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지막 신라인 고청 윤경렬
경주 고청 윤경렬 (古靑 尹京烈) 선생님의 생애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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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靑 先生님 徐 英 洙 푸른 하늘, 깊은 생채기 세월이 돋아나는 숨결을 찾아 이름하여 겨레의 山 南山을 오르신, 古靑 先生님.
고향마을 세간살이 모두가 하나 永生하는 골짝들이 열리는 귀도 하나. 물소리 새소리를 허리춤에 차고 하나의 길을 따라 하나를 찾아 오르고 오르신 임, 자국도 하나.
꼬부라진 남산길. 허리 펴고 오르셔요. 내려다 뵈는 그늘에서 사랑을 앗다가 산주령에 휘감겨 잃어버린 날을 향해 이제는 허리 펴고 산을 오르셔요.
곱슬머리 타래진 얼굴 저편에 千年 신라가 누워 앓고 있는데 흰 두루막 고무신을, 솔가지에 걸어놓고 삼화령 높은 奉에 꿈을 캐는 그림자여.
금오산 고위산을 왕래하는 물소리에 푸른 하늘 깊은 생채기 알몸이 익는 민족의 산 밟아오른 古靑 先生님. - 『겨레의 땅 부처님 땅』 출판 기념회 祝詩 -
'신라를 알고 싶으면 경주에 가 살아라. 겨레의 혼을 알고 싶으면 서라벌의 흙냄새를 맡으라. 그리고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고자 한다면 경주 남산에 가 보아라.'는 스승 고유섭 선생의 말을 따라, 윤경렬 선생님께서는 30살의 젊은 시절, 함경북도 주을의 고향을 떠나 옛 신라의 서울 경주에 터를 잡았다. 선생님께서는 '살아 있는 신라인'으로 불리우며 경주 남산 기슭에 살고 계신다. 이제 여든넷의 나이, 평생 신라의 수문장이 되어 서라벌의 맥을 잇고자 노력했고, 죽어서는 남산의 수호신이 되리라는 선생님께서는 한달에도 몇 번씩 노구를 이끌고 남산을 오르내리며, 부처님과 하늘과 땅을 잇는 이 성스러운 곳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선생님께서는 진홍섭씨와 함께 경주에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세워 조상의 슬기를 가르쳐 온 공로로 외솔상(11회, 실천부문)을 받았으며, 풍속인형연구소인 고청사(古靑社)를 세워 풍속토우를 만들어 경주 민속품의 주맥을 이루어 오기도 했다. 고청 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1997년12월18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로 대한다. 윤경렬(84)씨는 인형을 만들던 사람이었다. 함경북도 경성군, 온천마을로 이름났던 주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흙으로 만든 토우 인형에 마음을 빼앗겼다.
윤씨는 독소를 빼기 위해서 역사가 깊은 곳으로 터전을 옮겨야겠다고 작정했다. 풍속 토우를 만들려면 옛 사람의 얼굴과 의복 일습을 알아야 했다.
그는 한국 사람 얼굴의 특징을 ‘꾸밈새가 없는 표정’이라고 했다. “처음 남산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땐 나무꾼하고 나물 캐는 아낙밖에 없었어요. 윤경렬씨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건 그가 쓴 <마지막 신라인 윤경 렬―윤경렬 평생이야기>(학고재 펴냄) 때문이다. 윤씨가 마다했음에도 후 학들이 마련한 출판기념회가 12월5일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렸다. 지금도 그는 경주시 양지마을의 인형공방 ‘고청사’(古靑舍·0561-772-9114) 문턱 낮은 집에서 한국인의 멋을 생각하고, 남산을 가고자하는 손 들을 맞으며 산다. 동무처럼 손잡고 남산을 오르내리던 부인 ‘순이’를 3년 전 먼저 보낸 요즘 그의 나날은 고즈넉하다.
고청 윤경렬 선생님은 1999년 12월1일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