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

[스크랩] 동다기(東茶記) - 초심자를 위한 원문 및 해석 자료(청월 역)

청원1 2016. 10. 23. 22:02
 

 

東茶記

                                    全義李 著/ 淸月 譯)

 

                          - 옛선인다회 다례사(茶禮士) 교본 -


布帛菽粟土地之所生 而自有常數者也 不在於官必在於民 少取則國用不

포백숙속토지지소생 이자유상수자야 부재어관필재어민 소취즉국용부

足  多取則民生倒懸 金銀珠玉山澤之所産 而孕於厥初 有減而無增者也

족  다취즉민생도현 금은주옥산택지소산 이잉어궐초 유감이무증자야

觀於秦漢賞賜黃金 率以百千斤爲槪 至於宋明之際 白金以兩討  古今之

관어진한상사황금 솔이백천근위개 지어송명지제 백금이양토  고금지

貧富於斯見矣 今有非布帛菽粟之爲民所天 金銀珠玉之爲國所富 得於荒

빈부어사견의 금유비포백숙속지위민소천 금은주옥지위국소부 득어황

園隙地 自開自落之間 草木可以禪國家裕民生 則何可以事在財利 而莫之

원극지 자개자락지간 초목가이선국가유민생 칙하가이사재재리 이막지

言也

언야


베ㆍ비단ㆍ콩ㆍ조는 땅에서 생산 되며, 스스로는 일정한 산출량을 가지고 있는데, 관청을 보살피지 말고 반드시 백성을 보살펴야 한다. 적게 거두어들이면 국가의 소용이 부족하고, 너무 많이 거두면 백성의 생활은 어렵게 된다. 금ㆍ은ㆍ구슬ㆍ옥은 산과 못에서 나오며, 그것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면 줄어들기는 해도 늘어남은 없는 것이다. 진나라와 한나라 때를 살펴보면 상으로 황금을 하사했는데, 대강 백 근에서 천 근이 되도록 헤아렸다. 송나라와 명나라 때는 백금과 황금 두 가지로 나라를 다스렸다.① 예나 지금이나 빈부에 대해 살펴보면, 오늘날은 베ㆍ비단ㆍ콩ㆍ조가 백성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며, 금ㆍ은ㆍ구슬ㆍ옥도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데 쓰인다. 거친 동산이나 빈터를 얻어 스스로 꽃이 피고 지게하면, 초목으로도 가히 국가를 선위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데, 어찌 가히 일들이 재물과 이익에만 있다고 하리오. 그렇게 말하지 마시게!


