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108)천년고찰순례기

김룡사 / 3월 28일 제11차(31)

청원1 2010. 4. 15. 06:51

운달산 김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인데,

일제강점기31본산의 하나였다.

운달산김룡사사적서 <雲達山金龍寺事蹟序> 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 (588)

운달 조사(雲達祖師)가 개산하여 사명을 운봉사(雲峰寺)라 하였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은 운봉사란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掛佛畵記 ,1703년) 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명이 김룡사로 바 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것은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神女家)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 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金長者) 라 하였고,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金龍里)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일주문 / 김룡사란 글씨위에 별도로 홍하문 ( 紅霞門.붉은 노을문)이란 글씨가 적혀있다
이것은 성철스님이 평소 즐겨 말씀하시던 '아침 붉은 해가 푸른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
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에서 따온말로 용맹정진을 통해 얻는 깨달음을 말한다.

서화가 김규진[1868~1933] 의 글씨.

 

일주문의 주련이 마음에 와 닿는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새삼 되 새겨진다.

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

無解空器大道成滿  비우고 빈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 

 

대웅전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5호로 1625년(인조 3)에 혜총선사(慧聰禪師)와

그 제자인 광제(廣濟)·묘정(妙渟)·수헌(守軒) 등이 재건하였다.

 ▲ 대웅전

 ▲ 극락전

▲ 아미타불

▲ 극락전앞에 있는 토종 벌통

 ▲ 금륜전 /  치성광여래좌상과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천재지변을 주관하던 북두칠성을 불교에 흡수하여 부처님으로 승격된 분이 치성광여래이다.

나반존자(那畔尊者)는 독성(獨聲)이라고도 하는데, 이 분은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이다.

 

 ▲ 상선원

 ▲ 응진전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 짓는 석불의 후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화좌에 위에 모신 석불은 중생의
모든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로 양손은 약합으로 보이는 기물을 들고있는 모습이다.

 박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우리 고찰 순례단원들 몇분은 이 석불로 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 왔습니다. 

 

 

 

 ▲ 설선당

 

 ▲ 천왕문

 ▲ 보장문

 

<김룡사 애기스님의 전설>
물이 맑고 숲이 우거진 운달산 골짜기 깊숙이 자리잡은 김룡사는 창건이래 참선하러
오는 수도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수많은 수도승들 가운데 한 애기중이 있었다.
하루는 주지스님이 이 애기중에게 상추를 씻어 오라고 하여 애기중은 시냇가로 나갔다.
맑은 물에 손을 담구어 상추를 씻고 있던 애기중은 문득 눈앞에 붉은 불기둥과 함께
활활 타고 있는 절을 보았다. 가만히 살펴본즉 김룡사에서 십여리 떨어져 있는 대승사였다.
불타고 있는 대승사의 중들은 우왕 좌왕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애기중은 놀라서 자기가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신 없이 염불을 외고는
시냇물을 상추 잎으로 불길을 해 퍼부었다.
손끝을 따라 상추 잎들이 마구 불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한참만에 불이 다 꺼졌다.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린 애기중은 상추그릇을 보니 상추는 몇 잎 남아 있지 않았다.
큰 일이다 싶어 남은 상추를 씻어 급히 절로 달려갔다.
한편 주지스님은 이제나저제나 상추 씻으러 간 애기중을 기다리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뒤늦게서야 애기중이 헐레벌떡 달려 왔다.
어디가 낮잠을 자고 오느냐고 묻던 주지스님은 몇 잎 남지 않은 상추 그릇을 들여다보고는
더욱 화가 폭발해서 무슨 장난을 치느라고 이제 왔느냐며 따지고 매체를 들었다.
애기중은 아무 말도 못한 체 매를 맞았다. 이야기를 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핑계를 댄다고 더 매를 맞을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매만 실컷 맞았다. 밤이 되었다.
애기중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음 속으로는 이 절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번뇌에 잠겨 있었다. 그때 옆에 누워 있던 한 중이 낮에는 어떻게 해서 그
렇게 많은 매를 맞았느냐고 물었다. 애기중은 낮에 일어났던 일을 하나하나 얘기했다.
그러나 그 중 역시 믿어지질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중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서 애기중은
몰래 절을 떠났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중들은 애기중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어젯밤에 들은 애기중의 이야기를 모두들에게 알렸다. 이야기를 들은 여러 중들은
가타부타 논쟁을 벌리다가 누가 직접 대승사에 가보기로 하였다.
과연 대승사는 불탔었고, 중들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대승사 중들은 불이 일어난 시각이며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와 불을 끈 상춧잎 이야기를 자세히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룡사 중은 과연 애기중의 이야기가 참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급히 돌아온 중은 주지스님께 이 사실을 고하여 애기중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길이 없어 애기중 잃은 것을 매우 안타깝고, 가엽게 여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