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고찰순례외 사찰순례 등

[스크랩] 봉암사에서 봉행된 서암대종사 8주기 추모법회 동참후 원적사, 남장사로~

청원1 2011. 8. 8. 05:56

 

 

 

    지난 3월 31일 일년에 4월 초파일 하루만 산문을 여는 조계종 특별 수도원인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된 조계종 제8대 종정이셨던 서암대종사 추모법회에 동참하게 되었다.

 

     일주문(一柱門) /  ‘희양산 봉암사(曦陽山鳳巖寺)’라는 사찰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뒷면에는 ‘봉황문(鳳凰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일주문은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를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이다.

   일주문 안쪽 봉황문이라 씌어져 있다.

 

    남훈루(南薰樓) / 봉암사 입구의 2층 누각

 

       

    봉암사는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일반인들은 물론 신도들의 출입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특별 수도원이다. 봉암사 선원의 역사는 신라 말 지증대사 도헌스님이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곳에서 개창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향곡스님 등 젊은 수좌들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일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법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원을 세웠던 봉암사 결사가 이곳 봉암사

    에서 이루어졌으며 오늘날까지 그 서슬 푸른 정신이 이어져 오고 있다. 봉암사 결사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아쉽게도 중단되었으나, 정신적으로 오늘날 조계종의 종풍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으며, 이때 제정된 가사ㆍ장삼ㆍ발우 등은 현 조계종 스님들의 의제의 바탕

    이 되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을 가리켜서 청정대해중(淸淨大海衆), 대해(大海)와 같이 청정한

    무리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봉암사에 모여들었던 서슬 푸른 수좌들은

    당시 붉은색 비단으로 만들었던 가사와 장삼을 모두 불 지르고 누더기의 괴색 승복을

    만들어 입었다. 괴색은 버리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 색 없는 색이다. 이 괴색이 지닌

    정신이야말로 당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

    렀다는 성철스님을 중심으로 젊은 수좌들이 지키고자 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출처:koreatemple.net)

 

    대웅보전(大雄寶殿) /  정면 7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치미에 용머리(龍頭)가 장식되어

   있으며, 전각 앞 4마리의 사자상(獅子像)이 수호를 하고 있다. 창호에는 화려하게 수놓아진

   꽃문살로 장식되어 있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처리 하였다. 안에는 근세 제작된

   후불목각탱(後佛木刻幀)을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신중목각탱(神衆木刻幀),

   석가불좌상(釋迦佛坐像), 관음입상(觀音立像), 대세지입상(大勢至立像), 소종(小鐘)

   등이 봉안되어 있다.

                        <주련>

    * 사지(四智) : 여래(如來)의 네 가지 지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의 네 가지 지혜

 

    석가모니 삼존불 /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협시로 서 계십니다

   대세지보살은 보통 아미타불의 오른쪽을 협시하는 보살로 지혜문을 맡고 있다.

   그러나, 봉암사에서는 석가모니불 왼쪽에서 협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 중생을 널이 비추어 삼도고(三道苦)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한다고 한다. 보통 보병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연꽃을 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극락전(極樂殿) 보물  제1574호  / 극락전(極樂殿)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법당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2층 전각이다. 절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극락전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처 지금에 전한다. 서까래 모양이나 건물의

    구조가 특이하며, 특히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희귀한 목탑으로 알려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안에는 '어필각(御筆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아미타불상과 1904년에 조성한 극락회상탱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상층의 중앙에는 석조

    노반과 보륜을 가설하여 전체적으로 탑의 형식을 채용하였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7)

 

     조사전(祖師殿)

 

 

 

     봉암사의 마애불상은 조선시대의 고승인 환적스님(1603-1690)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원불(願佛)이라고 합니다.

     환적스님은 1690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입적하셨고, 가야산 해인사에 호랑이들이

     사람을 살생하지 못하도록 한 스님으로 유명한데, 사찰에 호랑이를 타고 있는 벽화가

     바로 환적대사라고 합니다.

     스님의 진영은 해인사 백련암에 모셔저 있으며, 또한 스님께서는 백련암 위에 환적대

     라는 곳에서 수행하시면서 가야산 산신령을 놀려주곤 했다합니다.

 

 

     진공문(眞空門) / 태고선원의 문은 양쪽에 있는데 조사전쪽 문은 묘유문(妙有門)이다.

