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108)천년고찰순례기

[스크랩] 청곡사 / 1월 23일 제21차(63)

청원1 2011. 8. 8. 06:21

 

 

 

 

 

 

 

                                                                                                                           출처: 청곡사 홈페이지

 

    일주문

 

 

 

 

 

    환학루(喚鶴樓) / 환학루(喚鶴樓)는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를 하고

    있다. 현대에 지은 건물이기는 하지만, ‘학을 부르는 누각’이라는 뜻의 이름은 도선 국사

    가 청곡사를 창건할 때 청학이 내려앉은 터에 절을 지었다는 창건설화에 연관지어 지어

    진 듯하다.

 

                                 <대웅전 주련>

    사지(四智) : 여래(如來)의 네 가지 지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

    대웅전(大雄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 51호로 고려시대 상총 스님이 다시 신축하였

    으나 임진왜란때 진주 의병들과 함께 불에 전부 타버렸다.  그후 계행 스님과 극명

    스님께서 다시 신축하였고 이후 조선말 보우스님등이 보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대웅전은 처마선이 매우길어 처마를 바처든 보조기둥이 돗보이며 대웅전

    전면은 화려하나 뒷면은 매우 간결하고 수수하게 지어졌다.

 

    내부의 석가모니부처님과 문수 보현보살님의 등상은 단아하며 섬세하고 그윽한

    모습이 경외감을 갖게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는 불보살님으로 근래에 보기드문

    미소를 지니고 있다, 또한 신중단에는 한국에 유일한 제석천왕님과 대범천왕님이

    등상불로 모셔져 있는데 이 또한 보는순간 마음을 가다듬는 신장님이 계시는 곳이다.

 

    건물 내부의 장식은 불보살님이 돗보이도록 아주 검소하게 지어졌으며 내부 그림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게 단청된게 특징이다.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보물 제1688호 [지정(등록)일 2010.12.21]

    진주 청곡사 대웅전에는 목조로 만들어진 석가모니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문수

    보살좌상이 우측에는 보현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이 삼존불은 제작 당시에

    기록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제작자 등의 불상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乾隆十五年(1750)에 기록된 ‘佛事同?結緣作福錄’에서 “萬曆四十三年乙卯佛像

    造成...” 이라는 불상의 제작연대가 적혀있어 161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의 석가모니불좌상은 신체비례가 알맞고 자세가 안정감 있다. 머리는 둥근 복발

    형에 높게 솟은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방형의 상호는 이마가 넓고,

    반개한 눈과 넓고 편평한 코, 굳게 다문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루어 엄정한 인상을 풍긴다.

    볼과 턱에는 적당히 살이 올라와 있으며, 두툼한 귀는 턱까지 내려와 있어 전체적인

    상호가 원만하다. 넓은 어깨의 네모난 상체를 가졌지만 가슴은 편평하고 아랫배는

    부풀어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아래 살짝 내리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아 손가락을 구부린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하체는 오른발이 왼쪽 무릎위

    에 올라온 결가부좌로 넓고 낮아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착의는 변형의 편단

    우견이며 가슴까지 올라오는 승각기는 衣帶로 묶어 꽃잎형 주름이 나타난다. 왼손에서

    내려온 소매자락은 무릎위에 올려진 오른발을 덮고 왼쪽 무릎 위에 꽃봉오리 모양을

    이루었다. 다리위에 흘러내린 대의자락은 양 다리를 감싸고 4단의 부채형 주름으로

    표현되었다. 좌·우협시인 문수·보현보살좌상은 좌·우 수인의 위치와 좌·우 어깨를 덮는

    이중착의 형식만 다를 뿐 상호와 신체비례 등 전체적인 조형은 본존과 동일하다.

    각각의 두 보살좌상의 상투는 높은 편이며 귀를 휘감은 보발은 귀 뒤쪽을 타고 내려와

    어깨 위에서 조그만 원을 중심으로 두 개의 타원을 형성하고 세 가닥으로 나뉘어

    흘러내렸다. 보관은 높고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보살좌상의 영락장식은

    단순하게 작은 귀걸이와 팔찌만 표현되었다.


