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어사 사찰안내(2)
(4) 普濟樓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보제루는 범어사에서 가장 큰 건물로써, 中壇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았는데, 숙종 15년(1699년)에 자수스님이 중건하고, 순조 13년(1813년)에 신정스님이 중수하고, 그 후 1827년에도 중수한 기록이 나온다.
石階쪽으로는 梵魚寺, 中庭 쪽으로는 普濟樓, 金剛戒壇 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不二門에서 30여단의 石階를 오른 자리의 樓下에 본래는 쌍여닫이 판장문으로 입구가 만들어졌고, 中庭쪽으로는 완전 개방이 되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樓下를 벽으로 온통 막아 돌아들도록 하였던 것을 원래대로 복원 공사 중이다.
‘널리 중생을 제도 한다.’는 뜻에서 普濟樓 라는 이름을 붙힌 이 건물은 예불과 법요식에 사용되며, 오른쪽 벽면에는 宋나라 廓庵禪師가 創案한 牧牛圖(十牛圖)가 그려져 있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그림을 본다.)
① 尋牛 : 소를 찾아 나섬.(자신의 본성을 찾아 나섬.)
②見跡 : 소의 발자취를 발견. ( 꾸준히 노력하여 본성을 느끼고 발견)
③見牛 : 소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감.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에 가까워 짐)
④得牛 : 소를 붙잡음. (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을 꿰뚫어 견성에 이르럼.)
⑤牧牛 : 소를 기르다.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삼독을 제거함.)
⑥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옴. ( 아무런 장애 없는 무애의 단계.)
⑦忘牛在人 : 소는 잊고 사람만 있음. ( 소는 단지 방편일 뿐 모두 잊어야 한다.)
⑧人牛俱忘(○) : 사람도 소도 다 잊다. (모두 空 임을 깨닫는다.)
⑨返本還源(산수 자연) : 근본으로 돌아가다.
⑩入纏垂手(행각승) :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
(5) 梵鐘樓
梵魚寺 鐘樓는 본래 尋劒堂 오른쪽 전방, 3層 石塔 맞은편 中廷에 있던 것을 일제 초기에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인 2층 樓閣 건물인 梵鐘樓는 1669년 명학 스님에 의해 重建되었다고 전하는데, 건축양식이 彌勒殿과 흡사하여 1889년경에 크게 손질한 것으로 본다. 원래는 1층 樓下柱를 전부 열었으나 지금은 간벽을 막아서 기념품점으로 꾸몄다.
梵鐘樓에는 地獄의 衆生을 制度하는 梵鐘,(1728년에 제작된 ‘옹정6년 명동종’) 가죽을 가진 축생을 제도하는 法鼓, 허공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는 雲版, 물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는 木魚 등, 四物이 비치되어 朝夕 禮佛에 쓰인다.
※ 아침예불 = 木魚 -> 法鼓 -> 雲版 -> 梵鐘(發散 : 28회 타종)
저녁예불 = 法鼓 -> 雲版 -> 木魚 -> 梵鐘(收斂 : 33회 타종)
(6) 三層 石塔 (寶物 第250號)
新羅 興德王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彌勒殿 앞마당에 서 있다. 높이 약 4m, 上下 2重 基壇 위에 3층의 塔身을 올렸는데, 下層基壇은 각 면에 撐柱 없이 3구씩 眼象을 彫刻하였고, 上層 基壇은 中石을 높게 하고 각 면석에 꽉 들어차게 眼象을 彫刻하여 그 手法이 특이하다.
1층 塔身에 비해 2층 이상의 塔身은 매우 작으며 屋蓋石은 추녀가 수평에 가까우며 屋蓋 받침은 4段으로 되어 있고, 평평하고 얇아 신라 말기의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上輪部는 거꾸로 놓인 露盤과 후대에 보충한 寶珠만 있을뿐 다른 부분은 없어졌다. (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용차,보주,찰주)
塔은 佛像造成 以前 時期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유물을 봉안한 信仰의 대상이었으나, 한정된 유물로 인해 후대에는 佛像을 조성하여 법당에 모셨다.
(우요 3잡, 우견편단, 우슬착지)
(7) 大雄殿 (寶物 第 434號)
梵魚寺 大雄殿은 壬辰倭亂 때 燒失되어 光海君 6年(1614년)에 妙全和尙이 重創하고, 그 후 숙종39년(1713)에 홍보스님이 重建한 이후 몇 차례 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러는데, 正面 3칸, 側面 3칸의 平面에 多包式 栱包를 짜고 맞배지붕을 올린 점은 큰 규모의 佛殿建物로서는 매우 特異한 例이다.
범어사 大雄殿은 本尊佛인 釋迦如來를 中心으로 미래에 오실 미륵보살(彌勒佛)과 과거의 부처님이신 제화갈라보살(練燈佛)이 挾侍로 모셔져 있다.
이것은 十方三世라고 해서 空間的으로는 시방에, 時間的으로는 삼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後佛撑畵는 1882년 造成된 것으로 降魔觸地印을 하고 계시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8菩薩, 2분의 分身佛, 10대 弟子, 其他 神衆, 무릎 아래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좌우에 2菩薩과 四天王이 그려져 있다.
佛像을 中心으로 法堂 왼쪽 壁畵에는 藥師如來와 挾侍菩薩인 日光, 月光菩薩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쪽에는 三藏撑畵(1882년조성)로 天藏菩薩과 그 좌우에 地持, 地藏菩薩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벽화는 阿彌陀佛을 中心으로 觀世音, 大勢至菩薩이 挾侍하고 그 아래로 神衆撑畵가 그려져 있는데, 帝釋天을 中心으로 좌우에 보살상, 그 아래로는 八部衆과 주악동자가 있으며, 보살과 제석천 사이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인물이 묘사 되어 있다.
※ 藥師如來는 衆生의 疾病을 고쳐주고, 壽命을 늘려주며 災難을 消滅해 주시는 부처님이며, 阿彌陀佛은 無量壽佛 또는 無量光佛로도 불리는데 먼 옛날 法藏比丘로 계실 때 成佛하기를 다짐하는 48誓願을 세워 西方 極樂淨土를 이룩하신 부처님이며, 괴로움과 아픔 속에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極樂世界로 이끌어 주신다.
※ 大雄殿 주련
摩河大法王 크고 수성한 법이여
無短亦無長 짧고 긴것 흔적도 없어라
本來非皂白 본래 그 모습 희지도 검지도 않지만
隨處現靑黃 곳에 따라 청황색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