茶者南方之嘉木也 花於秋而芽於冬  芽之嫩者曰雀舌鳥嘴 其老者曰茗蔎

다자남방지가목야 화어추이아어동  아지눈자왈작설조취 기노자왈명설

檟荈 著於神農例於周官 降自魏秦浸盛 歷唐至宋人巧漸臻 天下之味莫尙

가천 저어신농예어주관 강자위진침성 역당지송인교점진 천하지미막상

焉 而天下亦無不飮茶之國 北虜最遠於茶鄕 嗜茶者無如北虜 以其長時餧

언 이천하역무불음다지국 북로최원어다향 기다자무여북로 이기장시위

肉 背熱不堪故也 由是宋之撫遼夏 明之撫三關 皆以是而爲之餌  我東産

육 배열불감고야 유시송지무료하 명지무삼관 개이시이위지이  아동산

茶之邑 遍於湖嶺載 中國之茶 生於越絶島萬里之外 然猶取而富國禦戎之

다지읍 편어호령재 중국지다 생어월절도만리지외 연유취이부국어융지

貨 我東則産於笆籬階 而視若土灰無用之物 幷與其名而忘之 作茶說一篇

화 아동즉산어파리계 이시약토회무용지물 병여기명이망지 작다설일편

條例茶事于左 以爲當局者建白措施之云爾

조례다사우좌 이위당국자건백조시지운이

차는 남쪽지방의 아름다운 나무이다. 가을에 꽃이 피고 겨울에 싹이 트는데, 싹눈이 어린 것을 작설ㆍ조취라고 하며, 싹눈이 쇤 것을 명ㆍ설ㆍ가ㆍ천이라고 한다. 신농이 기록하고 주공이 널리 알렸다. 위나라와 진나라로 내려오면서 침체와 번성을 하였고, 당나라를 지나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솜씨가 점차로 교묘해져서 천하에 최고의 맛이 되었으며, 또한 천하에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차의 산지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북쪽 오랑캐들 중에 차를 마시는 자는 다른 오랑캐와 달랐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육식을 하면 배열병을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송나라가 요하를 다스릴 수 있었고, 명나라가 삼관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으로써② 이는 모두가 차를 먹이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차가 나는 마을은 호남과 영남에 두루 가득하다. 중국의 차는 외딴섬 만 리 밖에서도 나지만 오히려 이를 취해 나라의 부강과 적을 막는 재물로도 쓰는데, 우리나라는 가시울타리나 계단에서도 나지만 흙이나 재처럼 쓸모없는 물건으로 보고, 그 이름과 함께 잊어버리니, 차와 관련한 일들을 왼쪽에 조목조목 나열하여 다설 한 편을 지어 당국자로 하여금 건의토록 해서 시행되도록 하고자 함이다.③


1. 茶有雨前雨後之名 雨前者雀舌是已 雨後者卽茗蔎也 茶之爲物早芽而

   다유우전우후지명 우전자작설시이 우후자즉명설야 다지위물조아이

晩茁 故穀雨時茶葉未長 須至小滿芒種方能茁大 盎自臘後至雨前 自雨後

만줄 고곡우시다엽미장 수지소만망종방능줄대 앙자납후지우전 자우후

至芒種皆可採取 或以葉之大小 爲眞贋至別者 豈九方相馬之偏也

지망종개가채취 혹이엽지대소 위진안지별자 기구방상마지편야


  차에는 우전과 우후라는 이름이 있다. 우전은 작설이고 우후는 명과 설이다. 차라는 것은 싹이 일찍 나오고 늦게 자라기 때문에 곡우 때에는 찻잎이 아직 다 자라지 않고, 모름지기 소만 또는 망종이 되어야 싹이 길게 자란다. 납일 이후 곡우 전까지, 곡우 뒤에서 망종까지 모두 다 채취해도 좋다. 간혹 잎의 크고 작음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 아홉 방향에서 말을 달려 한쪽으로 이르겠는가!


2. 茶有一槍一旗之稱 槍則枝而旗則葉也 若謂一葉之外不堪採 則荊州玉

     다유일창일기지칭 창즉지이기즉엽야 약위일엽지외불감채 즉형주옥

泉寺茶 以大如掌爲稀奇之物 凡草木之始生一葉 大於一葉漸成其大 豈有

천사다 이대여장위희기지물 범초목지시생일엽 대어일엽점성기대 기유

一葉頓長如掌乎 且見舶茶莖 有數寸長葉 有四五連綴者 蓋一槍者謂初茁

일엽돈장여장호 차견박다경 유수치장엽 유사오연철자 개일창자위초줄

一槍一旗者 謂一枝之葉也 此後枝上生枝 則始不堪用矣

일창일기자 위일지지엽야 차후지상생지 즉시불감용의


  차에는 일창과 일기라는 명칭이 있는데, 창은 가지요 기는 잎이다. 만약 일엽이라고 하는 것 외에는 뛰어난 것을 채취하지 못하는 즉, 형주 옥천사의 찻잎은 손바닥처럼 커서 드물고 기이한 물건으로 본다. 무릇 초목에 처음 일엽이 생겨나 처음 생겨난 일엽보다 커지는 것은 점차로 성장하면서 커지는 것인데, 어찌 일엽이 갑자기 손바닥크기로 커졌다고 하겠는가. 또 배에 실려 온 차줄기를 보니 잎이 몇 치나 되고, 잎이 4~5장 연속해서 붙어있었다. 대개 일창이란 처음 돋아나는 싹(頂芽)을 말하며, 일창일기란 첫가지의 잎(側芽)을 말한다. 이후 가지에 생겨나는 가지는 바야흐로 잘 쓰지 않는다.


3. 茶有苦口師晩甘候之號 又有以天下甘者 無如茶謂甘草 茶之苦 則夫

   다유고구사만감후지호 우유이천하감자 무여다위감초 다지고 즉부

人皆能言之 茶之甘 則謂嗜之者之說 近因採取徧嘗諸葉 獨茶以舌舐之

인개능언지 다지감 즉위기지자지설 근인채취편상제엽 독다이설지지

有苦淡蜜水漬遇者 始信古人命物之意 非苟肬也 茶是冬靑 十月間液氣方

유고담밀수지우자 시신고인명물지의 비구우야 다시동청 십월간액기방

盛 將以禦冬 故葉面之甘尤 然意欲此時採取煎膏 不拘雨前雨後 而未果

성 장이어동 고엽면지감우 연의욕차시채취전고 불구우전우후 이미과

然煎膏 實東人之臆料硬做者 味苦只堪藥用矣

연전고 실동인지억료경주자 미고지감약용의

(倭國香茶膏當以別論 我東所造最鹵莽)

