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108)천년고찰순례기

[스크랩] 대흥사 / 4월 24일 제24차(71)

청원1 2011. 11. 7. 04:19

 

 

    대흥사

    2011년 4월 24일

    제24차 백팔고찰순례 2번째 순례 천년고찰 / 2009년 5월부터 71번째 순례고찰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

     였으나, 근대 초기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宗統所歸之處)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그리고 별원의(표충사,대광명전,

      박물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죽미기(竹迷記)』,『만일암고기(挽日

    菴古記)』,『북암기(北菴記)』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23) 간행된『대둔사지(大芚

    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의 사찰역사를 총정리해놓은 중요

     자료이다.

    

     [창건설] 

     426년(백제 구이신왕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이다. 신라의 정관 스님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녕왕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는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죽미기』는544년(신라 진흥왕5) 아도화상(阿度和尙)의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

     스님과 도선(道詵)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정관존자나 아도화상 같은 분들이 창건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흥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중시되어야 할 내용이다.  <출처: 대흥사 홈페이지>

      일주문 (一柱門)

 

     부도전 /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된 서산대사 부도가 위치하고 있어 더욱 유명한

      부도전은 일주문을 막 지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나지막한 담장 안에 다양한

      모습을 갖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가 모두 80여기(부도 54기와 탑비 27기 )에

      이르고 있다. 부도의 배치는 일정한 간격을 두지 않고 3~4열을 이루고 있어 무질서

      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질서 속에서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이다.

      부도와 탑비의 주인공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 대흥사를 중흥시키고 크게 빛낸

      스님들로서,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풍담(楓潭)ㆍ취여(醉如)ㆍ월저(月渚)ㆍ설암(雪巖)ㆍ

      환성(喚惺)ㆍ호암(虎巖)ㆍ설봉(雪峯)ㆍ연담(蓮潭)ㆍ초의(草衣) 등의 대종사와,

      만화(萬化)ㆍ연해(燕海)ㆍ영파(影波)ㆍ운담(雲潭)ㆍ벽담(碧潭)ㆍ완호(琓虎) 등의

      대강사,  그밖에 고승대덕들의 부도이다.

      부도와 비의 주인공들이 조선 중기 이후의 인물들인 만큼 부도와 비의 양식 또한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작품들처럼 세련되고 섬세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정성을 들여

      기품 있게 만들어져 있다.

 

      뒤쪽에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된 서산대사 부도가 보인다.

      탑신에 청허당(淸虛堂)이라고 새겨져 있어 서산대사 부도임을 알아 볼 수 있다.

                     

                       <서산대사 선시>

 

 

 

             초의선사 부도

     초의스님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것이다.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차의 진예(塵穢, 더러운 티끌 먼지)없는 정기(精氣)를 마시거늘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榛穢除盡精氣入, 大道得成何遠哉)!"라고 하였다.

     스님에게는 차(茶)와 선(禪)이 둘이 아니고, 시(詩)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詩)와

     선(禪)이 둘이 아니었다.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제30송>

                     <초의선사 선시>

 

     해탈문[解脫門] / 부도밭을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천왕문 대신 해탈문이 나타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있으며,

     현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와 ‘해탈문(解脫門)’의 글씨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쓴 것이다.


     외부에는 협칸 3면에 도륜(道倫) 박태석(朴泰錫)이 그린 ‘부모은중(父母恩重)’ㆍ

     ‘염화신중(拈花神衆)’ㆍ‘점성가제도(占星家濟度)’ 등이 주제별로 장엄되어 있으며,

     2002년 해탈문 건립 당시 단청과 함께 조성되었다.

 

     대흥사 해탈문에는 특이하게 사천왕상이 없다.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

 

       보현동자

 

        문수동자

 

 

      범종각[梵鐘閣]

 

      연리근(連理根) /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

      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連理根),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連理木),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로도 불립니다.

 

      '삼국사기' 와 '고려사' 에도 연리나무에 관한 기록기 전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연리

      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吉兆)로 여겼습니다. 대흥사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왼쪽은 음의 형태이며 오른쪽은 양의 형태로 언듯 남녀가 천년동안 사랑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연리 나무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하면 사랑의 소원이 성치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의 바라는 (사랑,희망,승진,건강,화합,우정,합격,성공 등)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침계루(枕溪樓) / 북원의 출입문으로 남ㆍ북원을 가로지르는 계류 금당천(金塘川)에

     면하여 자리한 2층 누각건물이다. 심진교를 지나 누 아래의 어칸 통로를 통해 중정으로

     출입하며, 대웅보전 맞은편에 자리한다.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건물로 낮은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정면 5칸, 측면 3칸

     으로 그 몸체를 구획지었다. 중층 누각건물로 하층은 돌담과 판장문으로 마감한 광으로

     구성되며, 상층은 평면에 널마루를 깐 홀로 이루어진 강당류의 평면을 구성한다. 건물

     외부는 대웅전을 향한 내벽을 제외하고 삼면을 판벽과 판문으로 처리하였으며, 어칸

     에는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골기있는 필법의 ‘침계루(枕溪樓)’

     편액과 그 배면에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 쓴 두 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 대흥사의 중심법전으로 대흥사 가람 북원에 자리한다.

