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전각(殿閣) 안의 부처 그는 누구일까요?

청원1 2006. 7. 24. 12:31

 

전각(殿閣) 안의 부처 그는 누구일까요?


 

일주문을 지나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전각들.
그리고 각 전각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건물과 성격을 같이 하면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들.
오늘도 바른 이름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며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법 그럴듯하게 규모를 갖춘 산사를 찾을 때마다 우리는 늘 주 법당과 더불어 각기의 이름을 붙인 여러 불전들을 만나고, 그리고 각 전각마다에는 손 모양이나 형태가 다른 불상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전각의 이름과 불상의 모습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한지 그 의미를 새겨볼 겨를도 없이, 전각은 ‘대웅전’이고 불상은 ‘석가모니불’로 쉽게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조선 후기 들어 종파나 사찰 성격과는 상관없이 법당과 주된 부처가 ‘대웅전’과 ‘석가모니불’로 일반화 되어 버린 까닭이리라.


사찰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주불전을 위주로 하여 살펴볼 경우 규모가 작은 사찰은 대개 ‘대웅전’을 법당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하여, 큰 규모의 사찰은 ‘대웅(보)전’은 물론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약사전’, ‘미륵전’,‘영산전’,‘팔상전’,‘응진전’,‘원통(보)전’,‘명부전’등 여러 이름의 많은 전각들을 거느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많은 건물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기 성격에 합당한 상을 모심으로써 의미를 달리 한다.


‘대웅(보)전’은 법화사상에 입각하여 『묘법연화경』을 주 경전으로 하는 법화계 사찰의 불전으로, 석가·약사·아미타불이 한 조를 이루는 삼세三世 불상을 봉안하거나 항마촉지인을 지은 ‘석가모니불’중심의 삼존불상을 안치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화엄사상의 주경전인 『화엄경』에 의한 화엄계 사찰에서는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을 주 법당으로 삼고, 비로자나·노사나·석가모니불이 세트를 이루는 삼신三身 불상을 봉안하거나 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지권인을 지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다.


하지만 간혹은 ‘대웅전’이면서 ‘아미타불’이 주불로 모셔졌거나, ‘대적광전’인데도 삼신불상 대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삼세불상의 협시 불상인 약사불과 아미타불 삼불상을 조성·봉안한 예를 접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대웅(보)전’임에도 불구하고 주존불을 비로자나불로 하여 약사 또는 아미타와 석가모니불 삼불상이 한 조를 이루고 있는 현장을 만나 적지 않게 당황한 적이 있음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은 비록 전각과 상의 성격이 다르다 할지라도 본래는 합당했을 것이며, 후에 사찰의 성격 또는 발원에 따라 안치된 불상과는 상관없이 불전의 현판을 바꾼 때문이거나 아니면 불상을 새로 조성하면서 달리 했던 데 있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불교 건축 중 ‘대웅전’과 ‘대적광전’또는 ‘대광명전’다음으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불전은 아마도 ‘극락(보)전’과 ‘약사전’이라고 하여도 결코 틀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서는 아프지 않고 오래 살며(無病長壽), 죽어서는 극락 가기를 바라는 것이(極樂往生) 어쩌면 어린 중생들의 가장 큰 소원이자 희망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걸맞게 ‘극락(보)전’에는 인간의 수명과 관계하며 극락왕생을 돕는 무량수불인 ‘아미타불’이 주존불로 모셔지고, ‘약사전’에는 인간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와도 같은 ‘약사불’이 봉안된다.


‘아미타불’의 손 모습은 보통 왼손을 아래쪽에 두고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인을 지으며, ‘약사불’은 아미타인과 같은 모습 또는 좌우가 바뀐 모습으로 아래쪽의 손에 약그릇을 든 이른바 약기인을 짓는다. 그리고 ‘용화전’이라고도 불리는 미륵도량의 주 불전인 ‘미륵전’에는 먼 미래에 세상으로 내려와 지난 생에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다는 희망의 메시아로서 ‘미륵불’이 모셔진다. 주존불로서 머리에 보관을 쓰거나 부처 형태를 하고 손에 연꽃가지 또는 연꽃 봉오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바로 ‘미륵’인 것이다. 

 


한편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사찰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전각으로는 ‘팔상전’과 ‘영산전’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팔상전’은 부처가 되기 이전의 전생으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부처 일대기를 나타내고, ‘영산전’은 설산에서 6년간 고행한 끝에 깨우침을 얻은 뒤 이를 영축산에서 설하는 장면을 나타내는 불전으로 두 전각의 주인공은 당연히 ‘석가모니불’이 된다. 그리고 ‘응진전’은 석가모니불의 제자인 나한(16나한 또는 500나한)이 주가 되는 전각으로서, 제자들과 더불어 주불은 역시 항마촉지인을 지은 ‘석가모니불’이 차지하게 된다.

 

 

이상에서 알아 본 전각들은 모두 부처가 주불로서 법당의 상단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원통전’과 ‘명부전’은 부처가 아닌 보살상으로서,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관세음보살’과 스님 머리 형태의 ‘지장보살’이 가장 주된 상으로서 예배의 대상이 된다. 다 아는 것처럼 ‘아미타불’의 비서격과도 같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지옥에 빠져 헤매는 중생들을 구제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자비의 화신들로서, 늘 ‘아미타불’과 짝을 이루며 호흡을 같이 한다.

 

따라서 예부터 민중들은 물론 귀족 사회에 이르기까지 ‘관음신앙’과 함께 ‘지장신앙’이 크게 유행을 하였으며, 독립적으로는 그에 걸맞게 ‘관세음보살’은 ‘원통(보)전’에 주재하게 하고 ‘지장보살’은 ‘명부전’에 모셔 명부세계를 다스리게 함으로써 본격적인 중생제도에 앞장서게 된다.

 

오늘날 사찰마다 ‘관음재일’과 ‘지장재일’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고, 때를 맞추어 절을 찾아가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왕 산에 오르고 절을 찾아가 치성을 드릴 바에는 어느 전각 안에 어떤 모습의 부처가 자리하고 있으며, 무슨 내용을 나타내는지를 알아차린다면 즐거움이 한층 배가할 것이며 소원 성취에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김창균 / 동산문화재과 전문위원 

출처 : 문화재청
글쓴이 : 문화재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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