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보경사 / 11월 28일 제19차(57)
보경사는 신라의 지명(智明) 법사가 602년(진평왕 25)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지명 법사는 중국 진(陳)에 유학하였는데, 그 때 어느 도인에게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전수받으며 이 팔면보경을 동해안의 명산 명당에 묻으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하리라는 말을 들었다. 지명 법사는 귀국하여 이 사실을 진평왕에게 아뢰니 왕은 기뻐하며 지명 법사와 함께 좋은 자리를 찾고자 동해안 포항을 거쳐 북쪽 해안을 올라갔다. 해아현(海阿縣), 곧 지금의 자리 에 이르니 멀리 서북쪽으로 오색구름이 덮여 있는 산이 있어 찾아가 보았더니 바로 내연산 이었다. 그리고 산 아래 평탄한 곳에 큰 못이 있는데 지명 법사가 보니 바로 그 자리가 명당 이었다. 그리하여 그 못을 메우고 팔면경을 묻어 금당을 세우며 절을 창건하였으며, 팔면보경을 묻은 곳이라 절 이름을 보경사라 하였다.
오후 2시경 20분경 용연사를 출발하여 버스에서 <한국의 명찰 내연산 보경사>DVD와 우리 고찰순례단이 소속된 관음사 주지이신 지현스님의 2553(2009)년 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 11번째 <정행품> 법문 DVD를 시청하며 오후 3시 50분경 보경사에 도착하였다.
천왕문 / 숙종조에 건립도었는데 천왕문의 경우 대부분 맞배 지붕인데 팔작지붕이다.
천왕문에 세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 부터 내연산, 천왕문, 보경사
동체대비(同體大悲)......., 까치 밥인가? 앙상한 가지에 방울 방울 매달린 빨간 감이 늦가을 산사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천왕문 신방목(信枋木) / 문설주 밑에는 기둥 밑에 초석을 받치듯이 앞뒤로 짧은 각목을 받치는데 이것을 신방목(信枋木)이라 하는데, 보경사 천왕문의 신방목 끝에는 사자모양을 새겨 놓았다. 아마도 벽사(辟邪)의 의미도 포함된 듯 하다.
동방의 지국천왕은 음악의 신 건달바들의 왕임을 상징하는 비파를 손에 들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의 지국천왕은 왼손에 여의주를,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인간의 기쁜 감정과 봄을 관장한다. 선한 자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 남방의 증장천왕은 손에 칼을 들고 있는데 이곳의 증장천왕은 창을 들고 있다. 인간의 사랑 감정과 여름을 관장한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
서방의 광목천왕은 손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이곳의 광목천왕은 다른 지물을 들고 있다. 인간의 노여움의 감정과 가을을 관장한다.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북방의 다문천왕은 손에 보탑(사리기)을 들고 있으며, 인간의 즐거움의 감정과 겨울을 관장한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 그리고 사천왕 중의 가장 우두머리 천왕 이고,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잘 듣는다하여 多聞이라한다.
사천왕이 발밑에 밟고 있는 악귀를 생령좌, 귀상 또는 괴상이라고 하는데, 가상생물인 생령좌는 인간 의 마음 속에 있는 악(惡)을 형상화 한 것으로, 다름 아닌 내 마음속의 삿된 생각이다. 생령좌들이 입은 팬티는 일본의 전통 적인 속옷으로 자꾸 우리나라에 침입 하는 왜구나 왜적을 생령좌로 형상화 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적광전(寂光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4호 /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신 적광전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고쳐 지은 것으로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를 한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의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며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천장형식을 다포양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등천장으로 만든 점과 몇몇 건축수법이 지은 시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어 옛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주련> 萬代輪王三界主 만대윤왕삼계주 雙林示滅幾千秋 쌍림시멸기천추 眞身舍利今猶在 진신사리금유재 普使群生禮不休 보사군생예불휴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여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비로자나삼존불 / 비로자나불과 보현 문수보살
적광전 용마루 청기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와 또 다른 설은 승병이 있는 호국사찰이라는 표시라고도 합니다.
적광전 사자상 신방목 / 오래되어 닳아서 그런지 사자상이라기 보다는, 아무도 없는데 가만히 있는 하늘 보고 마냥 짖어대는 뒷집 멍멍이 처럼 모습이 해학적이라서 벽사(辟邪)의 역할을 할 수 있을런지? 은근히 걱정되네요.
