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사/ 9월 26일 제17차(49)
洞裏烟霞鎖欲開 동리연하쇠욕개
夜深星斗暫徘徊 야심성두잠배회
想得潭溪秋月白 상득담계추월백
此生何日溯洄來 차생하일소회래
골짝의 연하 개려 하는데
깊은 밤 별빛 아래 잠깐 배회했네
시냇물에 가을 달빛 밝음 생각하니
이 인생 어느 날 다시 찾아올까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위 시는 우암 송시열이 공림사에 들러 공림사를 돌아보고 남긴 시다. 송시열이 공림사 인근
화양구곡에 암서재라는 건물을 짓고 공부하면서 널리 소문난 공림사에 들러 뛰어난 절경을
둘러보고 이 시를 남긴 것이다. 공림사에 들른 송시열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었나 보다.
오히려 여유로운 공림사의 산행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옛 일을 추억하게 만들었나
보다. 거기에는 반성도 포함될 것이고, 또한 앞으로의 기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공림사는 낙영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낙영산은 온갖 기이한 형상을 바위들로 구성되어 마치
신선의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산의 이름을 낙영산이라고 한 연유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라 진평왕 때에 당 고조가 세수를 하려고 세숫물을 들여다보는데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세수대야에 비쳤다. 이를 이상히 여긴 당 고조는 신하를 불러 이 산을 찾도록 했는데 당나라
땅내에서 이를 찾지 못했다. 이러던 중 꿈에 동자승이 나타나 이 산은 당나라땅이 아니라
신라땅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에 신라로 사신을 보내 이 산을 찾으려 했으나 이 역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신이 낙심하며 당나라로 돌아오던 중, 길에서 한 도승을 만나게 되었고
도승이 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신이 이를 따라 이곳에 도착해보니 정말 당고조가 얘기한
그 산이 우뚝 솟아있었다. 이후 이산을 “당나라 땅에 그림자를 드리우다”는 뜻의 낙영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공림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이지만 국가에 분란이 있을 때마다 심하게 훼손되고 파괴
되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임진란 및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사찰이 거의 황폐화 되었고 또 다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사찰의 모든 전각이 사라지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롭게 사찰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는 더욱 강해지게 되었고 그런 결과 현재 공림사는 대찰의 모습
을 다시 갖게 되었다.
공림사는 수행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러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수행의 과정은 일반인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다. 번잡하고 싫증나는 도시의 삶에
찌들어 뭔가 고민하며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싶을 때, 송시열이 그랬던 것처럼 공림사에 들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공림사에 들러 자신을 반성하고, 또한 앞으로의
기대를 키울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koreatemple.net>
위 공림사 홈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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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림사 뒤 낙영산과 파란 가을 하늘이 멀리서 고찰순례단을 맞고 있습니다.
공림사 아래 주차장에 주민들이 팔고 있는 야생 버섯인데 이름이 노루궁뎅이라고 합니다.
순례단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진리의 세계로 향합니다.
대웅전 / 공림사의 주불전으로 대웅전이 건립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후 사찰을
중건하면서 초기에 건립한 주불전은 극락전이었으나 주불전을 중건하면서 대웅전으로 바꾸었다.
대웅전은 높게 만들어진 축대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축대는 최근에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사찰 소실 이전에 만든 축대이다. 거대한 장대석을 이용해 5단 정도 쌓아 올렸는데 줄눈이
서로 틀어지지 않게 바른층으로 쌓았다. 축대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통해 상부로 진입
하게 되어 있는데 계단과 대웅전은 축이 약간 틀어져 있다.
