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고찰순례외 사찰순례 등

[스크랩] 범어사 사찰안내(1)

청원1 2014. 10. 28. 12:54

                             梵 魚 寺

1. 범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본사로 100개가 넘는 말사와 10개의 산내 암자를 관장하는  해동의 화엄 10찰 중의 하나로써, 舊韓末 경허스님이 주석하면서 동산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선찰 대본산이다.   創建年代는 異說이 있으나, 서기 678년(新羅 文武王) 義湘大師가 創建하였다는 것이 多數說이고,   義湘大師는 唐나라에서 留學을 마치고 서기 670년에 歸國하여 全國에 華嚴 10大寺刹을 건립하였다.  국가보물 6점(삼국유사)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2. 임진왜란 때 全燒되어 서기 1603년(선조 35년)에 觀禪師가 重建하였으며, 화재로 다시 燒失되어 서기 1613년(광해군 5년)에 妙全玄鑑 海敏 스님이 重建한 후, 여러 차례 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럼.

 

3. 옛 記錄에 의한 創建說話.

倭人들이 10萬 兵船을 타고 新羅를 侵掠하고자 했다. 文武王이 근심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꿈속에 神人이 나타나 태백산에 의상 스님과 함께 금정산으로 가서 7일 晝夜동안 華嚴神衆을 讀誦하면, 미륵여래의 화현과 사방의 천왕이 이를 제압해줄 것이라 하였다. 이에 왕은 의상스님을 대동하고 친히 금정산에 올라 꿈속 神人의 지시대로 기도를 올렸다. 이에 부처님과 天王神衆.文殊童子 등이 現身하여 동해로 나아가 倭賊을 토벌하니 倭軍들은 자중지난을 일으켜 서로 공격하여 살아남은 자가 없었고, 大勝을 하고 돌아온 왕은 의상스님을 銳公大師로 봉하고 금정산에 큰 절을 세우니 그 절이 梵魚寺이다.

‘범어사 서체유전’ 산령축(1920년)에는 密陽 朴氏가 많은 보시로 화주 보살이 되어 불가에 귀의하고 절 살림을 맡아 오다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가 죽은 후 화장을 하고, 고당봉에 고모영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고모제를 지내주면 고당봉의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고, 지켜주겠다.” 는 遺言을 남기고 돌아 가셨다. 스님은 그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과 5월 단오에 제사를 지내니 범어사가 번성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가람 배치도) 

 

※ 高幢峰 : 高幢은 부처님의 華嚴一乘인 最高의 法門을 높은 깃대에 세웠다는 의미로 금정산 제일 높은 봉우리, 범어사 背山에 기치를 꽂아 세웠다는 뜻이다.

 

(1) 一柱門 (부산광역시 지방문화재 제 2호- 2011년 보물로 승격 됨)

범어사 일주문은 4개의 기둥이 한줄로 늘어선 정면 3칸에 겹처마 맞배 지붕을 얹은 구조로써, 특히 기둥은 지반에서 1.45m 높이까지는 배흘림을 가진 원통 돌기둥이고, 그 위에 목조 두리기둥을 연속한 독특한 양식이며, 各柱間을 동일하게 잡고 창방과 평방뺄목을 방형으로 짜서 그 위에 1구씩 柱間包를 올린 내외 3출목의 多包式 건물이다.

 一柱三間은 法華經의 廻三歸一思想과 연관하여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聲聞 緣覺 菩薩로 나누어진 불교의 여러 敎法을 오직 成佛을 지향하여 一佛乘의 길로 향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곳으로 일직선(횡) 기둥위에 맞배지붕을 얹는데, 一心을 상징 한다. 청정한 도량에 들어서는 사람은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 문을 들어서야 하며 합장 반배를 한다.