(왜국향다고당이별론 아동소조최노망)


  차에는 고구사와 만감후라는 이름이 있다. 또 천하에 단 것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차를 감초라고 말한다. 차가 쓰다고 하는 것은 무릇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며, 차가 달다고 하는 것은 애호가들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 채취한 모든 잎을 두루 맛을 보았는데, 오직 차만을 혀로 핥아 맛을 보니 쓰고 담백하며 단 물거품인 뜻밖의 것이었다. 비로소 옛 선인들이 물건의 이름을 지은 뜻에는 적어도 함부로 짓지는 않았음을 믿게 되었다. 차나무는 겨울철에도 푸르며, 10개월간은 수액이 성하다. 장차 겨울을 나면서 잎은 더욱 달게 된다. 이때 채취하여 달여서 연차고를 만들고자 하면 곡우 전이나 곡우 후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연고차를 만들어 보지 않았으면서 실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억측하여 무리하게 만드니, 맛은 쓰고 다만 약용으로 쓸 뿐이다.(왜국의 향차고는 마땅히 별도로 논하고,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거칠다.)


4. 古人云 墨色須黑 茶色須白 色之白者 盎謂餠茶之入香藥造成者 月兎

   고인운 묵색수흑 다색수백 색지백자 앙위병다지입향약조성자 월토

龍鳳團之屬是也 宋之諸賢所賦餠茶 而玉川七椀 則乃葉茶之功效已大

용봉단지속시야 송지제현소부병다 이옥천칠완 즉내엽다지공효이대

餠茶不過以味香爲勝 且前丁後蔡以此招譏 則不必求其法 而造成者也

병다불과이미향위승 차전정후채이차초기 즉불필구기법 이조성자야


  옛사람이 이르기를 먹색은 검어야하고, 차색은 희어야한다고 했다. 색이 흰 것은 떡차에 향약을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월토나 용봉단이 이에 속하는데, 송나라의 여러 현인들은 떡차로 부를 지었으며, 옥천자는 칠완다가 즉, 잎차를 노래하였다. 잎차의 공덕과 효능은 이미 크지만, 떡차는 맛과 향에서 좋다는 데에 불과하다. 또 앞의 정위나 뒤의 채양을 이곳으로 불러 나무란다는 것은 그 제다법을 구하여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 茶之味 黃魯直詠茶詞 可謂盡之矣  餠茶以香藥合成後 用渠輪硏末入

   다지미 황로직영다사 가위진지의  병다이향약합성후 용거륜연말입

湯 另是一味似非葉茶之比 然玉川子 兩腋習習淸風生 則何嘗用香藥助味

탕 영시일미사비엽다지비 연옥천자 양액습습청풍생 즉하상용향약조미

哉 唐人亦有用薑鹽者 坡公所哂 而向時一貴家宴席  用蜜和茶而進 一席

재 당인역유용강염자 파공소신 이향시일귀가연석  용밀화다이진 일석

讚頌不容口 眞所謂鄕態沃蜜者也 正堪撥去吳中守陸子羽祠堂

찬송부용구 진소위향태옥밀자야 정감발거오중수륙자우사당


  차의 맛은 황노직이 다사를 읊어 가히 모두 다 말했다. 떡차는 향약을 넣어서 만든 뒤에 큰 바퀴로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탕수에 넣는데, 별도로 이 한 가지의 맛은 입차의 맛과 비교하여 같지 않다. 이것은 한 가지 맛이 아니어서 잎차와 비교해서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옥천자는 두 겨드랑이에서 서늘하고 맑은 바람이 솔솔 생겨난다고 하였다는데, 어찌 향약을 써서 맛을 도와 맛보려 하였으랴. 당나라 사람들 역시 생강과 소금을 이용했었다. 소동파에게 웃음거리가 있었는바, 지난번에 한 귀한 집의 연회석에서 차에다 꿀을 섞어서 올렸는데, 온통 자리에서 찬송하는 것이 입에만 머물지 않았으니, 참으로 고을의 모습은 비옥하고 꿀이 많은 게이다. 마땅히 오현에 있는 육우의 사당을 지키러 떠나는 편이 낫도다.


