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108)천년고찰순례기

희방사/ 10월 24일 제18차(51)

청원1 2010. 11. 10. 17:12

 

 

 

희방사 대웅보전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竗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부처님은 우주에 가득하시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 다르지 않네

광대무변한 원력 다함이 없어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헤아릴 수 없네

 

6시 10분경 낙동초등학교 아래 출발지에서 출발하여 9시 30분경 희방사 아래 대형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일부 회원은 걸어가고 일부 회원은 희방사까지 택시를 이용하였다. 

오늘은 고찰순례 18회차로 지난해 5월 제1차로 선암사, 송광사, 대원사를 순례하고, 송광사

에서 송광사 교무스님의 집전 입재식으로 시작하여 매월 4째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천년

이상된 고찰 3사를 순례키로 계획된 36회차 108고찰순례의 절반이 되는 날입니다. 2012년 4월

36회차 표충사, 운문사, 통도사 회향시 까지 무사하고 원만하게 회향할수 있기를 불보살님 전

에 기원합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전국 대부분이 비가 오고 경상북도 영주시, 봉화군 엮시 오늘 03시부터

18시 까지 비가오는 걸로 되어 있어 어제 오후에 우비를 준비하라고 전체 회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새벽 5시 현재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5시 40분경 우산을 쓰고 출발 장소인 낙동

초등학교 아래에 도착하니 버스가 도착해 있었고 몇몇 회원이 탑승해 있었다. 도착하는 회원

순서대로 번호패를 배부하고 아침공양 대용인 주먹밥, 김, 생수, 1회용 물수건을 배부하고,

사찰안내 인쇄물과 예불대참회문이 인쇄된 기도포1, 10가지 절하는 공덕이 인쇄된 기도포2

를 배부하였다. 이어서 이태욱․이승희 부부가 월간 정토 5월호를 전회원에게 보시하고, 여래지

보살이 보시한 부산대 이상금 교수의 저서로 발트3국의 문화 역사 탐방기인 『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을(정가15,000원) 일일회원 포함 전회원에게 1권씩 배부하였다.

지난 9월 30일(목) 저녁 7시 동광동 백년어서원에서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했던지라 나는

이미 저자 사인이 된 책을 읽었다.

사찰안내 DVD는 불교TV에 희방사와 축서사에 관한 적절한 사찰안내 방송자료가 없기에

<한국의 명찰 봉황산 부석사>만 준비되고, 법문 DVD는 지난 6월부터 계속되어온 2009년

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 9번째와 10번째인 승원스님(가평 백련사 주지)의 <광명각품>, <보살

문명품>, 원명스님(통도사 방장)의 <동안거 결제법어>, <사성제품>이 준비되어 시간에

맞추어 버스 운행시 시청하였다.

 

6시 10분경 출발과 동시에 불교방송국에서 제작한 새벽예불 DVD와 천수경 DVD에 맞추어

전문포교사인 수행심 보살님의 목탁에 따라 새벽예불을 올렸다.

 

예불이 끝난후 수행심 보살님이 기도포에 인쇄된 예불대참회문의 한글 해석이 된 8페이지

인쇄물을  배부하였다. 그리고 박주경 보살님이 보시한 을 전 회원에게 나누었다.

 

오늘은 김종진거사님이 희방사에 과일과 떡공양을 올리고 박주경 보살님이 부석사 무량수전

떡공양을 올리고 회비로 희방사와  부석사 무량수전꽃공양을 올렸다.

 

정일헌 거사가 작성 제작한 순례사찰안내 인쇄물

 

이태욱 이승희 부부가 보시한 월간 정토

 

수행심 보살님이 보시한 예불대참회문을 해석한 인쇄물 

 

지난 7월 25일 제15차 고찰순례 3번째 순례 사찰인 보림사에서 1시간 넘게 법문을

해주신 광적스님의 수행 노트를 복사하고 광적스님 수행노트 내용에 관련 있는 <장엄염불>

원문과 한글해석문을 8페이지 추가하여 광적스님이 붙여준 <生死解脫門>이란 제목에 <광적

스님 수행록>이란 부제를 달아 복사 제본하여 배부하였다.


 

이번 순례시 여래지보살께서 발트3국의 문화와 역사 탐방기를 수록한 책인『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을(정가15,000원) 일일회원 포함 전회원에게 1권씩 보시하였다.

저자 이상금 교수님은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데, 원래는 독일

문학을 전공하셨지만 지금은 독일발트문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계시며, 국내에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발트 전문가이기도 하십니다. 지난 9월 30일 저자와의 만남행사에

다녀 왔으며, 관련 사진과 내용은 자유게시판 83번과 91번 글을 참조 바랍니다.

 

이번 순례시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기도포1(광목다포, 특大,예불대참회문: 대자대비민중생

대희대사.....보광불, 보명불,....., 108배시 칭명할 부처님 명호가 인쇄된 다포), 기도포2(민속

다포, 특大, 절하는 10가지 공덕, 108배시 좌복에 깔아 땀이 좌복에 베는것 방지) 각 1장씩을

일일회원 포함 전 회원에게 배부하였다.

 기도포1 (73cm x 39cm)

 

 기도포2 (73cm x 39cm)

 

만산홍엽속의 희방사가 고찰순례단에게 순례의 길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소백산 해발 800m 숲속에 자리한, 기쁨을 주는 절 희방사(喜方寺)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두운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월인석보>를 소장한 사찰로 유명하다.

