러나 양빙호(楊聘號), 보경호(普慶號), 정흥긴차(鼎興緊茶), 백련금침(白蓮金針), 황인(黃印) 등은 모두 2∼4분간 증제한 숙차로 만들어진 숙병(熟餠)들이다.
보이차(普 茶)의 진정한 맛은 당연히 청병에 있다. 숙병은 보이차의 맛을 조금 빨리 숙성(熟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처음에는 청병보다 맛이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병의 묵은 맛을 쫓아 갈 수는 없다. 그 예로 맹경긴차( 景緊茶)와 정흥긴차(鼎興緊茶)는 모두 4∼5급의 차청(茶靑)으로 70여년전에 만들었지만 맹경긴차를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정흥긴차가 4분 숙차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병과 숙병은 모두 찻잎 속의 폴리페놀이나 엽록소 같은 산화효소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차가 묵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미생물속성차(微生物速成茶)는 위의 두 가지 차와 제조방법이 확연히 다른 차이다. 살청(殺靑)과 유념( 捻)을 거친 찻잎은 악퇴(渥堆)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악퇴는 찻잎을 일정한 두께로 쌓아 놓고 거기에 물을 뿌려서 1주일 정도 방치(放置)해 두어 찻잎의 화학적 변화와 함께 국군류(麴菌類)와 같은 미생물을 배양시켜 차의 맛을 금방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이렇게 만든 찻잎으로 긴압(緊壓)시켜 만든 병차들을 "속성발효차" 혹은 "미생물발효차"라고 한다.
한편 일광(日光)으로 말리고 증기압(蒸氣壓)으로 성형시켜 오래 진화된 차를 진년보이(陳年普 )라 하고, 햇빛에 말려 만든 산차(散茶) 혹은 성단차(成團茶)를 청병보이(靑餠普 )라고 하며, 1973년 이후 개발한 방법에 따라 불에 말려서 일정 정도 발효(醱酵)시켜 만든 것을 보이숙차(普 熟茶) 또는 신수숙차(新樹熟茶 : 신품종(新品種)의 차나무로 만든 숙병차(熟餠茶) 또는 보이숙차(普 熟茶)를 말함)라고 한다.
이러한 미생물속성병차는 덖음 과정을 겪은 청병이나 숙병에 비해 후발효 시간이 훨씬 줄어들고, 차맛도 훨씬 일찍 숙성되므로 보이차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숙병(熟餠)이 청병(靑餠)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래서 1972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 대부분의 주요 보이차 공장은 속성미생물병차를 위주로 생산하고 있고,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거의 대부분의 차가 이러한 속성병차들이다. 속성병차가 물론 효율적인 면에서는 청병보다 여러 가지 앞서지만 결정적으로 보이차 특유의 깊고 오래 묵은 맛은 속성병차에서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악퇴시 발생한 미생물을 살균하기 위해 그 처리과정 중에 인체에 해로운 황산(黃酸) 등의 물질이 사용되어 인체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재 대만이나 일본, 한국의 미생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인체에 나쁘다는 보고들이 많다.
따라서 보이차 고유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참고 기다려 마시는 청병을 택해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중국 속담에 보이차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손자가 즐긴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속성병차를 숙차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중국어의 오해에서 생긴 말이다. 중국에서는 차를 증기로 찌는 것을 숙차(熟茶)라고 하며, 오래 전에는 이미 숙차로 만든 병차를 숙병(熟餠)이라고 표현하였다.
속성병차(速成餠茶)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숙병(熟餠)이 조금 거북할지 모르지만 그런 대로 마실만 하며, 15년 이상 된 청병(靑餠)은 그 맛이 더욱 순하다. 1년, 3년, 5년, 10년, 15년, 20년 묵은 차를 차례대로 마셔보면 보이차의 맛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나침반(羅針盤)이 될 수 있다. 또 매년 봄 4∼5월에 열리는 곤명차박람회(昆明茶博覽會)는 보이차에 관한 한 중국의 다른 어떤 차박람회나 문화제(文化祭)보다 폭이 넓고 깊어서 보이차의 전모(全貌)를 알 수 있는데 이 박람회를 참관(參觀)하면 보이차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생병과 숙병, 속성병차의 제조법을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1) 생차청병(生茶靑餠 : 生餠 혹은 靑餠)
생엽(生葉) - 살청(殺靑) - 유념( 捻) - 1차 건조(乾燥) - 2차 건조 - 건조(乾燥) - 산차(散茶) - 증압성형(蒸壓成形 : 병차(餠茶), 전차( 茶), 타차( 茶) 등) - 저장 숙성(貯藏熟成)
녹차(綠茶)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녹차와 비슷한 제조과정(製造過程)을 거쳐 모차(毛茶)를 만들어 놓은 것을 청병보이산차(靑餠普 散茶)라고 하며, 이 산차(散茶)에 증기(蒸氣)를 쬐어 일정한 형태의 틀에 눌러 놓은 것을 보이긴압차라(普 緊壓茶)라고 한다. 그런 다음에 통풍이 잘되고, 서늘하면서 건조한 창고에 저장하여 오래 묵히면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자연적인 산화작용(酸化作用)에 의한 변화를 가지게 되므로 후발효차(後醱酵茶)라고 부른다. 따라서 생차(生茶)로 만들어진 모차, 즉 청병(靑餠)의 모차는 쇄청녹차( 靑綠茶)로 녹차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증압성형(烝壓成形)은 1940년대 이후 증기(蒸氣)에 의한 방법으로 그 이전에는 큰돌을 올려놓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전통방법에 의해 제조된 긴압차(緊壓茶)들은 잘 쪼개지고 뜯어지는데 반해 증압성형에 의한 긴압차들은 매우 딱딱하고 단단하다.
2) 숙차청병(熟茶靑餠 : 熟餠 혹은 半生半熟餠)
생엽(生葉) - 증열(蒸熱) - 조유(粗 ) - 유념( 捻) - 중유(中 ) - 재건(再乾) - 건조(乾燥) - 산차(散茶) - 증압성형(병차, 전차, 타차 등) - 저장 숙성(貯藏熟成)
병차(餠茶)의 원료가 되는 산차가 숙병(熟餠)의 경우 숙차(熟茶)이기 때문에 숙병은 맛이 부드럽고 싱거우며, 생병(生餠)에 비해 훨씬 빨리 마실 수는 있으나 오래두어도 보이차(普 茶)의 묵은 맛은 얻어지기 힘들다. 그리고 생병과 숙병의 저장 숙성 중의 후발효(後醱酵)는 미생물(微生物)에 의한 발효가 아니라 찻잎 속의 폴리페놀이나 엽록소(葉綠素)와 같은 효소(酵素)의 산화(酸化)에 의한 발효이다. 따라서 미생물 발효에 의한 속성병차(速成餠茶)와는 완전히 다르다.
3) 미생물속성병차(微生物速成餠茶 : 速餠 혹은 速成餠)
생엽(生葉) - 살청(殺靑) - 유념( 捻) - 건조(乾燥) - 퇴적(堆積, 가습 20∼30%) - 1차 뒤집기 - 2차 뒤집기 - 3차 뒤집기 - 살균처리(殺菌處理) - 재건조(再乾燥) - 산차(散茶) - 증압성형(병차, 전차, 타차 등) - 저장 숙성
퇴적에서 뒤집기 과정을 악퇴(渥堆)라고 하며, 불이나 온풍기로 말린 모차(毛茶)를 쌓아 놓고 30∼40℃의 물을 찻잎에 뿌려 수분 함량이 20∼30% 정도 되게 한 다음에 헝겊을 덮고 다시 살수(撒水)를 함으로써 모차 내부의 온도 보존과 습도 유지를 기해 미생물이 발효되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습도를 맞추기 위한 손질을 해주면 발효가 시작되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발생한 미생물(微生物)에 의한 활발한 발효가 진행되는데 가장 영향을 끼치는 미생물은 국균류(麴菌類)이다.(흑차(黑茶)의 제다과정에서 찻잎을 쌓아두는 것을 악퇴(渥堆)라고 한다)
찻잎의 내부 온도가 60∼70℃에 달하면 미생물이 고루 번식할 수 있게 1차 뒤집기 작업을 해주어 전체 모차(毛茶)에 공기를 유통시켜 호기성(好氣性) 발효가 진행되게 유도하여 미생물의 발효를 촉진시킨다. 그 후 발효의 진행상태를 보면서 뒤집기 작업을 4∼6회 정도 해주고, 마무리 단계에서 건조를 해주면 숙병의 모차인 산차(散茶)가 탄생된다. 이 산차로 긴압(緊壓)을 하여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드는 것이고, 이런 까닭에 숙병보이차(熟餠普 茶)를 미생물발효차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숙차(熟茶)로 만들어진 모차(毛茶), 즉 숙병(熟餠)의 모차는 흑차(黑茶)의 제다과정인 악퇴(渥堆)라는 것을 거치게 되므로 흑차계열로 보아야 한다.
미생물에 의한 속성병차(速成餠茶)는 오래 두어도 청병(靑餠)처럼 묵은 맛을 갖지 못한다. 물론 맛과 향이 조금 개선되지만 기본적으로 알 수도 없는 수많은 미생물(微生物)에 의한 발효(醱酵)이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有害)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국 보이차 전문가(專門家)들의 중론(衆論)이다.
한편 악퇴(渥堆) 공정이 끝나고 살균처리(殺菌處理)를 하는 이 부분은 미스터리로 외국인뿐만 아니라 관계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차 관련 뉴스에 간간이 소개되는 글을 종합해 보면 많은 수의 공장들이 비용이 저렴한 황산(黃酸)이나 카바이드 등을 살균처리 원료로 사용함으로써 인체에 매우 유해한 보이차가 제조된다. 2∼3년 전부터 중국의 보이차가 유럽에서 왕왕 클레임을 당하는데는 이런 이유도 한몫 한다.
4) 보이차(普 茶)의 습창(濕倉) 제조방법(製造方法)
습창(濕倉)이란 인위적(人爲的)으로 습기가 많게 만들어 보이차의 진화(陳化 : 보관과정에서 일어나는 발효(후발효)와 산화)를 빨리 일어나게 하여 맛과 향이 오래 묵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 차이다. 요즈음 대만(臺灣)과 홍콩의 보이차 시장에서 유통되는 차의 80%가 습창(濕倉)으로 만든 차이다. 따라서 이곳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차 역시 80% 이상이 습창차(濕倉茶)로 보여진다.
이 습창차를 만드는 이유는 차상인(茶商人)들이 폭리(暴利)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전통적인 습창의 제조방법은 4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보이병차(普 餠茶), 타차( 茶), 산차(散茶) 모두 4년만 지나면 40년에서 80년까지 습창(濕倉)을 만든 차상인의 마음대로 진기(陳期 : 보이차가 보관과정에서 묵혀진 기간)가 결정되고, 가격은 수 백배 이상으로 튀겨진다. 현재 대만(臺灣)과 홍콩의 의식 있는 차상인들이 모여서 토론(討論)하는 사이트를 살펴보면 대만과 홍콩의 보이차 시장 역시 이 습창차로 인해 매우 어지러운 것을 알 수 있고, 많은 현지 소비자 역시 습창차(濕倉茶)를 제대로 된 건창차(乾倉茶)로 알고 마시고 있다.
우리나라도 처음 보이차를 소개한 대부분의 차상인들이 현재까지 이 습창차를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수의 소비자가 이 습창의 보이차 맛을 제대로 된 보이차의 맛으로 알고 있어 우리나라의 보이차 시장 역시 갈수록 문란(紊亂)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사람은 맛만 좋으면 습창차를 마셔도 괜찮다고 하지만 대만과 홍콩의 연구에 의하면 습창차는 확실히 인체에 유해(有害)하다고 한다.
숙성(熟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통 보이차의 제다 방법인 건창법(乾倉法)을 대신하여 쾌속발효(快速醱酵)를 시킬 수 있는 습창법(濕倉法)은 1973년 운남성 곤명차창에서 개발되었으며, 당시 획기적이었던 이 방법은 신선한 찻잎을 덖거나 불에 쬐거나 열풍기를 통해 건조(乾燥) 시킨 후 물을 뿌려 퇴적(堆積)시키는 방법이다. 퇴적이란 찻잎에 물을 뿌려 젖은 채로 쌓아두고 약 3∼7일 정도 인위적으로 발효시켜 쾌속으로 진화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후발효(後醱酵)시키는 방법을 습창법이라고 하며, 습창법으로 만들어진 모차(毛茶)로 제다한 덩어리 차를 숙병(熟餠)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숙병은 건조실에 넣어 건조되면 곧바로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이후 보이차는 이 방법에 따라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의 습창 제다과정은 먼저 채취한 찻잎을 솥에서 살청(殺靑)하고, 유념( 捻 : 비비기)한 후 하루 정도 햇빛에 말리거나 덖는 건조(乾燥)과정을 거쳐 건조된 찻잎은 곧 바로 퇴적(堆積)시키는데 약 30∼40℃의 미지근한 물을 찻잎의 수분 함량이 20∼30% 정도 되게 찻잎 위에 뿌린 후 준비된 대나무 통이나 나무 상자에 넣고 수분의 증발(蒸發)을 막기 위해 물에 적신 광목 천을 덮어 공기중의 미생물에 의해 발효가 일어나도록 촉진시킨다.
보통 1주일에 한 번씩 세 차례 정도 뒤집기를 하는데 찻잎을 뒤집는 것은 찻잎의 내부를 통기(通氣)시켜 상승한 온도를 낮춰주고, 호기성균(好氣性菌)에 의한 발효(醱酵)를 촉진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발효시킨 보이차는 24시간 정도 일광건조(日光乾燥)를 한 후 실내로 옮겨 일주일 동안 실내에서 다시 건조를 시킨 후 일정 기간 창고에 저장하여 숙성시켜 판매하게 된다.
병차(餠茶), 타차( 茶), 전차(錢茶), 산차(散茶) 등의 보이차(普 茶)를 습창(濕倉)으로 만드는데는 보통 4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제조과정은 2단계로 나뉘는데 먼저 통풍(通風)이 안되고 햇볕이 안 드는 지하창고(地下倉庫)에 3년 간 보이차를 묵힌다.(이것을 입창(入倉)이라고 한다) 때때로 지하창고의 습도(濕度)가 부족하면 보이차에 물을 뿌리거나 축축하게 물을 묻힌 마포(麻布)헝겊 등으로 보이차를 덮어놓는다. 매 3개월마다 차를 뒤집어 차가 너무 뜨거나 발효(醱酵)가 심하게 되어 못쓰게 되는 것을 방지한다. 3년의 시간이 되면 창고를 열어 보이차를 창고에서 꺼내어 통풍이 잘되고 건조(乾燥)가 잘되는 창고에 저장한다. 이것을 퇴창(退倉)이라고 하는데 목적은 습기가 찬 보이차(普 茶)를 자연건조(自然乾燥)시키고, 사람에게 불쾌감(不快感)을 줄 수 있는 곰팡이 냄새 등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이 퇴창 기간을 1년 동안 가진 다음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적인 습창 제조방식의 4년도 길다고 느낀 차상인들에 의해서 새로운 방법이 만들어졌다. 지하창고(地下倉庫) 대신에 지상(地上)에 얇은 함석 지붕으로 만든 창고에서 보이차를 저장한 다음 조습(潮濕) 처리를 하면 태양의 복사열(輻射熱)로 인해 진화(陳化) 기간이 더욱 빨라져 전통방법보다 시간이 1/4정도로 단축된다. 습창(濕倉)으로 만든 보이차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맛들은 우선 향은 흙냄새가 더 강하며, 우리가 밀가루로 풀을 쑬 때 맡는 풀 냄새, 짚신 썩은 냄새 등이다. 맛은 단맛이 강하고, 썩은 맛이 나고 뒤에 혀가 약간 타는 듯한 느낌이 난다.
차를 살 때 대만과 홍콩의 악덕(惡德) 차상인들이 잘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보이차를 아주 진하게 우려서 혀를 마비(痲痺)시켜 맛을 잘 못 느끼게 하거나 특히 술을 마신 다음 보이차를 먹게 하여 차맛의 정확도(正確度)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술을 마시면 술보다 덜 탁한 물질은 술이 깰 동안은 감지가 어렵다. 또 하나는 홍콩에서 잃어버렸다가 얼마 전에 발견한 창고에서 나온 차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좁은 홍콩에서 어디가 몇 십년 동안 숨겨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또 창고 수가 그렇게 많을 수 있는지가 의문(疑問)인 바 이들이 말하는 창고는 바로 4년 만에 여는 습창 창고라고 볼 수 있다.
▣ 보이차(普 茶) 청병(靑餠)과 숙병(熟餠)의 논쟁(論爭)
인위적으로 급속하게 발효시키는 방법이 나오면서 보이차의 제다법이 세 가지가 됨으로써 기존의 보이차 기준을 바꾸어 놓게 되어 흔히 진짜와 가짜 논쟁이 일어난 계기가 되었지만 진짜와 가짜의 논의는 정통제다법(正統製茶法)으로 만든 청병보이차(靑餠普 茶)인지 급속발효법으로 만든 숙병보이차(熟餠普 茶)인지의 여부를 가리키는 말로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가짜는 없다. 다만 변질되거나 잘못 만들어진 상품이 있을 뿐이나 악덕상인(惡德商人)들에 의한 유명 상표의 복제품(複製品) 또는 모조품(模造品)도 분명히 존재한다.
청병보이(靑餠普 )는 제다(製茶) 후 바로 먹을 수 없으므로 보이차의 대량생산을 위한 숙병보이(熟餠普 )가 탄생하게 되었고, 제대로 제다된 숙병보이는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청병(靑餠)이든 숙병(熟餠)이든 긴압과정(緊壓過程)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매변( 變 : 습기에 의해서 곰팡이가 생겨 잘못 변질된 것)은 제다기술의 문제이지만 보관(保管, 숙성(熟成)이라고도 함)시에 나타나는 매변은 차를 판매하는 상인과 구입한 사람들의 책임이다.
보이차는 습기를 피하고 공기 유통이 잘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보관되어야 하는데 청병(靑餠)의 후발효는 산화작용(酸化作用)이며, 숙병(熟餠)의 숙성(熟成) 또한 산화작용이므로 적당한 공기의 유통이 올바른 보관법이다. 자연적으로 말리고 숙성(熟成, 보관 및 저장)을 시키므로 속칭 건창(乾倉)이라 부르고, 수분을 더하여 발효시켜서 숙성한다고 하여 속칭 습창(濕倉)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제다과정 중의 한 과정이거나 보관상태를 말하는 것뿐이기에 완성된 보이 완제품은 청병이나 숙병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며, 실제로 중국이나 대만의 차가게에서도 청병, 숙병으로 나누거나 생차, 숙차로 나눈다.
일반적인 전통에 따르면 보이차(普 茶) 품질에서 고급의 요구조건은 햇빛에 말린 청병으로 건창보관법이다. 우량 보이차의 세 가지 중요한 제조과정은 생차(生茶), 일광건조(日光乾燥), 건창보존법(乾倉保存法)이다. 따라서 생차로 만든 보이차 완제품은 청병(靑餠)이고, 숙차(熟茶)로 만든 보이차 완제품은 숙병(熟餠)이라고 할 수 있다.
(4) 보이차(普 茶)의 분류(分類)
보이차는 차를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형태에 따라 녹차(綠茶)나 오룡차(烏龍茶)처럼 낱개의 찻잎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산차(散茶)와 모차(毛茶)인 산차를 일정한 틀에 넣고 눌러서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든 긴압차(緊壓茶)로 나눌 수 있다. 또 긴압차는 제다과정상의 차이에 따라 청병(靑餠)과 숙병(熟餠)으로 나누어지며, 생긴 모양에 따라 병차(餠茶), 타차( 茶), 긴차(緊茶), 전차( 茶), 방차(方茶) 등으로 나누어지나 이 외에도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차의 보관방법에 따라 건창(乾倉)과 습창(濕倉), 원료가 되는 차나무에 따라 야생교목차, 재배차, 유기농차(생태차(生態茶)라고도 함)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위에서 원료와 제다과정, 보관과정 등을 살펴보았으므로 산차와 긴압차, 생병과 숙병, 건창과 습창의 분류는 제외하고 모양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청(淸)나라 완복(阮福)이 쓴 {보이차기(普 茶記)}에 의하면 찻잎을 채취(採取)하는 시기에 따라 2월에 채취한 모첨(毛尖), 3∼4월에 채취한 소만차(小滿茶), 6∼7월에 채취한 곡화차(穀花茶)로 나누고, 차의 모양이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긴단차(緊團茶), 여아차(女兒茶), 개조차(改造茶), 흘탑차( 茶) 등으로 구별하였다고 한다.
1) 병차(餠茶)
처음에는 원보차(圓寶茶)로 불렸던 원차(圓茶)는 운남지방의 전통적인 명차(名茶)로 죽순(竹筍)껍질로 포장한 1통에는 7편의 원차가 들어가는데 청(淸)나라 초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인민정부가 들어서고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에 중국공산정부가 번잡하고 난해한 정통 한자 글씨체인 정자체(正字體, 번체자(繁體字)라고도 함)를 간소화하여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공표하면서 민국(民國 : 장개석이 세운 정부로 현재 대만 정부의 전신임) 때부터 사용한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라는 문구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로 고쳐졌으며, 이때부터 명칭이 원차에서 병차(餠茶)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보이차를 아는 사람들은 원차(圓茶)는 진년보이병차(陳年普 餠茶), 칠자병차(七子餠茶)는 현대보이차(現代普 茶)로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청(淸)나라 말기에서 1950년대 이전까지 이무(易武)에서 번성한 동경호(同慶號), 보경호(普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강성호(江城號), 정흥호(鼎興號), 동흥호(同興號), 송빙호(宋聘號), 양빙호(楊聘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차순호(車順號) 등 11개 다장(茶庄)들이 유명하며, 이들이 생산한 보이차는 호급보이차(號級普 茶)라고도 하는데 현재 이 차들은 거의가 수장가들이 소장하고 있어 시중에서는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한 편에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역사를 어어받아 병차를 생산하고 있는 운남지방의 크고 작은 수많은 차창(茶廠)들이 원료의 선택, 제다과정에서 원료 차의 배합, 포장단위, 제품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상표의 차들을 생산하고 있으나 워낙 종류가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품질도 이름만큼 천차만별(千差萬別)이나 맹해차창, 하관차창 등 역사가 오래 되고 비교적 인지도(認知度)가 높은 차창이나 일정 규모를 갖추고 새로 설립된 차창에서 생산하는 차들은 어느 정도 품질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
2) 타차( 茶)
모양이 사발과 비슷한 타차는 곡차(谷茶)라고도 하는데 그 역사가 오래되어 명(明)나라 때의 보이단차(普 團茶)로부터 유래하였으며, 1900년대 초기에 하관차창(下關茶廠)에 전해져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타차는 단차(團茶)라는 말이 전성(轉成)된 것이라고도 하고, 사천성(四川省)의 타강( 江) 일대에 이 차를 운송해서 팔았기 때문에 타차라고 한다는 설도 있으며, 또 곤명(昆明)을 거쳐 사천성의 중경(重慶), 서부( 府), 성도(成都) 등지로 운송해서 팔았기 때문에 서부차( 府茶)라고도 한다.
지금과 같은 모양의 타차는 청(淸)나라 광서(光緖) 28년(1902)에 사모지구(思茅地區) 경곡현(景谷縣)의 꾸냥차(姑 茶, 꾸냥은 운남, 사천지역에서 아가씨(처녀)를 일컫는 말이라고 함)가 변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후 민국(民國) 5년(1916)에 영창상(永昌祥)이라는 차창(茶廠)이 차의 품질을 높이고, 모양도 키우고, 규격을 통일하는 한편 운반과 저장의 편의와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여 심장 모양(버섯 모양에 더 가까움)의 긴차(緊茶)를 250g 무게의 사발 모양 타차로 변경하여 생산하였으며, 경곡(景谷)의 곡장타차(谷庄 茶)와 하관(下關)의 관장타차(關庄 茶)로 나뉘어지나 품질 면에서 우수한 관장타차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타차( 茶)는 주로 수출용으로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었는데 특히 프랑스 수출용으로 만든 타차는 프랑스에 수출하는 한편 중국내에서도 판매되었으나 모두 프랑스 수출용 타차라고 부른다. 현재 여러 곳의 차창에서 타차를 생산하고 있으나 하관차창의 타차를 최고로 치고 있으며, 맹해차창에서도 타차를 생산하였다.
하관차창은 1∼2급의 비교적 여리고 가는 양질(良質)의 원료를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1976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만든 것은 생차(生茶)이고, 이후에 만든 것은 악퇴발효(渥堆醱酵)한 산차(散茶)를 원료로 한 숙차(熟茶)이다. 이 외에도 임창차창(臨滄茶廠)에서 만든 은호타차(銀毫 茶)와 남간차창(南澗茶廠)에서 만든 봉황타차(鳳凰 茶)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3) 긴차(緊茶)
명(明)나라 만력년간(萬曆年間, 1573∼1620년)에 사조제(謝肇 )가 저술(著述)한 {전략( 略)} 중에서 [사대부와 서민이 사용하는 것은 모두 보차(普茶)이고, 쪄서 덩어리로 만든다]라는 기록과 같이 덩어리로 만든 차는 처음에는 모두 긴압차(緊壓茶)라고 했으며, 송(宋)나라 때 북원(北苑)에서 만든 용봉단차(龍鳳團茶)가 긴압차의 효시(嚆矢)라고 할 수 있으나 후에 원차(圓茶), 타차( 茶), 긴차(緊茶), 방차(方茶) 등으로 세분되었다.
처음에 만든 긴차(緊茶)는 너무 단단하게 긴압(緊壓)되어 안쪽에 곰팡이가 피고, 장거리 운송에도 적합하지 않아 불해(佛海, 중국의 인민정부 수립 후 맹해( 海)로 그 지명이 바뀌었음)에서 이를 개선하여 자루가 달린 심장(心臟) 모양으로 만들었다. 심장 모양(표고버섯 모양이 더 적합한 표현으로 생각된다)의 긴차를 처음 만든 곳은 불해이며, 주로 티벳 사람들을 위한 전통적인 차로 "보염패(寶焰牌)"라는 상표로 7개를 한 통으로 포장하여 판매하였다.
1930년대까지도 불해(佛海)는 긴차의 중요한 생산지였으나 하관(下關)에서 불해로 사람을 보내 긴차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타차와 긴차를 하관차창의 특산품으로 발전시킨 결과 1940∼1950년대에는 맹해 지역의 긴차 생산은 미미해진 반면에 하관차창이 주로 긴차를 생산하였으며, 1960년대 계획경제시기에는 맹해차창은 병차(餠茶), 하관차창은 긴차와 타차를 생산하도록 그 역할을 구분하였다.
