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차 예찬 - 백모단(白牡丹)
오늘 시음기 제목은 백차(白茶) 예찬입니다. 시음기가 아니라 예찬론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즐겨 마시는 백모단(白牡丹) 편입니다. 마치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백호은침 편과 수미 편이 곧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약이 없습니다.
어제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백차를 마셨습니다. 그제 속상한 일이 있어 퇴근하자마자 바로 잤더니 새벽 한 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일어나 찻물을 올리고 습관적으로 백모단(白牡丹)을 한 줌 집어 넣어 우렸습니다. 요 근래 가장 즐겨 마시는 차가 백차입니다. 한 모금에 정신이 깨이고 몸이 맑아집니다. 몸이 맑아지니 어제의 생각이 부끄럽습니다. 차가 주는 고마움이 참 큽니다. 이러니 제가 차 예찬론, 아니 그 중에서 백차 예찬론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처음 백차를 마실 땐 그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지나치게 평범하여 별 매력이 없었거든요. 물론 그때 마신 차가 지금의 차보다 품질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백차의 매력을 느낄 정도로 많이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맛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익숙함이거든요. 일단 많이 마셔봐야 압니다. 낯선 맛도 반복하여 익숙해질 때 그 진가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제가 중국에 있으면서도 이제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은 까닭은 이미 중국 음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음식, 정말 맛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백차를 자주 마십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잔은 집에서 쓰는 잔보다 많이 큽니다.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제가 집에서 쓰는 잔이 지나치게 작은 거겠죠. 그러나 차는 조금씩 우려 작은 잔으로 마실 때 맛과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백모단입니다. 찻잎은 정말 볼품이 없습니다. 백호은침이 귀족이라면 백모단은 민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맛도 마찬가지입니다. 백호은침이 우아하다면 백모단은 민초의 삶처럼 짙고 풍부합니다. 사진의 백모단은 2009년에 만든 건데, 몇 년 지나서 그런지 이제 맛이 제법 훌륭합니다.
중국인들은 흔히 백차를 두고 '1년이면 차요, 3년이면 약이고, 7년이면 보물(一年爲茶 三年爲藥 七年爲寶)'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백차는 보이차와 마찬가지로 오래 두고 마시기 좋습니다. 보이차는 살청(殺靑)을 약하게 하여 후발효의 여지를 남겨두었고, 백차는 제다(制茶) 중에 살청의 과정 자체가 없어서 역시 후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백차는 실제로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약으로 쓰였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백차의 맛이 훌륭해지지는 않습니다. 근본이 좋은 차라야 익은 후에도 향기롭습니다. 또한 근본이 좋다고 다 맛있어지는 건 아닙니다. 잡내가 스며들지 않고 지나치게 축축해지지 않게 보관해야 합니다. 차나 사람이나 곱게 나이 드는 이치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CCTV의 명품 다큐멘터리 《茶,一片树叶的故事》 6부작 중 1편에 중국의 6대 차류의 핵심 특징을 간결하게 언급한 부분이 나옵니다.
同一片茶叶 (같은 찻잎 하나가)
经过中国人灵巧的双手 (솜씨 좋은 중국인의 두 손을 거쳐)
演绎出了无数种口味 (무수한 맛을 연출하며)
形成六大茶类 (6대 차류를 형성한다.)
不发酵的绿茶 (발효하지 않은 녹차는)
最大程度的保持了茶叶的鲜度 (신선도가 가장 높게 보존되고,)
轻微发酵的黄茶 (약하게 발효한 황차는)
比绿茶更多了一份柔和 (녹차에 비해 연하고 부드럽다.)
不炒不揉的白茶 (덖지도 비비지도 않은 백차는)
最多地保留了自然的原味 (자연의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으며,)
半发酵的乌龙茶 (반발효 우롱차는)
创造出千变万化的香气 (수천 수만의 향을 만들어낸다.)
发酵时间最长的黑茶 (발효시간이 가장 긴 흑차는)
曾经是游牧民族的生命之饮 (일찍이 유목민족의 생명의 음료였으며,)
与其他五大茶类相比 (다른 5대 차류에 비해)
全发酵的红茶 (가장 많이 발효한 홍차는)
兼收并蓄 (모든 특징을 고루 흡수하고 갖추어)
是当今世界消费量 (지금 세계에서 소비량이)
最多的茶 (가장 많은 차다.)
덖지도 비비지도 않아 자연의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차가 백차입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이 말의 뜻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좋은 백차는 맑고 순수하며 달달한데, 입안에서 단맛이 오래 남고, 한 모금만 마셔도 몸이 맑아짐을 느낍니다.
요즘 북경 마련도(馬連道) 차 시장에 백차 전문점이라 간판을 바꿔 다는 가게가 많아졌습니다. 중국에선 이미 백차 붐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가격에 좋은 백차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 마시고 있는 백차는 가격에 비해 품질이 참 좋습니다. 요즘 이런 차를 구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특히 오래된 백차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 오래 두고 익혀 마실 만한 신차를 찾고 있습니다.
엽저를 보면, 아(芽)도 있고 엽(葉)도 있고 색도 제각각이며 찢어진 찻잎이 태반이지만, 그래도 참 좋습니다. 참 좋은데,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마셔보지 못한 분들께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쓰고 보니,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제목은 거창하게 백차 예찬이라 쓰고 내용은 잡담 수준이네요. 어쨌거나 제목에서만이라도 백차에 대한 저의 고마운 마음이 표현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