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바치는 찻잔
잔탁(盞托)
김 성태
북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2, 宋代의 잔탁
오대(五代)의 혼란기에 뛰어난 지략과 용맹을 지녔던 후주(後周)의 장군 조광윤(趙匡胤, 宋太祖)은 어린 황제에게 정권을 이양 받아 송(宋)을 건국하는데 그는 비록 군인 출신의 황제였지만 좋은 인품의 선비적 면모가 겸비되어 있어 덕치(德治)를 행하여 송 왕조는 빠르게 중국 전역을 안정시키며 통일국가를 형성한다.
한족들은 태평성세의 낭만에 젖어 들며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서 상문경무(尙文輕武)의 풍조가 일기 시작하여 문인(文人)을 우선시하고 무인(武人)을 경시하는 문치주의(文治主義)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만연한다.
또한 이전시대까지 귀족층과 관료들에게 독점되다시피 해왔던 과거제도의 부활과 문학 사상 예술분야가 서민들에게 까지 확산되면서 활기를 띈다.
남송 건요 흑유다완 잔탁(南宋 建窯 黑釉茶碗 盞托)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차문화 또한 이전까지는 일부 귀족계층과 불교문화권의 전유물이었지만 송조(宋朝)에 이르러서는 일반에게까지 크게 확산되어 당(唐)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귀족중심의 차문화는 대중적이고 예술적인 차문화의 성격으로 변모하였다.
송대에는 일반적으로 연고차를 만들어 가루를 낸 뒤 흑유다완에 거품을 내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과 가루차와 물을 차호에 부어 따라 마시는 암다법(唵茶法)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잎차를 다려서 마시는 차탕(茶湯)도 선비들의 차문화 속에 깊숙이 퍼져 있었다.
송대 차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흑유다완과 흰 거품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의 대비와 각자의 차 다루는 솜씨를 뽐내며 점다(點茶)로서 겨루는 투차(鬪茶)라는 이름의 차 겨루기의 풍속을 들 수 있다.
투차의 유행에서 비롯되었던 수요자의 요구는 항상 새로운 다구와 차를 다루는 기법을 창출해냈고 이에 따른 전반적 문화의 향상은 예술이라는 꽃으로 승화되어 전개된다.
남조(南朝)의 선차(禪茶)를 계승하는 송대의 선비들
송대를 일컬어 선비지상주의시대라 한다.
이미 춘추전국시대를 통하여 저술된 이른바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위시하여 인문학적 학문을 바탕으로 한 많은 경전들이 완성되어 있었음에도 왕조의 통치이념이나 종교적 사상 그리고 수많은 전란 등으로 인하여 그러한 사상적 학문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북송시기 구양수(歐陽修)로부터 시작되는 고문부흥운동이나 주자학(朱子學)의 영향으로 다시금 태동하는 유학(儒學)의 재조명등 사상적 학문분야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일어난다.
이 시기에 추구했던 선비사상을 요약하면 세속적 이익을 배제하고 이미 현자(賢者)들이 밝혀놓은 학문을 통한 격물치지(格物致知)로서 마음을 밝혀 우주만물의 이치와 참된 인간의 도리를 체득하고 이것에 근본 하여 올바른 자신의 의식세계를 확고히 하고 마음의 양지(良智)를 얻어 바른 신념으로서 살아가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주에서 가장 영묘함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우월성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값지게 사용하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확립하위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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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이것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수행적 학문탐구를 필요로 하였고 이때 선비들이 마셨던 차는 보여 지기 위함이나 격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며 자신의 수행적 학문탐구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작용해 주는 진정한 정신음료였으며 남조시기 선승들이 마셨던 선차의 개념과 다를 바 없었던 높은 차원의 차마심이었다.
송대 잔탁의 특성
지난 호에서는 남조(南朝)시대의 유물을 통하여 잔탁 출현의 사상적 배경과 용도에 따른 의미를 살펴보았는데 송대(宋代)들어서면서 변천되는 차문화를 따라 잔탁도 그 위치가 달라진다.
