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리산 칠암자 순례(실상사--->도솔암)
언제부터인가 가보고 싶은 지리산의 실상사에서 시작 하여 7암자를 순례 하고자
검색 하다가 정보가 있어서 카피해 왔습니다....
인연 만들어 가보시지요...
장마가 거치면 댕겨 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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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 누구와 말하지 않아도 심심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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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휴게소
기상예보와는 달리 빗방울이 오락가락 한다.
더 많이 오지않길 바라면서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암흑 속에서의 초입을 잘 찾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서두르지 말라 하면서
그래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기억 속에 언뜻 가끔씩
상태 양호할때만 뚜렸해지는 "혼불"의 한토막
'' 한꺼번에 다 살려고 하지 말게나. 두고두고 살아도 꾸리로 남는것이 설움인데.
원수 갚듯이, 그렇게 단숨에 갚아버릴 생각일랑 허지 말어..........
그런다고 갚아지는 것도 아니니.''''''''''''''''''
실상사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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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실상사로 들어서는 길손을 처음으로 반겨주는 것은 만수천에 걸린 해탈교 양쪽에 서있는 세 기의 석장승. 1725년 무렵에 세워졌으니 거의 300년 가까이 그렇게 실상사를 지켜온 셈이다. 본래 석장승은 네 기가 있었으나 1936년 대홍수 때 한 기가 떠내려가고 말았다고 한다. 보통 장승은 남녀 한 쌍으로 세워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이 장승들은 모두 남성이다.
세 장승은 생김새도 모두 비슷하다. 머리엔 헐렁한 벙거지를 썼으며, 툭 튀어나온 퉁방울눈에 코는 뭉툭한 주먹코다. 거기에 윗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 보이지만 입가의 미소는 유순한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민간신앙의 한 형태인 장승은 주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하면서 잡귀의 침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도 한다. 이 장승 역시 절집의 경계 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운 것이다. 그러니 장승과 눈 맞추면 경내로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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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
흐린 날씨 탓에 시계는 10m도 채 되지 않아 실상사의 세부적인 답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약사암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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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으로 가는 농로 옆 샛길을 이용해서 간다
벌통의 단냄새가 내려앉은 습기보다도 더 농도 짙게 다가온다
한 참을 가다다
산사태로 길은 없어져 다시 실상사 앞까지 오고,
다시 가다가
넘어진 통나무 가지에 이마를 부닥쳐 찢어지는 바람에 지혈하느라
채 1km도 못가고 두시간이 흐르고 날이 샌다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밭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도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되는지를 나는 안다
_이성부 시 '산길에서 -내가 걷는 백두대간2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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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이다. 앞 건물이 요사채이고 뒷 건물이 보광전이다.
백구가 새벽 적막을 사정없이 깨버린다
(퍼온글)
1724년(경종 4)에 천은스님이 처음으로 세웠고, 서영대사가 중수하였다. 1901년(광무 5)에 지월대사는 일당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 예암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937년에는 함양의 불자 한정희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 비구니 스님이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기 때문에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약수암의 자랑이라면 보광전 아미타목각탱화이다. 목각탱화는 불화의 내용을 부조로 표현한 것인데 조각기법과 불화기법을 혼용한 것이다. 약수암 목각탱은 사각형의 목판 1매에 아미타불과 여덟 분의 보살, 두 분의 비구를 높게 돋을 새김하였다. 목판을 하단 중앙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4보살과 2비구를 배치하였다. 연화좌대에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몸 전체를 감싸는 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따로 조각하여 끼워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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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다가가 물 한바가지 마시고
한 컷 했으나 실패..
하여튼 약사암의 약수터이다
이후 도마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절의 왼쪽 울타리를 타고 돌아
삼정산 능선을 타고 가다 삼불사로 내려서기로 한다
삼불사에 도착 했다
(퍼온글)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 도랑으로 고지대에 있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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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암이다
인기척에 노승 한 분이 나와 반깁니다.
(퍼온글)
문수암에는 도봉스님이 84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절이란다. 석축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다.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라고 하나 아직 굴의 크기나 전설, 생성 유래에 대해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채 있다고 한다. 도봉스님은 이 굴에 대한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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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두껍게 긴 안개때문에 조망은 없었으나
그랬었기에 사찰의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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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게 사진 한번 같이 찍자 권하니 거절하여 우리끼리 한 컷 부탁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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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오는 지, 내린 비에 젖였는지..그래도 흑곰형님 웃는다
바지에서 흐르는 빗물은 어느새 등산화 윗부분을 적시고 있어 한번씩 비틀어 물줄기 훔쳐내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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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암 담벽 아래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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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두툼한 누비조끼를 입고 일행을 반긴다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답사기를 읽은 기억때문에 들어가기전 공손히 인사하고 사진촬영을 부탁하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퍼온 글)
<상무주암 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러나 별다른 부속건물도 없고 단정한 시골집 별채의 참선 수도 암자에 불과한 것 같은데 오히려 산중의 호젓한 별장 같은 느낌마저 드는 곳이니 무릇 사찰이 위치한 곳은 역시 명당인 양 인간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릉도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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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산에서 영원사로 가는 (지도에 있는)능선길을 찾으려고 약 20~30분 정도 왔다갔다하다가
처음부터 다시하려고 상무주암쪽으로 되돌아 나오니 길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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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다
7암자 중 가장 크고 보기만 해도 ,,,좋다
(퍼온글)
<영원사 靈源寺>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다. 이 절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은 여수 반란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곳까지 찾아와 절터를 아지트로 삼으면서, 건물 등을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면서부터다. 그 후 1971년 중건 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는데 원당형의 둥근 석탑이 5기가 있으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도들은 영원사의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 등 이름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들이 있다. 엽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 등도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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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립공원 이정표중 가장 확실한 것...추ㄹ이ㅂ 금지
도솔암으로 가는 입구다.
길의 폭은 우마차가 지나다닐 정도이다
한적함과 고요함과 포근함이 피로를 몸 밖으로 몰아낸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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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입구...
결제가 뭘 의미 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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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은 없고
널따란 마당에 핀 야생화들만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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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가서 열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지독스러운 적막이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한다
(퍼온글)
▶ 도솔암
.돌자갈이 깔린 도솔암 가는 길은 의외로 뚜렷하리만큼 넓은 길이다. 완만하게 가다가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막판에 살짝 오르면 사립문이 있는 도솔암 입구이다. 마땅히 들어 갈 다른 문은 없이 나무작대기 2개가 자물쇠 역할을 하듯 걸려있다. 좌측에 <←등산로> 작은 푯말이 걸려있다. 좌측으로 50~70여미터 가면 도솔암 삼거리가 나온다.
사립문을 통과하면 해우소와 창고(?) 좌측에 샘터가 있으며 우측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도솔암의 본채가 있다. 마당이 넓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의 조망도 좋다.
<도솔암> 영원사의 속암으로 이곳은 영원사에 유명한 방광사리탑을 남긴 청매스님의 수도처로 유서가 깊다. 영원사와 함께 전란에 잿더미가 됐다가 최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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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도, 열무도, 감자도, 배추도,,,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걸 증명 해준다
곱게 자라고 있다...
아! 도솔암은 작년에 찾다가 못 찾은곳인데 ...이번에 가면 하안거 결제중!????
지리산이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