     심진교와 침계루, 대웅보전이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며, 여기서 직교하여 좌측에

     대향각과 우측에 백설당이 중정을 형성하며 배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전각으로 다포계 양식의 팔작건물이다. 건물은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는 창방

     으로 결구하여 평방을 얹었다.

     공포는 다포로 내삼출목(內三出目)ㆍ외이출목(外二出目)을 주간마다 2구씩 공간포를

     놓았으며, 건물 안팎으로 화려한 조각솜씨를 뽐내듯 처마 아래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포의 형상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외부로 뻗은 쇠서 위에 연봉을 조각하였으며, 내부는

     모양을 판형으로 만들어 운봉형(雲峰形)으로 단장하였다.

    

     이 건물의 외부장엄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어칸 상부에 자리한 2행 종서의 ‘대웅보전

     (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이다.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로 추사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현재 이 글은 백설당에 걸린 추사의 ‘무량수각’

     편액과 함께 대흥사 명필로 손꼽혀 장성 백양사 및 승주 송광사에서 그 글을 모각할

     만큼 뛰어난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침계루에 걸린 ‘대웅전중창상량문(大雄殿重創上梁文)’과

     ‘대웅전중건기(大雄殿重建記)’를 통해 1667년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화려한 치장과

     치목수법,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1899년 북원 일곽의 화재 이후 육봉선사의 발원으로

     중건된 것으로 보여진다.

 

          <주련>

 

      대웅보전 목조삼존상(大雄寶殿 木造三尊像) / 대웅보전 상단(上壇)에는 석가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 협시로 약사ㆍ아미타의 목조삼세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형 삼세불로 17세기 후반 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엄하고 단정한 모습과 함께

      절제된 미감을 찾을 수 있다.

      대웅보전 삼세후불탱(大雄寶殿 三世後佛幀) / 대웅보전에는 목조 삼존상인

      석가ㆍ약사ㆍ아미타여래의 후불탱으로 중앙에 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 우측에

     약사회상탱(藥師會上幀), 좌측에 아미타회상탱(藥師會上幀)이 걸려 있다. 3폭에 각각

     나누어져 있지만 3여래와 6보살, 10대 제자, 사천왕이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칭이 되도록 배열되어 있다.


     중앙의 영산회상도는 키형 광배를 뒤로 한 석가모니불이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 문수ㆍ보현보살과 가섭ㆍ아난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우측의 약사회상탱은 중앙에서 약간 좌측으로 벗어난 곳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를

    배치하고 그 아래에 일광ㆍ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천왕 가운데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10대 제자 가운데 4위(位)가 배치되었다.

    좌측의 아미타회상탱은 약사회상탱과 정반대의 구도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서 약간

    우측으로 벗어난 곳에 아미타불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관음ㆍ대세지보살이 협시

    하고 있다. 그리고 사천왕 가운데 광목천왕과 다문천왕, 10대 제자 가운데 4위(位)가

    배치되었다.


    채색에 있어 여래와 보살의 신체는 황색, 제자와 사천왕의 신체는 백색이나 살색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법의(法衣)는 주홍색, 두광(頭光)ㆍ천의(天衣)ㆍ옷자락 등에는

    호분이 섞인 청록과 밝은 남색을 사용하여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대웅보전 삼장탱(大雄寶殿 三藏幀) / 삼장보살은 천장(天藏)ㆍ지지(持地)ㆍ지장

      (地藏)보살을 일컫는 것으로 우리나라 불교신앙에서만 보이는 예이다. 이에 대한

      유래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지장보살신앙이 확대되어 형성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천장보살은 천계(天界)의 교주로서 천부중(天部衆)을 거느리고,

      지지보살은 음계(陰界)의 교주로 지상의 신중(神衆)을 거느리며, 지장보살은 유명계

      (幽冥界)의 교주로서 명계의 신중을 거느린다. 삼장탱은 이러한 삼계(三界)의 보살과

      그 권속을 그린 불화이다.

      중앙에는 천장보살과 천부중이, 향우측에는 지지보살과 여러 신중이, 향좌측에는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중이 각각의 보살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구도이다.

      색조는 주홍과 청색, 호분이 섞인 청록을 사용하였고, 광배 등에 금니(金泥)를

      사용하였다.

 

     대웅보전 감로탱(大雄寶殿 甘露幀) / 대웅보전의 감로탱은 화면 상단 중앙에 7여래가

     일렬로 서 있고 그 오른쪽에 아미타불 · 관음 ·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이 있으며,

     왼쪽에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삼존 바로 아래에는

     구름이 떠 있는 천상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으며, 화면 아래쪽 중앙에 2구의 아귀(餓鬼)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양쪽으로는 재(齋)를 지내는 승려의 모습과 상제들이 슬퍼하는

     모습, 줄타는 광대들의 모습 등 속계(俗界)의 다양한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다.