 

 

(2) 天王門 

 

숙종 25년 (1699)에 자수 스님이 건립한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 풍판을 단 겹처마 맞배지붕을 얹고, 건물 내부 우측 협간(入場時)에는 동쪽을 상징하는 持國天王(靑 : 칼을 손에 들고, 착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리라)과 북쪽을 상징하는 多聞天王(黑 : 치아를 보이며, 비파를 들고 無明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 하리라.)이, 좌측 협간에는 남쪽을 상징하는 增長天王(赤 : 용과 여의주를 들고 성난 눈으로 만물을 소생 시키리라.)과 서쪽을 상징하는 廣目天王(白 : 삼지창과 寶塔을 들고 벌린 입으로, 佛法에 마음을 일으키게 하리라.)이 각 배치되고, 중앙 어간은 통로로 사용되게 하였다.

큰 막돌 덤벙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 뺄목을 초익공으로 만들어 이익공과 1출목의 행공을 걸어서 장혀와 보뺄목을 결구하여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내진기둥으로 대들보의 중앙을 받치고 동자기둥을 세워서 종보를 걸고, 다시 花盤臺工을 세워서 종도리를 받게 한 5梁架이며 연등천장을 꾸몄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익공식 가구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지금의 건물은 초창기로부터 한참 뒤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 된다.

천왕문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東山스님의 친필 주련이 걸려 있다.

帝釋天王慧鑑明 (제석천왕혜감명)          - 제석천왕의 지혜 밝게 빛나니

四洲人事一念知 (사주인사일념지)          - 세상사를 한 생각에 알도다.

哀愍衆生如赤子 (애민중생여적자)          - 가엾은 중생 어엿비 여기니

是故我今恭敬禮 (시고아금공경례)          - 나 이제 공손히 예를 올리노라.

※ 사천왕은 天界(欲, 色, 無色)의 28天中(수직개념) 욕계 6天의 맨 밑에 있는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에 각 머문다. 天上은(수평개념) 33天이며,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이 가장 중심이며 제석천왕이 그곳의 주인이다.

※ 천왕문 좌측 基檀部에 ‘佛紀 2963年 丙子’ 라고 새겨진 글씨는 우리나라가 현재 사용하는 佛紀보다 483년 앞서는 北方佛敎紀元을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이를 환산하면 1936년에 중수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2963-483 = 불기2480년 (불기가 서기보다 544년 앞서므로 2480-544 = 1936년)

 

(3) 不二門 (解脫門) ---> 慶州 佛國寺는 紫霞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면에 겹처마 맞배지붕 구조로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서 앞뒤의 각 주칸에 문틀을 짜서 쌍여닫이의 판장문, 공포는 내외 2출목의 주심포식으로 포작 했지만 다포식 공포와 흡사한 형식이 특이하다. 주두 아리로 창방 뺄목을 살미로 내어서 쇠서가 뾰족하게 치켜드는 형상으로 단청하였다. 쇠서의 끝은 만개한 연꽃과 봉오리를 초각하였다.

조선 숙종 25년(1699년)에 자수스님이 천왕문과 함께 세웠다는 기록만 있고, 그 후의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데 지금 건물은 한참 후에 만든 것으로 보여진다.

어칸 좌우 기둥의 주련은 동산스님의 친필로서 ‘神光不昧萬古輝猷 入此門內(來)莫存知解 (신광의 밝고 오묘한 뜻을 위하여 이문을 들어오면서 세상의 알음알이를 논하지 말라.) 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 不二는 분별을 떠난.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절대의 경지를 뜻한다. 현상에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둘이 아닌 것이다. 즉 부처와 중생, 나와 남, 선과 악, 공과 색, 반야와 번뇌가 둘이 아니며 나아가서 생과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문으로 누구든지 이 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바탕을 되찾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범어사 성역으로 이르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사바의 예토를 지나 정토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고 하겠다.

※ 범어사 일주문에서 불이문까지는 일직선상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약간씩 굽거나 틀어졌지만, 각 문으로 단절시켜서 시각적으로 일직선인 것처럼 의 효과를 낸 절묘한 기술을 선조들이 나타내었고,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범어사의 제 1경으로 꼽는다.

출처 :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글쓴이 : 13기/大香/도성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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