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108)천년고찰순례기

[스크랩] 고운사 / 2월 27일 제22차(66)

청원1 2011. 8. 8. 06:24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

     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

     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

     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

      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

     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

     처럼 포근하고 정감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자랑하는 고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비롯한

     고운사의 모든 대중들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전에 발원을 멈추지 않는다.

        <출처:고운사 홈페이지>

 

     일주문  / 일주문에는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현판과 '등운산고운사(騰雲山孤雲寺)'

      라는 현판이 위 아래 2개가 함께 걸려 있다. 

 

      천왕문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광목천왕 : 수미산의 서쪽(서구야니주)을 수호하면서,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보통 지물(持物)로 용과 여의주를 들고 악귀를 밟고 있다.

      다문천왕 : 지물(持物)로 보탑과 삼지창을 들고 수미산의 북쪽(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재물과 복덕의 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佛法)을 옹호하는 선신(善神)이다.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지국천왕 : 지물(持物)로 비파를 들고 수미산의 동쪽(동승신주)을 수호하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주는 선신

     (善神)으로 발 아래에는 악귀가 조각되어 있다.

     증장천왕 : 긴 칼을 잡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의 남쪽(남섬부주)을

     수호하고 있는 선신(善神)이다.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많게 해준다고 한다.

                                     <천왕문 주련>

 

    

     대웅보전(大雄寶殿) /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ㆍ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고운사의

     큰법당이며 1992년도에 완공된 50평 규모의 전각이다.

                       

                      <대웅보전 주련>

 

     대웅보전 불단 / 화려한 수미단을 길게 조성하여 중심에는 대웅보전의 주인인

     석가여래를 모시고 있다. 양쪽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둥근 얼굴에 높은 육계, 뚜렷한 삼도(三道), 허리가 길어 어깨가 좁아 보이며 편단우견

     (偏袒右肩)을 하고 있다. 형식적인 옷주름으로 신체 표현이 어색하게 보인다. 뒤에

     걸려 있는 석가후불탱(釋伽後佛幀)은 아청색으로 물들여 금니로 선묘(線描)한

     감지금니화(紺紙金泥畵)이다.

 

      극락전(極樂殿) /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형식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

      을 올렸으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천정(天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을 봉안하였다.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 / 1695년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을

      도청(道淸)과 선조(禪照)가 봉안하였고, 관음보살은 천해(天海)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불상을 송도 대흥산에서 찾아내어 고운사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

    약사전(藥師殿) /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에 겹처마이며 익공계(翼工系) 형식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안에는 국가지정의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46호 /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는 완전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네모난 얼굴에 눈·코·입을 작게

      표현하였다. 가슴이 발달하고 허리가 잘록하지만, 약간 치켜 올라간 어깨로 인해

      불안정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땅을 가리키고

      있는 듯 하나 부서져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았는데

      자연스럽지 못하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규칙적인 평행의 옷주름이 나타

      나며, 다리와 팔 등에서는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끝이 날카로운 배(舟) 모양

     이다. 머리광배와 몸광배에는 연꽃과 덩쿨무늬 등을 표현하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졌는데, 상대석은 연꽃을

     위로 떠받드는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8각의 중대석은 모서리를 기둥 모양으로 장식

     하였고, 하대석은 연꽃잎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머리, 얼굴, 신체, 옷주름, 대좌, 광배 등에서 8세기의 불상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9세기의 특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명부전(冥府殿 ) / 명부전은 사후에 인간이 심판받는 장소를 형상화 한 곳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대왕과 그 권속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약 300년 전에 세워진 법당이다. 죽어서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한다.

     명부전 불단(冥府殿 佛壇) /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여 극락

     으로 인도하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양쪽에는 젊은 수도승의 모습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문인의 모습인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하여 협시를 이루고

     있다. 지장보살은 목조(木造), 협시상과 시왕상(十王像)은 소조(塑造)로 제작한 것이다.

     후불탱(後佛幀)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건륭 5년(1740)에 개금을 하였다고 한다.

 

    삼성각(三聖閣) / 민간신앙인 산신ㆍ칠성과 나반존자를 탱화로 조성하여 모신 전각

    이다. 원래 없던 것을 1998년도에 새로이 지었다.

 

 

    만세문(萬歲門) / 황제의 장수(長壽)를 송축하기 위한 연수전의 출입문인 만세문은

    오랜 수명 만세(萬歲)를 기원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사대부의 민가(民家)에서 보이는

    솟을대문으로 3칸이다. 맞배지붕으로 홑처마이며 문의 윗 부분에는 빗살을 만들어 용

    문양을 그려 붙였는데, 수호의 뜻이 담겨져 있다. 4판의 나무로 만든 대문에는 태극문의

    흔적만 남아 그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연수전(延壽殿) / 최초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이 지었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형태와 벽화를 볼 수 있다

 

     종각(鐘閣) / 법고ㆍ범종ㆍ목어ㆍ운판의 사물(四物)이 설치되어 있다.

 

 

      고불전(古佛殿) /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놓은 아주 작은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에 기와를 얹은 건물이다.

    광배(光背)를 갖춘 석불상으로 결가부좌에 선정인(禪定印)을 결하고 있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세부 조각을 하지 않고 형체만 조각되어 있는 이 불상은 미완성이지만

    안정되어 보이는 석불상이다.

 

                     

                      孤雲  崔致遠선생의 입산시(入山詩)를 마음속에 새겨보며

                      고운사(孤雲寺) 순례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_()_

    

 

 

출처 : 백팔고찰순례단
글쓴이 : 청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