대표적인 긴차로는 말대긴차(末代緊茶)로 불리는 정흥호(鼎興號)에서 만든 정흥긴차, 맹경차창(猛景茶廠)에서 만든 맹경긴차를 들 수 있으며, 1964년 경제적 이유로 긴차 생산을 중지하고 벽돌 모양의 전차를 생산하도록 했으나 1980년대 후반에 하관차창을 방문한 티벳의 제10대 판첸라마의 요청으로 다시 생산한 반선긴차(班禪緊茶)가 유명하다.
4) 전차( 茶)
초기의 긴압차(緊壓茶)는 보관과 운송에 문제점이 많았기에 건조와 운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루가 달린 심장(心臟) 모양의 긴차(緊茶)로 발전되었으며, 더욱 개선된 사발 모양의 타차( 茶)는 자루가 돌출되어 있는 긴차보다 건조와 운송이 용이하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쉬운 제다와 운송을 위해 고안되어 만들어진 긴압차가 벽돌 모양의 전차이다. 전차는 주로 중국 변방민족 중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보급되어 왔으나 현재는 티벳, 내몽고자치구, 신강성 등 중국 소수민족(少數民族)을 상대로 내차( 茶 : 버터 또는 양이나 말의 젖을 함께 넣어서 마시는 차)의 원료로 소비된다.
전차가 만들어진 시기는 1967년부터라고 하고 있으나 1926∼1941년 사이의 차 가게인 가이흥호(可以興號)에서 만든 가이흥전차(可以興 茶)를 보면 1900년대 초기에도 전차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며, 청나라 초기 건륭황제(乾隆皇帝)가 1793년 영국 사절(使節)에게 내린 선물 중에 전차( 茶)가 28개가 포함되어 있고, 도광(道光)년 간에 사모지역(思茅地域)의 여러 차창에서 등급이 다른 원료를 섞어 긴차(緊茶)와 전차( 茶)를 만들어 티벳에 팔았다는 기록이 있어 청(淸)나라 초기 이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차( 茶)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는데 1955년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전차를 시험생산하여 이전에 긴차를 마시던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였으며, 1967년에는 중차공사(中茶公司)가 긴차(緊茶) 원료를 사용하여 전차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1969년 문화혁명(文化革命) 때는 인민 평등정책의 일환으로 전차를 대량으로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차의 무게는 250g로 통일하였으며, 이때부터 전차는 저렴한 가격에 맞추어 찻잎 중에서 질이 떨어지는 찻잎이나 남은 보이차 찌꺼기로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에는 곤명차창(昆明茶廠)에서 쾌속발효방법이 개발되자 맹해차창( 海茶廠)에서도 이를 도입하여 숙전차(熟 茶)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맹해차창에서는 "73후전(厚 )"으로 불리는 전차를 생산하였고, 곤명차창에서는 "7581전차( 茶)"로 불리는 전차를 생산하였다. 1970년대 초기에 생산된 7581전차는 "조향전(棗香 )"이라고 하고, 1970년대 중기에 생산된 것은 "73전( )"이라고 하며, 가장 오랫동안 생산되고 판매된 숙차 중 하나이다.
한편 1973년 곤명차창(昆明茶廠)에서 생산된 73후전차(厚 茶), 1975년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7562전차 등은 비교적 좋은 원료로 사용하기에 품질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문화혁명 때 생산된 전차는 "문혁전차(文革 茶)"라고 부른다. 문화혁명 전후로 문혁전차는 생차방법으로 제조되었으며, 7562전차( 茶)는 포장지 뒷면에 찍혀있는 7562라는 자호(字號) 때문에 얻어진 이름인데 개량된 방법으로 생산된 숙차방법의 전차이다.(7562라는 숫자의 의미는 앞의 75는 1975년에 만든 상품을 의미하고, 6은 차의 등급으로 보통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나눈다. 마지막 2는 맹해차창을 뜻하는데 1은 곤명차창, 3은 하관차창을 뜻하는 고유 숫자이다.)
☞ 곤명차창(昆明茶廠)
곤명차창은 1938년에 설립되었으며, 당초의 명칭은 부흥차창(復興茶廠)으로 당시에는 주로 맹고( 庫)와 봉산(鳳山)의 차청(茶靑)을 주 원료로 부흥타차를 생산하였다. 1949년에 곤명차창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끝난 이후에 청차(靑茶)와 화차(花茶)를 제외하고는 수출을 목적으로 방차(方茶)와 전차( 茶)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의 흐름에 의해 1994년에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으며, 1994년 회사가 없어지면서 차창(茶廠)에 근무하던 많은 기술공들이 곤명차창이란 이름으로 제품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공장부지가 민가(民家)로 바뀌어 그 형태를 찾아 보기도 힘들다. 곤명차창에서 나오는 전차는 모두 악퇴(渥堆) 발효(醱酵)를 거친 250g의 숙차(熟茶)이며, 1980년대 후기에 나온 7581의 제품 특징은 안에 내비(內飛)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시중에서 7581을 많이 볼수 있는데 적어도 1994년 이후의 곤명차창 제품이라면 가짜라고 볼 수 있다.
5) 방차(方茶)
방전(方 )이라고도 불리는 방차는 그 역사가 전차( 茶)와 비슷한데 청나라 때에는 민간에서는 공차(貢茶)라고 불렀으며,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下賜)하는 선물로 사용된 보이차이다. 청말(淸末) 라양유(羅養儒)의 기록에는 [공차(貢茶)는 대방전차(大方 茶)와 소방전차(小方 茶)가 있으며, 모두 "수(壽)"자가 찍혀 있다}고 하였다. 후대(後代)로 내려오면서 4개의 방차(方茶)에 각각 "복록수희(福祿壽喜)"라는 글자를 찍어 포장하였기에 "사희방차(四喜方茶)"라고도 불렀다.
방차는 곤명차창을 비롯하여 맹해( 海), 하관(下關), 덕굉(德宏), 사모(思茅) 등지에서도 생산하였으며, 1980년대 초에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방차는 100g, 250g 두 종류로 앞면에는 "팔중차(八中茶)", 뒷면에는 "보이방차(普 方茶)"가 찍혀있으나 초기에 생산된 방차에는 팔중차 대신에 격자(格子) 문양이 찍혀있어 쉽게 쪼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포장상자에 생산년도가 표기된 1992년에 생산된 방전은 차맛이 뛰어나 "92방전(方 )"이라고 하여 인기가 높았는데 시장에서 전문가들은 이 차를 구입할 때는 생산일자를 위조한 차가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타차( 茶)를 생산한 하관차창에서도 방차를 생산하였는데 초기에는 한 편의 차에 "복록수희(福祿壽喜)" 네 글자를 찍은 2kg의 차를 생산했으나 후에는 "복록수희(福祿壽喜)" 네 글자를 각각 찍은 500g의 차 4개를 1셋트로 생산하였으며, 이들은 모두 숙차(熟茶)이다.
(5) 보이차(普 茶)의 구분(區分)
보이차는 시대별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원차(圓茶)는 진년보이차(陳年普 茶), 칠자병차(七子餠茶)는 현대보이차(現代普 茶)로 간단하게 구분하고 있으나 골동(骨董) 보이차, 호급(號級)보이차, 인급(印級)보이차, 칠자병차(七子餠茶), 숫자보이차(數字普 茶), 현대보이차(現代普 茶)로 자세하게 분류하여 부르고 있다.
한편 쨩유화 교수는 현대불교신문에 연재(連載)하고 있는 글에서 보이차의 시대적 흐름은 1973년을 기점으로 고대와 현대로 나누어지며, 고대보이차는 다시 골동보이차 즉 호자급(號字級)보이차와 인자급(印字級)보이차로 나누어서 골동보이차를 제1세대, 인자보이차를 제2세대 보이차라 부르고, 현대보이차 즉 1973년 이후의 보이차를 제3세대 보이차 또는 숫자급보이차, 지금 보이차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신제품들을 가리켜 제4세대 보이차라 부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1) 골동급 보이차(骨董級普 茶)
청(淸)나라 때 만들어진 100년 이상 된 보이차로 금과공다(金瓜貢茶)가 대표적이며, 1963년 북경 고궁에는 보존이 아주 잘되어 변질되지 않은 청나라시대에 만들어진 2톤 남짓의 보이공다가 있었으나 중국정부가 많은 금과공다를 부순 후 기타 다른 보이차 속에 섞어 판매하였다. 비교적 큰 금과형 공다를 유일하게 남겨서 중국농업과학원다엽연구소에 보존한 것이 전해지고 있으며, 시중에서 어러한 차를 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 호급 보이차(號級普 茶)
청(淸)나라 때부터 보이차를 만들던 유명한 다장(茶莊)에서 생산된 차로 청대(淸代) 말기부터 1950년대 이전의 차들을 호급차라고 하며, 동경호(同慶號), 보경호(普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강성호(江城號), 정흥호(鼎興號), 동흥호(同興號), 송빙호(宋聘號), 양빙호(楊聘號), 복원창호(福元昌號)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차들은 기본적으로 죽순껍질로 포장하고, 매 편을 종이로 포장하지 않고 찻잎을 증기로 가공할 때 차상점들이 자신들의 상호와 제품에 관한 내용을 작은 종이에 새겨 찻잎과 함께 압제하였는데 이러한 종이를 가리켜 내비(內飛)라고 한다. 일곱 편을 죽순껍질로 마무리 포장할 때 상호(商號)를 가리키는 도안(圖案) 및 문구(文句)를 인쇄한 큰 종이 곧 내표(內票)를 7편 중 최상단의 원차(圓茶) 위에 깔아 출하한 것이 이들 개인 차상점들의 공통된 포장법으로 포장지가 없었고, 7편의 내비와 내표는 모두 차상점의 선전물로 사용됐으며, 때로는 차의 진위를 살피는 징표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차는 우수한 차품이나 수량도 적고, 보이차 수집가들이 소장하고 있어 시중에서는 구하기도 힘들며, 상대적으로 희소가치가 높다.
3) 인급 보이차(印級普 茶)
1950년∼1960년대 사이에 맹해차창( 海茶廠)이나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만든 병차(餠茶)로 외포장지의 중차표(中茶表) 상표 가운데에 "차(茶)"자가 인쇄되어 있어 "인급차(印級茶)" 또는 "인자급차(印字級茶)"라고 부르며, 현재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보이차 중에서는 가장 고급차에 속한다. 1940년대에 중국차업공사(中國茶業公司)가 설립되기 전에 운남성내에는 크고 작은 개인 차창들이 많이 들어서서 차를 생산했지만 당시 사회적 혼란과 전쟁 등의 영향으로 품질이 균일하게 유지되지 못하여 제품이 신뢰를 잃었다. 이에 반해 인급차는 비교적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어 차품이 균일하고, 대표성과 지명도 등으로 시장에서 고급 보이차로 대접받고 있다.
골동보이차에는 포장지 자체가 없었으나 중국이 공산화된 후 3년만인 1952년부터 보이차가 겉 포장지로 포장되기 시작하였다. 중국공산당정부가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 없는 평등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일환으로 차를 관장하는 각 지방의 국영회사의 이름을 바꾸는 동시에 중국차를 대표할 수 있는 심벌마크를 정하기에 이르렀다. 1950년 보이차를 관장하는 회사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 개명되었고, 이듬해인 1951년 조승후(趙承煦)가 설계한 팔중차(八中茶) 도안(圖案)이 중국 내의 모든 차상품의 공식 상표로 등재되었다. 등록상표인 이 도안은 8개의 붉은 중(中)자로 둥글게 원을 만들고, 그 중앙에 녹색 차(茶)자를 새긴 마크로 되어 있는데 중(中)자는 중국을 말하고, 팔(八)이란 발(發)의 음을 빌려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中)자를 붉은 색으로 택한 것은 공산당(共産黨)의 상징적인 색상과 길상(吉祥)이라는 뜻을 내포되어 있으며, 차(茶)자를 녹색(綠色)으로 쓴 것은 찻잎의 색깔을 뜻한다고 한다.
홍인(紅印), 녹인(綠印), 황인(黃印), 남인(藍印) 등의 인급차 명칭은 생산공장의 상품명과는 상관없이 포장지에 인쇄된 글자체를 보고 시장에서 만들어져 통용되던 이름이 습관적으로 사용되다가 굳어진 것으로 외포장지에 인쇄된 "차(茶)"차가 붉은 색은 홍인(紅印), 녹색은 녹인(綠印), 황색은 황인(黃印)이라고 하며, 관리상의 허점으로 녹인원차(綠印圓茶)의 겉포장 종이에 인쇄된 "갑급", "을급"이라는 글자를 파란 잉크로 칠해 차의 등급을 없앴는 것을 남인(藍印)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짱유화 교수는 최초에 출하된 보이원차 상품에서 차(茶)자를 비롯해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과 작업자의 나태한 자세에서 비롯된 합작물로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몇 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때의 상품을 후일 홍인(紅印)이라고 명하게 되었다. 이후 포장지의 차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되는데 이 제품을 녹인(綠印)이라 불렀고, 이어 잉크 배합비율의 실수로 인해 차자가 노란색을 띈 것을 황인(黃印)이라고 했다. 그리고 홍콩의 상인들이 붙인 녹인이라는 이름이 타이완 사람에게 건너가 남인(藍印)으로 불리어 또 한 차례 변신하게 되었다.
한편 최근에 출간된 {보이차(普 茶)}에서는 칠자황인(七子黃印)을 제외하고는 인급차(印級茶)와 그 이후에 생산된 칠자병차(七子餠茶)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① 인급차(印級茶)는 포장지에 영문(英文)을 병기(倂記)하지 않고 한자(漢字)만을 사용하며, 인급차가 생산자 이름으로 "중국차업공사운남성분공사(中國茶業公司雲南省分公司)"를 사용하는데 반해 칠자병차(七子餠茶)는 영문을 병기하고 생산자 이름으로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분공사(中國土産畜産進出口公司雲南省分公司)"를 사용한다.
② 인급차는 내비(內飛)에 생산차창이 표시되지 않은 팔중차(八中茶 : 여덟 개의 "중(中)"자를 둥글게 둘러 인쇄하고 그 중앙에 "차(茶)자를 씀)를 사용한다.
③ 인급차는 설명서(說明書)에 해당하는 내표(內票)가 없다.
④ 인급차는 죽순 껍질로 일곱 편을 포장한 다음에 대나무를 쪼개 오리를 만들어 묶었으나 칠자병차는 포장 후 철사로 묶었다.
4) 칠자병차(七子餠茶)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에 중국 공산당정부는 번잡하고 난해한 정통 한자 글씨체인 정자체(正字體)를 간소화하여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공표하였다. 이때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로 고쳐졌는데 이 시기 초기에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차들이 현재 접할 수 있는 진년보이차이다. 그리고 1968년 이후 각 차창(茶廠)에서 병차를 생산하면서 차엽공사의 상호를 사용하지 않다가 1975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창에서 다양한 상표의 차들이 생산되고 있다.
일부 보이차 애호가들은 칠자병차의 포장지(包裝紙)를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수 십 종에 달하는 포장지의 재질, 인쇄의 명도, 글자의 차이점 등을 정리하여 이를 토대로 소비자들에게 칠자병차의 진위에 관한 판별법을 내놓았다. 칠자병차(七子餠茶)의 포장지에는 둥근 원을 중심으로 위에는 영어(英語)가 병기(倂記)된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 중앙에는 팔중차패(八中茶牌) 상표, 그 아래 하단에는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中國土産畜産進出口公司雲南省茶葉分公司)라는 글자가 영어와 같이 적혀 있다. 사람들은 포장지에 인쇄된 상단 운남칠자병차에서의 '운(雲)'자와 '차(茶)'자의 차이, 하단의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에서 '중(中)'자의 크기(대구중(大口中), 소구중(小口中), 후기대구중(後期大口中)으로의 구분), 팔중차패 상표 '차(茶)'자의 색상, 내비(內飛)에 인쇄된 서쌍판납태족자치주맹해차창출품(西雙版納 族自治州 海茶廠出品)에서 '주(州)'자와 '출(出)'자(미술자(美術字), 조체미술자(粗體美術字), 안료(顔料)와 주사(朱砂) 등의 구분)의 차이, 간체자(簡體字)의 차이, 내표(內票)의 대소(大小) 크기와 "인진배방(認眞配方)"이라는 문구(文句)를 추가하여 편집한 내표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5) 숫자보이차(數字普 茶)
현재 보이차(普 茶)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7572, 7582, 7532, 7452, 8582 등과 같은 숫자보이차는 칠자병차(七子餠茶)의 상품명이다. 예를 들어 7572는 1975년에 7등급의 찻잎을 중심으로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그 이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7572제품들이 여러 차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번호를 가진 7572일지라도 1975년도 최초의 제품과 1980년대, 1990년대 제품들이 다양하게 보이차 시장에 공존하고 있다. 운남성 정부는 보이차제품의 출처를 곤명차창(昆明茶廠)은 1번, 맹해차창( 海茶廠)은 2번, 하관차창(下關茶廠)은 3번, 보이(普 ) 또는 봉경차창(鳳慶茶廠)은 4번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시중에서 보이는 숫자보이차의 제품들 중 대부분이 '2'라는 끝 번호를 달고 있는 것은 칠자병차의 출처가 맹해차창이라는 것을 시사(示唆)해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끝자리 숫자가 반드시 생산차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7572, 7582, 8582 등과 같은 4개의 숫자 이외에 75671, 79072 등과 같이 5개의 숫자로 표기된 보이차도 존재하는데 5개의 숫자는 산차(散茶)에 붙이는 숫자이다. 산차(散茶)는 세 자리와 다섯 자리 숫자를 쓰는데 요즘은 세 자리는 거의 없고(421 하나만 생산되고 있음), 일반적으로는 다섯 자리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75671의 앞의 두 자리 숫자는 최초로 제조한 년도, 다음 두 자리 숫자는 찻잎의 등급, 끝자리 숫자는 생산 공장을 나타낸다. 보이차 시장에서 4개의 숫자만 보이고 5개의 숫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산차(散茶)는 시장에서 잘 거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숫자보이차의 어려움은 제품의 포장지 그 어느 곳에도 숫자(數字)에 관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지 않는데 있다. 보이차(普 茶)는 357g짜리 한편 한편을 종이로 포장한 다음에 7편을 죽순껍질로 포장하여 1통을 만들고, 대광주리에 12통을 담아 한 광(筐)을 만드는 것이 전통포장법인데 이때 상품의 출처를 알리는 한 장의 전지를 만들어 대광주리에 넣어 유통시키는 형태였으며, 보이차 시장에서는 이 전지를 가리켜 지비(支飛)라고 한다.
지비(支飛)에는 상품의 명칭, 출고된 차창, 중량, 숫자보이차의 숫자 등 차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데 7572, 7542 등과 같은 문구는 마두( 頭, 마이토우로 발음하며, 광동지방의 방언으로 상표나 전표를 의미한다)란에 적혀있으며(이것을 마호( 號)라고 부른다), 마두( 頭)는 영어인 Mark의 홍콩식 표현이다. 보이차 관한 정보는 1광을 통째로 구매하지 않는 한 개별포장으로 된 보이차의 포장지만으로는 그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바 쨩유화 교수도 그의 글에서 [보이차 중에서 진위 판별이 가장 어려운 것이 어떤 상품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없이 답할 수 있는 것이 숫자보이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 숫자보이차(數字普 茶)의 숫자가 가지는 의미(意味)
일반적으로 숫자보이차의 숫자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숫자는 최초로 제조한 제조연도, 세 번째 숫자는 차청(茶靑)의 배합방식, 네 번째 숫자는 보이차가 제조된 공장을 나타낸다고 알고 있는데 끝의 '2'는 맹해차창( 海茶廠)을 가리키는 숫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후기홍인(後期紅印)으로도 불리는 8892라는 차는 끝자리 숫자가 '2'이지만 맹해차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 이를 줄여서 성차사(省茶司)라고 부른다.)에서 1980년대 후기에 나온 차이다. 끝의 숫자를 차창의 고유코드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대만에서 잘못 전해진 정보이며, 실제로 대만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숫자보이차의 끝자리 숫자 '2'는 철병(鐵餠)의 형태가 아닌 병차(餠茶)를 가리키는 것으로 병차의 경우에도 그 차를 타차( 茶)와 함께 만들면서 타차를 대표차로 등록시킬 경우에는 '3'을 쓰게 된다. 또 전차( 茶)를 대표차로 등록시키는 경우에는 '1'이 붙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차를 대표차로 등록시키는 경우는 없다. 일반적으로 '3'이 하관차창(下關茶廠), '1'이 성차사(省茶司)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음으로 앞의 두 숫자는 함께 붙은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코드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모든 보이병차(普 餠茶, 보이산차(普 散茶)의 숫자는 보통 다섯 자리이다.)에는 7과 8이라는 숫자가 붙는데 이것은 제조년도의 10년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보이차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나온 것이 된다. 원래 7과 8은 제조된 차엽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7은 생차(生茶)와 생차에 준하는 차(반생반숙차(半生半熟茶)와 1분숙차)를 가리키며, 8은 숙차(熟茶)를 가리킨다. 다만 생차와 숙차를 함께 생산할 경우에는 그 대표숫자로 7을 쓸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하고 있다.
예를 들어 7572는 맹해차창에서 1970년대 중기(1974년 6월)부터 생산되어 1990년대 중반(1997년 7월)까지 생산된 차로 이 차는 생차(生茶)와 함께 숙차(熟茶)를 동시에 생산했는데 7572라고 부르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이 차의 숙차를 구분하여 8572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예를 들어 통칭 8582로 불리고 있는 차는 생차인데 이는 중국대륙과 국교(國交)가 없는 대만에서 베트남을 통해 수입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의 세관(稅關) 사정상 숙차임을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숫자를 부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8582라고 부르지 않고 7582라고 부른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난 다음에 당인공예(唐人工藝)에서 출간된 {보이차보(普 茶譜)}를 보면 저간의 많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8582를 원래는 7582라고 했다고 말하게 되는데 이 책은 대만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기 때문이다.
또 8592는 병차(餠茶)를 대표차종으로 등록한 숙차(熟茶)이며, 8352는 병차를 대표차종으로 등록한(끝이 2이지만 이 또한 성차사에서 내놓은 차이다.) 숙차계통의 차이다. 그러나 이 차에는 생차(生茶)가 일부 있지만 숙차가 대부분이기 때문에(사실상 대만으로의 수출을 목적으로 만든 차이므로) 8을 앞자리 번호로 했다고 한다. 7472는 병차형태로 등록된 생차로 이 차는 1980년대 중기인 1983년 6월부터 넘버링이 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있는 번호에 대해서는 두 번째 번호는 차창(茶廠)의 생산창을 가리키는 번호로 1창은 국가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성차사(省茶司)의 1차창이며, 2번은 성차사의 일반 1차창, 3은 성차사의 2창, 8은 성차사의 3창이다. 그리고 4와 5는 각각 맹해차창의 제1창과 제2창이며, 6은 하관차창, 7은 곤명차창, 8은 성차사의 수출전용 차창인데 실제로는 맹해차창의 제1창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조수악퇴라는 특수한 기법은 아직도 맹해차창 특유의 비공개 기법이며, 이는 맹해차창의 창장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차창에서 조수악퇴를 익힌 경력 5년 이상의 사람을 작은 차창들에서 고용하여 조수악퇴를 재현하려 했지만 실패했으며, 유명한 천인명차에서도 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세 번째 숫자는 차엽(茶葉) 제조의 형태와 기법에 대한 특허식(特許式) 번호로 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전문적이라서 자세하게 말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보이병차의 앞자리 숫자는 년대가 아니다. 7532는 1975년에 나온 것이 아니고, 7432는 1974년에 나온 것이 아니다. 또 8582는 1985년에 나온 것이 아니며, 8352는 1983년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만 실례(實例)를 들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7532는 1983년 경 생차(生茶)의 방식을 대표로 하여 등록되고, 주종이 그렇게 만들어진(7, 실제로 일부 7532에는 반생반숙차와 1분숙차가 있으며, 한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7532가 그렇다) 차로 맹해2차창(5, 조수악퇴창)에서 나온 병차(餠茶, 2)를 대표(이 차는 병차 단독 등록임)로 하는 보이차(普 茶)이다. 7432는 보이차에 대한 성정부(省政府)의 인가 때문에 1972년에 등록되어 1973년부터 생산된 생차방식(7, 생차로 단독 생산,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만에서 입수한 이 차들은 90% 이상이 위조된 차라고 한다)의 차이며, 맹해1창(4, 공영창이며, 조수악퇴를 하지 못하는 곳)에서 나온 병차(2)를 대표로 한 차이다. 8582는 1985년에 생산된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중기인 1976년부터 등록되어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 차로 숙차(熟茶)를 대표로 등록하여(8, 실제로는 생차도 많음), 맹해2창(5, 조수악퇴창)에서 병차(2)를 대표로 생산된 차이다. 홍대야생청병(紅帶野生靑餠)으로도 불리는 8352는 1983년에 나온 것이 아니라 1994년부터 지금까지(거의 단종된 상태이며, 맹해차창( 海茶廠)의 생산물을 중간독점했던 맹고( 庫)에 많이 보관되다가 4년 전에 대만으로 거의 이동된 상태임) 나오는 차로 숙차형태(8, 사실은 생차가 더 많은데 수출을 위해 그렇게 숫자를 부여한 것)로 등록되어 성차사의 2창(3, 대량생산창으로 통칭 량창(量廠)으로 불림)에서 병차로 대표등록된 차이다.
병차(餠茶)는 원래 357g을 표준으로 하는데 번호는 이처럼 네 자리이다. 네 자리인 것은 전차( 茶)와 타차( 茶)도 마찬가지여서 전차를 대표로 할 경우에는 끝자리는 '1'을 쓰며, 타차를 대표로 등록할 경우 끝자리는 '3'이 되지만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정황이 있다.
또 산차(散茶)는 세 자리와 다섯 자리를 쓰는데 요즘은 세 자리는 거의 없고(421 하나만 생산되고 있음), 일반적으로는 다섯 자리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75671이나 79115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즐겨쓰는 이들이 드물다. 그 이유는 산차는 여러 곳에서 나올 수 있고, 나온 것도 막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를 양판(量販)하는 다장(茶庄)들이 이를 고의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끝의 숫자는 차엽(茶葉)의 등급을 가리킨다. <출처 : 카페 [차를 즐기는 마을], 글쓴이 - 도계처사>
6) 현대보이차(現代普 茶)
현재 우리들이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보이차는 병차(餠茶)가 가장 많지만 긴차(緊茶), 타차( 茶), 전차( 茶), 방차(方茶), 산차(散茶) 등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천량차(千兩茶)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금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보이차 신제품들을 현대보이차라고 하며, 지금은 보이차를 생산하는 크고 작은 공장들도 많고, 이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상표와 규격의 차들이 워낙 많아 그 이름을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6) 보이차(普 茶)의 효능(效能)
고대 중국의 운남지방에서는 어머니가 딸을 낳으면 보이차를 만들어 저장 발효시켰다가 그 딸이 장성하여 시집을 가게 될 때 꺼내어 딸에게 생활 필수품으로 전해주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딸의 결혼 예물로 지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딸이 또 다른 변방이나 깊은 산골짜기로 시집을 가서 자식을 낳고 생활할 때 집안의 약으로 쓰이도록 함이었다. 그것은 보이차의 뛰어난 치료효과와 약성(藥性)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오랜 체험의 지혜였던 것이다.