<월인석보>는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책으로 세조5년

에 편찬되었다. 월인석보 판목은 한국전쟁의 화마에 대웅전과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가람은 1954년 안대근(安大根) 스님이 새롭게 중창한 것이다. 많은 문화재는

소실되어 없지만 유일하게 동종이 남아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건설화를 간단히 살펴보면 어느날 두운조사가 산길을 가다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목에 비녀가 걸렸는데,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

주고 호랑이를 살려줬다. 그 후 호랑이는 두운 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다.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慶州戶長)의 무남독녀였다. 경주

호장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코져 이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이름지었다.

당시, 경주호장은 이것으로도 은혜에 대한 보답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죽령고개

아래 마을 계곡에 무쇠다리를 놓아 주었는데, 지금도 고개 밑의 마을을 수철동

(水鐵洞)이라 부른다.

 

대웅보전 금동 석가여래삼존상 /  주불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좌우보처는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지장전 / 현판 글씨는 일타스님의 글씨라고 합니다.

 

摩訶大法王 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 무단역무장

本來非皀白 본래비조백

隨處現靑黃 수처현청황

위대하고 크신 부처님께서는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으며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곳에 따라 푸르고 누른빛을 띠시네.

 

이는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나오는 야부(冶父)선사 게송이다.

 

지장전 주련에 本來非白이 本來非白으로 되어 있는데 俗字이나,

(조)와 (흡)은 다른 글자로 皁는 검은빛 조, 하인 조 등으로 皀은 향 흡,

향기 향(곡물에서 나는 향기, 會意 ; 白 + 匕 → 皀. 白은 쌀, 匕는 숟가락. 쌓인

쌀을 숟가락으로 뜸을 보여 곡식의 향긋함을 나타낸다.)으로 쓰는데, 조(皂)를

사용하지 않고 흡(皀)을 사용한 뜻은....... ?

아마도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옳고 그름과 분별을 떠나라는 뜻이 숨어 있는듯 하다.

지장전 지장보살

지장전 앞 7층 석탑

 

 

삼성각

 

光流最勝金沙界  광류최승금사계

號曰子孫萬德君  호왈자손만덕군

鎭居北斗昇沈址  진거북두승침지

摠是衆生作福田  총시중생작복전

북두성(北斗星)왕이 계시는 금사계는 아름다워라

내 자손들 만덕군이 되리라 말하네!

북두칠성 승침 하는 이 땅에 눌러 살면서

모든 중생들 복을 받게 하여 주소서.

 

* 금사계(金沙界) - 구야니주(拘耶尼州)의 세계. 관세음보살의 주거지.


 

희방사동종(喜方寺銅鐘) 시도유형문화재  제226호

조선 영조 18년(1742)에 주조된 것으로, 머리부분이 둥글고 아래로 가면서 살짝

벌어지는 형태의 종이다. 종을 거는 고리는 2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으며, 몸통은

가운데 2줄의 띠를 둘러 2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 어깨부분에는 범자를 새겨

둘렀으며, 아래에는 4군데에 유곽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보살입상을 두었다. 몸통

아랫부분에 명문이 새겨 있으며, 입구에서 조금 올라간 부분에는 꽃무늬와 덩굴무늬

로 띠를 둘렀다. 이 동종은 전통적인 수법에 외래 요소인 쌍룡의 고리와 띠 장식이

가미된, 조선후기 범종의 한 유형인 혼합 형식의 종으로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범종이다.

 

이 동종은 1742년 조선 영조 18년에 단양 대흥사에 머무르던 승장(僧匠)인 해철

(海哲)스님과 초하(楚荷)스님등 조성한 동종이었으나 단양 대흥사가 폐사(廢寺)

가 되면서 어떤 경로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희방사까지 이전을 하게 되었다.

 

 

 

내려오면서 희방폭포에 들렀다.

희방폭포는 희방사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백산 중턱 해발 700m 지점에 있다.

높이가 28m로 내륙의 폭포 가운데 가장 높은 폭포이다. 특히 희방폭포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

승람(東國輿地勝覽)등 편찬에 참여했던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은 희방사 폭포를

보고 찬하기를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라고 극찬하였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은혜로

꿈속에서 노니는 듯 한 풍경이라는 뜻이다.

 

희방폭포 앞

 

 

 

순흥의 이름난 맛집인 <순흥 전통 묵집>에서 소박한 묵밥으로 점심공양을 하였다.

순흥도호부가 있어 타지역보다 풍족했던 순흥은 세조 3년(1457) 금성대군이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는 거사가 발각되면서 초토화가 되고, 몰락해 어려워진 마을

엔 먹을거리가 부족하여 구황작물인 메밀로 먹거리를 해결하다보니 그때부터 메밀묵밥이

유명해졌다고 한다.

 

도착하니 여러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은  원래 예약이 안된다고 했는데, 위 별채에 우리 일행을 위하여 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마도 영주시 여행지기님 덕분인 듯하다. 며칠전 영주시 여행지기님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이야기 했었는데, 여행지기님이 업소에 전화를 해 주겠다고 하였다.

영주시 여행지기님 감사합니다.

 

메밀묵에 조가 섞인 밥을 비벼서.......

 

씨만 뿌려두면 되는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비료나 농약이 필요치 않으니

말 그대로 웰빙 식품이다.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은근한 장작불로 메밀묵을 쑤는데,

메밀을 맷돌에 갈아 가마솥에 쑤어내고 하룻밤을 식혀내야 하는데 식으면서 상해

버리기에 묵을 퍼내 식힐 때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까지

쐬어 주면서 선선하게 식혀야 하고, 빨리 식히려고 따뜻할 때 냉장고에 넣어면 쉰내가

나서 못쓰게 된단다고 하니 취급하기가 까다로운 음식이다.

 

 

 

      

묵집 뒷뜰에 땅만 보고 있는 이 꽃은......

 

점심공양후 2번째 순례사찰인 부석사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