 

    대웅보전 칠성탱(大雄寶殿 七星幀) / 화면 중앙에 금륜(金輪)을 들고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는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를 중심으로, 각각 해와 달이 얹힌 연꽃을

    들고 있는 일광ㆍ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 주위에는 7여래와 수성(壽星)이 배치

    되었으며, 하단에 금관조복을 입은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도열해 있다.

    응진당· 산신각(應眞堂·山神閣) / 북원 일곽의 대웅보전 좌측에 자리한 이 건물은

    왼쪽으로부터 응진당ㆍ산신각을 한 채에 연이어 수용한 점이 특이하다. 건립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사지에 의하면 북원 일대에 나한전이 있었고, 침계루

    현판 중 ‘나한전급사리탑축장의록(羅漢殿及舍利塔築墻○義錄)’이라는 현판이 1917년

    헌괘되어 있음을 살필 때 그렇게 오래전에 지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 대흥사 산신각과 청운당 사이에 서 있는 탑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자장(慈藏)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 한다.

     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신라의 일반형 석탑이다.

 

        가허루(駕虛褸) / 남원(南院)의 출입문으로, 사찰의 중심에 있다. 휘어진 자연목으로

        만든 문턱을 넘어 짧은 통로를 지나가면 천불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을

        비롯해 용화당·동국선원·봉향각·승방 등이 나온다. 단층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건물 중앙은 통로로, 나머지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좌우측에는 돌벽을 쌓았으며, 뒷면은 판장문으로 단장하였다. ‘가허루

        (駕虛褸)’라는 현판 글씨는 비운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이 썼다. 

 

    천불전(千佛殿) / 순조 11년(1811)에 불에 탄 뒤 2년 뒤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의 중앙에는 목조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6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천 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있다.


   천불전 기도 영험 유래 (千佛殿 祈禱 靈驗 由來)

    이곳 千佛殿에 봉안된 천불상은 1813년(순조 13년)에 완호윤우선사(玩湖尹佑禪師)께서

    千佛殿을 중건하시고 和順 쌍봉사 화승(畵僧) 풍계대사(楓溪大師)의 총지휘로 경주

    불석산에 나오는 옥석(玉石)으로 10명의 대둔사(현대흥사)스님들께서 직접 6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완성한 千佛로서 그 조각 자체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교함과 신비스러움이 더한 천분의 부처님 입니다.


    千佛殿 중앙 삼존불은 목불로써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좌우보처에는 문수. 보현 보살상

    을 모셨으며 千佛이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

    에 거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으로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며 경주에서

    조성된 千佛을 2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순조 17년(1817년) 정축(丁丑)11월 18일 경주

    장진포를 출발하여 울산을 거쳐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둔사(대흥사)로 향하여 항해

    도중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에 표착 하였다 이 배에는 768여구의 옥 불을 실고 있었다.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 하려 했다.

     그러나 이 불상들이 축전(筑前) 대도포(大島浦) 현감 꿈에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

     (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현몽하자 현감은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확인한 후 그 다음 해 7월14일 대둔사(대흥사)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옥 불을 돌려보내기 아쉬워 불상 밑면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일본표해록”

     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千佛殿에 봉안된 옥 불상은 근세에도 그 영험을 보였는데 처음에는 가사(袈裟: 부처님과

     스님들께서 입는 옷을 칭함)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경상도 신도님 꿈에 여러 차례

     가사 불사를 해 줄 것을 현몽 하여 서둘러서 가사를 만들어 입혀 드리게 되었다.

     千佛께서 입으셨던 가사는 가사불사에 동참한 신도들 가정에 소장 하게 되면 온갖

     근심과 걱정 장애가 없어지고 지극 정성으로 염원하는 마음속의 소원이 꼭 성취되는

     영험이 있어 그 이후 유명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千佛 기도 도량입니다.

     이글을 접하시는 여러분들께서도 千佛殿 기도를 통한 영험을 성취 하시 바랍니다.


     千佛殿 懸板 (천불전 현판, 조선후기 원교 이광사 친필)

     千佛殿 柱聯 (1917年 오인당 안규동 전서 古 예서체 친필)

 

 

 

 

 

    표충사(表忠詞) /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사액사우(賜額寺宇)로서,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1669년(현종 10)에 건립되었다.

    표충사 일곽의 풍제문인 내삼문 정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

    건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자리한다.

    1789년(정조 13)에 정조대왕이 하사한 ‘표충사(表忠祠)’ 편액과 ‘어서각(御書閣)’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표충비각(표충사)

 

     조사전(祖師殿)

 

 

 

 

출처 : 백팔고찰순례단
글쓴이 : 청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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