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와 기타

[스크랩] <차로 읽는 동서문화> (10) 日 리큐 茶道미학의 비극

청원1 2016. 10. 23. 22:32
<차로 읽는 동서문화> (10) 日 리큐 茶道미학의 비극

이광주 기자

무사도 정신은 일본 차문화와 미의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차는 나라마다 그 나름의 차 문화를 키워왔다. 그러나 ‘와비’차에서 보듯 일본의 차 문화는 지극히 이색적이다.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은 그의 ‘다서(茶書)’(1906)에서 일본의 차 문화를 ‘일상 생활의 속된 것들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숭배에 뿌리를 내린 일종의 의식’으로서 특징 지었다. 예의 바르고 섬세한 미의식을 지닌 이 민족에 있어 차는 예(禮)가 되고미학이 되어 마침내는 심미적 종교, 즉 ‘도’(道)가 되었다. ‘와비’차가 상징하는 참으로 특수한 일본풍의 다도, 그 배경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무사(武士)의 삶과 모럴의 본질을 이루는 무사도와 관련시키고 싶다.

'마지막 茶禮' 치르듯 비장한 '의식'

앞에서 지적하듯 선종(禪宗)을 매개로 상층 무사 계층에 의해 뿌리를 내린 차 문화는 15∼16세기의 전국(戰國) 시대에는 더욱 번성해 다사(茶事)는 무사 제일의 교양이 되었다. 그리고 최고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차 스승인 리큐(利休)는 무사들의 우상이었다.

풍류 그 이상의 '一期一會' 자세!

그런데 다사는 싸움터에서 죽음과 맞서야 할 무사들에 있어 풍류 이상의, 이것이 마지막 다례라고 하는 ‘이치고 이치에(一期一會)’의 뜻을 지녔다. 현란한 벚꽃에서 ‘지는 미학’을 찾는 무사적 비장감(悲壯感)은 일본 시가(詩歌)의 주조음(主調音)을 이루는 바, 다도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일본 다도는 ‘와비’를 ‘한미(閑美)’로서 표현하나 그들의 다실에는 한(閑)을 즐기는 느긋함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다도사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육우 산인(陸羽山人)도 찾아볼 수 없다. 차의 본성을 검덕(儉德)에서 찾은 육우, 차의 청정함을 군자(君子)의 덕으로 비유한 소동파(蘇東坡), 그리고 우리의 초의선사(草衣禪師)에서 우리들은 권력과 세상을 등진 일민(逸民)의 이미지를 떠 올린다. 그러나 무사의 나라에 있어 다인은 일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큐도 “다도의 진미는 초암(草庵)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다타미 ‘2조’ 방의 다석에서 구도자적으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원래 ‘전중차(殿中茶·전중은 장군의 저택을 뜻한다)’에서 출발한 ‘와비’차는 15세기 주광(珠光) 이후 리큐를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문명로(利門名路)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전중차’가 낳은 것은 ‘놀이’가 아닌 예절이며 은자풍의 일민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명인(名人)이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다도에 있어 다인이란 ‘뛰어난 감정가’여야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에 이르기까지 일본 다서(茶書)의 주제는 차 그 자체가 아니라 다도(茶陶)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론이다. 다사는 일본에 있어 무엇보다도 예술인 것이다.

다기를 비롯하여 회화와 서(書)를 둘러싼 (완물상지·玩物喪志의 함정이 도사리는) 그 철저한 명물(名物) 지향은 다도의 까다로운 격식 그리고 무사 사회의 엄격한 신분 질서와 아울러서 명인과 명인예(名人藝)에 대한 숭배를 낳고 많은 유파(流派)들을 뿌리 내리게 했다. 일본에 있어 철저한 그 장인 정신도 명인 숭배 사상에 뿌리를 둔 것으로 여겨진다.

도요토미 권력앞에서 리큐 자결!

금전옥루(金殿玉樓) 속의 다타미 ‘2조’의 다실, 그 아이로니컬한 처지에 비추어서일까. ‘와비’차의 명인들은 ‘현란하게 오만한 것들’을 차의 입장에서 긍정하고, 화려함을 통해서 ‘와비’를 다도 미(美)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리큐가 그토록 비판한 ‘사이비(似而非) 와비’란 무엇일까.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의 패턴을 이루는이율배반적인 특징을 ‘국화와 검(劍)’(1946)이란 상징적인 서명(書名)으로써 표현한 바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성곽마다 몇 개의 다실을 마련하였다. 초암을 본받았다고 하는 그 다실들 중에는 ‘황금의 다실’도 있다.

그 ‘3조’ 방의 천장·벽·기둥·문턱에는 금박이 씌워지고 도구들 또한 황금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00명의 다인이 참가한 대다회를 열었으며 그 주재자는 다름 아닌 리큐였다. 그 대다회의 몇해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산 리큐는 자결(自決)하게 된다. 그러한 리큐의 운명은 일본문학의 좋은 테마가 되어 권력과 교양의 갈등, 내지 권력에 의한 교양의 패배로서 묘사된다.

그러나 필자는 리큐의 비극을 ‘와비’ 차가 상징하는 일본적 미의식의 파탄으로 이해하고 싶다. 전통적인 일본 미학의 계승자인 ‘유키구니(雪國)’와 ‘긴카쿠지(金閣寺)’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그리고 그 내셔널리즘적인 미학에 기대어 장수를 누리고 있는 천황제(天皇制)에 순사(殉死)한 ‘가미카제 특공대(特攻隊)’의 무수한 젊은 무사들의 죽음이 그 예가 된다. 다실에 가득 찬 ‘이치고 이치에’의 기(氣), 그리고 홀홀 유연한 여정(餘情), 교토(京都) 어느 사찰의 다석에 앉아 차 맛을 잊은 채 필자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실 앞에 펼쳐진 정원에 눈을 돌린다.

'와비' 차의 諦觀과 武士!

일인들은 그들 감성의 특징으로서 자연과의 지극한 친화(親和)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서 일본정원을 든다. 나라(奈良), 교토의 사찰 순례란 바로 명원(名園)의 관광이다. 그 정원에서 필자는 또다시 일본풍의 심상(心象) 풍경을 본다. 나무와 돌과 이끼 그리고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도 빈틈없는 그 양식미(樣式美)에 감탄하면서도 양식의 옷에 가린 자연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럴 때면 우리의 비원과 용인 희원(熙園)이 그립다.

어느 프랑스의 문필가는 그의 저서 ‘인간과 정원’(1975)에서 중국의 정원이 사람들을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대지(大智)를 예감케 하는데 반해 일본의 정원은 사람을 구속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쉽게 칼을 뽑는’ 무사도를 들고 있다.

선종이 전래되었을 때 엄격한 신분 질서에 근거한 무사 중심의 사회는, 선(禪)의 본질을 이루는 융통무애(融通無碍)의 경지보다도 법도를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사도의 미의식에 따른 다도와 조원술(造園術) 또한 갖가지의 법도를 내세우게 되었다. 독일의 시인 쉴러는 미적인 것의 보편성을 ‘자유’ 속에서 찾았다. 그러나 무사 사회의 미학은 자유보다도 절제 즉, 자기 억제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와비’차가 체관(諦觀)의 미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출처 : 찻잔속에 담는 풍경
글쓴이 : 안티아조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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