오층석탑(五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 적광전 앞에 석탑으로 , 1층 기단 (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 (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 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부르는데,『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대웅전(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1호 /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숙종 3년(1677)과 1932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건물의 형식이나 세부 기법이 전형적인 19세기 불전 형식을 보여 준다.
<주련>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하늘 위 하늘 아래에 부처님 같으신 분 없으시네. 온 시방세계 둘러보아도 또 비교할 만한 이 없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살펴보았지만, 온 일체에서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 없도다. 대웅전 삼존불 / 삼존불은 주불이 석가모니불이 부처님 좌측(보는 방향으로 우측)이 미륵보살 우측(보는 방향으로 좌측)이 제화갈라보살이다. 후불탱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동방약사여래와 서방 아미타 여래를 봉안 삼계불을 모셨다.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 : 연등불(燃燈佛). 보광불(普光佛). 정광불(錠光佛). 제원갈 이라고도 한다. 과거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선혜(善慧)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수행을 하던 때에 다섯 송이 연꽃으로 연등불께 공양하고, 자신의 머리칼을 진흙길에 깔아 연등 부처님이 밟고 지나도록 하였는데, 그때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 를 내려준 분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7불(過去七佛)의 한분인 연등불이다. 이 연등불의 부처가 되기 전의 이름이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현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과 미래에 성불할 미륵보살을 좌우 보처로 모시는데, 이를 합쳐 삼세불 또는 수기삼존불이라고 한다.
팔상전(八相殿)
산령각
원진각(圓眞閣) / 원진 국사의 상과 영정을 중심으로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으로,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물이다.
영산전(靈山殿) /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의 전각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안에는 조선 후기에 봉안한 금동 석가여래좌상과 최근에 봉안한 문수·보현 보살, 그리고 16나한상과 사자상(使者像) 등이 있다.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보물 제252호 /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고, 시호 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명부전(冥府殿) /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의 전각으로 1887년에 짓고 1917년에 중수하였다. 안에는 지장보살상과 후불탱, 그리고 도명존자·무독귀왕상이 협시하고 있으며, 시왕상·판관상이 불단 좌우로 둘러서 배치되어 있다.
살아있는 자들도 지장보살 앞에서 죄업을 드러내어 참회하면 악업이 소멸된다고 한다. 부처님 말씀에 진심으로 참회하고 다시 죄를 범하지 않으면, 마치 구름이 사라지면 달이 곧 밝아지듯이 죄업 또한 사라져 청정해진다고 하시었다.
범종각 이 종소리 울려 울려 온 누리에 두루 퍼져 꿈속 중생 깨우쳐서 괴로움은 소멸되고 보리심을 모두 내어 오는 세상 다하도록 보살도를 행하다가 함께 성불 하여지다
내연산 12폭포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즉 12연기를, 팔면보경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보경사에 전하는 목판중에서 오암스님 임종게와 맹호연의 한시 춘효(春曉)를 감상하며 보경사 순례를 마무리 합니다. 보경사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한 오암스님의 임종게(臨終偈) 今朝一夢罷(금조일몽파) 오늘 아침에 한 꿈을 깨고 何處煥新願(하처환신원) 어느곳에 새 얼굴을 바꾸리 久法普提願(구법보리원) 오랫동안 깨달음의 원을 맺었으니 當生法王家(당생법왕가) 마땅히 법왕가에 나게 되리라. *'하처환신원'의 해석에 따라 얼굴에 해당하는 한자 願이 顔이 아닌가도 생각했으나 큰 옥편에 찾아보니 願자에도 '큰머리'라는 뜻과 '얼굴이 짧은 모양'이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보경사에 전하는 숙종의 어필 목판에 있는 孟浩然의 春曉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봄 잠에 날이 새는 것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곳곳에서 새 우는 소리 들리는구나.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간밤에 비바람 소리 나더니 花落知多小(화락지다소) 꽃잎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꼬
해탈문을 뒤로 하고 속세로 돌아 옵니다. 이로써 19차 고찰순례를 회향합니다.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원이차공덕보급어일체) 我等與衆生 當生極樂國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同見無量壽 皆共成佛道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원하옵나니, 이러한 순례의 공덕이 법계의 일체중생에게 고루 퍼져서 저희들과 더불어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 다 함께 아미타 부처님 친견하고, 모두 다 불도를 이루도록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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