    청곡사 목조석가여래삼존불상의 제작자는 관련 기록이 현전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상호의 표현과 신체의 비례, 착의의 표현 등이 1629년 조각승 현진이 조성한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과 유사하다. 청곡사 삼존불좌상은 현진작 불상 중에서 앞서 조성된

    1612년 월명암 목조아미타불좌상보다는 얼굴이 편평한 방형으로 바뀌며 당당한 신체

    표현의 변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후 제작된 관룡사 삼불좌상 보다는 형식화 되지

    않았으며, 옷주름의 표현 등이 자연스럽고 상호의 모습도 안정되어 있다. 또한 본존은

    170cm의 대형 불상으로 현전하는 현진 작 목조불상 중에서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

    하는 秀作으로 현진의 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웅전 신중단 / 제석천왕 대범천왕

 

    나한전(羅漢殿) /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시는 법당으로 요사인 응향전

    뒤쪽 한 단 높은 곳 칠성각 옆에 자리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지었으며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주련>

    四向 : 견도향(見道向), 정류향(頂流向), 일래향(一來向), 불환향(不還向)

    四果 : 수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과(阿那含果), 아라한과(阿羅漢果)

    三明 :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

    六通 : 육신통력이라고도 함. 三明에 천이통,타심통,신족통을 더한 것

 

    칠성각(七星閣) / 조선시대 후기에 지었으며,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산신각(山神閣) / 청곡사의 산신각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로 경내

    가장 상단 구역의 왼쪽에 자리한다. 특이하게도 편액이 할매산신각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안에 봉안한 산신상이 지리산 성모(聖母)를 형상화 하여 할머니 모습의 여인상

    으로 조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산신할매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꼭 이루어 진다하여 산신기도를

                      하는 분들은 꼭 다녀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진 청곡사 홈페이지에서) 

 

 

    업경전(業鏡殿) / 도선 국사가 청곡사를 창건할 때 대웅전 옆에 함께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12년(광해군 4) 중건되었고 다시 조선 후기에 포우 대사가

   대웅전과 여러 부속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중수되었다.

   (수리중이라 문화재청에서 사진다운받음)

 

 업경전이 수리중이라 환학루에 임시로 옮겨져 있었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木造地藏菩薩三尊像및 十王像)

    보물 제1689호 [지정(등록)일 2010.12.21]

    청곡사 업경전은 다른 사찰의 명부전과 같이 지장보살을 비롯해 시왕 등 명부의 존상

    들이 봉안된 전각이다. 업경전에는 불단에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인 지장보살삼존상이 자리하고 좌우로 시왕, 귀왕, 판관, 인왕, 범천·제석천상

    등 총 23구가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이 상들은

    1657년에 조성되었다.


    지장보살삼존상을 포함해 시왕상 및 권속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좌상의 지장보살은

    입상이나 의자상인 다른 권속보다 크게 조성해 위용 있게 표현하지만, 청곡사 지장보살

    좌상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등과 비슷한 크기로 주존을 제작하였다. 모든 존상의

    상호는 둥근 얼굴형에 두 눈은 눈꼬리가 길게 빠졌으며, 코는 높고 콧등이 반듯하고

    입술은 작아 아이 같은 인상을 준다. 각 존상의 비례를 보면,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두부를 크게 제작하였다. 특히 무독귀왕, 시왕 및 권속 등은 쓰고 있는 관모가 높아

    3등신의 신체비례를 하고 있다. 신체는 어깨가 둥글고 좁지만 상체와 하체를 양감

    있게 처리하였다.


    지장보살좌상은 무릎이 높고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으며, 의자상의 시왕과

    범천·제석천상 등도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무릎을 내려뜨린 자세가 다양하고 자연스럽다.

