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고찰순례외 사찰순례 등

[스크랩] 2561(2017) 전국동문대회 - 2/2 -

청원1 2017. 11. 15. 07:04

 

 

2561(2017) 전국동문대회 - 2/2 -
(대불련 총동문회 창립 50주년 기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

서울 잠실 불광사, 김포 청소년 수련원, 강화도 보문사(부산지부), 전등사
2561(2017). 08. 19 ~ 08. 20

  

<이하 보문사(20일 새벽5시 장대비 속에서.....)>

 

남해 보리암,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기도발이 잘 듣는다는

국내 3대 관음성지중 인천 강화 석모도 보문사 <극락보전>입니다.
지난 6월 30일 강화본도와 석모도간 다리가 개통되어

20일 새벽 장대비가 오는데도 버스로 갈 수 있었습니다.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좌상.
1928년 보문사 주지를 역임하였던 배선주(裵善周)스님이 조성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걸려 올라와서 실망을 하고 돌덩이를 바다에 버리고,
다시 그물을 치자 이번에도 똑같이 22개의 그 돌덩이가 걸려올라오자 또 다시 버렸는데,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낸 귀중한 불상이니

내일 다시 그곳에 가서 불상을 건져 명산에 봉안하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다음 날 어부가 불상을 다시 건져 올려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 보문사 석굴앞에 이르렀을 때 불상이 더 옮겨지지 않아

그곳에 불상을 안치하고 단을 만들어 모셨다고 합니다.

석굴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상, 제화갈라보살상을 비롯해

나반존자와 18분의 나한상 등 22분 석상,

언제부터인지 한분의 존상이 더 배치돼 23존상이 봉안돼 있습니다.

 

 

와불전 내 와불

  

<이하 김포 청소년수련원>

 

 

 

 

 

이번에 일천만원을 대학생불교연합회 후배들 장학금으로 기탁한 동문입니다.

 

 

최다 참가지부상은 부산지부가 받았습니다.

 

지난해 11월 6일 우리 고찰순례단의 무위사, 도갑사 순례시

우리와 동참한 대불련 동문회 최** 부산지부장과

율곡병원장 홍완호 박사님이 부산지부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니다.

정신과 박사인 홍완호 율곡병원장님은 다음 고찰순례시 동참하여

"수행 중에 일어나는 뇌의 변화"와 명상에 대한 외국 학계발표를 취합하여

순례버스내에서 강의를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최다 참석 지회는 동국대입니다.
불서를 많이 출판하는 '민족사'에서 주간으로 일하는 동국대 84학번 동문입니다.

최연소 참석 동문입니다. 06학번입니다.

내년도 월정사에서 동문대회를 개최할 강원지부에 대회기가 전달됩니다.

 

위에 보이는 대불련가의 작사는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고 시작되는

승무(僧舞)로 잘 알려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님이

1967년 월정사에 얼마간 은거할 때 작사하였다고 합니다.

 

<이하 전등사>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이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습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고 합니다.

1282년(고려 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전등이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며, 당시 정화궁주는 인기(印奇) 스님으로 하여금

바다 건너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구해 전등사에 보관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화궁주의 옥등 설화보다는

 

송나라에서 전해진 대장경 때문에

전등사로 개칭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근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보물 제1785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좌우에 협시하는 형식으로서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의 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

아직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네 모서리기둥 윗부분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3곳의 처마 밑에서는 두손으로 처마를 받치며

벌을 받고 있는 모양새인데 비해(사진 위),
한 귀퉁이의 것은 한 손으로만 처마를 받치고 있다는 점입니다(사진 아래).
마치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 사진은 2009년 8월 22일 제4차 고찰순례 전등사, 보문사, 용주사, 칠장사

1박 2일 순례시 사진으로 화질이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보물 제179호 약사전

 

 

 

 

출처 : 백팔고찰순례단
글쓴이 : 청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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