위궤양(胃潰瘍)이나 위염(胃炎) 환자들은 커피를 많이 마실 경우 속이 쓰리고 통증(痛症)이 수반되는데 차 역시 커피보다는 약하지만 카페인이 들어 있어 차의 카페인에 의한 위점막(胃粘膜)의 자극에 의해 위산분비(胃酸分泌)를 촉진시켜 주게 된다. 카페인은 녹차와 같이 발효(醱酵)가 안된 비발효차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녹차는 차의 성질이 차기 때문에 공복(空腹)에 자주 마시면 위장이 약한 사람은 신물이 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보이차는 발효차로 차의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위장(胃腸)이 약한 사람에게는 녹차(綠茶)보다 낫고, 아침 공복에 보이차를 마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대부분의 보이차 매니아들이 보이차는 진하게 우려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어떤 차든지 시음(試飮)할 때 외에는 연하게 우려 마시고, 또 주변에도 연하게 우려 마시도록 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보이차(普 茶)는 그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맛과 향을 잘 살려낼 수 있으나 여름에는 연하게 우려내거나 끓여서 냉장보관(冷藏保管)하여 차게 마시기도 한다. 편하게 마시고자 한다면 주전자에 소량의 차를 넣어 끓여서 식탁에 두고 보리차 마시듯이 마셔도 무관하다. 요즘은 사무실 등에서 편리함을 이유로 원두커피 도구로 망이 있는 스테인레스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중국차는 보이차뿐만 아니라 다른 차도 향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스테인레스 제품보다는 맛과 향을 살리고 온도를 비교적 오래 유지시켜주는 자기제품(瓷器製品)이 좋다.
1) 문헌(文獻)에 나타난 보이차(普 茶)의 효능(效能)
오랜 세월동안 민간에서 음용하던 보이차는 청(淸)나라 때에 이르러 독특한 향미와 효능으로 공다(貢茶)로서 황실의 총애(寵愛)를 받는 최상품 차로 대접받게 되면서 보이차의 효능을 서술한 문헌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보이차에 관한 저서도 역대(歷代) 이래로 제일 풍부하였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된 협우청천( 羽晴川, 예위칭촨은 필명(筆名)이며, 본명은 엽조무(葉朝武)이다)의 {보이차(普 茶)}에 소개된 보이차의 효능을 다룬 문헌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대(淸代) 조학민(趙學敏)의 {본초강묵습유(本草綱目拾遺)}에서는 [보이차고(普 茶膏)는 여러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는데 배가 더부룩할 때, 추위를 탈 때 생강(生薑)과 같이 끓여 마시고 땀을 내면 바로 좋아진다. 입안이나 목에 상처나 염증이 있으면 차고(茶膏)를 5분 정도 머금으면 다음날이면 낫는다. 데었을 때도 상처에 바르면 치료된다.}고 하였다.
왕사웅(王士雄)이 저술(著述)한 {수식거음식보(隨息居飮食譜)}에서는 [차는 약하게 쓰고, 달며, 찬 기운이 있다. 보이차(普 茶)는 맛과 기운이 강하고 세며, 구토(嘔吐), 풍(風), 가래에 좋고 고기를 잘 소화시키고, 장염(腸炎)이나 이질, 콜레라도 치료한다.]고 하였고, 오대훈(吳大勳)의 {전남견문록( 南見聞錄)}에서는 [보이차는 기를 다스리고, 막힌 것을 뚫고, 풍한(風寒)을 치료하며, 사람에게 가장 유용한 물건이다.]라고 하였다.
또 청(淸)나라 광서(光緖)년 간에 펴낸 {보지(譜志)}에서는 [차는 육대다산에서 나는데 맛과 기운, 성질이 땅을 닮아 따뜻하다. 적토(赤土)나 잡석(雜石)이 섞인 흙에서 자란 것이 가장 좋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한증(寒症)을 다스리며, 해독작용이 있다]고 하였고, 장경장(張慶長)이 펴낸 {여기기문(黎岐紀聞)}에서는 [여차(黎茶)는 거칠고 맛이 쓰고 떫다. 마시면 체한 것을 뚫리게 하고, 속이 더부룩한 것을 편하게 한다. 오래된 것이 더욱 좋으며, 맛과 효과가 보이차와 비슷하다.]라고 하였다.
2) 보이차(普 茶)와 건강(健康)
<중화인민공화국 악성종양 지도집> 및 <운남성 악성종양 분포도>에는 운남(雲南)이 중국에서 악성종양(惡性腫瘍)으로 인한 사망률이 비교적 낮은 편이고, 보이차의 고향 서쌍판납(西雙版納)은 운남성내의 악성종양 사망률이 낮은 지역이라는 것이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와 증명을 통해 다른 요소 외에 그 지역에 악성종양 사망률이 낮은 것은 보이차의 항암 보건작용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보도에서는 보이차의 이러한 효과가 세계로 소개되어 사람들의 극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암(癌)은 인류건강에 매우 유해하고 흔히 볼 수 있는 병으로 이미 많은 나라의 인구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현재 암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것은 세계적인 화제이다. 운남성 곤명 천연약물연구소는 10여 년의 연구를 통해 운남 홍차(紅茶)와 녹차(綠茶)가 암세포를 죽인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녹차의 효능은 비교적 명확하다고 한다. 그들은 많은 종류의 녹차 효능과 비교해본 후 보이차가 암세포를 죽이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생각하였고, 암환자들에게 장기적으로 보이차를 마시게 하였는데 이 후 암세포가 다변형으로 축소되어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위족(僞足 : 위족을 가진 원형동물로 아메바 등)의 축소량이 감소하고, 붙어 있거나 움직이는 능력을 소실하며, 심지어는 떨어져 움직이다가 없어진다고 한다. 또 남아있는 것들은 작고 둥글게 변하여 농축(濃縮)되고, 핵은 굳어 축소되며, 염색질은 응결하거나 소실되는데 핵과 응결된 염색질 내에는 기포가 생겨 핵인자가 응고 축소되거나 부서져 없어진다. 염색체는 축소되거나 서로 응결되어 리보솜은 감소하고, 미토콘드리아와 소포체는 확장된다. RNA합성이 감소하고 핵분열이 정지하므로 이러한 변화에서 암세포가 보이차의 약리작용 하에서 변하여 죽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보이차의 약용(藥用)과 보건효과는 고대(古代)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청대(淸代, 1736∼1795)의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에 이르기를 [보이차는 능히 만병을 치료하는데, 복통과 감기는 보이차와 생강을 넣고 끓여 마시면 이것이 열을 발산기켜 땀이 나며 곧 낫는다. 입이 찢어지고 목에 열이 나고 아프면 보이차즙을 5g을 머금고 하룻밤을 보내면 곧 낫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보이차는 향이 독특하여 숙취(宿醉)를 깨게 하며, 소화을 돕고 가래를 녹인다. 육식(肉食)의 독을 해소하는 능력이 강하고, 기름기를 제거하고, 소화와 담즙(膽汁)을 활성화하며, 위를 깨끗하게 한다]라고 보이차의 효능을 밝히고 있다.
중국 의학계의 임상실험 증명을 종합하면 보이차는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데 크게 효능이 있고, 이질과 장염 등을 능히 치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리의 성안토니오학원 임상실험 주임교수 Emily. Caroby 박사와 프랑스 국립건강의학연구소, Assails 영양생리 연구소 등의 실험과 화학실험에서 운남 보이차가 인체의 지방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지방화학물질의 작용을 막는데 특히 효과가 있고, 인체의 카르복실산 글리세린의 영향도 매우 명확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은 [운남 보이차에는 한 종류나 많은 종류의 지방신진대사를 하게 하는 특수한 성분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1991년 8월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차와 건강 학술 토론회]에서 보이차의 인체에 대한 약리작용은 갈수록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이차는 세계적인 건강음료가 되었고, 인류가 암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의 건강과 문명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그리고 현대 의약계의 임상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을 소개하면 보이차의 효능은 인체의 지방질 및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현저히 낮춰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며, 또한 자주 마시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가 있어 외국에서는 보이차를 감비차(減肥茶) 또는 요조차(窈窕茶)라고도 한다.
▣ 보이차(普 茶)의 제조법(製造法)에 따른 인체(人體)와의 영향(影響)
※ 이 글은 오랫동안 중국차를 즐기면서 연구하고 있는 손성구씨와 몇몇 사람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茶氣)에 한해서만 서술(敍述)한 것을 옮긴 것임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차기(茶氣)란 차가 지니고 있는 본연의 기운(氣運)을 말한다. 차의 진위(眞僞) 여부와 건강상의 해로움 여부로 말이 많은 보이차(普 茶)는 인체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러 각기 다른 제조법으로 만든 보이차의 차기(茶氣)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경락(經絡)이란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돌면서 에너지 즉 기(氣)가 순환하는 길을 의미하는데 6장 6부에 각 하나씩 12경락이 있으며, 인체 전면의 정중선(正中線)을 지나는 임맥(任脈)과 인체 후면 정중선을 지나는 독맥(督脈)이 있는데 앞의 12경락과 뒤의 임맥 및 독맥을 합쳐서 14경락이라고 한다. 경혈(經穴)은 이 14경락(經絡) 상에 있으며 365혈(穴)이 있다. 이 경락 내에서 에너지가 원만히 흐르고 있으면 건강하고, 어느 장부(臟腑)에 이상이 있으며 즉시 그 에너지인 기(氣)의 흐름이 정체(停滯)되게 된다. 이와 같이 기(氣)의 흐름이 정체되면 그 이상이 경락(經絡) 상에 나타나게 되며 그 부분을 경혈(經穴)이라고 한다.
보이차(普 茶)는 제조법과 저장방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통적인 햇볕에 말린 산차(散茶)로 만든 생차청병(生茶靑餠, 乾倉), 미생물을 이용한 속성 제조법에 따라 만든 속성병차(速成餠茶), 그리고 2∼3년 된 햇병차(餠茶)를 컴컴한 지하창고에서 4년 간 습기를 주어 30∼40년 묵은 것처럼 만든 습창차(濕倉茶)이다. 이 세 가지는 인체에서 어떻게 흐르고 어떤 영향을 줄까?
(1) 생차청병(生茶靑餠, 乾倉)은 백회(百會), 풍문(風門), 신도(神道), 현추(懸樞), 중완(中脘) 등의 혈(穴)들이 반응하면서 몸을 좋게 순환시켜주고, 막혔던 혈도 풀어준다. 따라서 좋은 청병차(靑餠茶)를 마시게 되면 몸이 가쁜한 느낌과 땀이 촉촉이 전신에 배이게 된다. 건창(乾倉)은 장기(臟器)로는 특히 신장(腎臟)과 간장(肝臟)을 보(補)하므로 고혈압(高血壓), 비만(肥滿), 중풍(中風) 등의 성인병(成人病)에 효과가 있다.
(2) 미생물(微生物)에 의한 속성병차(速成餠茶)는 백회(百會), 풍문(風門), 신도(神道), 현추(懸樞), 중완(中脘) 등의 혈들이 반응하면서 건창(乾倉)과는 달리 거꾸로 몸의 혈들을 막히게 하여 인체에 거북하고 불쾌한 느낌을 준다. 습창차(濕倉茶)를 하루 5잔 이상 장복(長服)할 때는 지방간(脂放肝), 간경화증(肝硬化證), 위염(胃炎) 등의 원인(原因)이 될 수 있다.
(3) 습창차(濕倉茶)는 중완(中脘), 현추(懸樞), 신도(神道) 등의 혈들이 반응하면서 몸의 혈들을 막히게 하여 미생물 속성병차와 똑같이 인체에 거북하고 불쾌한 느낌을 준다. 습창차를 하루 5잔 이상 장복할 때는 지방간, 위염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습창차와 미생물 속성병차의 맛은 짚신 썩은 냄새나 쓰레기 썩힌 맛, 흙냄새가 진한 특징이 있으나 정상적으로 만들고 저장된 생차청병(生茶靑餠)은 흙냄새가 미세하면서 뒷맛이 맑고 깨끗하다.
(7) 보이차(普 茶)를 고르는 요령(要領)
제대로 된 보이차를 고르려면 크게 향과 맛, 다저(茶底, 우려낸 찻잎) 등의 세 가지 면을 살펴봐야 한다. 쾌쾌한 향이 나는 차는 속성발효(速成醱酵)된 것이거나 숙성년수(熟成年數)를 속이기 위해 어떤 손질을 한 차이므로 향은 쾌쾌하지 않고 맑아야 한다. 맛은 마실 때 입안의 느낌과 마신 후의 뒷맛이 맑고 깔끔해야 하며, 짚신 썩은 맛이 느껴지거나 쾌쾌한 맛이 느껴지면 역시 잘못된 차이다. 마지막으로 우려낸 찻잎이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짓뭉개지면 자연발효가 잘되었고 연수(年數)가 오래된 차이지만 반대로 찻잎이 쌩쌩하고 잎가지를 문질러보아서 잘 부러지면 연수가 짧은 속성발효된 차이다.
중국과 차상인들은 속성발효된 차가 건강에 무해(無害)하다고 하나 일본과 대만(臺灣)의 실험에서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발표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보이차는 어느 정도 마셔본 사람들은 타인의 차에 대한 설명에 객관적인 판단이 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 마시는 초보자(初步者)들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따라서 차주인이 예를 들어 50년이 되었다, 90년이 되었다고 말하더라도 위의 세 가지 사항을 살펴서 자신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면 그것은 잘못된 차일 확률이 높다.
한편 어느 보이차 전문가는 [우리나라에 40년 이상된 병차(餠茶)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妥當)하며, 더구나 그 가격이 수십 만원대라면 더 더욱 말이 안 된다. 녹인(綠印)이나 황인(黃印), 전차( 茶)들을 제외하고는 등시해 교수의 {보이차(普 茶)}라는 책 속에 나오는 고전(古傳) 보이차들은 대만에서도 유통(流通)되지 않고 유통될 수량도 없다. 산차(散茶) 역시 지금 시중에서 팔리는 보이산차(普 散茶)의 경우 대부분이 15년을 넘지 않으므로 20년 이상된 보이차는 한국에서 팔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된 보이차 관련 책에서는 보이차는 구매시 생차와 숙차, 건창과 습창, 야생차와 재배차, 생산년도 등 여러 가지를 알고 고려해야 하므로 먼저 많이 보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마시고 품평하여 차의 성질과 관련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실수(失手)하지 않고 차를 사려면 차를 파는 사람의 화려한 입담에 현혹(眩惑)되어 말만 듣고 사지 말고, 반드시 시음한 후에 자신의 입맛과 몸에 맞는 차를 구입하되 지나친 환상을 버리고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구매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1) 보이차(普 茶) 식별법(識別法)
보이차는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외관상 식별이 어려워 직접 마셔보아야만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하나 그 또한 정확한 숙성년도(熟成年度) 보다는 생차(生茶)인지 숙차(熟茶)인지의 정도와 대략 어느 정도 숙성되었겠다는 추측 정도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잘 숙성된 차는 몸에서 거스르지 않으나 잘못 숙성되었거나 덜 숙성된 차는 몸에서 거슬린다는 것이며, 차를 식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부분의 보이차(普 茶)는 만져 보아서 푸석하고 두툼하고 부드러우면 숙차이고, 단단하고 딱딱하면 생차이다. 물론 처음에는 생차와 숙차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하겠지만 마셔보면 생차인지 숙차인지 정도는 누구나 감별하기 쉽다. 그리고 시음용(試飮用)으로 마실 때는 최대한 진하게 우려내어 마셔보는 것이 감별하기 용이하다.
② 우려낸 후의 찻잎을 보아도 숙차와 생차를 구별할 수 있는데 우려낸 잎을 한 잎 집어내어 엄지와 검지로 찻잎을 밀어보아 허물어지면 숙차이고, 탄력이 있고 말려버리면 생차이다.
③ 진하게 우려내었을 때 탕색이 맑을수록 좋은 차이며, 쓰고 떫은맛이 없이 부드럽게 목안으로 넘어가고, 목안으로부터 화∼하고 시원하게 넘어오는 것이 있으면 좋은 차이다.
④ 향기는 자연의 싱그러운 향이 나는 것이 좋은 차이며, 뒤 여운에 미역이나 다시마 향이 나는 것도 좋은 차이다. 곰팡이류의 향이 우러나는 차는 그 다음이고, 일부 짚 향기 비슷하게 나는 것은 운남성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차 표면에 흰 얼룩이 있거나 향기가 야릇한 것은 잘못 숙성된 차이다.
⑤ 숙성년도는 대체로 1∼2년 정도 숙성된 차는 누구나 느낄 정도로 기운이 강하고 풋내가 나며, 5년 이상 숙성이 되어야 비로소 보이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잘 숙성된 숙차는 부드럽고 맛이 있지만 생차는 숙차에 비해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숙성되어야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숙성된 이후에는 숙차보다는 생차가 훨씬 맑고 깨끗하며, 차의 향과 맛이 당당하다. 약 50년 이상 숙성된 차의 특징은 우려 마셨을 때 다탕(茶湯)이 공기보다 가벼울 정도로 부드럽고 가볍다.
⑥ 보이차의 구입시 국내에서는 믿을만한 곳에서 구입하면 되겠지만 외국에서 구입할 경우는 자신이 아는 만큼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복다업공사]는 세계 30여 개 국에 체인을 둔 거대 체인업체인데 천복차가 맛이 떨어진다는 주변의 평이 있었지만 기호성이 강한 만큼 우려서 마셔보아 자신의 기호와 맞으면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2) 보이차(普 茶)의 감별(鑑別)
현재 우리나라 차시장(茶市場)에도 중국의 보이차(普 茶)가 많이 들어와 중국차를 파는 차가게 뿐만 아니라 사이버 쇼핑몰에도 너나 할 것 없이 보이차를 팔고 있다. 상인(商人)들은 모두 보이차가 건강에 매우 좋고, 오래 묵을수록 더 좋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그 말은 모두 옳다. 그러나 좋은 보이차를 고르기는 웬만큼 제대로 보이차를 접하고, 마셔보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첫째, 보이차를 파는 차상인(茶商人)들 조차 진짜 보이차를 제대로 모른다. 둘째, 차상인들이 진짜를 알아도 진짜 보이차를 취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60년 이상 된 보이차들은 가격이 몹시 비싸며, 수량도 극히 적어 대부분이 홍콩이나 대만의 수장가(收藏家)들이 소장하고 있어 한국에까지 들어올 양이 거의 없다. 10여 년간의 보이차 생활과 보이차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어느 전문가는 대만의 {보이차} 저자인 등시해(鄧時海) 선생과의 토론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보이차를 고르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① 매변( 變)의 발생 여부(發生與否)를 살핀다.
매변이란 보이차에 검고 퍼렇게 핀 누룩곰팡이를 말한다. 매변의 발생 여부는 보이차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가장 먼저 이해되고 중시해야 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매변이 일어난 보이차는 그 본래의 맛과 향기가 본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가치는 이미 원래 가격의 10분의 1 가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검고 퍼렇게 핀 누룩곰팡이가 인체에 무해한지 유해한지는 의견이 분분하며, 일본의 한 보이차 연구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체에 무해하고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되어 일본에서는 매변이 일어난 누룩곰팡이가 핀 보이차의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대만의 많은 연구가와 전문가들은 오히려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산 동의대학 생물학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인체에 나쁜 미생물이 있다고도 한다. 대만에서 매변이 일어난 보이차의 가격이 10분의 1인 것을 볼 때도 이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한국에서 여러 상인들이 한때 오래 묵은 보이차를 팔면서 대만에서는 같은 물건이 4∼5배 비싼데 자기들은 4∼5분의 1 가격으로 판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매변이 일어난 보이차의 가치가 제대로 완전한 물건의 10분의 1 밖에 안되기 때문이었다.
② 보이차(普 茶)의 외형적(外形的) 색깔을 살핀다.
매변( 變)이 일어난 보이차는 색깔이 검고 짙다. 국내의 어느 보이차 전문가는 등시해 교수가 보여준 제대로 저장된 보이차들은 마치 낙엽(落葉)을 곱게 보관한 것처럼 밝은 황색(黃色)들이었다고 한다. 짙거나 검게 변한 차들은 이미 매변이 일어났거나 처음부터 숙창(熟倉)으로 만들어진 보이차로 보면 된다.
③ 보이차(普 茶)의 무게를 살핀다.
정상적인 보이차들은 손으로 들어보았을 때 마치 솜털같이 가볍다. 보이차 전문가는 처음 복원창호(福元昌號)와 동경호(同慶號)를 손으로 만졌을 때 너무 가벼워 손위에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90년에서 100여년의 긴 시간 동안 곰삭았기 때문에 찻잎의 형태들은 그대로이지만 차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낙엽들을 수년간만 보관해도 가벼운 것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60년, 70년, 90년, 100여년 동안의 긴 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생각해 보면 추론(推論)이 가능할 것이다.
④ 보이차(普 茶)의 맛
50년 이상 된 보이차인데도 불구하고 처음 보이차를 마신 분들의 공통적인 평가(評價)는 짚신 썩은 맛이거나 볏짚 썩은 맛이거나 몹시 쓰고 찝찔하다 등이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이런 맛이 보이차의 특징이라고 알고 있으나 제대로 된 보이차의 맛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맑고 깨끗하고 달고 장뇌(樟腦)나무 향이 서려있다. 불쾌한 맛이 나는 보이차들은 차상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미 매변이 일어나 본래의 맛과 향기가 사라졌거나 보관이 매우 잘못되어 부패(腐敗)되었거나 처음부터 속성발효(速成醱酵)로 만든 싸구려 차로 볼 수 있다.
⑤ 엽저(葉底 : 차를 우려내고 난 뒤의 찻잎)를 살핀다.
정상적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발효된 보이차는 차저의 잎은 손으로 잘 찢어지고, 잎 표면도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찻잎의 줄기도 부드럽게 끊어지지만 속성 발효된 보이차는 차저의 잎이 매우 질기고 잎 표면도 거칠다. 특히 찻잎 줄기는 생잎과 같이 매우 질기고 찢기 힘들다.
⑥ 보이차를 시음(試飮)할 때는 차의 농도(濃度)에 주의해야 한다.
{보이차}의 저자인 대만의 등시해 교수는 보이차를 마실 때 아주 여리게 마셔야 그 차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고, 오히려 너무 진하게 마시면 혀가 마비되어 차의 참 맛을 알기 힘들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가짜 차를 팔 때 자주 이 방법을 사용하여 보이차를 진하게 우려낸다고 한다. 이런 음다법(飮茶法)은 차상인의 저의(底意)가 짙게 깔려 있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대로 혀를 마비(痲痺)시켜 차를 제대로 감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차 사용량을 많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 가게에서도 보이차를 마실 때 거의가 매우 진하게 우려낸다. 또 검고 진하게 차를 마실 줄 알아야 보이차를 많이 아는 것으로 평가해 주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차가 너무 진하면 위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되고, 차 맛도 제대로 즐길 수 없으며,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한다.
⑦ 오래 묵은 진짜 보이차의 수량(數量)
복원창호(福元昌號), 동경호(同慶號), 경창호(敬昌號), 강성호(江城號), 홍인(紅印) 등의 오래된 호급 보이차들은 그 수량(數量)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만이나 홍콩에서도 극히 일부의 보이차 수장가(收藏家)에게만 소장(所藏)되어 있어 한국에 그렇게 많은 보이차들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대만의 한 차상인이 [대만에서는 돈은 있으나 보이차가 없어 차를 살 수 없고, 한국에서는 보이차는 많으나 돈이 없어 차를 살수 없다]라고 하는 말은 현재 한국의 보이차 실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등시해 교수가 직접 감정한 동경호가 2통(14편)이 채 안 된다고 한다.
⑧ 정상적으로 제다(製茶)한 10년 미만 보이차의 품질(品質)
어떤 차상인은 30년 이하의 보이차는 마실 수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2급의 대엽종(大葉種) 찻잎으로 만든 산차(散茶)들은 햇차라도 맛과 향이 매우 뛰어나다. 병차(餠茶)의 가격도 250g 한 편에 3만원 이하로 매우 싸다. 우리들은 보이차가 매우 비싼 줄 알지만 요즈음 나오는 보이차들은 매우 싸다.
결론적으로 좋은 보이차를 올바르게 고르기 위해서는 차상인의 설명이나 논리에 상관하지 말고 위의 몇 가지 사항을 참고하여 꼭 시음(試飮)해 보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혹 통으로 구입하는 경우 통 속의 7편이 색깔이나 상태가 균일(均一)한지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만에서 등시해 교수에게 감정 받으러 온 1통의 동경호(同慶號)에서 맨 윗장 1편만 진짜이고, 나머지 6편은 가짜였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3) 오래 숙성(熟成)된 보이차(普 茶)
보이차는 자연적인 진화(陳化)에 따른 산화(酸化)와 숙성을 통해 그 맛과 차성(茶性)이 나타나므로 오래된 것이 당연히 좋으나 아무리 오래된 보이차라 할지라도 습기(濕氣)에 노출되어 매변( 變 : 곰팡이로 인한 부패)을 겪었다면 그 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오래된 고가(高價)의 유명한 명품 보이차들과 지금 유통되고 있는 많은 숙병보이(熟餠普 )는 찻잎에서부터 제다, 보관, 숙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맛과 차의 기운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숙병의 흑차(黑茶)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차로 강제발효(强制醱酵)를 시켜 판매하는 차이지만 발효가 끝난 것은 아니므로 발효가 더 이상 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한다. 지금은 냄새나 맛이 조금 이상하게 나타나는 보이차일지라도 좋은 보관과 저장상태에서 산화되는 기간이 오래 경과하면 분명히 지금 보다는 훨씬 좋은 차로 진화될 것이다.