     入此門內(입차문내), 莫存知解(막존지해) - 이 문을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지니지 마라

 

    태고선원(太高禪院)

 

    금색전(金色殿) / 비로자나불과 후불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금색전이 전에는 대웅전이었다고 하며 뒷편에는 아직도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보림사 삼층석탑, 실상사 삼층석탑과 함께 신라시대 탑으로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에 한국 석탑 중에서 매우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지증대사탑비(智證大師塔碑) 국보  제315호(지정(등록)일 2010.01.04) /

    이 석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인 도헌국사

    (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로서,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쌍봉(雙峰)-법랑(法朗)-신행

    (愼行)-준범(遵範)-혜은(慧隱)-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이 비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그가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

    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 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

    塔碑, 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탑비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일찍부터 높이 평가되어온 것이다.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가 밝혀져 있을뿐 아니라,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

    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엄청난 기운을 취기하여 봉암사로 보내는  해발 998m 희양산 바위봉우리

 

    성적당(惺寂堂) /  대웅보전 앞뜰에 있는 당우(堂宇)

 

    보림당(寶林堂) / 대웅보전 앞뜰에 있는 당우(堂宇)

    

        지금부터는 원적사입니다  

    원적사(圓寂寺)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청화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하는 원적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신라 무열왕 대에 원효스님

    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청화산의 수려한 산세와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원적사는

    비학승천 혈의 기상을 타고 돈오할 수 있는 선사들의 수도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하지만 절 입구의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노라면 산길 올라온

    땅방울은 어느새 시원한 바람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다만 스님들의 수행처로서 각별히

    몸가짐과 소리를 낮춰야 하는 곳이다.

 

 

   서암대종사 부도

 

 

 

 

 

 

   

     지금부터는 남장사 입니다.

    남장사는 상주 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로 통일신라 때인 832년 진감국사(眞鑑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경남 하동 쌍계사 마당에 있는 진감선사비문에 남아있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쌍계사 비문에는,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국사가 상주

    노악산 장백사(지금의 남장사)에서 선(禪)을 가르치니 배우려는 이가 구름처럼 모였다.”

    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바라춤, 승무의 근원인 ‘범패’의 최초 전승지가 바로 남장사이기에

    불교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사찰이다.

     일주문(一柱門) /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 '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범종루(梵鐘樓) / 누하진입(樓下進入)으로 극락세계에 갑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 극락보전(極樂寶殿)은 남장사의 중심 전각이다. 극락보전의 초창은

     1203년(고려 신종 6)이지만, 조선시대인 1635년(인조 13)에 소실되었다. 그뒤 1776년

     (영조 52)과 1856년(철종 7)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동쪽

     에는 노전(爐殿)인 향로전이 있는데 극락보전 주변 전각을 관리하는 요사로 사용되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건칠 아미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1741년(영조 17)에 조성한

     미타회탱이 봉안되어 있다. 그 밖에 오른쪽에 삼장탱(三藏幀)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보물제1635호(지정일 2010.02.24) /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수많은

    사부대중의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賾),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타회탱(彌陀會幀) / 화기에 따르면 영조 17년(1741년)에 제작되었는데, 상부에 오색의

      서운(瑞雲)과 중앙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를 묘사하였다. 본존을 둘러싼

      좌우에는 8대보살과 제석․범천, 사천왕, 10대제자 및 타방불과 팔부중을 배치하고 있으며

      좌우대칭 구도로서 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우수한 불화이다.

 

     극락보전 삼장탱(極樂寶殿 三藏幀) / 이 삼장탱은 18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하단 화기에 1741년에 조성한 것으로 나와있다. 화면 중앙에는 천장보살(天藏菩薩)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지지보살(地持菩薩)을, 왼쪽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배치하였으며,

     그 전후 좌우를 권속들이 둘러싸고 있다.

 

     극락보전 서수상( 瑞獸像 ) / 극락보전의 내부 대들보와 천정 아래에 장식되어 상서로운

     동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연꽃과 주악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극락보전내 벽화중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드물게 이백을 그린 ‘이백기경도’가 단연

     눈에 띈다. 왼쪽 내벽, 천장과 맞닿은 포벽에 그려진 이 벽화는 ‘이백기경상천

     (李白騎鯨上天)’이란 글씨가 있다.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에 오른다는 뜻인데, 발 앞에

     놓여 있는 술병도 가지고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고래는 아무리 보아도 고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보광전(寶光殿)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제990호 / 보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

     불좌상으로 지금은 불신만 남아있다. 얼굴은 단아하며 어깨에 닿을 듯 긴 귀는 목새겨진

     삼도(三道)와 잘 조화를 이루어 위엄을 자아낸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부드럽게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는데, 주름은 팔과 다리의 끝부분에만 나타났을 뿐 대담

     하게 생략하고 단순화시켰다. 손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

     적인 비로자나불상과 비교하여 손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엄숙한 얼굴 표정, 치마를 묶은 띠매듭,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U자형 옷자락, 단아한

     얼굴, 장대한 체구 등은 조선 초기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조선 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보물 제922호 / 길쭉한 나무판 8장을 연결

    하여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씩 3열로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머리에 보관

    을 쓰고 꽃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으며 관음과 대세지 보살은 연꽃 위에

    앉았고 다른 인물들은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각 인물들 사이에는 연꽃과 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있는 본존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솟아올라 2줄기로

    갈라져 있다. 몸에 비해 큰 방형의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마음은 부처님곁에 두고 인연따라 속세로 돌아갑니다.

 

 

 

출처 : 백팔고찰순례단
글쓴이 : 청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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