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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금잔옥대(金盞玉臺)

청원1 2019. 1. 10. 16:52

이번 겨울도 추사 김정희의 제주 유배시절 반려(伴侶)가 되어 주었던,
멀리 제주에서 겨울 바다를 건너 온
수선화 금잔옥대(金盞玉臺)를
항상 고마운 昊汀齋(호정재)에서 받았습니다.
수선(水仙) 이름 그대로
선계(仙界)의 향기인듯
청아한 향이 거실에 가득합니다.
 

 

거실로 들어온 겨울날 오후 햇살.... 

잔잔한 평온함에 빠져듭니다.

꽃 모양이 백옥 받침 위에 올려진 황금빛 잔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금잔옥대(金盞玉臺)
설중사우(雪中四友) 옥매(玉梅), 납매(臘梅), 다매(茶梅), 수선(水仙) 중 수선(水仙)

 

 

수선화(水仙花) - 金正喜(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한점 겨울 마음 송이 송이 둥글고,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 냉철하고 빼어나구나.
매화꽃 고상해도 오히려 뜨락을 못 떠나는데,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보네.

위 시에서 추사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도 뜨락을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수선화는 뜨락을 벗어난 ‘해탈한 신선’이라고 예찬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수선화를 초견한 것은 선생의 나이 24살 때

부친을 따라 중국의 연경을 방문하였을 때라고 합니다.
그 때 이미 수선화의 빼어난 자태에 반한 선생은

그 이후 생각지도 않게 수선화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의 나이 55세 때,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기랄 수도 있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였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수선화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고 하는데,
알뿌리를 말과 소의 먹이로 사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 기간동안 수선화를 가까이 두고 즐기며 그림으로도 남기고,
위에서 본 수선화를 예찬한 시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순조 12년인 1812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가 연경[중국 북경]에 사신 갔다가

겨울에 돌아오면서 수선화를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 수선화가 들어온 시초라고 합니다.
이후 중국산 수선화의 구근을 서로 나누는 일이 문인들의 운사(韻事)로 되었는데,
제주에서 나는 수선화는 추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말차에 이어 무이암차 대홍포입니다.

통을 베고 누워 겨울 햇살을 받으며 오수를 즐기는 이태백은 사사무애 경지에 이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