한편 청병(靑餠)의 발효도 자연산화이며, 숙병의 보관 또한 자연산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발효에 따른 군 냄새 같은 것도 보관을 잘하면 점차 없어져서 보다 먹기에 좋은 보이차가 될 수 있다. 구입시 찻잎과 제작방법 및 저장 상태를 잘 알아보고, 매변( 變)이 없는 차를 구했다면 당장 마시기 어려운 보이차는 잘 보관했다가 제작연도에서 최소 10년 이상 경과한 때에 마신다면 꽤 괜찮은 차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8) 보이차(普 茶)의 구입요령(購入要領)
보이차의 경우 차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가짜와 턱없이 비싼 것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보이차를 제대로 구입한다]는 말이 필요한 것은 심지어 전문유통인들조차 알게 모르게 소비자를 현혹(眩惑)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보고, 듣고, 마셔보고, 공부하여 보이차에 대한 지식(知識)과 경험(經驗)을 쌓는 한편 신뢰(信賴)할 수 있는 판매상(販賣商)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보이차를 제대로 구입하려면 생차와 숙차, 건창과 습창, 야생차와 재배차의 차이점과 보이차를 제다(製茶)하는 차엽의 종류와 차엽의 생산지별 특성, 보이차의 제다처(製茶處), 보이차의 계보(系譜)와 각 보이차의 특성들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1) 국내에서 구입할 경우 지나치게 비싸거나 싼 보이차는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나치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겠지만 병차(餠茶)의 경우 330g 한 덩어리에 5∼10만원, 전차( ( )茶)의 경우 250g 한 덩어리에 4∼6만원, 타차( 茶)의 경우 250g 한 덩어리에 4∼6만원, 소타차(小 (拖)茶)의 경우 100g에 3만원 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보이차는 대만에서 수입된 것, 홍콩에서 수입된 것, 중국 광주(廣州)에서 수입된 것이 대부분으로(역설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운남성 보이에서 수입된 것은 거의 없다) 수입상들은 적게는 3배, 많게는 5배 이상으로 판매하고 있으므로 가격이 이 이상 또는 이하일 경우 일단 조심하는 것이 좋으나 가격이 아래와 같은 정도면 괜찮은 판매상이다. 그러나 가격이 비슷하더라도 중국 광주 등에서 수입한 것은 가격은 물론 품질도 다르고, 가짜가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대만이나 홍콩에서 수입한 보이차의 경우 초보자가 마시기에 적당한 것의 현지 가격을 국내 가격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으며, 소타차(小 茶)의 경우 국내에서 재포장(再包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판매가(販賣價)가 높다는 점을 염두(念頭)에 두어야 할 것이다.(오해나 분쟁의 소지가 있어 판매가격만 제시하지만 이 가격 역시 취급자에 따라 다르므로 차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임을 참고하시기 바람)
2) 구입할 보이차의 제다처(製茶處)를 알아두어야 한다. 숙병(熟餠)이나 전차( 茶)의 경우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라고 포장된 것이 많은데 이것은 하관차창(下關茶廠), 맹해차창(孟海茶廠), 성차사(省茶司)가 함께 쓰는 포장지(包裝紙)로 타차( 茶)의 경우에는 하관차창이라고 표기된 것을 구입하면 된다.
그밖에 현대화된 포장지에 깔끔하게 포장된 방차(方茶)나 특이한 포장지로 포장된 병차(餠茶) 등을 구입하는 것은 일단 삼가야 한다. 또 생차는 20여년 가까이 숙성되지 않으면 마시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차(生茶)라고 주장하는 보이차는 일단 피하는 것이 좋다.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보이차 가운데 제대로 20여년 이상 숙성된 청병(靑餠 : 생차로 된 병차)은 거의 없다고 한다.
3) 보이차를 구입하는 요령(要領) 가운데 [시음(試飮)해보지 않으면 구입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명제(命題)가 하나 있는데 보이차뿐만 아니라 웬만한 차는 모두 이 명제를 지켜야 한다. 사람의 입은 어느 정도 보편성(普遍性)이 있으므로 마실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며, 차를 마셔서 입맛이 괴롭거나 목에 걸리면 적당한 보이차라고 할 수 없다.
숙차기법(熟茶技法)의 보이차는 일반적으로 짚이 삭는 맛을 내지만 마실 만한 것은 일단 부드럽고, 목에 걸리지 않으며, 자연스런 단 맛을 낸다. 또 우려낸 차색이 등황색이다. 등황색은 일반적으로 저간색(猪肝色 : 돼지간의 색)이라고도 하는데 붉은 빛과 누런빛이 어울린 고동색으로 잘 말린 대춧빛을 띠고 있으나 좋지 못한 보이차는 탁하고 맑은 기운이 없이 푸른 기가 도는 검은 빛을 띠며, 입과 목에 걸리기 마련이다.
4) 차를 살 때는 포장상태부터 면밀히 살펴서 포장의 오염 여부, 포장상태가 원래의 포장인지 여부, 생산년도와 생산한 차창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핀다. 포장을 살핀 후에는 차 자체의 특징과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한편 차의 색깔을 보고, 매변( 變)의 피해를 입거나 이물질이 섞였는지 여부를 살핀다. 또 숨을 들여마셨다가 차면에 대고 숨을 크게 내쉬면서 되돌아오는 냄새를 맡아본다. 제대로 만든 차라도 보관이나 유통과정이 적절하지 못하면 역겨운 냄새가 나거나 보이차 특유의 차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차의 냄새를 맡는 방법은 평소에 연마해야 하며, 차향(茶香)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차를 제대로 감별하여 구매할 수 있다.
(9) 보이차(普 茶)의 보관(保管)
보이차는 후발효가 진행되는 특이한 차로 청병(靑餠)인 경우 보관기간이 그 차의 후발효 기간이 되므로 구입한 보이차는 당장 마실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용기(容器)에 보관하면서 진화(陳化)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보이차를 즐기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당장에 마실 차는 포장지를 벗긴 후 적당한 크기로 나누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수 개월 동안 자사(紫砂)나 도자기(陶瓷器)로 만든 차통에 넣어 통풍(通風)을 시킨 다음에 마시는데 이 과정을 거풍(擧風 : 바람 쏘이기), 성차(醒茶 : 차 깨우기), 회윤(回潤 : 차의 윤기 살리기)이라고 한다. 거풍을 마친 차는 다시 깨끗한 종이(한지(韓紙)가 가장 좋다고 한다)로 싼 다음에 도자기나 옹기로 만든 항아리에 넣고 수시로 꺼내서 마시는데 통풍이 잘되면서 잡냄새가 배어들지 않는 곳에 보관한다. 또 간단한 방법으로는 보이차를 포장한 죽순껍질이나 우피지 등은 기본적으로 습기나 먼지로부터 차를 보호하므로 냄새가 잘 배이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면서 직사광선이 비치지 않는 곳에 포장지에 싼 채로 보관하기도 한다.
보이차(普 茶)는 오래 숙성될수록 좋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4계절이 뚜렷해 여름에는 습기(濕氣)가 너무 많고, 겨울에는 너무 건조(乾燥)하여 보이차를 직접 생산하고 숙성시키는 현지와는 진화환경이 다르므로 보관장소, 습도, 온도, 기간 등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비교하면서 참고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에서 보관할 때는 거실, 전용 차실, 차 보관창고 모두 통풍이 잘 되고, 직사광선과 잡냄새로부터의 오염(汚染)을 피할 수 있는 청결한 곳에 보관하여야 한다. 시중(市中)에는 중국에서 직접 수입한 자사(紫砂) 항아리도 많이 있으나,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우리나라의 옹기(甕器)도 자체적으로 숨을 쉬므로 차를 보관하는 용기로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소장할 보이차를 고를 때는 생차(生茶)가 윈칙이며, 가격이 비싸다고 소장가치가 높은 것이 아니므로 가능하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만들어진 차를 고르는 것이 좋다. 특히 소장 가치의 유무는 그 원료의 양부(良否)에 달려 있으므로 소장(所藏)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에는 비싼 차에 매달리지 말고 좋은 원료로 만든 보이차를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맞게 골라 소장하면서 자신의 정성과 세월의 흐름이 깃들어 있는 차를 감상하면서 경제적 가치의 증가와 함께 마시는 기쁨을 즐기는 것이 보이차를 소장하는 의의(意義)라고 할 수 있다.
(10) 역대(歷代) 보이명차(普 名茶)
유명생산지는 운남성(雲南省) 일대이며, 특히 운남 서쌍판납(西雙版納)의 6대다산에서 생산된 차가 유명하다. 운남대엽종(雲南大葉種)의 우량품종이 이용되며, 신선한 잎을 채취하여 살청(殺靑)하고 비빈 후 퇴적하여 곰팡이 균을 이용하여 발효 가공하거나 다시 증기로 쪄서 압력을 주어 재가공한 긴압차(緊壓茶)가 있다. 긴압차의 형태로는 사발 모양의 타차( 茶), 심장 또는 버섯 모양의 긴차(緊茶), 원반형태의 병차(餠茶)와 칠자병차(七子餠茶), 벽돌모양의 전차( 茶)가 있다. 현재 중국농업과학원다엽연구소에 가장 오래된 청대(淸代)의 금과공다(金瓜貢茶)가 있고, 최근에는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일부 수장가들에 의해 보관되어 있는 역대 보이명차들이 있다.
한편 1900년대 초기와 중기 사이에 성행하였던 운남성의 다장(茶莊)인 동경호(同慶號), 보경호(普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강성호(江城號), 정흥호(鼎興號), 동흥호(同興號), 복원창호(福元昌號) 등에서 출하한 보이병차를 구하기란 쉽지 않으며, 간혹 비싸게 구하였더라도 그것이 진품(眞品)이란 보장은 없다. 시중에 나도는 오래된 진품 중에는 화학적으로 교묘하게 처리하여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근거에 의하여 다소나마 진품의 구별법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오래 묵은 보이병차에는 제조된 다장(茶莊)의 소개지(紹介紙)가 붙어있던 흔적이 있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상표가 완전한 것은 거의 없다. 보이병차(普 餠茶)의 출하 역사를 보면 제품에 고유하게 적힌 "차(茶)"자의 색상이 여러 번 변천된 기록이 있는데 붉은 것을 홍인(紅印) 혹은 홍심(紅心), 녹색은 녹인(綠印), 노란색은 황인(黃印)이라고 부른다.
② 출하한 다장(茶莊)과 제품명에 따라 보이병차의 묵은 연도 수가 다르다.
㉮ 60∼90년 : 동경노호(同慶老號), 말대긴차(末代緊茶), 정흥원차(鼎興圓茶), 홍지원차(紅芝圓茶), 홍창원차(鴻昌圓茶) 등
㉯ 40∼60년 : 보경원차(普慶圓茶), 동흥원차(同興圓茶), 양빙원차(楊聘圓茶), 경창원차(敬昌圓茶), 강성원차(江城圓茶), 동창원차(同昌圓茶), 동경원차(同慶圓茶), 홍인원차(紅印圓茶) 등
㉰ 20∼40년 : 홍인원차(紅印圓茶), 홍심원차(紅心圓茶), 황인원차(黃印圓茶), 녹인원차(綠印圓茶), 홍련원차(紅蓮圓茶), 원차철병(圓茶鐵餠), 칠자철병(七子鐵餠), 광운공병(廣雲貢餠), 사보공명(思普貢茗), 복록공다(福祿貢茶) 등
1) 금과공다(金瓜貢茶)
[여름에는 용정(龍井)을 마시고, 겨울에는 보이(普 )를 마신다]는 궁정(宮庭)의 속담이 있듯이 청대(淸代)의 최상품 차는 보이차였다. 최상품 차로서의 보이차는 모두 어린 새싹의 여아차(女兒茶)로 만들어지는데 여아차란 이족(夷族)의 미혼소녀(未婚少女)들이 딴 아차(芽茶)를 먼저 옷 속에 넣어 소녀의 온기(溫氣)를 충분히 받게 한 다음 일정한 수량이 쌓인 후 대나무 광주리에 꺼내 놓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아차로 크기가 서로 다른 대·중·소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는데 큰 것은 사람의 머리 모양과 같아서 인두차(人頭茶)라고도 불리어졌다.
1963년 북경 고궁에는 청나라시대에 만들어진 2톤 남짓의 보이공다가 보존되어 있었는데 보존이 아주 잘되어 변질되지 않았으며, 약간을 끓여보니 탕색(湯色)이 있고 차의 맛이 깊고 담백하다고 하였다. 중국정부는 많은 금과공다를 부순 후 기타 다른 보이차 속에 섞어 팔았는데 비교적 큰 금과형 공다를 유일하게 남겨서 중국농업과학원다엽연구소에 보존하였다. 이 금과공다는 차청(茶靑)이 굵고 단단하며, 약 100년 전후가 된 차이다.
2)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
청나라 중기의 보이차는 이무산(易武山)과 의방다산(倚邦茶山)의 차 품종이 으뜸이었다. 의방다산은 왕실에 바치는 보이공다(普 貢茶)를 만드는 소엽종(小葉種)의 차이고, 이무산은 오래 묵을수록 향기로운 대엽종(大葉種) 보이차의 품종이었다. 광서(光緖) 중기 이무진(易武鎭)과 의방다구(倚邦茶區) 사이로 도로가 연결되어 이 시기에 차를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두 곳의 차 산지에 동시에 차창을 설치하였다.
광서(光緖) 초년(初年, 1875) 의방다구(倚邦茶區)에 창설된 원창호(元昌號) 역시 광서 중기 이무(易武)의 큰 거리에 차공장 분점(分店)을 개설하여 복원창호(福元昌號)라 이름짓고, 이무산의 대엽종 찻잎을 엄선하여 만든 고급 제품을 국내와 해외에 판매하였다. 그러나 광서 말년에 운남 남부의 모든 차가게와 차창이 지방의 치안부재(治安不在)와 질병의 유행으로 휴업하였는데 의방(倚邦)의 원창호와 이무의 복원창호도 같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원창호(元昌號)는 폐업하고, 이무의 복원창호는 1922년 전후에 다시 개업하여 운영하였다.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는 광서(光緖) 년간에 제조한 100년 전의 보이차로동경노호(同慶老號)와 쌍벽을 이루는 극품(極品)이다. 차의 묵은 맛을 보면 동경노호와 우열을 가릴 수가 없고, 통 포장인 죽순 껍질의 재질은 동경노호에 비해 떨어지나 아주 좋은 재료에 속하며, 묶는 기술도 동경노호의 방법과 동일하다. 각 통에는 11cm 크기의 장병형 설명서인 내표(內票)가 한 장씩 깔려져 있으며, 붉은 빛이 도는 귤색의 바탕에 그림과 글자는 남색(藍色)으로 되어 있다. 가장자리 테두리는 구름무늬의 도안이 새겨져 있으며, 글 내용은 88자의 해서체(楷書體)로 적혀져 있다. 이중 양춘(陽春)과 여복생(余福生)이란 글자는 별도로 붉은색 주사인주(朱砂印朱)로 찍혀졌다.
매 덩어리마다 한 장씩 있는 5*7.5cm 크기의 장방형 내비(內飛) 설명서 네 테두리에는 구름무늬 도안이 있고, 안에는 55자의 해서체(楷書體)로 된 글자가 있다. 내비는 진한 남색, 자색, 백색등 세 가지의 바탕색이 있으며, 그림과 글씨는 주홍색이다. 진한 남색, 자색의 내비로 포장된 차는 차성(茶性)이 비교적 강하며, 백색 내비로 된 차는 차성이 여리고 부드럽다.
복원창원차는 이무산의 가장 우수한 대엽종 찻잎을 채취하여 만들므로 이무산 대엽종 찻잎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 찻잎이 두터우면서 크며, 줄기는 넓고 엷다. 밤색에 약간 재색을 띄지만 윤기는 나지 않는다. 오늘날 의방다구의 원창호 본점에서 생산된 보이원차는 볼 수 없으며, 분점인 복원창호의 보이원차 또한 극소수의 보이차 수장가의 수중에 들어가 유통시장에서는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내비(內飛)와 내표(內票)
보이차상들이 좋은 찻잎을 원료로 만들어진 보이원차 청병을 창고에 저장하여 묵히기 전에 품질의 종류 혹은 제품의 상호를 표시하기 위해 내비(內飛)라고 부르는 설명서(說明書)를 청병 겉면에 붙이는데 내비를 붙인 청병은 대체로 일곱 개를 한 곳에 묶어 포장하며 포장재질은 죽순껍질을 쓴다.
한편 차 상점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위조(僞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개의 청병원차를 묶은 죽순 포장통 안에 상호(商號)의 안내문인 내표(內票)를 넣는다. 그러나 일부 유명 상점의 제품들은 관리소홀(管理疏忽)로 인해 출하된 보이차가 내표만 있고 내비가 없는 사건이 발생되기도 했다. 이 바람에 이들 유명 상점들의 이름을 위조한 가짜 내비를 붙인 모조품(模造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 보이차의 포장을 죽순 껍질로 하는 이유
보이차의 포장재질(包裝材質)을 죽순껍질로 하는 이유는 운남성의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대나무는 굵고 단단하며, 죽순껍질의 잎이 크면서 인성(引性)이 강하다. 섬유질이 강한 죽순껍질은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고 내구력이 우수한 동시에 습기를 방지하고 잡냄새를 여과(濾過)시키는 기능이 탁월해서 보이차를 포장하는데 제일 적당한 재료인 것이다.
3) 동경원차(同慶圓茶)
동경호(同慶號) 차 가게는 1736년 이무(易武)에 모차공장(毛茶工場)을 설치하였는데 공장 규모와 생산량도 이곳 지역에서 가장 컸으며, 그 역사도 오래되어 200여년을 자랑하였다. 개점 이후 약 200년 간 줄곧 동경노호(同慶老號)로 대표되는 용마(龍馬) 상표의 내표와 내비는 200년을 사용한 후 1920년에 쌍사기도(雙獅旗圖)로 고쳤다. 그 후 1950년 중국정부가 운남의 모든 차가게를 국유화(國有化)시킬 때 휴업하였다. 따라서 1950년대 폐업 이전 동경호(同慶號)의 모든 제품은 가장 좋은 이무산(易武山)의 야생 대엽종 찻잎, 일쇄(日 ), 건창(乾廠)의 정통 제다법으로 만들어져 당시 품질이 가장 좋은 차로 알려지고 있어 오늘날 최고의 보이차 제품이 되고 있다.
동경호의 명성이 높아지자 당시 사용했던 용마상표인 내표를 본뜬 위조품이 나돌기 시작하여 1920년 8월부터 내표의 모양을 쌍사기도로 변경하게 되는데 1920년 이전 용마상표를 내표로 사용했던 동경호를 "동경노호(同慶老號)"라 하고, 폐업할 때까지 사용했던 쌍사기도를 내표로 사용했던 동경호를 통상 "동경호(同慶號)"라고 부른다. 동경노호의 용마 상표 원차(圓茶)는 종류가 많았으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제품들은 제일 오래된 2∼3종의 보이차 제품 중 하나이며, 그 차의 햇수는 근 100년에 가깝기 때문에 차상인들에게서는 청나라 말기 국보급(國寶級)의 백년보이(百年普 )라고 알려지고 있다.
동경노호는 매년 3월 이무산의 3∼5등급의 어리고 부드러운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다. 둥근 형태에 직경은 약 20cm, 무게는 340g이며, 오랜 기간의 저장을 거치면서 차의 겉면은 짙은 밤색을 띈다. 대엽종(大葉種)의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가는 줄의 줄기가 섞여 있고, 찻잎의 줄기는 길고 가늘면서도 견실하며, 이런 찻잎 사이에는 발효가 잘된 황금색의 어린 차싹도 섞여져 있다. 원차의 중심은 넓은 편이며, 주먹으로 눌러 찍어낸 것 같은 불규칙적인 원형이다.
동경노호는 대체로 일곱 개의 원차(圓茶)를 묶어 죽순껍질로 포장을 하는데 제일 위층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차 사이에 내표를 넣는다. 원차의 뒷면에 붙어 있는 5*3cm 크기의 내비(內飛)는 나무로 새긴 원판으로 만든 붉은 색 도안과 글씨을 흰색 종이에 인쇄했으며, 내비의 디자인은 두 줄의 타원형 둘레 속에 내용을 담았다. 내표의 상단에 "운남동경호(雲南同慶號)"란 글씨가 크게 쓰여 있고, 중앙 부분에는 백마(白馬), 운용(雲龍), 보탑(寶塔) 등의 그림, 하단에는 내표의 내용을 기재했는데 내비의 내용과 똑 같다.
동경노호원차(同慶老號圓茶)는 매 하나의 통마다 죽순껍질 포장이 되어 있는데 이런 죽순껍질은 운남의 큰 대나무 죽순(竹筍) 줄기의 겉껍데기에서 생산된다. 운남은 토지가 비옥하여 대나무가 굵고 단단하며, 죽순과 죽순껍질이 크면서 인성(引性)이 특히 강하다. 또한 죽순껍질의 섬유(纖維)는 강인하고 내구력이 있어 못쓰게 되거나 조각조각 부서지지 않는 동시에 습기를 방지하고, 잡냄새를 여과(濾過)시키는 기능이 있어 보이차 포장재(包裝材)로 가장 적당한 재료이다. 중급이나 저급의 죽순껍질은 오래되면 끊어지고, 좀벌레, 곰팡이들이 생겨 제품의 품질을 손상시키는데 반해 좋은 죽순껍질은 오랜 기간을 거쳐도 끊어지지 않고, 깔끔하며, 제품의 품질을 변형시키지 않으므로 동경노호(同慶老號)는 제일 좋은 죽순껍질로 겉포장을 한다.
죽순껍질 겉포장의 꼭대기 표면 정 중앙 내리 줄에는 붓글씨로 동경호(同慶號)자가 크게 쓰여져 있고, 오른쪽과 왼쪽에는 각각 금빛 붉은 색 주사로 이무정산(易武正山), 양춘눈첨(陽春嫩尖)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상단 부분에는 가로 글자인 양춘(陽春)이 쓰여져 있고, 금빛 붉은 색 주사로 사용했으며, 이 모든 글자는 해서체(楷書體)로 되어 있다.
한편 근 100년이 된 보이차이나 완전하게 보관된 동경원차(同慶圓茶)의 옛 종류는 많지만 현재 대부분의 동경노호원차는 대만의 보이차 수장가(收藏家)들이 보관하고 있다. 지금 접할 수 있는 것은 1920년 이후의 제품으로 그나마 수량도 몇 통밖에 안되고, 죽순껍질로 포장된 제품은 없으며, 거의 하나로 된 단병(單餠)이다.
4) 경창원차(敬昌圓茶)
경창호(敬昌號) 차가게는 중화민국(1912∼1949) 초기 운남성 강성(江城)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보이차 가게 중의 하나였다. 경창원차는 만새다산의 가장 좋은 찻잎을 채집하여 만드는데 대엽종(大葉種)의 차나무로 가지는 굵고 견실하며, 찻잎의 크기가 넓고 크다. 특히 찻잎은 마치 차기름에 담가두었던 것처럼 기름진 빛이 가득하고, 황금빛의 솜털이 있다. 만새산은 라오스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이무산(易武山)의 북쪽 산을 가리키므로 만새다산의 찻잎 품질은 이무다산 다음가는 으뜸이다.
가벼운 녹나무 향기에 차맛이 극도로 부드럽고 매끄러워 입안에 들어가면 즉시에 녹아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보이원차 제품 중에서도 으뜸이다. 덩어리의 직경이 20.5cm, 무게가 약 330g인 경창원차(敬昌圓茶)는 중화민국 30년대 제품으로 압축제조 기술이 정교하고 규칙적이며, 가장자리의 두께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덩어리의 표면은 고르면서 풍만하므로 보이원차 중에서 외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다. 각 덩어리에는 내비(內飛)가 한 장씩 있는데 타원형의 도안이 동경노호(同慶老號)의 내비 디자인과 매우 유사하다. 각 통포장 내의 내표(內票)는 백색의 바탕에 초록색의 서화로 된 찻잎 따는 그림과 글씨가 있는데 글씨체는 절제된 해서체로 오른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가로로 썼으며, 구도가 아름다워 예술적 가치가 아주 풍부한 내표이다.
예로부터 운남성의 개인 차가게에서 만든 보이차 제품 중에서 동경호와 경창호의 보이원차 제조공정과 기술이 가장 정교하고 우수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양자의 압축 제조기술, 통포장 기술, 사용한 죽순 껍질과 대쪽의 재료, 내비와 내표의 설계와 인쇄, 저장 방법 및 관리 등 모두 수준급이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제품을 두고 여타 보이원차의 품질을 평가하는데 있어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재의 보이차 시장에서는 두 제품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아주 우연히 만난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모조품이다.
5) 강성원차(江城圓茶)
강성지역의 만새다산의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로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보이차는 경창호(敬昌號)와 강성호(江城號)인데 강성호 또한 동경호나 경창호처럼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제품이 거의 없는 차다. 강성원차는 내비(內飛)가 없고, 내표(內票)만 있는 원차(圓茶)로 11*16cm 크기의 세로 장방형의 내표는 미색 바탕에 그림과 글씨는 흑색의 잉크를 롤프린터로 인쇄하였고, 여러 개의 다른 원판이 있었는데 여러 원판의 도안과 문자 내용은 완전히 같으나 글씨체와 서예의 필법(筆法)은 서로 달라 보이차의 내표 중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강성원차의 덩어리는 단단하며, 직경 19.5cm, 무게 약 320g의 대엽종으로 가지는 납작하고 길다. 빛깔은 밤색이 나는 황색에 차청(茶靑)은 반지르르하고, 약한 녹나무 향이 난다. 전체적으로 경창원차와 비슷하며 대엽종 보이 찻잎의 전형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차맛은 비교적 가벼우나 부드러우면서 순하고, 마시고 나면 진액(津液)이 생긴다. 경창원차의 자매품으로 1930년대 제품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마시면 느낌이 새롭고, 그 내표의 그림과 문자에 오성(五星)이 그려져 있으며, [정교하게 포장하여 경제를 번영시키자]라는 사회주의적 색체를 띤 어구를 보아 1950년대 제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6) 양빙원차(楊聘圓茶)
양빙호(楊聘號) 차가게는 대략 1922년경 의방진(倚邦鎭)의 큰 거리에서 개점하였으나 언제 폐점했는지는 자료가 없고, 다만 10여 개의 원차만이 남아 있어 양빙호 차가게의 역사적 증거물이 되었다.
양빙원차(楊聘圓茶)는 현재 거의 유통되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의방다구(倚邦茶區)의 소엽종(小葉種)으로 만든 보이원차라는 것이다. 의방다산(倚邦茶山)은 운남성 내에서 가장 먼저 소엽종 차나무를 재배한 다산(茶山)으로 운남성의 소엽종은 명(明)나라 말기 사천성(四川省)의 다농(茶農)들이 이곳 의방다산으로 이주해 올 때 소엽종 차씨를 가져와 재배했던 것이다.
의방(倚邦)의 소엽종 차맛은 대엽종(大葉種) 보이의 진하고 두터운 맛의 특성을 가지면서 소엽종의 청향(靑香)을 겸해 뒷맛이 달고, 매끄럽다. 또한 여린 것이 늙은 것 보다 향기롭고, 새 것이 묵은 것 보다 진하며, 싱싱한 것은 우려 마시기가 적합하여 청(淸)나라 북방 왕실의 입맛에 가장 잘 맞아 대부분의 공다(貢茶)는 소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에 보관되어 있는 국보급의 금과공다(金瓜貢茶)의 원료도 의방다산의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것이다.