평면은 정면 5간, 측면 3간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의 3간의 크기가 좌우 각 1간의 크기보다
크게 간살이되었다. 기단은 곱게 다듬은 장대석을 두단 쌓은 이벌대로 만들었고 기단의 중앙
부와 좌우측면에 하나씩의 계단을 만들었다. 초석은 다듬은 돌을 이용해 만들었고 운두를
높게 구성했다.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했으며 흘림을 두지는 않았고 중앙에 위치한 2개의
기둥상부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꽂아 넣었다.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渺難窮 왕양각해묘난궁
白玉毫輝充法界 백옥호휘충법계
紫金儀相化塵寰자금의상화진환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 계시니
삼세의 여래가 모두 같은 한 몸이네
크나큰 원력은 구름같이 항상 다함이 없어
넓디넓은 깨달음의 세계 아득하여 끝이 없네
백호광의 대광명이 법계에 충만하니
자금광의 상으로서 진세중생 제도하시네.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를 사용했는데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구성했다. 처마는 부연을 덧단
겹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대웅전은 1고주 5량으로 구성되었으며 고주 전면에 불단을 만들었다. 근래에 만든 불전의
경우 내부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고주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으나 공림사 대웅전의
경우는 전통방식을 따라 구성했다. 불단에는 삼존불을 봉안했는데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왼편에는 문수보살, 오른편에는 보현보살을 모셨다. 각 불상의 뒤편으로는 개별적으로
탱화를 조성해 봉안했으며 불단 상부에 만들어진 닫집 역시 각각의 불상 상부에 따로 구분해
만들었다. 닫집은 보궁형으로 구성했으며 매우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웅전 내부 왼쪽 벽면에는 지장단을 만들었다. 지장단에는 따로 지장보살이 봉안되지는
않았고 지장탱화만이 모셔졌다. 화기에 의하면 1987년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내부
오른쪽 벽면에는 신중단을 꾸몄다. 신중단 상부에는 신중탱화를 봉안했는데 1983년에
그린 것이다.
대웅전의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구성한 후 화려한 단청을 더했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로
구성했다.
혜우 주지스님 께서 법문을 해주고 계십니다.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님
대웅전 삼존불 / 중앙에는 석가모니불, 왼편에는 문수보살, 오른편에는 보현보살을 모셨다.
관음전 관음보살상
삼성각
감인선원(堪忍禪院) / 참고 견디며 참선을 하는 선방이다.
<주련>
半榻淸風半榻蓮(반탑청풍반탑련)
一江秋水共長天(일강추수공장천)
棒喝齊施猶未宗(봉갈제시유미종)
三玄三要絶狐踪(삼현삼요절호종)
風吹碧落浮雲盡(풍취벽락부운진)
月上靑山玉一團(월상청산옥일단)
萬里紅霞穿碧海(만리홍하천벽해)
一天白日繞須彌(일천백일요수미)
자리의 반은 맑은 바람이요 반은 연꽃 향기더니
강에 비친 가을 물과 긴 하늘은 한 빛으로 푸르고
방과 할을 함께 쓸 땐 종지 아직 막연터니
삼현(三玄)구와 삼요(三要)구로 여우 의심 끊어졌네
바람 불어 구름 걷히니 푸른 하늘뿐
청산에 달이 뜨니 옥구슬 같고
만리(萬里)에 뻗친 붉은 노을 푸른 바다 꿰뚫었네
하늘 가득 밝은 태양은 수미산을 두르네
적광탑 / 공림사 경내에 들어서면 매우 커다랗게 만들어져 있는 마당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당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석탑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석탑의 이름이 적광탑
(寂光塔) 이라고 한다. 1993년 관음전 옆 석가탑과 더불어 건립되었다. 석탑은 5개의 탑신과
5개의 옥개석으로 구성된 5층석탑이다. 탑의 기단은 방형으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에의 면석
에는 연꽃의 모양을 조각했고 한 중심에는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탑신과 옥개석은 “亞”자
모양의 평면을 가고 있다. 탑신의 각 면에는 여래와 보살의 모습을 빼곡히 조각해 놓았다.
탑신과 옥개석이 만나는 부분에는 공포의 모양을 조각해 넣었고, 옥개석 하단의 경우 선자
서까래 및 추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옥개석 상면 역시 기와의 모습이 사실적
으로 조각되어 매우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상륜부 역시 여러 부재를 모두 사용해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적광탑의 외부는 난간을 둘렀고 좌우측으로는 사자의 모습을 조각해 배치해 두었다.
범종각
공림사는 수백년 이상된 느티나무들이 순례단을 먼저 맞이하고 환송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