6. 茶之效 或疑東茶不及越産 以余觀之 色香氣味少無差異 茶書云 六安

   다지효 혹의동다불급월산 이여관지 색향기미소무차이 다서운 육안

茶以味勝 蒙山茶以藥勝 東茶蓋兼之矣 若有李贊皇陸子羽 其人則必以余

다이미승 몽산다이약승 동다개겸지의 약유리찬황육자우 기인즉필이여

言爲然也

언위연야 


  차의 효능에 있어서 어떤 이는 우리나라 차를 의심하여 중국의 월주에서 나는 차만 못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색․향기․맛에 있어서 별로 차이가 없다고 본다.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좋다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차는 그 두 가지를 다 겸하였다. 만약에 이찬황이나 육우가 있었다면 그들도 틀림없이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④


7. 余於癸亥春 過尙古堂 飮遼陽士人任某所寄茶 而葉小無槍 想是樵所

   여어계해춘 과상고당 음료양사인임모소기다 이엽소무창 상시초소

謂聞雷而採者也 時方春三月庭花未謝 主人設席松下相對 傍置茶爐爐罐

위문뢰이채자야 시방춘삼월정화미사 주인설석송하상대 방치다로로관

皆古蕫彝器 各盡一杯適有老傔患感者 主人命飮數杯曰 是可以療感氣去

개고동이기 각진일배적유노겸환감자 주인명음수배왈 시가이료감기거

今四十餘年其後 舶茶來人又以泄痢之當劑 今余所採者 非但徧試寒暑感

금사십여년기후 박다래인우이설리지당제 금여소채자 비단편시한서감

氣 食滯酒肉毒胸腹痛皆效 泄痢澁欲成淋者之有效 則以其利水道故也 疾

기 식체주육독흉복통개효 설리삽욕성림자지유효 즉이기리수도고야 질

瘧者之無頭疼有時截愈 則以其淸頭目故也 最後病癘者初一二日熱 啜數

학자지무두동유시절유 즉이기청두목고야 최후병려자초일이일열 철수

椀而病遂已 病癘日久而不得發汗者飮輒得汗 則古今人之所未論 而余所

완이병수이 병려일구이부득발한자음첩득한 즉고금인지소미론 이여소

親驗者也

친험자야 


  내가 계해년 봄에 상고당가에 들러 요양에 사는 선비 임모씨가 보내준 차를 마신 적이 있는데,⑤ 잎사귀가 작고 창이 없었다. 이것은 손초의 이야기를 이르는 바, 천둥소리가 울릴 때 따서 만든 차로 생각된다.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 뜰에는 꽃이 아직 시들지 않았는데, 주인이 소나무 아래에 서로 마주보게 하는 자리를 만들어 베풀어 주었다. 옆에는 차 화로가 있었으며, 차 화로와 탕관은 모두 골동품 종묘제기였다. 각기 한잔씩 마셨고, 마침 시중드는 노인이 있었는데, 감기를 앓고 있었다. 주인이 명령하여 몇 잔을 마시게 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가히 감기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제 그 후 40여년이 지나⑧ 선박으로 차를 가져온 사람이 또한 설사병에 알맞은 약이라고 한다. 이제 내가 직접 채취해서 비단 추위나 더위 그리고 감기뿐만 아니라, 식체ㆍ주독ㆍ고기독ㆍ흉복통에 두루 시험해보니 모두 효험이 있었으며, 이질 설사를 멈추게 하거나 임질을 치료하려는 자에게도 효험이 있는 까닭은 물 대사에 이롭기 때문이다. 학질에 걸린 사람이 머리도 아프지 않고, 때마침 잘 낫게 하는 까닭은 머리와 눈을 시원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염병에 걸린 사람도 처음 하루 이틀 동안은 열이 나지만, 차를 몇 잔을 마시면 병을 물리칠 수 있다. 염병은 날이 갈수록 땀을 내기 어려운데, 차를 마시면 쉽게 땀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옛 선인이나 오늘날의 사람들이 아무도 논하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논한다.⑨