양빙원차(楊聘圓茶)의 덩어리는 다른 보이원차 보다 비교적 작은 편이어서 직경이 19cm이며, 무게는 약 280g이다. 매 덩어리마다 5*6.8cm의 가로 내비가 한 장씩 있고,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된 문자 속에는 양빙호 등 33자가 적혀 있다. 덩어리 표면의 색깔은 어두운 밤색이고, 차의 가지는 가늘고 작으면서 줄기가 있으며, 윤기가 나는 누런 싹이 반지르르하다. 차탕(茶湯)은 청향(淸香)이 나고, 맑고 담박(淡泊)하여 차맛은 진하지 않으나 약간 신맛이 섞여 있어 의방 소엽종 보이차(普 茶)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닌 차이다.
7) 동흥원차(同興圓茶)
동흥호(同興號)의 원래 이름은 동순상호(同順祥號)로 중신행(中信行)이라고도 하였으며, 의방다구의 최고급인 만송채(曼松寨)의 소엽종 찻잎을 원료로 하였다. 동흥호원차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중화민국 10년부터 23년 사이의 제품인 동흥조기원차(同興早期圓茶)로 품질이 우수하나 워낙 수량이 적어 모조품이나 가짜도 볼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동흥후기원차(同興後期圓茶)로 중화민국 23년부터 38년 사이의 제품이다. 두 가지 모두 의방다산의 차제품이며, 차공장에서 나온 기간이 근 20년 간의 차이가 나지만 두 가지 차의 성질이 서로 같아서 동흥호 차가게의 상품관리가 아주 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기와 후기로 구분한 것은 등시해 교수가 구분하였다고 한다.
8) 동창원차(同昌圓茶)
동창호(同昌號)는 1869년에 창립되어 청나라 말기에 폐업(閉業)하였다. 그 후 1920년경에 많은 차가게들이 이무다구에 창업하거나 재개업할 무렵에 동창호도 이무대가에서 재창업하여 이무정산보이차를 생산하였다. 1930년대에 상인인 황문흥(黃文興)이 차가게를 인수받아 운영하였는데 동창호의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다가 중화민국 38년에 동창황기(同昌黃記)로 바뀌면서 주인 이름인 황문흥 대신에 황금당으로 쓰고, 내비 낙관도 "동창황기주인근백(同昌黃記主人謹白)"으로 바꾸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황문흥의 동창원차(同昌圓茶), 동창황기남원차(同昌黃記藍圓茶), 동창황기홍원차(同昌黃記紅圓茶)가 있다. 동창원차와 동창황기남원차는 외관이 거의 같고, 색택과 유광(油光)도 같으나 동창황기홍원차는 원차철병의 하나로 단단하게 눌러 만든 것으로 경창원차의 미관을 많이 닮았으며, 차의 진화상태나 차운(茶韻) 등으로 보아 197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 정흥원차(鼎興圓茶)
운남보이원차(雲南普 圓茶)를 생산하는 가게를 두 종류로 나누면 대중적이며 저렴한 가격의 보이차를 만드는 양빙호(楊聘號), 홍태창호, 동창호(同昌號) 등과 전문적인 고급 보이차를 만드는 동경호(同慶號), 경창호(敬昌號), 정흥호(鼎興號)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흥호(鼎興號)의 차가게는 고급 보이차를 생산하여 유명하였으며, 현재 이 가게의 남겨져 있는 제품은 많지 않다.
원차(圓茶) 세 가지와 긴압차(緊壓茶)가 있는데 원차는 내비(內飛)의 색깔로 구분한다. 원차의 내비(內飛) 색깔은 홍색(紅色), 남색(藍色), 자색(紫色)의 서로 다른 세 가지 글자색이 있는데 홍색과 남색 글자로 된 내비가 있는 두 가지 원차는 품질이 비슷하며, 묵은 햇수도 같은 60년 전후이다. 덩어리의 색깔은 암홍색에 진하며, 가지는 단단하게 감기고, 표면은 광택이 있다. 두께는 얇은 편이며, 경미하게 익힌 차청(茶靑)으로 야성(野性)의 녹나무 향이 있고, 보이차 중 가장 진한 차향기를 지녔다. 차청은 맹해(孟海) 주위의 소엽종(小葉種) 다원에서 나온 것으로 유락산(諛樂山) 남산(南山)기슭 일대의 소엽종이다.
그러나 자색(紫色)의 글자로 된 내비가 있는 것은 원차의 품질이 앞의 두 가지 차보다 떨어진다. 늙은 차청(茶靑)에 가지가 느슨하고, 누런 잎이 섞였으며, 덩어리가 푸석푸석하고 두터워서 보이차 중 덩어리가 가장 두터운 것의 일종이다. 정흥원차는 담백한 맛에 약간 신맛을 띄며, 차찌꺼기나 수성으로 볼 때 의방보이차(倚邦普 茶)의 특색으로 볼 수 있다.
10) 송빙원차(宋聘圓茶)
청(淸)나라 광서(光緖) 초에 창업한 송빙호(宋聘號)는 보이차 대량생산 차창으로 유명하며, 전리정(錢利貞)이란 상호를 건리정(乾利貞)으로 바꾼 건리정호(乾利貞號)와 합병하여 일반품질의 보이차 시장을 개척하여 저가품 위주로 생산 판매하였다. 이로 인해 과거의 고급 송빙호 제품은 수량이 적어 수장가에게 수장되어 잇고,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송빙호는 거의가 보통 품질이거나 가짜이다.
다른 차에 "백년송빙보이(百年宋聘普 )"라는 내비를 변조하여 바꿔치기를 하였는데 특히 무지녹인으로 많이 변조하였으며, 홍콩의 지점인 복화호(福華號)에서도 홍콩에서 생산된 차에 본점의 내비와 내표를 붙여 팔았다. 또 변경보이차청을 사용한 차에 위조한 내비 내표를 넣은 가짜를 유통시키는 일이 많아 시중에서는 5∼6가지 이상의 가짜 송빙호가 유통되는 등 안팎으로 혼란을 겪어 진품과 위조품의 구별이 어려운 실정이나 건리정송빙호(乾利貞宋聘號)에서 생산된 진품의 우량보이차는 극품(極品)으로 알려져 있으며, 차성(茶性)과 외관은 동경호(同慶號)와 비슷하다고 한다.
11) 긴차(緊茶)
처음에는 덩어리로 만든 차는 모두 긴압차(緊壓茶)라고 했으나 후에 원차(圓茶), 타차( 茶), 긴차(緊茶), 방차(方茶) 등으로 세분되었다. 심장(心臟)모양의 긴차를 처음 만든 곳은 불해이며, 주로 티벳 사람들을 위한 전통적인 차로 "보염패(寶焰牌)"라는 상표로 7개를 한 통으로 포장하여 판매하였다. 처음에 만든 긴차(緊茶)는 너무 단단하게 긴압(緊壓)되어 안쪽에 곰팡이가 피고, 장거리 운송에도 적합하지 않아 불해(佛海, 중국의 인민정부 수립 후 맹해( 海)로 그 지명이 바뀌었음)에서 이를 개선하여 자루가 달린 심장모양(긴차는 심장모양보다는 표고버섯 모양이 더 적합한 표현으로 생각된다)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긴차로는 말대긴차(末代緊茶)로 불리는 정흥호(鼎興號)에서 만든 정흥긴차, 맹경차창(猛景茶廠)에서 만든 맹경긴차를 들 수 있으며, 1964년 경제적 이유로 긴차 생산을 중지하고 벽돌 모양의 전차를 생산하도록 했으나 1980년대 후반에 하관차창을 방문한 티벳의 제10대 판첸라마의 요청으로 다시 생산한 반선긴차(班禪緊茶)가 유명하다.
① 정흥긴차(鼎興緊茶)
긴압차(緊壓茶)인 정흥긴차는 운반하기 편하도록 심장(心臟) 모양으로 만들어진 숙차(熟茶)로 불해(佛海)지구의 정흥차 가게에서 생산한 것이다. 불해는 지금의 보이차 생산 중심인 맹해(孟海)이다. 정흥호 차가게는 1949년 전의 상회(商會)로 운남에서 명성이 있었고, 지금도 이 차가게에서 만들었던 좋은 원차(圓茶)들이 남아 있다. 차의 덩어리는 매우 단단하고, 진한 붉은 색에 광택이 나며, 여린 찻잎으로 만들어졌다. 긴차(緊茶)의 내비에는 성월위기(星月爲記)의 표기와 별과 달의 그림이 있고, 당시에 생산된 제품은 서북성에 운반되어 이슬람교의 변강(邊疆) 민족에게 팔렸으며, 동시에 영문으로 써서 먼 중동의 회교도(回敎徒) 국가에까지 운반되었다.
탕색(湯色)은 짙은 밤색이며, 찻가루가 얼마간 있어 차를 우려 마실 때는 여과(濾過)를 시켜야 한다. 수성이 순수하고 두터워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감각이 있고, 찻물이 입에 들어가면 두텁고 유순하다. 순수하고 달콤한 차맛은 짙고 매끌매끌하며, 상쾌하다. 차향은 침향(沈香) 향기가 짙고, 그 속에 담박한 녹나무 향기가 있다.
② 맹경긴차(猛景緊茶)
맹경긴차는 맹농(猛弄)지방의 맹경(猛景) 차창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맹농은 운남성 보이진(普 鎭)의 동북 방향에 있는 맹농촌인데 맹고(猛雇), 봉산(鳳山)과 더불어 운남성 중부의 차산지이다. 맹경긴차는 늙은 차나무의 생엽(生葉)을 쇄청( 靑)하여 만들며, 건조한 창고에서 오랫동안 저장한 것으로 차 덩어리는 이미 말라 터져서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되었고, 어떤 것은 껍질이 말라 떨어져 있다. 무게는 200g 정도이고, 우려내면 엷은 장향(樟香)이 향기롭고 잡냄새가 없으나 오랜 세월동안의 저장으로 잡미(雜味)가 조금 감염된 듯 하며, 늙은 차청이라서 오랫동안 우려 낼 수는 없다. 탕색은 붉은 밤색이며, 비교적 가루가 많아 우려 낼 때 여과를 시켜야 한다. 한편 등시해 교수는 근래 시중에서 유통되는 내비가 있는 맹경원차는 신차수(新茶樹)의 관목(灌木) 찻잎으로 경미하게 발효시켜 압제한 10년 정도의 차로 습창(濕倉), 매변( 變), 가속진화(加速陳化)시킨 것으로 모방품(模倣品)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하였다.
③ 반선긴차(班禪緊茶)
대리(大理) 하관에 차공장을 건설한 주요 원인은 보이차를 티베트 등 서역(西域) 지방에 운반하여 판매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티베트는 차 마시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어 있는데 순수하고 짙은맛이 나며, 차성(茶性)이 강한 생긴차(生緊茶)가 그들의 식습관(食習慣)과 어울렸다. 그러나 70년대 쾌속 발효제다 공정의 연구가 성공한 뒤로 그러한 맛의 보이차 맛을 잃어 버렸는데 1986년 10월에 티벳의 종교 지도자 반선(班禪 : 티벳의 종교지도자 판첸라마의 중국식 표기)이 친히 하관차창(下關茶廠)을 방문하여 참관하고 옛 보이차 맛을 아쉬워하자 하관차창에서 반선(班禪)을 위해 한차례의 생긴차(生緊茶)를 제조하여 "보염패(寶焰牌)"라는 내비를 붙여 생산하였다. 티벳에 불사(佛寺) 전용으로만 납품하고 대외 판매는 하지 않았으나 몇 년이 지난 후 재고품이 소량 남아 있다가 일부 수장가들에게 판매되었다.
반선긴차는 새 차나무 관목(灌木)의 2급 차청(茶靑)을 사용하여 생차공정으로 긴압성형한 긴차로 차 덩어리가 매우 단단하고, 덩어리 표면은 짙은 밤색이고, 속은 푸른 밤색이다. 푸른 잎의 향기를 보존하였고, 수성이 엷고 날카로우며, 쓰고 떫은 전형적인 생보이차 제품이다. 나중에 티벳 지역의 요구에 따라 80년대 말에 운남성다엽진출구공사 하관차창에서 계속 화염패(火焰牌) 반선긴차를 제다하여 서북지구에 공급하였으며, 현재 하관차창에서 일정한 수량을 생산하고 있다.
12) 홍인(紅印)
홍인은 이름 그대로 차를 포장한 종이의 가운데에 붉은 인기(印記)로 팔중차(八中茶 : 8개의 "中"자를 둥글게 둘러 인쇄함)의 중차공사(中茶公司) 표시가 있는데 정중앙에는 붉은 색으로 된 "차(茶)"자가 찍혀 있다. 즉 겉면 종이의 가운데 "차(茶)"자는 8개의 "중(中)"자로 둘러싸고, 가장 위쪽에는 "중국차업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業公司雲南省公司)"가 있으며, 아래쪽에는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라는 글자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찍혀 있다. 가운데 "차(茶)"자를 붉은 색으로 표기한 것은 찻잎의 원료가 생산된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서이며, 붉은 색은 맹랍지방( 臘地方 : 이무다산(易武茶山) 대엽종 찻잎 생산지역)의 찻잎이고, 푸른색은 맹해( 海) 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이다. 이후 속칭 붉은 색의 "차(茶)"자는 홍인보이차(紅印普 茶) 혹은 홍인(紅印)이라 하고, 푸른색의 "차(茶)"자는 녹인(綠印)이라고 하였다.
홍인원차는 1938년 중국차업공사(中國茶業公司)에 초빙(招聘)되어 온 범화균(范和鈞) 선생에 의해서 제다되었다. 선생은 파리 유학파로(파리대학 수학과 졸업) 귀국한 후 운남에 파견되어 불해 차공장의 건립을 계획하게 된다. 1940년에 불해(佛海 : 현재 맹해( 海)의 옛 지명)에 임시로 공장 건물을 세우고 민간에서 차청(茶靑)을 사들여 처음으로 보이차를 제조하였다. 범화균 선생은 불해 차공장을 계획할 때 2백여년 전의 최상품 보이차의 전통을 이은 정통적인 최상품의 보이차를 만들어 중차회사(中茶會社) 본점으로 운반한 후 전국 망을 통해 유통 판매하는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중일전쟁(中日戰爭)과 중화민국(中華民國)에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으로의 정권교체 등 나라 안팎의 혼란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비록 최상품의 차를 만들려는 숙원(宿願)은 이루지 못했으나 그때 시험 제다하여 성공한 홍인보이원차(紅印普 圓茶)와 홍인운남타차(紅印雲南 茶)는 최고의 질 좋은 차청(茶靑, 이무다산의 대엽종 찻잎)과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제다한 우수한 보이원차(普 圓茶)로 근대(近代) 보이차 중에서 최상품 차로 인정받고 있다. 홍인은 1940년에 불해차창의 임시 공장에서 출하된 후 1950년대 말기까지 계속 생산되었으며, 불해차창은 정권교체 후 인민정부에서 인수하여 관리하면서부터 1953년에 맹해차창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1940년대 국민당(國民黨) 시절에 생산된 조기홍인(早期紅印)과 195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시절에 생산된 후기홍인(後期紅印)으로 나뉘어진다. 조기홍인은 질이 좋은 최고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져서 품질이 우수하나 후기홍인은 초기에 비해 품질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조기홍인과 후기홍인은 겉면의 포장 종이에 찍힌 도안과 문자를 통해 확실하게 구별할 수가 있다. 홍인원차(紅印圓茶)의 인쇄는 목각판화를 사용했는데 조기홍인은 "팔중차(八中茶)" 글씨체가 굵은 반면에 후기홍인은 비교적 가늘고 수정된 칼자국이 보인다. 이는 후기홍인을 생산할 때 판화 글자체의 가장자리 일부가 부서져서 떨어져나가 부득이 목각원판을 수정하였으므로 글씨체의 굵기가 가늘게 되었고, 칼자국이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비(內飛)의 "차(茶)"자도 조기홍인은 짙은 녹색이나 후기홍인은 다소 연한 녹색이다.
통포장의 얼룩조릿대 껍질을 보면 조기홍인은 굵고 쇤 껍질을 사용했기에 재질이 비교적 두텁고 단단하며 색깔이 짙고, 찻잎은 어린 찻잎을 사용하여 만들어져 난초향이 난다. 그러나 후기홍인은 부드러운 껍질을 사용하여 여리면서 얇고, 색깔은 비교적 엷은 편이며, 찻잎은 중장년급으로 만들어진 관계로 짙은 녹나무 향기가 난다.
홍인보이원차(紅印普 圓茶) 진품의 찻잎은 크고 알차며, 줄기는 포만하고 색깔은 붉은 밤색이다. 표면이 반들반들한 윤기가 나고, 탕색이 붉고 선명하며, 차찌꺼기는 유연하고 싱싱하며, 두꺼비 껍질 모양으로 되어있다. 팔중차내비는 차 덩어리 속에 묻혀있고, 구식의 모형으로 압축하여 제조하였기 때문에 중앙 부분이 부풀어 배꼽이 있는 것 같으며, 난초향기나 야생 녹나무 향기가 있다.(조기홍인은 어린 차청을 사용하여 난향(蘭香)이 나고, 후기홍인은 중·장년급 차청을 사용하여 강한 야장향(野樟香)이 난다고 한다.)
후기홍인은 조기홍인에 비해 품질은 떨어지나 숙성(熟成)된 기간이 40∼50년 되었으며, 야생 찻잎에 건창범(乾倉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수한 보이원차이다. 오늘날 보이차 시장에서 적지 않은 가짜 홍인(紅印)이 유통되고 있는 것은 1949년부터 홍콩으로 운반해 팔았던 홍인원차(紅印圓茶)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되자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의 정치적 격동기에 포장되지 않고 상표도 없이 대나무 광주리나 큰 나무상자에 넣어 각지로 운반하여 팔았던 보이차를 홍인 겉포장지로 새로이 포장한 후 속여 판매한 때문이다.
운남중차공사(雲南中茶公司)에서 생산한 보이차는 종류가 아주 많고 과거 여러 해 동안 제조한 제품은 모두 팔중차 표지를 달았다. 그 중에서 홍인보이원차(紅印普 圓茶)와 홍인운남타차(紅印雲南 茶)의 포장에만 붉은 색의 "차(茶)"자를 사용했으며, 붉은 색은 1950년대 이래 특별히 민감한 색채에 속하였기에 그로 인해 홍인보이원차의 시대적 가치와 색채를 더해주어 특별하게 대우받게 되었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는 1980년대에도 1950년대의 홍인과 포장이 같은 차를 생산하였는데 이 차는 8892홍인원차라고 부른다.
한편 소홍인(小紅印)이라 불리는 보이원차는 홍인철병(紅印鐵餠)을 말하는 것으로서 1950년대 초 운남성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개량식 금속제의 압축 모형으로 만든 보이원차(普 圓茶)로 원차철병(圓茶鐵餠)이라고도 하며, 찻잎은 맹해차창에서 고급 찻잎을 가져와 만들었다. 원차철병의 품질은 조기홍인과 후기홍인의 중간쯤이고, 차의 향기는 후기홍인의 야생 녹나무 향을 닮았다. 금속으로 압제(壓製)하여 덩어리가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서 공기 중의 수분과 접촉이 적어 진화가 매우 느렸으며, 또한 산소가 결핍된 상황에서 진화되었기에 맛이 신선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쨩유화 교수는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이라는 글에서 홍인의 겉 포장지에 새겨져 있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의 전신은 운남중국차엽무역공사(雲南中國茶葉貿易公司)이며, 중국이 공산화된 다음해인 1950년 9월 경 공산정권에 의해 개명(改名)되어 새로이 탄생된 회사이다. 그리고 '팔중차(八中茶)'라는 도안은 1951년 초 중국차엽공사(中國茶葉公司)가 {상해해방일보(上海解放日報)}와 {대공보(大公報)} 등 신문 게시판을 통해 공사의 상표 도안(圖案)을 공개적으로 공모(公募)하였는데 이때 화동공사(華東公司) 직원인 조승후(趙承煦)가 설계한 8개의 붉은 '중(中)'자로 둥글게 원을 만들어 그 중앙에 녹색으로 '차(茶)'자를 새긴 도안이 최종 낙점되었다. 중국차엽공사는 1951년 12월 15일 이 도안을 당시 중국의 상표등록처인 중앙사영기업국(中央私營企業局)에 상표등록(商標登錄)을 하여 심사를 거쳐 인정서(認定書)를 받았는 사실에 근거하여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의 설립과 팔중차 로고에 대한 설명을 통해 등시해 교수의 조기홍인과 후기홍인의 구분에 대해 1940년대에는 홍인의 생산이 없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13) 녹인(綠印)
녹인보이(綠印普 )는 홍인보이(紅印普 )와 마찬가지로 겉면의 포장 종이에 찍힌 팔중차(八中茶) 표기의 가운데 찍힌 "차(茶)"자가 녹색이라서 불려진 이름이다. 홍인의 자매 제품으로 1940년대의 조기녹인(早期綠印)과 1950년대의 후기녹인(後期綠印)의 두 가지가 있는데 범화균(范和鈞) 선생이 맹랍지방의 가장 좋은 차청(茶靑)으로 홍인(紅印)을 만들고, 다시 맹해 부근의 좋은 차청을 사들여 녹인(綠印)을 제다하였다.
조기녹인원차(早期綠印圓茶)는 녹인갑을원차(綠印甲乙圓茶) 또는 갑을녹인(甲乙綠印)이라고도 하는데 조기홍인(早期紅印)보다는 그 맛이 떨어지나 후기홍인(後期紅印)보다는 부드럽고 떫지도 않다. 후기녹인(後期綠印)은 무지녹인(無紙綠印 : 포장지(包裝紙)가 없는 녹인(綠印)을 말함), 대자녹인(大字綠印), 소자녹인(小字綠印) 등의 세 가지가 있다.
① 조기녹인(早期綠印)
1940년 범화균(范和鈞) 선생이 운남성 불해에 임시로 공장 건물을 세우고 민간인들로부터 품질 좋은 차청(茶靑)을 사들여 처음으로 보이원차를 제조하였는데 그 중에서 시험적으로 제조하여 성공한 보이차는 홍인보이원차(紅印普 圓茶)와 녹인보이원차(綠印普 圓茶)이다. 홍인(紅印)은 이무(易武)의 가장 좋은 찻잎으로 만들었으며, 녹인(綠印)은 맹해( 海) 일대에서 나는 질 좋은 찻잎으로 만들었다.
조기녹인(早期綠印)은 이무와 맹해에서 수거된 찻잎 중에서 으뜸의 찻잎을 나누어 갑급(甲級)과 을급(乙級)의 두 가지 형태로 만들고자 했으나 관리상 허점이 생겨 사들인 찻잎이 품질에 관계없이 한꺼번에 쌓여 이로 인해 찻잎을 급별(級別)로 나눌 수가 없게 되자 찻잎의 품질에 관계없이 만들어 홍인일급(紅印一級), 녹인일급(綠印一級) 등으로 판매하게 되었다. 이때 대량의 녹인원차(綠印圓茶) 겉포장 종이에는 처음의 의도대로 갑급, 을급으로 이미 인쇄가 되어 있어 부득이 임시 방편으로 갑급, 을급이란 글자를 파란 잉크로 칠하여 녹인원차의 등급을 없앴는데 후일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남인보이원차(藍印普 圓茶)라고 하였다.
40∼50년이 지난 오늘날 칠했던 잉크가 퇴색(退色)되어 갑급과 을급의 글자가 드러나자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갑, 을 모두 같은 제품으로 다만 당시 차공장에서 갑급(甲級)이 인쇄된 포장 종이를 먼저 소비한 후에 을급(乙級)이 인쇄된 포장지를 사용했을 것이므로 갑급녹인(甲級綠印)의 진화 시간이 좀 더 길어진 것으로 추측되나 이는 심리적인 제조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녹인갑을원차(綠印甲乙圓茶) 또는 남인보이원차(藍印普 圓茶)라고 불려지는 조기녹인은 녹나무 향기가 있고, 차의 묵은 맛이 상당히 좋으나 가격은 홍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보이차의 저자인 등시해 교수는 갑을녹인의 상당수가 매변현상이 있고 매변을 입은 차는 대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있으므로 구입시에는 차를 쪼개어 상태를 확인하고 시음(試飮)한 다음에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② 후기녹인(後期綠印)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당경양(唐慶陽)선생이 불해차창(佛海茶廠)을 인수하여 관리한 후 불해차창을 맹해차창( 海茶廠)으로 개명하였는데 이때 만들어진 녹인후기원차(綠印後期圓茶)를 후기녹인(後期綠印)이라고 하며, 차의 품질 면에서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기에 이르기까지 맹해차창에서 만든 모든 보이차는 녹인(綠印) 상표의 표지를 달았기에 상당한 수량의 보이차가 생산되었다.
같은 상표로 만들어진 후기녹인(後期綠印)은 그 찻잎과 품질 면에서 차이가 많은데 이는 맹해차창에서 매년 수매한 찻잎의 품질과 각 지방에서 생산한 찻잎의 질이 서로 달라 나타난 현상이다. 더욱이 1960년대 이후 인공재배 관목형 차나무가 등장함에 따라 새 다원이 옛 자연산 교목(喬木)을 관목(灌木)으로 대체하고 관목형 차나무의 찻잎으로 대량의 원차(圓茶)를 생산한 것도 원인이다. 따라서 오늘날 보이차 시장에서 관목형 찻잎으로 만든 녹인원차(綠印圓茶)를 가리켜 "녹인미(綠印尾)"라고 부르며, 1950년대 초기에 생산한 겉 포장지가 없는 조기녹인(早期綠印)을 가리켜 "녹인두(綠印頭)"라고 부른다.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녹인원차의 명칭은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녹인원차의 상표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구나 1973년 보이차의 쾌속진화, 퇴적발효 제조공정 기술인 습창법(濕倉法)의 연구가 성공되자 칠자병차(七子餠茶)는 여러 등급의 관목형 찻잎을 섞어 습창법으로 숙병(熟餠)을 만들어 판매하였다. 한편 녹인미(綠印尾)는 비록 관목형(灌木形) 찻잎으로 만들어졌으나 정통공법인 건창법(乾倉法)의 방식으로 제조된 청병(靑餠)이기에 품질면에서 칠자병차의 숙병(熟餠)보다는 낫다.