송대 선비들이 사용했던 잔탁들은 대부분 백자이다.
찻잔으로서의 잔탁은 단순히 형태적 개념보다는 남조시대의 선종불교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되는데 그 의미는 가장 고귀한 자신을 위해 귀한 차를 자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서 시작되어 사용되었다.
북송 복건 건녕요 잔탁(北宋 福建 建寧窯 盞托
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송대 다완이 사용되면서 잔탁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되는데 호화로운 고급 다완을 이용하여 가루차를 마시면서 찻자리의 격조를 높여주는 차구로 전락하였으며 귀족층에서는 의례히 다완에 받침대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었다.
점다에서 사용되던 다완의 받침대는 주로 목기로 만든 칠기받침대가 사용되었으며 도자 받침대는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선비들의 차마심에서는 남조시대부터 전해져온 선차음용의 근본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송대 선비들이 사용했었던 잔탁은 도자상황의 변모에 따라 외형적 비례감만 달라졌을 뿐 정신음료로서 차를 담아 자신에게 바치는 훌륭한 찻잔으로 사용되었다.
잔탁을 생산했던 가마들을 살펴보면 남방에는 강서(江西)의 경덕진요(景德鎭窯)와 복건(福建)의 순창요(順昌窯), 건녕요(建寧窯), 절강(浙江)에서 제작된 용천요(龍泉窯)의 청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북방의 가마들에서는 가루차를 위한 흑유다완용 받침대가 흔하게 보이지만 잎차용 잔과 셋트를 이루는 잔탁은 생산되지 않았다.
남송 경덕진요 영청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影靑釉 盞托)
북송 복건 건녕요 잔탁(北宋 福建 建寧窯 盞托
북방에서 다구들은 다완이 사용되었는데 차가 생산되지 않았던 북방지역까지 산차(散茶)가 운반되는 과정이나 보관에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대부분 연고차의 가루차를 음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송대 차의 주요산지였던 남방의 강서(江西), 절강(浙江), 복건(福建)지역에서는 잎차의 음용이 행하여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후일 명대(明代)들어 녹차시대를 열게 되는 시금석이 되어주었다.
타락해가는 선원(禪院)의 차문화
남송 오백나한도 중 음다도.
일본 다이도쿠지(大德寺)소장
남북조(南北朝)시기부터 전해져 오던 선종(禪宗)의 수행자들이 마셔왔던 선차(禪茶)는 계속적으로 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실상 선승들에게 차가 절대적 기호품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내용면에서 볼 때는 이전 남조시기의 선승들이 접했던 차마심의 본질에서는 까마득히 멀게 이탈된 선원(禪院)의 차로 변질되었다.
송대 저술된 선원(禪院)에서의 규범을 정리한 여러 가지의 청규서(淸規書)들에서 나타나는 차에 관한 문헌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선원에서 수행자들의 차마심은 매우 격식적인 외형을 중시했음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당(唐)을 거치면서 송(宋)에 이르러 세속의 과시적인 차문화의 영향이 선원(禪院)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당시 차마심의 모습들은 송대 불교미술의 회화(繪?)속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남송 경덕진요 청백유 잔탁(南宋 景德鎭窯 靑白釉 盞托)
북송 복건 순창요 백유 잔탁(北宋 福建 順昌窯 白釉 盞托)
북송 복건 건녕요 잔탁(北宋 福建 建寧窯 盞托)
이 시기부터 선승(禪僧)들의 차마심에서는 격식과 멋스런 선원문화로 자리 잡지만 정작 차는 선원(禪院)의 규범과 질서를 다스리는 성격의 도구로서 낮춰진다.
선원다례(禪院茶禮)에서도 차 즙을 짜내고 구워서 만든 엉터리 연고차(硏膏茶)의 가루를 이용한 점다법(點茶法)으로 차를 마신다함은 이미 정신음료로서의 위치를 이탈한 명분적인 정신음료였을 뿐 세속의 차문화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퇴보하게 되었다.