8. 余傾濁酒數杯後見傍 有冷茶漫飮半杯入睡 痰卽盛唾出十餘日始瘳 益

   여경탁주수배후견방 유냉다만음반배입수 담즉성타출십여일시추 익

信冷則反能聚痰之說 聞漂人來到也 於甁中瀉出勸客 豈非冷者耶 又聞北

신냉즉반능취담지설 문표인래도야 어병중사출권객 기비냉자우문북

徐宗望之食兒猪灸也 一手持小壺且啗且飮 必是冷茶也 想食熱之後冷

역서종망지식아저구야 일수지소호차담차음 필시냉다야 상식열지후냉

亦不能作祟 

역불능작수 


  내가 막걸리를 몇 잔을 기울인 후 옆을 보니 냉차가 있기에 별로 생각 없이 반잔을 마시고 잠을 잤는데, 가래가 곧바로 차서 십여 일 간 나오고서야 비로소 나았다. 더욱이 찬 것이 가래를 모이게 한다는 말을 신중히 믿게 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표류된 사람이 도착하여 다병에서 차를 따라 손님에게 권하였다고 하는데, 어찌 차갑지 않으리오. 또 들리는 말에 중국어를 통역하는 서종망이 도착하여 어린 돼지를 구워먹는데,⑩ 한손에는 작은 다호를 들은 채 먹고 또 마셨다고 한다. 틀림없이 이것도 냉차일 것이다. 생각건대 뜨거운 것을 먹은 후, 찬 것을 먹으면 역시 정기(영묘)를 만들지 못한다.


9. 茶能使人小睡 惑終夜不得交睫 讀書者勤紡績者 飮之可謂一助 禪定

   다능사인소수 혹종야부득교첩 독서자근방적자 음지가위일조 선정

者亦不可小是

자역불가소시


  차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하며, 밤새 뜬 눈으로 새우기도 한다. 책을 읽는 사람과 부지런히 길쌈하는 사람이 마시면 가히 도움이 될 것이며, 참선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10. 茶之生 多在山中多石處 聞嶺南則家邊竹林處處有之 竹間之茶尤有

    다지생 다재산중다석처 문령남즉가변죽림처처유지 죽간지다우유

效 亦可於節晩後採得 以其不見日故也

효 역가어절만후채득 이기불견일고야


  차가 생장하는 곳은 산속의 돌이 많은 곳이 많다. 듣자하니 영남의 집주변 대밭 곳곳에 있는데, 대밭 사이의 차는 더욱 효험이 우수하며, 또한 가히 절기가 늦은 후에도 채취할 수가 있다. 그것은 햇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11. 茶之採 宜於雨餘以其嫩淨故也 坡詩云 細雨足時茶戶喜 按文獻通考

    다지채 의어우여이기눈정고야 파시운 세우족시다호희 안문헌통고

採茶之時 縣官親自入山  使民之老幼男女偏 山披求採綴  蒸焙先以首採

채다지시 현관친자입산  사민지로유남여편 산피구채철  증배선이수채

而精者爲貢茶 其次爲官茶 餘則許民自取 蓋茶利甚大 有關國家如此

이정자위공다 기차위관다 여즉허민자취 개다리심대 유관국가여차


  차의 수확은 비가 온 뒤가 좋다. 그것은 차의 어린잎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소동파의 시에 이르기를 가랑비가 충분히 내리면 차 농가에서는 기뻐한다고 했다. 문헌통고를 살펴보면 차를 수확할 때는 고을의 관리가 친히 스스로 입산하여 백성들의 남녀노소를 두루 거느려 산을 헤치고 따서 매는데, 먼저 처음 딴 것을 찌고 말려서 잘 만들어진 것을 공차로 한며, 그 다음에 만드는 것은 관청의 차로 하고, 남는 것은 백성이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무릇 차의 이익 됨이 매우 크므로 국가와 관계있음도 이와 같도다.