㉮ 소자녹인원차(小字綠印圓茶)
보이차 시장에서 자료도 기록도 없는 소자녹인원차를 볼 수 있는데 수량은 많지 않으며, 겉포장지의 글씨체 및 도안과 문자는 원차철병(圓茶鐵餠)의 겉포장지와 똑같다. 일반 원차(圓茶)보다는 크기가 작아 직경이 약 20cm 정도이며, 정통 압축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글씨체는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주로 사용한 미술체(美術體)로 인쇄되어 있기에 하관차창에서 생산된 제품일 경우 하관차창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찻잎은 봉산(鳳山)일대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원차(圓茶)의 내비(內飛)는 맹해차창( 海茶廠)의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 바 대체로 하관차창의 제품은 맹해의 찻잎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므로 이러한 의문점이 나타나자 많은 보이차인들이 이 제품이 혹시 포장지 없는 녹인(綠印)으로 만든 모조 보이차 제품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하관차창 또는 맹해차창의 제품인지를 막론하고 이 제품의 질은 상당히 좋다. 야생 교목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청병(靑餠)에 건창법(乾倉法)으로 저장되었기에 소자녹인원차(小字綠印圓茶)는 자연적인 차향(茶香)이 많이 나는 신선하고 좋은 보이차라고 할 수 있다.
㉯ 대자녹인원차(大字綠印圓茶)
대자녹인원차는 1950년대 초반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생산되었던 무지녹인(無紙綠印 : 포장지 없는 녹인)의 후속 제품으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생산되었으며,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가 출현할 때까지 만들어졌던 보이차이다. 1950년대 말∼1960년대 말까지 맹해차창에서 만들어진 차는 홍차(紅茶), 녹차(綠茶), 보이원차(普 圓茶)이며, 이중 보이원차는 후기홍인(後期紅印), 대자녹인원차(大字綠印圓茶)가 만들어졌는데 특히 대자녹인원차가 주력 상품이었다. 같은 시기에 생산되었던 후기홍인과 대자녹인은 같은 종류의 인쇄판 모형과 글씨체를 사용하였으므로 두 제품의 도안과 문자는 거의 같다.
10여년 동안 생산되었던 대자녹인은 찻잎의 출처가 매우 광범위하여 찻잎의 품질에 따라 생산된 차의 질적 차이가 매우 컸다. 차의 향기만 말한다면 찻잎의 출처에 따라 난초향기, 녹나무향기, 청향 등 각종 보이차의 향기들을 모두 포함했으며, 특히 품질에 따라 차의 맛(味), 차의 운(韻), 차의 기(氣)는 변화가 더욱 컸다. 따라서 같은 포장지로 포장된 대자녹인이라도 차성(茶性)의 품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일부 품질 좋은 대자녹인을 겉포장지를 벗겨 버리고 무지녹인(無紙紅印 : 포장지 없는 홍인)으로 속여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어 구입시 주의를 요한다고 한다.
㉰ 포장지(包裝紙) 없는 녹인(綠印)
1950년대∼1960년대 사이의 20년 간은 정치적 혼란기로 특히 1950년대 초반에는 많은 무명의 보이차 제품을 만들었다. 이 시절 제품은 모두 국가 소유였으며, 상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져 포장지를 절약하자는 취지(趣旨) 아래 포장하지 않은 채로 대나무 광주리나 큰 나무상자에 넣어 각지로 운반하여 팔았다.
맹해차창도 예외는 아니어서 1940년대에 인쇄되었던 갑을녹인(甲乙綠印)의 겉면 포장지를 모두 소비하자 당시의 시류(時流)에 따라 재차 인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때에 생산된 녹인원차는 모두 겉면의 포장지가 없었으며, 이러한 제품을 가리켜 무지녹인(無紙綠印 : 포장지 없는 녹인) 또는 녹인두(綠印頭)라고 불렀다. 이 제품은 1950년대 중반 대자녹인원차(大字綠印圓茶)가 출현될 때까지 생산되었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보이차 제품이다.
이 시대에 생산된 포장지가 없는 녹인의 제품 양은 상당히 많았고, 진화의 품질, 차성에 따라 큰 차이가 나므로 많은 상품이 유명상표의 포장지로 포장된 후 유통하게 된다. 특히 홍인(紅印)이 인기가 있자 많은 상품이 홍인으로 둔갑되었으며, 팔중차 내비(內飛)를 떼어 내어 초기의 보이차 제품으로 위장(僞裝)하여 팔았다. 더욱 심한 경우는 포장지 없는 녹인을 포장지가 없는 홍인이라고 속여 홍인원차(紅印圓茶)의 가격으로 대량을 팔았다. 이 중에 비교적 일찍 묵혀 빠르게 진화되어 부서진 것은 초기 홍인산차(紅印散茶)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따라서 포장지 없는 녹인은 고급 위조품 보이차를 만드는 데에 있어 최고 인기있는 제품으로 군림하게 된다.
한편 오늘날 포장지 없는 녹인원차(綠印圓茶) 중에서 당시에 사용되었던 찻잎과 저장보관이 뛰어난 원차가 발견되었는데 보이차업계에서는 이를 홍연원차(紅蓮圓茶)라고 부른다. 홍연원차는 맹해차창의 제품이며, 찻잎은 이무정산(易武正山) 3∼5등급의 어린 차싹으로 만들어졌다. 찻잎의 가지는 가늘고 길며, 금색의 차싹이 섞여 있고, 차 덩어리의 표면은 전형적인 포장지 없는 녹인의 색깔과 같이 반들반들하면서 회녹색(灰綠色)을 띄고 있다. 홍연원차(紅蓮圓茶)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압축 제조하였으며, 차 덩어리가 보통의 원차보다 넓고 크다. 그러나 차의 외관이 비교적 얇고, 둥근 형태가 규칙적이지 못하다. 차맛은 무겁고 매끌매끌하며, 약간 달면서 뒷맛이 부드럽고, 난초 향기가 난다.
14) 황인(黃印)
1950년대말 후기홍인(後期紅印)과 후기녹인(後期綠印) 이외에 중차패(中茶牌) 표지 가운데 "차(茶)"자가 황색(黃色)인 제품으로 덩어리가 큰 대황인(大黃印)과 덩어리가 작은 소황인(小黃印)이 있다. 황인은 현재 칠자보이병차(七子普 餠茶)의 전신(前身)이며, 배합차청(配合茶靑) 보이차 제품의 시작으로 제다과정 중에서 상당한 정도의 발효 효과를 내고, 구식의 모형 압축 제조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덩어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압축(壓縮)되었다. 또한 제조공정 중에서 어느 정도의 발효를 거쳤기에 보이차 원래의 향기가 소실되었고, 희미하게 녹나무 향기가 남아있다. 수성은 부드럽고 달며, 뒷맛 또한 달고 부드러워 차성은 보이숙병(普 熟餠)의 특색을 나타낸다.
황인(黃印)의 특징은 기존의 다른 원차(圓茶)는 한 가지 찻잎으로 만드는데 반해 여러 등급의 찻잎을 배합하여 만들어진다. 이를 개조차(改造茶)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인민공화국의 정권 아래에서 차의 판매를 촉진시키고, 상품의 유통을 증가하기 위해 제조된 제품이다. 오늘날 생산되는 보이차는 모두 등급이 다른 찻잎의 배합방식으로 제조되는데 그 시초가 바로 황인원차(黃印圓茶)의 배합법이다.
황인(黃印)의 제조시 배합 비율을 보면 늙은 찻잎에 일정한 양의 어린 싹을 섞는 것이 특징으로 황인의 표면에 유난히 많은 어린 찻잎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어린 싹들이 진화(進化)를 거쳐 대부분 금황색(金黃色)으로 변한다. 따라서 황인의 덩어리 표면은 다른 원차보다 더욱 누른 색을 띄게 되므로 황색 "차(茶)"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15) 원차철병(圓茶鐵餠)
1950년대 초 중국다엽회사에서 소련과 신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판매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워 차 교역을 확대하게 되자 하관차창에서 러시아의 원조를 받아 공장을 증축하였고, 전통적인 보이차 압조(壓條) 기술을 개선하기 위하여 모두 금속으로 만든 압축 모형을 설계하여 개량하였다. 이 새로운 압축 모형을 사용하여 특별히 맹해차창의 차청을 가져다가 처음으로 원차원반을 압축 제조하였다. 그러나 이 원차원반은 덩어리가 너무 단단하여 쉽게 발효되지 않아 이후 새로운 금속모형의 생산을 중지하였고, 이 때 생산된 원차원반은 하관차창의 전무후무한 원차원반 제품이 되었다.
같은 년대의 다른 차보다 발효 속도가 느려 새로운 맛이 나며, 신선하고 달콤하며, 향기는 맑은 녹나무 향기가 난다. 건조한 창고에서 변질되지 않은 것은 차 덩어리 표면이 고르게 금황색을 띠고 반들반들 윤이 나며, 차 덩어리의 가장자리는 일부분이 떨어져서 울퉁불퉁하다. 변질된 차는 표면이 어둡고, 진한 색에 반들거림이 부족하며, 차 덩어리가 평평하다. 또 가장자리가 균일하고 단단하며, 두텁고, 덩어리를 쪼개어 보면 속층에 검고 푸른곰팡이가 있다. 그리고 덩어리가 느슨한 편이고, 검은 밤색이 나며, 깨어져 떨어져 있는 것은 습기찬 창고에서 보관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소홍인(小紅印)이라 불리는 보이원차는 홍인철병(紅印鐵餠)을 말하는 것으로서 1950년대 초 운남성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개량식 금속제의 압축 모형으로 만든 보이원차(普 圓茶)로 원차철병(圓茶鐵餠)이라고도 하며, 찻잎은 맹해 차공장에서 고급 찻잎을 가져와 만들었다. 원차철병의 품질은 초기홍인과 후기홍인의 중간쯤이고, 차의 향기는 후기홍인의 야생 녹나무 향을 닮았다.(차성(茶性)과 품질이 조기홍인과 후기홍인의 중간 정도에 따라 차향기도 조기홍인의 난향(蘭香)과 후기홍인의 야장향(野樟香)의 중간인 청장향(靑樟香)이다.) 금속으로 압제(壓製)하여 덩어리가 단단하고. 밀도가 높기에 공기 중의 수분과 접촉이 적어 진화가 매우 느렸으며, 또한 산소가 결핍된 상태에서 진화되었기에 맛이 신선하고 달콤하다.
16) 칠자철병(七子鐵餠)
칠자원반(七子圓盤)이라고도 하며, 1960년대 초기 곤명차창(昆明茶廠)에서 천주머니로 된 압축 모형 기계를 바꾸어 하관차창과 같이 전부 금속으로 된 압축 모형을 사용하여 칠자원반 보이차를 압축 제조하였다. 칠자원반은 내비와 통포장이 없으며, 차청(茶靑)은 곤명 일대의 차청으로 추정된다. 생차(生茶)로 만든 차였으나 건조상태가 미숙하고, 수분 햠량이 많아 아깝게도 대부분이 심한 곰팡이의 피해를 입었다. 차찌꺼기로 보아 중장기에 속하며, 품질은 2급 정도로 좋다. 차의 가지는 손으로 비빈 것이 확실하고, 길고 가늘고 균일하며, 생차 제다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검은색의 탕색에 수성은 두텁고 매끌매끌하며, 뒷맛이 달고, 물맛이 짙다. 차의 기가 강하고, 담박한 녹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이 차는 거의 전부가 매변( 變)의 피해를 입었으나 매변현상이 오래 되어 곰팡이 맛은 없고 니기향(泥氣香 : 흙냄새와 같은 향)으로 바뀌었다. 매변의 피해를 입은 보이차는 차에 일부 남아 있는 누룩균이 지방(脂肪)과 혈압(血壓)을 내리는데 좋고, 담(痰)을 삭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요조차(窈窕茶)라고 부른다.
17)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에 중국공산정부가 번잡하고 난해한 정통 한자 글씨체인 정자체(正字體, 번체자(繁體字)라고도 함)를 간소화하여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공표하자 녹인원차(綠印圓茶)의 포장지에 썼던 정자체는 모두 간체자로 고쳐졌다. 이때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라는 문구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로 고쳐졌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이러한 글씨체는 작아졌고, 영문글자와 함께 표기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칠자병차의 전신은 바로 녹인보이원차(綠印普 圓茶)라고 할 수 있으며, 보이차를 아는 사람들은 원차(圓茶)는 진년보이병차(陳年普 餠茶), 칠자병차(七子餠茶)는 현대보이차(現代普 茶)로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생산한 칠자병차 가운데 상당히 가치가 있는 두 가지 제품이 있는데 하나는 1970년대 한 가지 등급의 찻잎으로 만든 붉은 띠의 홍대칠자병차(紅帶七子餠茶)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에 여러 등급의 찻잎을 배합하여 만든 황인칠자병차(黃印七子餠茶)이다. 이 두 제품은 모두 재배형 관목나무의 찻잎으로 만든 것이나 다른 점은 붉은 띠의 칠자병차는 생차 제조방식인 청병(靑餠)에 건창법(乾倉法)으로 제조한 것인 반면에 황인칠자병차는 숙차(熟茶) 제조방식인 숙병(熟餠)에 습창법(濕倉法)으로 만든 것이다.
18) 복록공다(福綠貢茶)
복록공다는 운남성 봉산(鳳山)에서 자란 찻잎으로 태국의 방콕에서 만들어진 보이원차이다. 내표(內票)에는 "BANGKOK"이라는 영문과 "태경숭월로(泰京嵩越路)"라는 차창의 주소가 적혀있다. 이를 보아 태국의 변경보이로 여겼으나 내표 위에 [봉산(鳳山)의 작년 곡우(穀雨) 전의 춘차(春茶)]라고 쓰여 있어 이를 확인해본 결과 봉산은 태국에는 없었고, 과거 차를 생산하여 널리 이름이 알려진 운남성 중서부에 위치하는 곳이었기에 졸지에 태국보이에서 운남 명산의 보이로 탈바꿈하였다.
복록공다는 둥근 원형에 덩어리는 보통 것보다 조금 두텁고 무겁다. 각 덩어리에는 흰 바탕에 녹색 글자의 가로 장방형의 내비(內飛)가 있고, 규격(規格)은 5*7.5cm이다. 일곱 개를 한 통에 묶었으며, 매 통에는 흰 바탕에 붉은 글씨의 세로 장방형의 내표가 있다. 규격은 9*13cm이며, 윗면에는 공장주소가 영문으로 "369 SONGWAD ROAD TASAWALY BANGKOK"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차공장은 홍리양합공사(鴻利兩合公司)이고, 공장은 태국 방콕시에 있었다. 포장의 죽순껍질은 운남성 내의 죽산(竹山)의 생산품이며, 대나무 살대쪽으로 묶은 것은 깔끔하고 아름다우며, 차통 윗면의 죽순껍질에는 자색의 인쇄잉크로 "선압(選壓) 복록공다(福綠貢茶) 홍리공사독제(鴻利公司督製)"라고 찍혀있고, 글자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복록공다의 차청(茶靑)은 4, 5, 6급으로 잎은 두텁고 살이 쪘으며, 차의 가지는 쉽게 끊어지고, 떡덩어리는 푸석푸석하여 쉽게 부서진다. 봉산다산(鳳山茶山)은 해발 1700∼1800m이상이며, 이곳에서 자란 찻잎은 부드럽고 두터우며 크다. 수성은 순수하고 짙으나 매우 부드럽고 매끈매끈하며, 약간 쓴맛을 띄지만 뒷맛이 달며, 순수한 야생 녹나무 향이다. 다탕(茶湯)은 보이차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하며, 맛이 강하다. 봉산차(鳳山茶)의 성질은 남부 이무산차(易武山茶)와 아주 다른데 이무산차는 떫은 편이나 봉산차는 약간 쓴맛이 있고, 특징은 야생 녹나무 향기이며, 보이차 중 고산차(高山茶)이다.
19) 사보공명(思普貢茗)
공다(貢茶), 공명(貢茗), 공병(貢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 운남지방에서 공급받은 우수한 차청(茶靑)으로 운남성 외부나 해외 등지에서 만들어져 해외나 다시 중국 내륙으로 판매된 보이차이다. 일부 차가게에서는 이차의 제품이 진귀(珍貴)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차제품 통포장의 죽순껍질위에 공다(貢茶)라는 글씨를 찍었다.
보이차 중에서 "공(貢)"이란 글자로 이름이 지어진 것은 1949년 이후의 제품이다. 청대(淸代) 왕실에 바치는 차를 "공다(貢茶)"라고 했으나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은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에 보존되고 있는 금과보이공다(金瓜普 貢茶) 뿐이며, 최근에 맹해차창에서 제조한 장방형의 복록수희공다(福綠壽喜貢茶)는 예외이다. 1919년 청나라가 망한 후 이러한 이름의 보이원차는 생산된 것이 없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공다(貢茶)라고 불린 보이원차(普 圓茶)로는 복록공다(福綠貢茶), 사보공명(思普貢茗), 광운공병(廣雲貢餠)이 있다.
사보공명은 그 찻잎의 원료가 사모(思茅)지방의 보이다산(普 茶山)에서 만든 것으로 이 지역의 보이차청(普 茶靑)은 이무(易武) 6대 다산에 속하지는 않지만 똑같은 운남성 남부에서 나는 제일 우수한 성질을 갖고 있는 차청(茶靑)이다. 사보공명은 홍화다업공사(鴻和茶業公司)의 생산품이나 이 회사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이 많은 공명(貢茗)을 제조했는지에 대해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근거(根據)로 사보공명(思普貢茗)을 만든 홍화공사(鴻和公司)와 복록공다(福綠貢茶)를 만든 홍리공사(鴻利公司)는 서로 연관된 조직이며, 이 두 가지 제품이 자매품(姉妹品)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① 포장의 죽순껍질이 서로 같다.
② 두 가지 제품 모두 대나무살의 안쪽을 사용하였으며, 묶는 기술이 같다.
③ 사용한 내비가 서로 비슷하면서 같은 느낌을 준다.
④ 차의 이름이 모두 "공(貢)"자를 썼다.
⑤ 보이차 명칭은 대부분 차창이나 차가게에서 빌어 오나 이들 두 제품의 이름은 특별히 지어진 이름이다.
사보공명은 덩어리가 비교적 작고 얇으며, 무게는 약 350g이다. 찻잎은 비교적 작고, 가지는 납작하고 넓으며, 색깔은 어두운 붉은 색이다. 내비(內飛)는 5*7cm이고,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사보공명홍화다업공사(思普貢茗鴻和茶業公司)"라고 쓰여 있으며, "미(米)"자 모양의 도안은 가장자리 네 쪽 변에 배열되어 있다. 중앙의 윗 부분에는 능형(菱形)의 도안(圖案)이 있고, 그 속에는 "HHC"라는 세 개의 영문자모(英文字母)가 쓰여 있다.
사보공명의 맛은 깊고, 복록공다보다 좀 더 진화되었으며, 야생 녹나무의 향기가 있다. 맛은 약간 시며, 수성은 두텁고 매끈하며, 뒷맛이 달다. 마시고 나면 혓바닥에 진액(津液)이 생기고, 차의 기는 무척 강하다. 이는 전형적인 사모지방의 보이차 제품으로 이곳의 차맛은 이무다산(易武茶山)의 제품보다 기가 높지 못하고, 봉산다산(鳳山茶山)의 제품보다 다탕(茶湯)이 순수하고 두텁지 못하다.
20) 광운공병(廣雲貢餠, 광동병(廣東餠)이라고도 함)
1952년부터 1973년에 이르는 동안 운남성(雲南省)에서 해마다 다량의 보이모차를 광동성(廣東省)에 보내주었는데 간혹 고급 찻잎의 모차를 공급해주는 해도 있었다. 이때 광동성에서 운남성의 우수한 찻잎으로 만든 광동병(廣東餠)을 가리켜 광운공병(廣雲貢餠)이라고 한다.
광동병은 광동지역에서 생산된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로 광동병의 찻잎은 비교적 작고, 가지가 가늘면서 길다. 덩어리는 든든하고, 표면의 색깔은 검은 녹색인 것이 많다. 맛은 변경보이차(邊境普 茶)에 가깝고, 담담한 신맛에 수성(水性)은 얇고 날카롭다. 때문에 광동병은 처음 보이차를 대할 때나 주전자에 보이차와 국화(菊花)를 넣어 끓여 마시기 알맞다. 이는 광동성의 찻잎이 운남성의 찻잎으로 만든 것보다 품질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광운공병(廣雲貢餠)은 소공다(小貢茶)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광운공병은 복록공다(福綠貢茶) 다음 가는 보이원차라는 말이다. 광운공병과 복록공다는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봉산일대의 다산에서 딴 찻잎이나 차이점은 복록공다는 야생교목(野生喬木)에서 딴것이고, 광운공병은 관목(灌木)에서 딴 찻잎이기 때문에 야생교목 찻잎의 특성인 녹나무 향이 배어있지 않다. 그러나 재배형 관목이라고 할지라도 운남성 토질의 영양을 섭취했기 때문에 광운공병의 향기는 청향(淸香)이 넘치며, 운남성의 찻잎으로 만든 광동병(廣東餠) 중 약 20년 이상 묵은 광남공병(廣南貢餠)이 있는데 1960년대에 사용한 광운내비를 사용하였으며, 품질이 30년 이상 묵은 광운공병(廣雲貢餠)과 매우 유사해 광운공병의 자매품(姉妹品)이라고 부른다.(광운공병, 광남공병은 등시해 교수가 칭(稱)했다고 그의 저서인 {보이차(普 茶)}에서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이원차의 겉포장은 죽순껍질로 포장한 것이 전통적인 포장법이나 광운공병(廣雲貢餠)은 과거에 줄곧 죽순껍질로 포장하던 전통법을 탈피하여 종이로 포장된 혁신적인 포장법으로 택했다. 포장하는데 쓰이는 질이 좋은 두터운 종이는 갈색의 가는 무늬에 반들반들한 토황색(土黃色)으로 되어 있고, 지금의 크라프트지와 비슷하나 포장 종이는 긴 세월에 의하여 퇴색이 되어 광택은 사라졌으나 안쪽 부분의 색깔은 짙고 반들반들하다. 통의 바깥 부분은 흰색의 무명실로 묶었고, 연대가 오래되어 종이는 이미 부서졌으며, 면사(綿絲) 실들이 대부분 풀어진 상태다. 포장지 위쪽의 흰 바탕에 붉은 색의 해서체(楷書體)로 "중국광동진출구공사(中國廣東進出口公司)" 및 "보이병차(普 餠茶)"라는 글씨가 있고, 중앙의 팔중차(八中茶) 글자는 녹색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도안(圖案)의 배열은 맹해차창( 海茶廠)의 대자녹인(大字綠印)과 비슷하다.
오늘날 광운공병의 바깥 종이 포장지는 대부분이 부서져 있으므로 7개 통포장으로 남아있는 것은 드물고, 대체로 하나로 된 단병(單餠)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운남 찻잎이나 광동 찻잎으로 만든 광동병의 외관, 빛깔, 광택들이 육안으로 분별하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이용해 일부에서 광동 찻잎으로 만든 품질이 떨어지는 광동병(廣東餠)을 운남 찻잎으로 만든 광운공병(廣雲貢餠)이라고 사칭(詐稱)하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광동성 차청을 사용한 1980년대 이후 제품은 광동병(廣東餠)이라고 하는데 광동병의 내비(內飛)는 정방형 종이를 원형(圓形)으로 고쳤다.
21) 하내원차(河內圓茶)
대표적인 변경보이차인 하내원차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든 보이차로 하내(河內)는 베트남의 도시인 하노이(HANOI)의 중국식 표기(表記)이다. 베트남 북부는 운남성 남부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운남의 이무진(易武鎭)과 베트남의 북부도시인 내주진(萊州鎭)은 같은 위도 상에 놓여 있어 차나무와 차성(茶性)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보이차가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되기 시작할 때부터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지방을 거쳐 판매되었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에는 하내원차가 본격적인 수출품으로 등장했으며, 주로 홍콩, 싱가포르, 방콕 등지의 화교(華僑)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하내원차(河內圓茶)는 하노이차창에서 베트남 북부의 찻잎으로 제조한 보이차로 변경보이차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직경은 20㎝, 무게는 350g으로 운남 보이차보다 약간 크고, 차향에서 잡맛이 풍기는 것이 특징이며, 차운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 196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차의 몸통은 철병처럼 견고하고 압축한 적은 흔적이 남아 있으며, 잎과 줄기는 암흑색이고, 줄기는 가늘고 짧다. 여러 가지 차종(茶種)을 혼합하여 만들어 차청(茶靑)이 고르지 못하며, 자연적인 순후한 맛이 없다. 내표(內票)는 없고, 내비(內飛)는 8*5.6㎝ 크기의 황토색 종이에 붉은 색의 베트남 문자로 "XOUNG CHE HANOI 9ANⅡ"가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포장통은 사보공명통과 매우 비슷하며, 사용한 재질이나 포장기술도 훌륭하다.
22) 타차( 茶)
타차는 버섯형태로 긴압한 차로 다른 차창에서도 만들지만 운남성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주로 만드는 차가 타차이다. 타차는 250g, 100g, 5g 등이 만들어 지며, 하관차창에서는 전체 생산량의 70% 정도를 100g 타차를 만들고, 나머지는 중타차와 소타차 등을 만들어 취향에 따라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차이다. 타차는 청병(靑餠)과 숙병(熟餠)으로 생산되며, 대부분 관목(灌木)의 어린잎으로 만들기 때문에 장향(樟香)은 거의 없고, 청향(靑香) 정도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하관차창에서 만든 타차는 맹해( 海)나 다른 차창의 타차와는 달리 강하게 긴압(緊壓)하기 때문에 숙성이 다소 느리고, 오래되어도 녹차(綠茶)의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는 있으나 긴압시 수분이나 열방출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제품은 차를 산괴(散壞)했을 때 엷은 매변( 變)을 겪은 흔적이 전체적으로 남아있는 차도 있다.
① 홍인타차(紅印 茶)
1950년대에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중차패(中茶牌) 상표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제조한 하관차창의 대표적인 특급 차로 유럽에 수출되어 은차철병(圓茶鐵餠)과 함께 하관차창의 명성을 높이는 한편 차창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차이다. 1950년대 중반에 맹해차창( 海茶廠)의 홍인원차(紅印圓茶)가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자 광고효과를 노려 외포장지와 중차패 모두 붉은 글자로 인쇄하였기에 홍인타차라고 부른다.
차청(茶靑)은 사보다구(思普茶區)의 1급 차청으로 만들었으며, 황록색의 탕색에 찻잎도 황록색이고, 진기(陳期)는 약 40여년으로 추정되나 생산량은 많지 않다. 차운(茶韻)은 10여년 진기의 청운(靑韻)으로 약간 떫은맛과 아주 엷게 단맛이 돌아나오는 수성을 가졌으며, 차향은 가장 귀한 순청향으로 청엽미는 없는 진미(陳味)를 지녔다고 한다.