    지장보살좌상은 이중으로 대의를 걸쳤으며, 드러낸 가슴 아래에는 승각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옷주름은 상체의 대의자락은 간략하게 직선으로 양감 있게 처리한 반면 하체의

    옷주름은 곡선을 살려 장식적면서 볼륨감을 살려 두텁게 표현하였다. 장식적인 곡선의

    옷주름 표현은 도명존자의 가사나 시왕의 무릎의 옷주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상호와 신체비례와 달리 두 손은 여성스럽게 가늘고 길게 조각하였다.


    이 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印迎, 誕?, 智邊, 學廉, 瑞明, 法律, 宗誕, 善祐등으로 청곡사

    업경전의 상들을 제외하고는 현재 이들이 조성한 다른 불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청곡사

    불상은 비록 17세기에 활동한 여러 조각승의 불상과 계통이 연결되는 요소가 없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상의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고 조각 수법 또한

    우수하다. 현재 청곡사 업경대 봉안 불상군 가운데 권속에 해당되는 범천상과 제석천상

    은 뛰어난 조각성과 조선시대 현존하는 유일한 범천·제석천상으로서 보물 제1232호

    지정되어 있으며, 금강역사상은 사실적이고 우수한 조각수법을 인정받아 시도유형

    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상태이다.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 국보  제302호  

    조선 후기 가장 대표적인 불화승(佛畵僧)인 의겸(義謙)이 열명의 화승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의겸은 18세기 중후반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 사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불화

    를 제작했으며, 평생 다섯 점의 괘불을 남겼다.

    청곡사 괘불은 의겸이 그린 괘불 중 가장 시대가 앞선 예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특징이다. 의겸이 그린 괘불은 모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다보불과 아미타불, 관음·

    세지보살과 문수·보현보살의 네 보살로 이루어진 공통점을 보인다.

 

    괘불을 살펴보면 중앙의 주불(主佛)은 석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으로 나발과 육계가 뚜렷

    하며 수인은 통인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화문(花紋)이 고르게 시문되어 화려하고

    섬세한 옷을 걸치시고 원만 구족한 상을 나투시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새롭게 갖도록

    조성하였다. 괘불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최상단에는 하나같이 녹색(綠色) 두광(頭光)을 갖추고

    왼쪽에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과 바른 편으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자리하고 있으

    며 바로 아래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가 있다. 석가여래 부처의 10대 제자 중 가섭

    존자와 아난존자 제자상이 배치되어 있고,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

    은 좌보처(左補處)가 문수(文殊), 우보처(右補處)가 보현보살(普賢菩薩)로 이 괘불이 갖고

    있는 뜻은, 영축산에서 설법하고 제자들을 이끌고 내려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참고로 의겸의 그림 아닌 유일한 조각인 관음보살상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인근

    대신동 내원정사에 있다고 합니다.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木造帝釋天·大梵天倚像) 보물 제1232호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

    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다.


    사천왕상이 위엄을 나타내는 무서운 인상임에 비해 제석·대범천상은 보살상같은 자비

    로운 인상이다. 탱화의 경우 보살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그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과 얼굴이 금색인데 비해, 제석천과 대범천은 두 손을 합장한 경우가 많고 얼굴에

    호분으로 흰색을 칠하고 있다.


    청곡사의 것은 탱화의 일반적인 특징과는 다르게 입체감을 나타낸다. 양 손은 합장이

    아니며 옷주름도 보통 탱화의 것과는 다르다. 회화로서는 조선 후기 불교그림에서 흔히

    찾을 수 있지만, 홀로 있거나 새겨져 있는 것은 청곡사의 것이 처음이다.


    조각기법은 조선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예와는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어 우리나라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 범종각은 환학루 옆에 있으며, 팔작지붕에 앞면 4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최근에 지어졌다.

                        해태상 법고 / 해태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부처님 진리의 법을

                   수호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퇴계 이황 (退溪 李滉) 선생님께서 청곡사에 오셔서 남겨두신 시 한편을 살펴 보면서

    청곡사 순례를 마치고 창원 우곡사로 향합니다.

                                                                                                               _()_

 

 

출처 : 백팔고찰순례단
글쓴이 : 청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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