12. 茶書又有片甲者早春黃茶 而舶茶之來擧國稱以黃茶 然其槍旗已長決

    다서우유편갑자조춘황다 이박다지래거국칭이황다 연기창기이장결

非早春採者 未知當時漂來人果得傳名 如此否有自黑山來者言 丁酉冬漂

비조춘채자 미지당시표래인과득전명 여차부유자흑산래자언 정유동표

海人指兒茶樹謂之黃茶云 兒茶者(俗謂兒求茶)圻內所謂黃梅也 黃梅花黃

해인지아다수위지황다운 아다자(속위아구다)기내소위황매야 황매화황

先杜鵑發葉 有三角如山字形 有三筯莖葉皆帶薑味 峽人之入山也 包飽

선두견발엽 유삼각여산자형 유삼저경엽개대강미 협인지입산야 포포

而食 各邑取其嫩枝煎烹 以待使客 且其枝截取 二握爲主材如藥煎服 則

이식 각읍취기눈지전팽 이대사객 차기지절취 이악위주재여약전복 즉

感氣傷寒及無名之疾 彌留樹日者 無不發汗神效 豈亦一種別茶耶

감기상한급무명지질 미류수일자 무불발한신효 기역일종별다야


  다서에는 또 편갑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른 봄에 잎이 누런 차이다.⑪ 그런데 선박으로 차를 가져온 나라에서는 모두 ‘황차’라고 부른다.⑫ 그러나 그 차는 창과 기가 이미 자라서 결코 이른 봄에 채취한 것이 아니다. 당시 배를 타고 온 사람에게 마침 전해들은 이름과 흑산도로부터 온 사람이 말하기를 “정유년 겨울에 바다로 표류해온 사람이 어린 차나무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황차라고 하였다.”⑬ 라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차는(속칭 아구다라고 한다.) 서울에서 소위 황매라고 한다. 황매는 꽃이 노랗고 진달래 보다 먼저 핀다. 잎은 삼각형으로 山자 비슷한 세 갈래로, 줄기나 잎, 대는 모두 생강 맛이 난다.⑭ 협인이 산에 들어가 가득 싸서 배불리 먹는다. 각 읍에서 황매의 어린 눈과 가지를 취해 달이거나 삶아 사신이나 손님에게 대접한다. 또 그것의 가지를 잘라서 두 움큼을 약과 같이 주재료로 삼아 달여서 복용하면 감기나 상한(추위 때문에 생기는 열병) 그리고 이름 모를 질병이 오래 머물러 있는 자가 땀이 나지 않는 경우가 없이 신효하다. 어찌 또한 일종의 다른 차가 아니겠는가!⑮


(跋文)

光緖十七年辛卯夏 余在頭崙山中 得此經閱之 卽大唐諸賢家各得玄玄妙

광서십칠년신묘하 여재두륜산중 득차경열지 즉대당제현가각득현현묘

妙之所述作 至若東國  則中間草衣大師 繼振趙州之玄風於茶 自得妙理

묘지소술작 지약동국  즉중간초의대사 계진조주지현풍어다 자득묘리

兼述茶頌 世稱草衣茶 宰官莫不健羨此頌矣 草衣茶趙州茶  古今雖殊法

겸술다송 세칭초의다 재관막부건선차송의 초의다조주다  고금수수법

無先後於斯可量 盖茶之爲物 能除睡魔 能治百病 除魔治病 則禪者禪讀

무선후어사가량 개다지위물 능제수마 능치백병 제마치병 즉선자선독

者讀 種種世間事 豈不好哉 眞是究竟成就 百法之妙嘉藥也 然而此經行

자독 종종세간사 기부호재 진시구경성취 백법지묘가약야 연이차경행

道家之案目 於世未數數有 故流月念二日仍 命四友揮謄 越七日巳時放兎

도가지안목 어세미삭수유 고류월념이일잉 명사우휘등 월칠일사시방토

自記卷尾     

자기권미     

                                               蓮潭后人法眞謹跋

                                               연담후인법진근발


  광서17년(1891) 신묘년 여름 내가 두륜산 중에 있으면서 이 경을 얻어 살펴본 즉, 당나라의 여러 현인들이 각기 체득한 현묘한 이치를 지은 것이다. 이 같음에 우리나라에 와서는 중간에 초의대사가 차에 대해 조주의 현풍을 이어 일으켰고, 스스로 묘리를 터득하여 동다송까지 지었으며, 세상에서는 초의차라고 불렀다. 재상과 관리들이 동다송을 탐내고 부러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초의차와 조주차가 과거와 현재가 비록 다르지만, 법리는 선후가 없다는 것을 이에 가히 헤아릴 수 있다. 대개 차가 물건이 됨은 능히 잠을 덜 수 있고,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마귀를 제어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즉, 참선하는 자는 참선을 하고 책을 읽는 자는 책을 읽으니, 가끔 세상의 일들이 어찌 좋지 않으리오. 참으로 이는 연구를 다하여 성취한 것으로 온갖 법의 묘하고 뛰어난 약이로다. 그러나 이 경은 도가에서 다루는 조목으로 행하고, 세상에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고로 세월은 흐르고 생각이 바뀌며 날은 거듭되니, 문방사우(종이ㆍ붓ㆍ먹ㆍ벼루)에 명령하여 휘둘러 베끼도다. 칠일을 넘겨 사시에 붓을 놓는다. 스스로 권미에 적도다.


                                      연담후인 법진 삼가 발문함.



출처 : 한국차학연구원(韓國茶學硏究院)
글쓴이 : 淸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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