② 은호타차(銀毫 茶)
맹고다산( 庫茶山)과 봉산다산(鳳山茶山)에서 생산하는 2급의 차청(茶靑)을 사용하여 임창차창(臨滄茶廠)에서 하관차창의 책임하에 생산된 대중소비용의 경발효(輕醱酵) 숙차이다. 임창차창은 1957년도에 세워졌으나 계획경제 시대에는 홍차(紅茶) 생산지역으로 지정되어 보이차(普 茶)를 생산하지 못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쇄청모차( 靑毛茶)는 하관차창과 곤명차창에 공급하였다. 그 후 1983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은호타차를 만들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등록상표는 은호패(銀毫牌)이다.
임창차창에서 사용되는 차청은 대부분 맹고다산과 맹고차종을 생산하는 차밭에서 공급받았는데 맹고차종( 庫茶種)의 대표적인 차로는 봉산(鳳山)의 복록공다(福綠貢茶), 맹롱(猛弄)의 말대긴차(末代緊茶), 임창(臨滄)의 은호타차(銀毫 茶) 등이 있다. 맹고차종의 특색은 차청이 여리고 가늘며, 탕은 짙고 강하고, 차향은 순후(純厚)하며, 약하게 쓴맛이 비친다.
은호타차의 탕색은 짙은 밤색이고, 차를 타 마실 때 3∼4회 이후부터는 숙미(熟味)가 없어지며, 쓰고 단맛이 비친다. 시중에는 후기의 은호타차가 유통되는데 맹고차구의 원료로 품질은 상당히 좋으나 5∼6분(分) 숙차로 숙기(熟氣)가 강하며, 조기의 은호차에서 볼 수 있는 청순미는 없다. 조기와 후기의 판별은 그 포장방법, 맛 등으로 쉽게 구별된다.
③ 봉황타차(鳳凰 茶)
운남성(雲南省) 대리(大理) 남간차창(南澗茶廠)에서 하관차창(下關茶廠)의 타차를 모방하여 생산한 봉황타차는 생차(生茶), 숙차(熟茶), 반생반숙(半生半熟)의 세 가지가 있으며, 숙차는 1985년부터 시판하기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적은 양이 시판되었다. 시중에는 습창차가 많이 유통되고 있으며, 타차의 긴압특성상 쓴맛이 많이 나고, 하관차창의 타차에 비해서는 깊은 맛이 다소 부족하다.
23) 전차( 茶)
벽돌처럼 생긴 보이전차(普 茶)는 모두가 숙차(熟茶) 방식으로 만들어 비교적 쇤잎을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긴차(緊茶)를 만들 때 심장(心臟) 모양으로 눌러서 만들었으나 포장과 운송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1967년부터 벽돌 모양으로 만들었기에 보이전차(普 茶)의 역사를 1967년부터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가이흥호전차(可以興號 茶)를 보면 초기에도 전차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맹해차창( 海茶廠)의 전차는 운남전차(雲南 茶), 하관차창(下關茶廠)의 전차는 하관전차(下關 茶), 곤명차창(昆明茶廠)의 전차는 화원전차(花園 茶), 경곡차창(景谷茶廠)의 전차는 경곡전차(景谷 茶)라고 부른다.
하관전차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들고 있어 많이 유통되는 차로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차에 속하며, 250g을 단위로 각 덩어리들이 따로 포장되어 있다. 생차(生茶)와 숙차(熟茶)가 130덩어리를 기준으로 박스에 포장되어 있으며, 가격도 연대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품질도 보관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함부로 구입하기가 어렵다.
곤명차창에서 나온 화원전차는 1970년대 후기에 생산된 반생반숙차(半生半熟茶)로 4덩어리를 하나로 포장하여 1kg으로 묶었으며, 제품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지만 진품일 경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서쌍판납(西雙版納)의 경곡차창에서 만든 경곡전차는 대만(臺灣)에 판매할 목적으로 1970년대 후기부터 10여년간 생산된 비교적 상품의 차로 2급의 차엽(茶葉)을 쓰고 있으며, 생차와 숙차가 함께 생산되었다. 비료를 주지 않은 차엽으로 만들어서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으나 현재는 진품이 드물며, 가격도 비싸다.
차창(茶廠)에서 주도하여 생산한 전차는 대략 이 정도이나 이 외에도 많은 종류의 전차가 있으며, 일부 차상들이 주문하여 생산하거나 일부 단체에서 기념품으로 생산하여 유통시킨 기념품에 해당되는 전차들까지 치면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시중에는 상인들이 40년 이상 되었다고 선전하면서 판매하는 전차( 茶)들이 있지만 얼마 전에 대만(臺灣)에서 보이전차의 진위를 알기 위해 이른바 오래되었다는 전차들을 모아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3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① 가이흥전차(可以興 茶)
가이흥호(可以興號)는 1926년에서 1941년 사이의 차가게로 현재 보이전차(普 錢茶)만이 남아 있다. 가이흥전차(可以興 茶)의 의의는 전차의 무게가 10량전(兩錢)이라는 실물의 표본이며, 보이차청으로 이름난 이무다산과 불해다산(불해(佛海)는 중국의 인민정부 수립 후에 맹해( 海)로 지명이 바뀌었다) 중 보드랍고 검은 가지를 지닌 최상의 불해 보이차청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보이전차는 모두가 숙차(熟茶) 방식으로 만들지만 가이흥전차(可以興 茶)와 문혁전차(文革 茶)는 생차(生茶)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② 문혁전차(文革 茶)
중국차업공사(中國茶業公司, 줄여서 중차공사(中茶公司)라고도 함)에서 1967년부터 긴차(緊茶)의 원료를 사용하여 전차( 茶)를 생산하기 시작할 무렵 중국의 전역은 문화혁명(文化革命)의 물결에 휩싸였다. 운남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곳에서 전차( 茶)를 생산하여 포장할 때 문화혁명표지를 부착하여 출고하도록 하여 장방형의 세로 내비(內飛)의 아래에는 첫줄은 "운남성" 둘째 줄은 "맹해차창혁명위원회출품"이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이 차를 두고 등시해 교수가 문혁전차(文革 茶)라고 불렀다.
중국차업공사에서 처음으로 출고한 차로 차청(茶靑)은 맹해신차원의 대엽종 관목(灌木)의 찻잎을 사용하였으며, 생차 방식으로 제조된 문혁전차의 외관은 율홍색(栗紅色)이다. 찻잎의 줄기가 가늘고 길며, 탕색 또한 밤색에 찻잎 찌꺼기는 햇차임을 알 수 있으며, 약간 떫은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③ 73후전차(厚 茶)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곤명차창(昆明茶廠)이 1973년에 개발한 쾌속발효(快速醱酵) 기술을 도입하여 5급의 쇤찻잎으로 만들어 발배한 전차( 茶)로 크기는 가로 14cm, 세로 9cm, 두께 3.5cm에 무게는 250g이며, 흰색의 포장지에 글씨는 심홍색이다. 차의 색깔은 흑색으로 탄화작용이 많이 진행되었으며, 홍차가루와 원료를 섞어 만들어 차의 표면은 심홍색으로 외관은 좋다.
일부 전차는 대엽종 교목잎을 사용하여 숙전차(熟 茶)로 만들어 발효가 과도하여 보이숙차 차향이 있으나 수성이 두텁고, 매끄러우며, 아주 약한 단맛이 난다. 초기에 출고한 73후전차는 년대도 오래 되고 차품(茶品)도 좋으나 시중에 유통되는 차는 대부분이 후기에 생산된 제품으로 황토색의 면지(面紙) 포장지에 심홍색(深紅色) 글씨로 인쇄되어 있으며, 초기의 전차는 보기도 드물고 구하기도 어렵다.
④ 7562전차( 茶)
1973년 이후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개량된 방법으로 생산한 발효도가 비교적 낮은 숙전차(熟 茶, 3분(分) 숙차)로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포장지 뒷면에 "7562"라는 자호(字號)가 찍혀있어 "7562전차"라고 부르며, 문화혁명 전후로 생차 방식으로 제조된 문혁전차와 함께 생산된 숙차 방식으로 제조된 전차이다.
7562전차는 2급의 어린 싹으로 제조한 경발효(輕醱酵) 숙차로 차의 표면은 황금색으로 아름답고, 연한 연꽃향의 차향(茶香)에 목에서는 약간 단맛이 도나 입에서 느끼는 감은 조금 무거운 느낌이며, 일반 전차보다는 고가로 거래된다. 한편 7562전차의 광고효과에 힘입어 7560, 8562 등의 차품도 판매되고 있으며, 1988년 맹해차창이 대익패(大益牌) 상표를 등록한 후에는 대익패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이전부터 사용하던 중차패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24) 산차(散茶)
일반적으로 보이차는 긴압차(緊壓茶)이나 보이산차는 보이차의 형태상 분류 중 긴압차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차(毛茶)상태의 차로 산차 자체로도 상품가치가 있고, 시중에 많이 나오는데 제다방법상 종류도 청병(靑餠), 숙병(熟餠), 반생반숙(半生半熟) 등 일반 긴압차와 동일하다.
병차(餠茶)는 그 상태로 수분과 열을 가하여 오래된 차처럼 만드는 가공을 하면 표면에 그 흔적이 남는다. 이에 반하여 산차(散茶)는 가공을 해도 흔적이 잘 없고, 가공이 용이하며, 좋은 등급의 산차와 낮은 등급의 산차를 섞어 비싸게 유통시키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차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산차 구입시에는 주의를 요한다. 이는 완벽하게 습창가공된 차는 거의 없지만 소비자들이 습창차에 대한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보이차에 많이 속는 것이다.(심한 경우에는 몇 번 우려서 마신 산차를 파는 경우도 있음)
시중에서 비정상적인 산차를 구분하는 방법은 먼저 찻잎의 크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유통업자는 차의 맛을 내기 위해서 섞었다고 하겠지만 실제는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 저급의 차청을 섞어서 양을 늘리는 것이다. 찻잎의 크기를 본 다음에 찻잎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면 좋은 차는 표면이 깨끗하고, 잡티가 거의 없으며, 전체적인 색도 대부분 비슷하다. 간단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몇 종류의 산차를 섞었는지, 가공하였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데 찻잎의 크기와 색깔, 상태가 비슷하다면 섞지 않은 산차라고 할 수 있다.
① 백침금련(白針金蓮)
백침금련산차는 1987년에 맹해차창( 海茶廠)에서 맹해다구의 차청(茶靑)을 사용하여 제조한 대엽종(大葉種) 관목신차수(灌木新茶樹)의 최고급 현대적 보이차이며, 연꽃향이 나는 대표적인 보이차이지만 연꽃향이 나는 최상품은 많지 않다. 차맛이 부드러워 예전부터 여아눈차(女兒嫩茶 : 여성스러운 여린 싹으로 만든 차)로 불렸으며, 차청은 흰색의 가는 털과 금색의 차싹으로 1급의 가늘고 여린 찻잎만 골라 옛날 공다(貢茶)와 같은 특급의 차품(茶品)으로 여아차(女兒茶)급이기 때문에 홍콩의 상인들로부터 "현대 여아차"라는 이름을 얻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백침금련산차는 4∼6분(分) 숙차(熟茶)에 속하는 것으로 차청의 색깔은 비교적 율홍색(栗紅色)에 경미한 숙미(熟味)가 있으며, 차를 탓을 때 연꽃향이 없다. 그러나 2∼3분 숙차(熟茶) 또는 생차(生茶)로 만든 최고급품은 청율색(靑栗色)의 차청에 금색을 띄고, 엷은 흰 서리와 같은 색에 은은한 연꽃향이 나며, 탕은 매끄럽고, 단맛과 침이 돈다. 진기(陳期)는 약 20년 전후에 기가 강하고, 차운은 햇맛이나 계속 진화하면 좋은 보이차가 될 수 있다고 한다.
② 료복산차(廖福散茶)
하내원차(河內圓茶 : 하노이원차의 중국식 표기)처럼 북부 베트남산 차청(茶靑)으로 만든 료복산차는 훌륭한 변경보이차로 원시적 옹기(甕器)에 담아 "료복차호(廖福茶號)"라고 붓으로 쓴 글자의 흔적만 있고, 상호와 표지가 없어 당시 소규모의 개인 차가게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 줄기가 억세고 잎이 가늘고 긴 차청은 율황색(栗黃色)에 약간 흰 서리 빛이 돌고, 차는 가볍고 건조하며, 광택이 다소 부족하다. 생차(生茶)로 제조하여 건창법(乾倉法)으로 저장하였으며, 차운은 신선하고 진기(陳期)는 약 35여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단맛이 약간 나는 밤색의 탕색(湯色)은 두텁고 매끄러우며, 목이 부드럽고, 청향(靑香)에 미미하게 난향(蘭香)이 묻어 나온다.
(11) 현대(現代)의 보이차(普 茶)
현재 우리들이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보이차는 병차(餠茶)가 가장 많지만 긴차(緊茶), 타차( 茶), 전차( 茶), 방차(方茶), 산차(散茶) 등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천량차(千兩茶)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보이차를 생산하는 크고 작은 공장들도 많고, 이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상표와 규격의 차들이 워낙 많아 그 이름을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시장에는 좋은 차와 나쁜 차가 뒤섞여 있고, 여기에 상인들의 농간으로 나쁜 차가 좋은 차로 둔갑하기도 하고, 최근에 만든 보이차를 오래된 진년보이차로 속여 팔기도 하는 등 시장을 교란(攪亂)시키고 있어 보이차에 대한 지식과 식견(識見)이 없으면 제대로 된 차를 제값에 사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차를 거론하기에는 여러 가지의 제약이 있어 대표적인 차창(茶廠)을 중심으로 생산된 제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맹해차창( 海茶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국영 보이차창으로 세계 차나무의 발원지인 서쌍판납(西雙版納) 태족자치주( 族自治州) 맹해현( 海縣, 과거의 지명은 불해현(佛海縣)이다.)에 자리잡고 있다. 1938년 중국의 차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당시 중국차엽총공사(中國茶葉總公司)는 이곳에 관리인을 파견했는데 이때 프랑스 파리대학을 졸업한 범화균과 청화대학을 졸업한 장석성은 중국 각지의 제다기술자 90명을 데리고 열대우림지역인 이곳 맹해현으로 와서 차창을 건립하였다. 이들은 전통 보이차 생산기술에 기계를 이용한 제다법과 설비를 도입하고, 1940년 정식으로 불해차창(佛海茶廠, 중국의 인민정부 수립 후 맹해차창으로 이름이 바뀌게 됨)을 설립함으로써 중국 보이차 역사의 새 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후 65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맹해차창은 최고의 보이차 생산기업이 되었으며, 운남칠자병차와 현대보이차의 인공후발효 진화기술이 성공하게 된 데에는 맹해차창의 공헌이 매우 크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맹해차창도 세월의 흐름과 시대적 조류에 따라 그 명성이 예전과는 다르다. 1980년대에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들을 조금씩 민간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1986년 운남성 정부가 차창(茶廠) 사유화(私有化, 민간기업화) 작업을 공식적으로 천명(闡明)하기 이전에 품질이나 공급량, 시장수요 면에서 가장 앞선 맹해차창은 이미 민간 기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전까지는 시장경제체제가 아니어서 제품 생산에만 주력하면 되었지만 민간기업이 되면 자본유치를 비롯하여 기업경영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맹해차창은 이때부터 쇠락(衰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맹해차창은 각 차창에서 통일적으로 사용하던 종전의 중차패(中茶牌) 상표를 대익패(大益牌) 상표로 변경하였는데 대익보이차는 보이차의 최고급 상품으로 대익칠자병차(7572, 7542, 7262, 7592, 8582, 7672, 7692 등), 맹해타차, 보이타차, 보이전차, 여아공차, 궁정보이차 등은 보이차의 대표적 상품이 되었으며, 현대보이차의 과학연구와 발전에 심혈을 쏟고, 운남보이차의 고전을 계속해서 창조하고 있다.
한편 국내의 보이차 전문가 몇 분이 맹해차창으로부터 파악한 대익패 상표의 정확한 사용시기를 거론하는 것은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보이차의 구입시 제품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데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맹해차창이 대익패 상표를 사용한 시기가 1978년, 1992년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나 어느 분이 맹해차창에 문의한 결과 1989년부터 대익패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정식 상표 등록은 1992년에 했다고 하므로 1988년 이전에 생산된 대익패 보이차는 전부 가짜인 셈이다.
또 위의 내용과 관련된 맹해차창의 간략한 역사를 1950년 중국차업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業公司雲南省公司, 줄여서 성차사(省茶司)라고 부름) 창립부터의 자료를 살펴보면 1988년 맹해차창에서 대익패(大益牌) 상표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이 시기에는 전차( 茶)만 생산하였다.(대익패를 사용해서 만든 차는 전차 뿐이며, 병차나 타차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1989년 6월 20일에 대익패는 정식으로 맹해차창의 외부 판매 상품의 상표로 등록되었다.(당시에는 보이차를 주로 중차패(中茶牌)로 판매하였고, 맹해차창 역시 중차패로 생산했는데 중차패 이외에 자기만의 고유상표인 대익패를 정식 상표로 등록해서 외부에 판매했다.) 그리고 1994년부터 대익패 칠자병차(七子餠茶)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주식회사 형태의 회사로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맹해차창은 국영기업이었으나 2004년 10월에 박문(博聞)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은 사영기업이 되었다.) 이상과 같이 대익패를 처음 사용한 것은 가장 빠른 것이 1988년의 전차( 茶)이며, 대익패 병차(餠茶)는 1994년 이후에 나온 것임을 알수 있으므로 보이차 구입시 참고가 될 것이다.
① 7542
맹해차창이 생산한 생병 중 가장 생산량이 많은 대표적인 제품으로 앞면은 비교적 순이 많이 들어 있고, 뒷면은 앞면에 비해 약간 쇤 잎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생산한 제품이다. 기본적으로 조기황인(早期黃印)의 원료배합 방식을 이어받아 기본적인 차품(茶品)은 유지되지만 생산년도 따라 통(桶)의 포장, 포장지, 내비(內飛) 및 내표(內票) 등이 조금씩 다르며, 전문가들도 정확한 생산년대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상인들이 "73청병(靑餠)"이라고 부르는 7542는 1998년에 대만(臺灣)의 옥호헌(鈺壺軒)에서 정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2000년대 이후까지 계속 생산되고 있는 차로 생산시기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상단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7542의 외포장지는 대구중(大口中)이고, 가운데 "차(茶)"자는 수공(手工)으로 찍었으며, 1975∼1985년 사이에 생산된 제품은 차의 크기가 약간 작아서 "대구중소록인(大口中小綠印)"이라고도 하며, 인기가 높다.
② 7532
1980년 초기에 단종(斷種)된 7432병차(餠茶)를 대신하여 3급 차청을 주 원료로 사용해 만든 청병(靑餠)으로 순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어 맛이 부드럽고 달며, 아주 어린잎을 원료로 만들었다. 7532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재배대엽종과 소엽종 찻잎을 섞어서 만든 7532칠자병차(七子餠茶), 1970년대 후반에 생산된 내표가 좀 작은 7532설인청병(雪印靑餠), 7532어상병(御賞餠) 등이 있다. 그러나 생산기간이 20년이 넘도록 길어 포장지도 여러 가지를 사용하였으며, 상인들이 생산연대를 속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위조차에 7532란 이름을 붙여 유통시키기도 하였다.
③ 7582
어린잎을 사용하여 생산한 청병(靑餠)으로 일반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것은 7582병차, 1980년대 이후에 생산된 것은 8582병차라고 부르지만 이는 습관적인 것이라고 한다. 1985년 홍콩의 남천무역공사(南天貿易公司)가 주문한 7582와 같은 원료로 생산한 차를 8582라는 번호로 정했으며, 이 후에 생산한 같은 종류의 차들을 8582로 사용하다가 1990년대에 다시 7582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한편 8582병차는 사용된 포장지와 찻잎이 매우 다양하여 1980년대 후지(厚紙)8582는 문혁병차(文革餠茶), 1980년대 초기의 미술자내비(美術字內飛)8582는 조기7572로 속여서 유통되는 등 다양하게 악용되었다고 한다.
④ 7562
7562숙병(熟餠)은 1990년대 후반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숙차(熟茶)로 비교적 여린 잎을 사용하였으며, 맛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초기에 생산되었다고도 하는데 원료는 7572보다 우수하나 생산량이 적어 차의 일련번호에 일정한 근거가 없다.
⑤ 7572
7572는 1970년대 중반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숙병(熟餠)으로 가장 빨리 상품화에 성공한 숙병이며, 7542 및 7582와 더불어 맹해차창을 대표하는 병차 중의 하나이다. 초기에 생산된 7572는 사용된 모차(毛茶)가 1960년대 후반의 것이어서 1960년대 후반부터 생산되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도톰한 싹을 원료로 만들었으며, 내표(內票)가 없고, 태족( 族)의 토산품인 무명으로 포장하였다. 두께가 균등하고, 테두리가 단정하며, 겉은 갈색에 윤이 나며, 탕색은 진한 홍색에 은은한 향기가 난다. 초기에 생산된 조기7572의 경우 생산횟수가 많아 같은 해에 생산된 제품도 포장지가 달라 포장지에 따라 대구중(大口中)7572, 소구중(小口中)7572로 나뉘고, 소구중7572는 다시 박지(薄紙)와 후지(厚紙)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사용한 찻잎과도 관계가 있어 교목대엽종을 사용한 후지7572는 75청병(靑餠), 같은 찻잎을 쓴 박지7572는 73황인(黃印)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대구중7572는 1970년대 중후반에 단종(斷種)되었으며, 소구중7572는 1990년대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숙차(熟茶)도 같은 번호를 부여하여 생산되어 이를 7572숙병(熟餠)이라고도 한다. 한편 후기에 생산된 7572는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으로 차의 품질은 좋으나 초기에 비해 원료가 거칠다.
⑥ 7592 / 8592
7592숙병(熟餠)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부터 생산한 병차이며, 홍콩의 남천무역공사(南天貿易公司)가 1985년, 1988년, 1992년에 맹해차창에 주문하여 생산한 숙차가 8592숙병이다. 발효도가 7572보다 낮으며, 포장지에 자색(紫色)으로 "천(天)"자가 찍혀 있어 "자천병(紫天餠)"이라고도 하는데 청병(靑餠)은 차 번호가 없다.
⑦ 공작병차(孔雀餠茶)
운남의 고차산(古茶山)에서 채취한 찻잎을 원료로 만든 병차로 외포장지에 맹해차창의 등록상표인 대익패(大益牌)와 공작이 잘개를펼친 모습이 인쇄되어 있으며, 맹송고차산( 宋古茶山) 공작병차, 포랑고차산(布朗古茶山) 공작병차, 파달차산(巴達茶山) 공작병차, 남나산공병(南 山貢餠) 등이 있다.
⑧ 대익패갑급타차(大益牌甲級 茶)
1989년에 맹해차창에서 대익패(大益牌)를 맹해차창의 상표로 등록하고 생산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는 타차로 생차와 숙차가 있으며, 무게가 100g인 대중 판매용이다. 한편 숙차(熟茶)는 "보이타차(普 茶)"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⑨ 92방차(方茶)
1992년에 생산된 청차(靑茶)로 92방전(方 )이라고도 하며, 고급 원료를 사용하여 윤이 나고 매끈하다. 좋은 재료를 사용한 비교적 얇은 벽돌 모양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⑩ 기타(其他)
중차패 상표의 7572와는 다른 대익패(大益牌)를 상표로 쓴 초기의 칠자병차(七子餠茶)인 7572대익병(大益餠), 1987년에는 국가에서, 1988년에는 운남성에서 우량상품으로 인정받은 숙병(熟餠)인 8592칠자병차, 1970년대 초중기에 생차와 숙차가 함께 생산된 7432병차(1980년대 초반에 단종되었으며, 조기의 제품은 문혁병차라고도 한다), 1980년대에 생산된 생차(生茶)인 7472병차, 8502병차 및 7682병차, 1990년대에 생산된 생차인 7535병차, 7502병차, 7376병차, 2005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생차(生茶)로 몇 가지 규젹이 있는 대익패(大益牌)V93타차( 茶),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서쌍판납(西雙版納)에서 생산된 죽통향차(竹筒香茶), 최고급의 순으로 만들어 상인들이 백침금련(白針金蓮)이라고 부르는 궁정산차(宮廷散茶) 등이 있다.
2) 하관차창(下關茶廠)
중국 운남성의 유명한 차창(茶廠)으로는 맹해( 海), 하관(下關), 임창(臨滄), 곤명(昆明) 등이 유명하지만 이 중에서 임창과 곤명은 없어지고 현재는 맹해와 하관만 남아 있으며, 1941년에 출범한 하관차창의 정식 명칭은 "운남하관차창타차(집단)고분유한공사(雲南下關茶廠 茶(集團)股 有限公司)"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운남하관차창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다.(고분(股 )제도는 주식회사(株式會社) 제도와 같다.) 주요 생산 품목은 녹차(綠茶), 홍차(紅茶), 보이차(普 茶), 청차(靑茶), 삼도차(三道茶) 등으로 차창이 설립되기 전인 1902년부터 "송학패(松鶴牌)" 상표의 보이타차(普 茶)가 하관 지역의 유명 상표로 팔렸으며, 1973년 숙보이차 개발에 참여하여 1976년에는 프랑스로 타차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에 현재의 주식회사 형태로 등록하였으며, 2004년에 민간기업으로 등록하였다.
☞ 삼도차(三道茶)
옛 선인(先人)들은 차를 마시는데 있어서 [첫째는 정신을 맑게 하고, 둘째는 흥취를 얻고, 세째는 맛을 음미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차가 운남성(雲南省) 대리(大理)의 삼도차라고 할 수 있다. 400여 년 전 서하객(徐霞客)은 대리(大理)를 유람하면서 [주차위완초청차중염차차밀차(注茶爲玩初淸茶中鹽茶次蜜茶 :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처음은 청차(靑茶)이고, 중간 것은 염차(鹽茶)이며, 다음의 것은 밀차(蜜茶)이다)]라고 썼다. 삼도차는 중국 백족(白族, 중국말로는 바이족이라고 함)에게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고유한 품차예술(品茶藝術)의 하나로 8세기의 남조(南詔)시기에 기원하여 지금까지 1,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민간에서 대대로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삼도차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서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백족(白族)은 주로 경치가 아름다운 운남의 대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리시(大理市)는 바이족(白族)의 옛 왕조가 있었던 유서(由緖) 깊은 곳으로 불교적 전통도 깊은 곳이며, 삼탑사(三塔寺)라고 하는 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족(白族)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명절, 생일, 결혼식 등 기쁜 날이나 친척, 친구, 손님이 방문했을 때에는 "일고, 이첨, 삼회미(一苦, 二甛, 三回味 : 첫 번째는 쓰고, 두 번째는 달고, 세 번째는 맛을 되새겨본다)"의 삼도차(三道茶)를 대접한다. 세 개의 잔에 차를 따라주는 대리(大理)의 삼도차는 각각 그 맛이 틀리는데 첫 번째 맛(第一道)은 쓴맛으로 운남성의 녹차(綠茶)로 맛을 낸다. 두 번째 맛(第二道)은 단맛으로 녹차에 백설탕, 흑설탕, 크림, 치즈 등을 넣어 맛을 낸 것이다. 세 번째 맛(第三道)은 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맛으로 녹차에 생강, 꿀, 참깨, 흑설탕 등을 넣어 모든 것이 어울린 맛이 난다. 삼도차를 마실 때는 3∼5분의 간격을 두고 마시며, 탁자 위에는 해바라기씨, 잣, 사탕 등을 준비해 놓는다.