북송 복건 순창요 백유 잔탁(北宋 福建 順昌窯 白釉 盞托)
원 용천요 매자청유 잔탁(元 龍泉窯 梅子靑釉 盞托)
선종의 융성으로 재정이 튼튼했던 선원에서 행해졌던 차와 귀족층의 과시적이고 권위적인 차문화는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선원(禪院)의 차는 멋스럽고 격조 높은 커다란 외형적 성장을 한다.
이 시기 일본에서 견당승(見唐僧)으로 송나라 선원에 유학 왔었던 선승들은 그들의 눈에 비춰진 절대 선진 문화국가 송나라 선원(禪院)의 규범이었던 청규(淸規)에 나타나는 격식으로 포장된 멋스런 선원다례의 형식을 접하게 되었고 견당승들에 의해 일본으로 유입되어갔다.
그리하여 선원청규의 형식들은 여과 없이 일본선원의 청규로 뿌리내리게 되었으며 일본의 서원차(書院茶)의 근원이 되어 자리 잡게 되었고 선원의 청규에서 비롯된 그 격식은 일본의 차문화속에 깊이 스며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금 균요 잔탁(金 均窯 盞托)
북송 복건 순창요 백유 잔탁(北宋 福建 順昌窯 白釉 盞托)
북송 복건 건녕요 잔탁(北宋 福建 建寧窯 盞托)
이렇듯 일본차의 시작은 바로 이 시기의 타락된 송대 선원의 차문화가 전래되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음을 헤아려보면 다도(茶道)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차문화가 이미 시작부터 얼마나 커다란 허구와 모순을 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茶는 정신음료이다
남조시기 선종불교의 선승(禪僧)들에 의해 마셔지던 선차(禪茶)의 음용에서 잔탁을 이용한 차마심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차는 본격적 정신음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선승들이 차마심을 통하여 얻으려 했던 것은 찻잎속의 성분이 아니었으며 찻잎을 볶거나 발효시켜 얻을 수 있는 색. 향. 미 (色香味)는 더욱 아니었다.
본래 찻잎이 지니고 있는 기운(氣運)을 얻어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차문화의 본질적 근원을 통하여 인류가 맨 처음 차를 약용으로 시작하여 정신음료로서 자리 잡게 되는 배경을 잘 인식하여야 한다.
원 경덕진요 청백유 잔탁(元 景德鎭窯 靑白釉 盞托)
북송 은제 잔탁(北宋 銀製 盞托)
동양에서 차는 이렇게 시작 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정신음료로서 차의 본질이다.
따라서 남북조(南北朝)시대의 이렇게 시작된 차문화의 역사는 동양의 차문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근본적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차는 동양인의 고전적 정신세계이며 유행음료가 아니다.
오늘날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게 구분하여 상.하(上.下)개념의 분명한 두 부류로 나눠진다.
차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차가 지닌 기운을 감지하고 그 기운을 자신의 정신에 닿게 하여 청정한 정신을 얻어 학문과 수행으로 내면의 의식세계를 확고히 가꾸려 노력하는 사람을 상위개념의 선비적 차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의 본질도 모르는 채 차에 관한 불필요한 잡다한 지식들이나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차를 죽이는 온갖 기교의 가공을 통하여 나타나는 색.향.미 정도나 탐닉하며 외향적 치장으로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수단으로 차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하위개념의 졸부적 차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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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복건 건녕요 잔탁(北宋 福建 建寧窯 盞托)
북송 경덕진요 백유 잔탁(北宋 景德鎭窯 白釉 盞托)
북송 자주요 백유 잔탁(北宋 磁州窯 白釉 盞托)
역사 속에서 차문화는 이러한 소인배적이고 졸부적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항상 본질이 왜곡되었고 명분뿐인 타락된 정신음료의 위치로 끌어내려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차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영위하기위해서는 항상 시작될 당시의 원류적 근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근본이 확충되면 올바른 차인의 길을 갈 수 있다. (君子務本本立而道生)
유물 소장자이자 글쓴이 김성태 님은 동양차문화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월간 다도(茶道) 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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