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석굴암 / 1월 24일 제9차 (24)
제2석굴암은 1927년 발견되었지만 시대양식은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를 앞선다고 한다.
마애불-자연석굴-인공석굴의 불상의 흐름도 알려주는 귀중한 보물이다.
인공으로 조성한 제2석굴암은 오전에는 석굴가득 햇살을 품고 정오를 지나면 열반적정의
세계처럼 어둠이 자리를 편다고 한다. 석굴의 형식은 삼국통일 직후로 알려졌지만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수도한 절로 구전되고 있다.
극락교를 지나면 서방정토 아미타 부처님을 뵙기전에 광배와 본래의 대좌가 멸실된 지권인
수인의 비로자나불이 우리는 하나임을 강조하며 손을 내민다. 불상은 결가부좌, 법의는 통견,
승각기(속옷)도 보인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고 뺨은 통통하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렸고
나발, 삼도를 표현했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문이 잠겨 있어, 주지스님을 찾아뵙고 3배를 올린후
우리 고찰순례단원들이 가까이서 석굴암 부처님을 참배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수 없느냐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2석굴암은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이며 모셔진 본불상은 7세기
후반의 유형으로 최초의 항마촉지의 수인이지만 협시불로 인해 아미타불로 추측되어
석굴암 불상도 석가여래가 아닌 아미타라는 쟁점의 단초를 제공하는 석불이다.
아미타삼존불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본존불의 좌우에 입상으로 협시하고 있는 보살상은 관음, 대세지보살상으로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모전석탑은 단층기단,단층의 탑신부로 전무후무한 유형이다. 비정형의 화강암 판석을 방형으로
잘라서 여러단을 쌓았다. 지붕돌은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되었고 상륜에는 노반과 보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