첫 번째 차는 "청고지차(淸苦之茶)"라고 하여 "성공하려면 먼저 고생을 해야한다"는 뜻으로 첫 잔의 쓴 맛은 초년의 고생을 의미한다. 먼저 물을 끓인 다음에 사차자(司茶者 : 차를 끓여주는 사람)가 작은 도기항아리를 불 위에 얹어 덥힌다. 항아리가 덥혀지면 적당량의 찻잎을 넣고 항아리를 돌려 찻잎이 고루 가열되게 한다. 항아리 안에서 '파∼, 파∼'하는 소리가 들리고 찻잎이 누렇게 되면서 사탕이 타는 향기가 나면 사전에 끓여놓은 물을 붓고, 잠시 후 물이 펄펄 끓으면 찻잔에 따라서 두손으로 손님에게 권한다. 이런 차는 볶은 다음에 끓여낸 것으로 호박(琥珀)색의 탕색(湯色)에 달콤한 향기가 나고, 마시면 쓰고 떫기 때문에 고차(苦茶 : 쓴맛의 차)라고 하며, 보통 반 잔 정도밖에 안되므로 한 모금에 다 마신다.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에서 마시는 첫 번째의 쓴 차는 원래 해남도(海南島) 일대에서 나는 고차(苦茶 : 고정차와 같은 계열의 차)를 마셨으나 후일에는 녹차를 진하게 우려내서 쓴 맛이 나도록 한 다음 마셨다고 하며, 제1도차는 불교적 관념과도 통하는 차이다.
첫 번째 차를 마신 다음에 주인은 다시 차를 볶고 물을 끓이는 한편 정교로운 작은 찻잔을 준비하고 찻잔을 받침접시 위에 얹는다. 찻잔 속에 생강절편(生薑切片), 홍탕(紅糖 : 검은 설탕), 꿀, 볶아낸 참깨, 아주 얇게 썬 볶은 호두절편을 넣고 끓인 물을 8부 정도 붓는다. 이 두 번째 차는 달고 고소하기에 첨차(甛茶 : 달콤한 차)라고 부르는데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일을 하던 고생을 겪은 사람이라야 인생의 단맛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중년의 행복한 생활을 의미한다고 한다. 삶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뜻에서 마시는 단 맛이 도는 두 번째의 차는 원래는 성단(成團 : 덩어리)으로 된 좋은 차를 마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오늘날의 고급 보이차(普 茶)일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보이차라는 이름이 없었고, 변방(邊方, 운남은 서남쪽변방임)에 사는 오랑캐들이나 마시는 덩어리차라고 알고 있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으며, 실제로 좋은 보이차는 단맛이 도는 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뒷날에는 이런 좋은 보이차를 구할 수 없었던지 녹차를 비롯한 차에 설탕을 넣어서 마셨다고 한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남방계 기마민족의 관념에서 온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2도차이다.
세 번째 차는 회미차(回味茶 : 맛을 되새겨보는 차)로 먼저 매운 계피(桂皮), 화초, 생강절편(生薑切片)을 물 속에 넣고 끓인 다음에 끓여낸 물을 찻잔에 따르고, 그 잔에 고차(苦茶)와 꿀을 넣으면 회미차가 완성된다. 세 번째 차를 마실 때에는 보통 한쪽으로는 찻잔을 흔들어 찻물과 넣은 재료가 잘 섞이게 하고 한쪽으로는 "후후"하고 소리내어 불면서 뜨거울때 마신다. 마시면 향기롭고, 달콤하고, 쓰고, 매운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어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이는 사람들에게 지나간 경험을 되새기면서 생활해야 "처음에는 고생해야 나중에 성공할수 있다"는 뜻으로 달고, 쓰고, 맵고, 향기로운 여러 가지 맛이 한데 어울려 노년의 인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게 쓰고, 달고, 모든 맛이 어울린 맛을 음미하는 삼도차는 인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차로 인생철학을 명심하게 한다. 삶의 복잡미묘함을 함께 한다는 뜻에서 마시는 복잡미묘한 맛이 나는 차로는 원래 향차(香茶)나 화차(花茶)를 마셨는데 오룡차 같은 향차나 자스민 같은 화차의 맛이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차들이 바뀌자 이 차도 바뀌고 뒷날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장난기마저 스며들면서 녹차에다 우유나 향신료 등 온갖 것을 집어넣어 정말로 미묘한 맛을 만들어 마셨다는데 이것이 제3도차였다.
그러나 삼도차는 단순한 의식적 차마시기나 풍습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여기에는 차를 섞어마시는 순서에 대한 깊은 성찰(省察)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차는 빈속에 마시지 말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차를 받아들이는 그릇인 위(胃)를 보살피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위를 안정시킨 다음에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는 것이 옳다는 뜻으로 위의 작용시스템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즉 정상적인 혈압과 이뇨작용을 만들거나 확인한 다음에야 무엇인가를 마시겠다는 뜻이 제1도차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마실 때는 처음은 위를 보호하고 혈압과 뇨당을 조정하는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고정차 등 쓴 맛이 나는 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효과는 약간 떨어지지만 제다의 기법을 통해 쓴맛이 제거된 철관음차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상생활로 말미암아 들뜬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해줄 몸의 기운을 차분하게 내려주는 차를 마셔야 좋은데 잘 발효되어 단맛이 도는 보이차가 거기에 어울릴 것이며, 천량차(千兩茶)나 육안남차(六安藍茶) 등도 해당될 것이고, 이런 것이 없다면 흑차(黑茶)는 아니지만 덩어리를 지은 수선(水仙) 등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구하기 어려우면 자라남의 성질을 가진 녹차도 일정하게 거기에 어울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의 묘한 맛을 느끼고 향을 나누는 차로는 오늘날의 경우 모든 오룡차나 향기가 짙은 녹차, 화차, 황차, 홍차 등이 모두 때와 장소 및 몸의 상태에 따라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삼도차의 첫 잔은 히말라야 산맥의 한 봉우리인 창산(蒼山)을 배경으로 이해( 海)라는 담수호(淡水湖)를 끼고 있어 천하절경을 자랑하고 있는 대리의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창산설록차(蒼山雪綠茶) 혹은 정감이 통한다는 뜻의 감통차(感通茶), 두 번째 차는 단맛의 차라는 뜻의 유선첨차(乳膳甛茶), 세 번째 차는 여러 가지 맛이 한데 어울려서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즐거운 차라는 뜻의 다미개심차(多味開心茶)라고도 부른다.
어느 여행가는 [삼도차(三道茶)를 맛보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경험으로 특히 백족(白族) 주민의 집에서 마시는 삼도차가 더욱 매력적이다. 창문에는 푸른 대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달빛이 가득한 뜰 안에서 편안한 의자에 몸을 의지하고 희디흰 대리석(大理石) 탁자에 놓인 간식을 맛보면서 백족 처녀들이 따라주는 삼도차를 마시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또한 좋은 차는 좋은 물을 만나야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하였는데 대리(大理)는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고, 정이 많은 곳으로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맑은 물에 우려 마시는 차는 이제 단순한 차가 아니라 대리 백족들의 풍습과 정감이 어린 민족의 심성을 보여주는 심오한 문화를 향유(享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① 하관병차(下關餠茶)
하관차창에서는 1950년대에 병차(餠茶)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계획경제 시기에 주로 타차( 茶)를 생산하도록 정해지면서 병차의 생산은 그리 많지 않으며, 1972년에 쇠로 만든 틀을 사용하여 만든 병차를 철병(鐵餠)이라고 부른다. 쇠로 만든 틀을 사용하여 만든 병차는 매우 단단하고 뒷면이 볼록하게 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철병(鐵餠)이라고 하며,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뒷면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은 포병(泡餠)이라고 한다.
1980년대 초에 병차 생산을 재개하면서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으나 중단되었던 시기 이전과 이후의 포장, 차 모양, 상표 등에 차이가 있다.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청병(靑餠)은 8613, 8633, 8653, 8673, 8853과 갑급병차(甲級餠茶)가 있으며, 숙병(熟餠)은 8663이 있다. 하관차창에서 만든 철병과 포병은 하관차창패(下關茶廠牌), 송학패(松鶴牌), 중차패(中茶牌) 등의 상표를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서 중차패 8563철병과 포병이 가장 유명하다.
② 소법타차(銷法 茶)
하관차창에서는 1975년부터 숙타차(熟 茶) 시제품(試製品)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홍콩을 경유하여 프랑스로 수출되었다. 프랑스 수출용 타차는 숙차(熟茶)로 중차패(中茶牌) 상표에 종이상자 포장이며, 250g무게의 타차는 1998년까지 계속 생산되었으며, 1976년에 생산을 시작한 100g 무게의 타차는 둥근 종이상자로 포장하였다. 타차( 茶)의 이름을 지을 때 일반적으로 숙차는 보이타차(普 茶), 생차는 운남타차(雲南 茶)라고 한다. 이 차는 다른 종류의 차와는 달리 보이차(普 茶)라는 표시가 없이 "운남타차(雲南 茶)"라는 표시만 있으며, 중차패 상표는 현재 모두 송학패(松鶴牌)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③ 보이타차(普 茶)
1976년에 생산을 시작한 100g 무게의 보이타차는 현재 1992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송학(松鶴)을 상표로 사용하고 있는데 외포장지의 윗면에는 운남타차(云南 茶), 양측면에는 보이(普 )라고 인쇄되어 있으며, 중차패(中茶牌) 타차는 국내에 팔리고 있다.
④ 특급타차(特級 茶)
2003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생차(生茶)로 송학패 상표를 사용하고, 100g과 250g 두 종류가 있으며, 상자에 포장되어 있다.
⑤ 갑급타차(甲級 茶)
1951년에 중국차엽총공사(中國茶葉總公司)에서 중차패(中茶牌)를 산하 차창의 상표로 통일시키면서 지금까지 계속 생산하고 있는 생차(生茶)로 외포장지 양쪽에 갑급(甲級)이라고 인쇄되어 있으며, 하관차창의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이다.(1956년에 생산된 갑급타차 중에는 외포장지 윗면에는 중국차업공사운남성공사, 중앙에는 중차패, 중차패 아래에 갑급, 아랫면에 운남타차가 인쇄되어 있는 것도 있다)
1992년부터는 하관차창의 상표로 새로 등록한 송학패(松鶴牌)를 사용하고 있으며, 1996년 이전의 갑타차에는 "갑(甲)"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1996년 이후에는 영문자인 "G"자로 바뀌었다. 현재 갑급타차는 종이로 포장한 것, 선물용 포장, 상자에 넣어 포장한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⑥ 을급타차(乙級 茶)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한 생차로 중차패 상표를 사용하였으며, 1993년에 생산을 재개하면서 송학패 상표를 사용하고, 이름을 1급타차로 바꾸었으나 을급타차와 1급타차를 혼용(混用)하고 있다.
⑦ 병급타차(丙級 茶)
1988년에 중급의 원료를 사용하여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나 1991년에 중단되었다가 1998년에 다시 생산한 타차로 초기에 생산한 것은 중차패를 사용하였으며, 다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송학패 상표를 사용하고 이름도 대중타차로 바꾸었다.
⑧ 창이타차(蒼 茶)
1959년 중국 건국 10주년 기념품으로 생산하여 1960년대까지 생산한 생차로 균일한 원료를 사용하여 갈색으로 밝게 윤이나고 매끈하며, 겉모양은 둥글다. 중차패를 상표로 사용한 포장지는 산뜻하고 예스러우며,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긴다. 2001년 생산을 재개(再開)하면서 송학패를 상표로 쓰고 있으며, 세심하게 고른 찻잎을 원료로 사용하여 차의 겉면에는 솜털이 드러난 어린 순에 윤기가 흐르고, 맑고 은은한 향에 탕색은 맑은 황색이다. 맛은 순수하면서도 깊고 풍부하며, 마신 후에도 입안에 단맛이 돌고, 여러 번 우려내어도 맛이 좋은데 현재는 250g 짜리를 사각형 상자에 넣어 포장한다.
한편 하관차창이 대리차창으로 이름을 바꾼 뒤 생산한 외포장지의 붉은색 바탕에 차 이름을 인쇄한 창이타차, 1984년에 운남차엽진출공사가 만든 춘아타차(春芽 茶)인 대리타차(大理 茶)도 있다.
⑨ 보염패긴차(寶焰牌緊茶)
1940년대에 하관차창의 전신(前身)인 강장차창(康藏茶廠)에서 티벳에 판매하기 위해 보염패(寶焰牌)를 상표로 긴차(緊茶)를 생산했으나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1966년에 상표를 단결(團結)로 바꾸고, 1967년에는 긴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차( 茶)로 바꾸어 생산하였다. 그 후 1986년에 하관차창을 방문한 제 10대 판첸라마의 건의를 받아들여 생산을 재개한 보염패긴차를 가리켜 반선긴차(班禪緊茶)라고 하며, 250g 무게에 생차(生茶)와 숙차(熟茶)가 있다.
⑩ 보염패전차((寶焰牌 茶)
티벳 등 주로 변경지역으로의 판매를 위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전통적인 차로 생차(生茶)이며, 250g 전차 5개를 한 단위로 포장하였다.
⑪ 운남방차(雲南方茶)
하관차창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생차계열의 방차로 차의 개당 무게는 100g이고, 차에 하관(下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운남방차는 쇠로 만든 틀에 넣어 만드는데 차의 뒷면에는 쇠로 만든 틀에 넣어 만든 차의 특징인 볼록하게 돋은 돌기(突起)들이 있다.
⑫ 기타(其他)
이 외에도 보탑(寶塔) 모양의 긴차(緊茶), 1980년대에 생산된 중차패(中茶牌) 상표의 무게 100g의 소원병차(小圓餠茶), 관병(關餠)이라고 불리는 지름 18.5cm의 칠자병차(七子餠茶), 문화혁명 시기에 생산하여 주로 장족(藏族)들에게 판매된 소병차(小餠茶), 1953년에 소량 생산된 250g 무게의 수출용 고급타차인 외소갑타차(外銷甲 茶)와 화교(華僑)들을 위한 고급타차인 교소갑타차(僑銷甲 茶), 1970년대에 생산된 청차계열로 보이방차보다 거칠고 쇤 잎을 원료로 만든 변소방차(邊銷方茶), 문화혁명 시기에 생산된 청방차(靑方茶) 등이 있다.
3) 곤명차창(昆明茶廠)
1938년에 설립된 곤명차창의 처음 명칭은 부흥차창(復興茶廠)으로 임창(臨滄)의 맹고( 庫), 봉산(鳳山) 지방의 찻잎을 원료로 주로 타차( 茶)를 생산하였으며, 1949년에 곤명차창(昆明茶廠)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에는 청차(靑茶), 화차(花茶)뿐만 아니라 보이방차(普 方茶)와 전차( 茶) 등도 생산하였다. 1973년 곤명차창에서 개발한 찻잎에 물을 뿌려 쌓아 숙성시키는 악퇴공정에 의한 인공적인 속성발효공법은 보이차 제다방식에서 획기적인 방법이 되었으며, 맹해차창, 하관차창에서도 이 기술을 도입하여 숙차(熟茶)를 생산하게 되었다. 획기적인 제다방법을 개발한 곤명차창도 1080년대 이후 불어닥친 개혁 개방의 물결과 시장경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4년에 문을 닫고 말았으며, 지금은 공장터가 민가로 변해 그 흔적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곤병차창에서 생산한 보이차로는 맹해차창에서 생산한 7572의 원료와 같은 찻잎으로 만든 초기의 숙차(熟茶)인 칠자병차(七子餠茶), 1992년 크고 두터우며, 거칠고 쇤 잎을 원료로 사용하여 용안육(龍眼肉)의 그윽한 향기가 나는 7572를 모방하여 생산한 철병(鐵餠), 문화혁명 후기에 생산된 7581전차( 茶), 1971년에 생산한 보이방차(普 方茶)는 겉모습이 단정하고 한 쪽에는 팔중차(八中茶), 다른 한 쪽에는 보이방차(普 方茶)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차는 갈색에 윤기가 흐른다. 1970년대 후기에 생산된 화원전차는 반생반숙차(半生半熟茶)로 4개를 하나로 포장하여 1kg으로 묶었으며, 제품은 상당히 평가를 받지만 진품일 경우 값이 만만치 않다.
4) 기타(其他)
위에서 열거한 대표적인 차창에서 생산된 제품 외에도 크고 작은 차창에서 워낙 다양한 품질과 규격의 차들이 많아 이들을 다 설명하자면 몇권의 분량이 되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 비교적 많이 알려지거나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차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으며,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최근에 국내외에서 출간된 보이차에 관한 책들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곤명간체자칠자철병(昆明簡體字七子鐵餠, 곤명차창), 보이차전(普 茶 , 운남차엽진출공사의 1970년대 생산품), 노동지병차(老同志餠茶)와 노동지전차(老同志 茶, 해만차창), 이창호병차(易昌號餠茶, 창태차행), 용생칠자병차(龍生七子餠茶, 용생집단, 보이산차(普 散茶)로 용생보이차왕(龍生普 茶王)도 있다), 봉패병차(鳳牌餠茶, 운남전홍집단고분유한공사, 전홍집단에서 생산되는 야생산차인 흑산차(黑山茶)도 있다), 맹고호병차( 庫號餠茶, 운남쌍강맹고차엽유한공사), 덕굉방차(德宏方茶, 남보차창), 남나산곡화차(南 山谷花茶)와 남소송침공병(南昭松針貢餠, 남간봉황생태차창), 경곡전차(景谷 茶, 경곡차창), 차순호칠자원차(車順號七子圓茶, 차순호), 송양병차(松洋餠茶, 남양차창), 봉패타차(鳳牌 茶, 봉경차창), 봉황타차(鳳凰 茶, 남간차엽공사), 은호타차(銀毫 茶, 임창차창), 순시흥호병차(順時興號餠茶, 순시흥호), 대도강차창(大渡崗茶廠)의 용원호병차(龍園號餠茶), 운남진향보이원차(雲南陳香普 圓茶, 백차당), 육대다산차업유한공사(六大茶山茶業有限公司)의 기념병차, 강성전차(江城 茶), 기원공병(奇苑貢餠), 화련청전(華聯靑 ), 천년고차수차(千年古茶樹茶), 사모고보이방차(思茅古普 方茶), 흠성윤호병차( 晟 號餠茶), 금대익칠자병(金大益七子餠), 은대익칠자병(銀大益七子餠) 및 자대익칠자병(紫大益七子餠) 등
▣ 하관차창(下關茶廠)의 약사(略史)
운남 하관 보이차를 생산하는 하관차창(下關茶廠)의 정식 명칭은 운남하관차창타차(집단)고분유한공사(雲南下關茶廠茶 (集團)股 有限公司)로 쉽게 말해 "운남하관차창주식회사" 정도가 되며, 지금의 운남성 대리시(大理市)에 속해 있다. 원래는 오랫동안 하관(下關)이란 지역명을 써왔는데 이곳이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대리(大理)란 이름이 많이 알려져 도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하며, 대리석(大理石)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대리(大理)가 중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김용의 소설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하게 각색되어 숱한 무협영화 캐릭터의 기초가 되었다. 중원(中原)에 당(唐)나라가 있던 시절 이곳에는 태족( 族)과 백족(白族)이 주를 이루어 세운 대리국(大理國, B.C. 937∼1252)이 번성하고 있었다.(지금도 운남성 대리시는 백족자치구에 속해 있다) 대리국은 상당히 특이한 나라였는데 철두철미한 불교 국가로 군대가 없었으며, 왕은 자식이 성인이 되면 미련없이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싸울 일이 있으면 상인들에게서 자금과 사람을 빌려 외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상인들은 왕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도 강해서 기꺼이 돈을 빌려주고 싸웠다고 하는데 후에 원(元)나라를 세운 몽고족에 의해 멸망하였으나 지금도 남아 있는 대리국의 고성은 소중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소설 {영웅문(英雄門)}으로 유명한 홍콩의 김용(金庸)은 그의 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에서 특이한 역사를 가진 대리국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과거를 지닌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중심 인물인 단예가 대리국의 왕자란 설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리(大理)는 {천룡팔부}가 나온 이후 더욱 유명해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대리는 하관(下關)과 상관(上關)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히말라야 산맥의 한 봉우리인 창산(蒼山)을 배경으로 이해( 海)라는 담수호(淡水湖)를 끼고 있어 천하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후에 김용이 이곳에 와서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下關風, 上關花, 蒼山雪, 海月 : 하관(下關)에는 바람이 많고, 상관(上關)에는 꽃이 아름다우며, 창산(蒼山)에는 눈이 덮이고, 이해( 海)에는 달이 떠있네)"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하관차창은 이 지역에 불고 있는 선선한 바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곳은 창산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이 사시사철 선선하게 불고 있기 때문에 보이차의 건조에 있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하관차창은 공식적으로는 1941년에 창립되었으나 실제 제품 생산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 이곳에서는 "송학패(松鶴牌)"라는 상표의 보이타차(普 茶)가 생산되어 팔리고 있었는데 하관차창이 그 역사를 계승해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운남성의 다른 도시에서 티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티벳을 상대로 한 보이차 생산이 활발했으며, 지금도 "보염패(寶焰牌)" 상표로 티벳에 보이차(普 茶)를 공급하고 있다.
운남성(雲南省)은 교통이 불편하고 인구도 많지 않은 지역이어서 생산된 차를 팔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중개인과 연계를 해야 했는데 이들을 흔히 차상(茶商)이라고 하며, 운남성과 가까운 광동성(廣東省)의 차상들이 특히 많은 양을 구입했다. 옛날의 차창들은 단순한 생산시설에 불과했고, 판매와 운송은 차상들이 담당했던 것이다. 오래된 보이차들 중 동경호(同慶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송빙호(宋聘號) 등은 모두 청(淸)나라 때부터 번성했던 차상들로 이들 차상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하관차창을 비롯한 운남성의 차창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정부가 수많은 차창들을 통폐합하고 생산도 정부 관리 하에 두도록 함으로써 1911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활발해졌던 상업이 된서리를 맞게 되는 등 변혁을 맞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명한 다장(茶庄)들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고, 대외 수출은 운남성차엽공사진출구공사가 전담하게 되었다.(당초의 명칭이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로 바뀌었는데 시기에 따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곳이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인민정부는 보이차의 대중화와 규격화를 이루었는데 1973년 곤명차창(昆明茶廠)이 인공발효 방식의 숙차(熟茶, 발수악퇴숙발효차(發水渥堆熟醱酵茶)가 원래 이름임)를 개발하자 진출구공사(進出口公司)가 주도하여 맹해, 하관, 임창차창이 이 기술을 도입하여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제품 생산은 어느 차창에서나 가능했지만 이때 맹해는 원반형의 병차(餠茶), 하관은 사발 모양(새둥지 모양이라고도 함)의 타차( 茶), 임창은 정방형의 방차(方茶), 곤명은 벽돌 모양의 전차( 茶) 제품을 생산해 규격화 하였다. 또 생산된 제품에는 번호를 붙였는데 앞의 두 자리는 이 제품이 표준화된 연도, 가운데 한 자리는 찻잎의 등급(산차(散茶)는 두 자리를 쓴다), 그 다음이 차창번호(곤명 1, 맹해 2, 하관 3, 보이 4 등)로 이렇게 해서 7562 녹인, 7572 대익패 같은 제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숙차 보이차는 초기에 기존의 생차 보이차 애호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며,. 세월이 지나면서 숙차 역시 좋은 발효차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런 인식이 조금은 남아있다. 숙차가 처음 나왔을 무렵 각광을 받은 곳은 맹해차창으로 원래부터 유명했던 곳이지만 숙차 개발에도 참여한데다 품질 또한 뛰어났기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오래된 제품 중에서도 맹해차창의 보이차가 유명하다. 맹해차창은 보이차 유형 중 가장 보편화된 칠자병차(七子餠茶)를 개발한 곳으로 기존 소비 루트인 광동(廣東)과 홍콩, 화교(華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타차 제조방식에 익숙한 하관차창이 만든 병차(餠茶)는 너무 딱딱하고 발효가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맹해만큼은 인기가 없었으며, 하관에서 만든 차의 주요 소비처는 티벳을 비롯한 변경지역의 유목민족이었다. 당시 차창들의 보이차 생산은 자본주의적 상품 판매라기보다는 사회주의적인 주문생산 위주로 기존 소비 루트 이외의 생산은 주문을 받아야 이루어졌지만 하관에서 생산한 제품(중차패(中茶牌)를 주로 썼다)도 오래된 좋은 제품이 남아있으나 수량에서는 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정부가 국영기업들을 조금씩 민간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맹해차창이 그 첫 수혜자이자 희생자가 되었다. 1986년 운남성 정부는 차창 사유화(민간기업화) 작업을 공식적으로 천명(闡明)했는데 이미 그 전에 품질이나 공급량, 시장수요 면에서 가장 앞선 맹해차창은 민간 기업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전까지는 제품 생산에만 주력하면 되었지만 민간기업이 되면 자본유치와 기업경영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맹해차창은 이때부터 쇠락(衰落)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맹해차창의 품질은 지금도 좋은데 기업의 경영과 투자에 문제가 생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네 반해 하관차창은 수출이 확대되면서 1975년부터 프랑스로 보이차를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986년 하관타차가 파리에서 열린 세계식품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수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하관타차(下關 茶)가 수출에 유리했던 것은 다른 모양의 보이차는 모두 넓적한 모양인데 비해 타차는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고, 또 제조 공정상 병차보다 더 딱딱한 편인 타차가 장거리 수출품으로는 오히려 나아보였을 수도 있다. 하관차창의 제품은 차 부문에 있어 최대의 외화벌이 창구가 되었으며, 현재는 수출물량이 연간 200톤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하관차창은 수출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에는 운남성 선진기업, 1990년에는 국가 2급 기업으로 인정받았으며(1급 기업으로는 중국 최대의 담배회사인 홍탑산(紅塔山, 훙타싼)과 같은 기업임), 중국 정부의 개방화 정책에 따라 2004년 5월에 민간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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