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날 우리집 베란다에서 본 좀 늦은 시각의 일출, 우리 아파트에서는 좌청룡에 해당
이하 옥련암 / 1374년(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ㆍ청진(淸眞)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이 옥련암 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는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하 국지대찰 불지종가 (國之大刹 佛之宗家)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通度寺)입니다. 영축산(靈鷲山) 통도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에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하여 대국통(大國統)이 된 뒤, 646년(선덕왕 15) 왕명에 따라 창건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불사리와 부처의 가사 한 벌을 가져와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모시고, 보름마다 이곳에서 설법을 하여 계율종(戒律宗)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고 하며, 절 이름 ‘통도(通度)’에는 이 절이 자리한 산이 석가모니불의 설법지인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과 함께,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 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금강계단에서 부처님께 우요삼잡(右繞三匝)으로 예를 올립니다.
이하 극락암/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鏡峰) 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1344년(고려 충혜왕 복위 5)에 창건되었다 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1758년(영조 34)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ㆍ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護國禪院) 앞에는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연수당(延壽堂)ㆍ수세전(壽世殿)ㆍ독성각(獨聖閣)과 함께 33조사(祖師) 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三笑窟)과 함께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그리고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虹橋)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극락암 주련> 一輪明月映天心 (일륜명월영천심) 四海生靈荷照臨 (사해생령하조임) 毛呑巨海 芥納須彌 (모탄거해 개납수미) 舌括梵天 口包四海 (설괄범천 구포사해) 我爲法王 於法自在 (아위법왕 어법자재) 禪風大振 法雨遍林 (선풍대진 법우편림) 萬里白雲 一輪紅日 (만리백운 일륜홍일) 一念忘機 太虛無沾 (일념망기 태허무점) 일륜의 밝은 달이 천심을 비추니 사해의 생령이 이 것에 인연한다. 가는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에 수미산이 들어가네 혀로는 대범천을 아우르고 입으로는 사해바다 포용하네 나는 법왕이라 법 쓰는 것에 자유롭네 선의 가풍 크게 떨치니 불법의 비 총림에 두루 내리고 하늘 가득 흰 구름 속에 한 바퀴 붉은 태양처럼 한 생각마저 잊는 기틀 너른 허공에 티 한점 없네
이하 반야암 / 1999년 지안스님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지안스님께서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하 자장암 /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수도하던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회봉대사(檜峰大師)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하며, 1963년 용복화상(龍福和尙)이 중수 하였다. 법당은 암벽을 의지하여 서향하였고 그 옆에는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거대한 마애 불(磨崖佛)이 있다.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石間水)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金蛙孔)이 있어 유명하다. 이능화 (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下卷) ‘승유어급변화금와(僧遺魚及變化金 蛙)’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 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寺僧)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 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神通)으로 자라게 한 것 이라 말한다.”
통도사 경내에서 유일한 자장암 마애불. 아미타불과 좌협시 관세음보살 우협시 대세지보살
자장암 부처님 진신사리탑
이하 사명암 /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이라고 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泗溟大師)를 흠모(欽慕)한 이기(爾奇)ㆍ신백(信白)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사명암 극락보전 주련> 報化非眞了妄緣 보화비진료망연 法身淸淨廣無邊 법신청정광무변 千江有水千江月 천강유수천강월 萬里無雲萬里天 만리무운만리천 보신, 화신 참이 아니고 망연으로 인함이니 법신은 청정해서 가없구나. 천 강의 물에 천 강의 달이여 만 리에 구름이 없으니 만 리의 하늘이더라. 이 게송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나오는 종경 스님의 게송 중 한 구절입니다.
이하 성흥사 / 성흥사는 신라말엽 당시의 고승인 무염(無染) 스님이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 를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고 난 후, 이를 기념하여 창건된 고찰이라 전한다. 창건 당시에는 승려수가 500여 명에 달하는 대가람이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침입해오는 왜적 의 침입을 막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구국의 도량으로 이름 높았다. 그러나 잦은 화재로 여러 차례의 중건과 이건을 거듭하여, 현재는 대웅전 건물만이 조선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 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 하였는가?
立春이나 대보름날 전야에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으로 복을 지어야 하는데 입춘날 깜박하고 잊은 사람은 대보름날은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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