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보물 제201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이 일대는 통일신라 시대의 신인사란 절이 있었던 곳이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위에 마애조상군의 만다라적인 조각이 회화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신인종 계통의 사찰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남쪽의 큰 암석에는 목조 건물의 유구가 남아 있고, 폐탑이 흩어져 있어 남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는 남향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면에는 삼존불과 독립된 보살상이 있고, 동면에는 본존과 보살 그리고 비천상이 있으며 그 옆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이 있다. 그러나 모두 마멸이 심하여 자세한 조각수법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북면에는 9층과 7층의 쌍탑이 있으며
서면에는 보리수와 여래상이 있다. 이렇게 불상, 비천, 보살, 탑 등 화려한 조각의 만다라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북면
석불좌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목탑이 서 있는데 동편의 탑은 9층이고, 서편의 탑은 7층입니다. 추녀
끝마다 풍경이 달려 있고 탑 꼭대기에는 상륜부가 있습니다 그 위에 수연, 용차, 보주, 찰주 등
상륜부가 온전하게 조각 되어있어서 신라 목탑의 형태를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 탑때문에 탑곡(탑골)이라고 합니다.
북면 동편의 탑은 9층이고, 이 탑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탑의 각 지붕 가에는 풍탁이 달려있고, 각 층마다 두 개의 창문이 열려 있는데 열린 쪽을 더 깊게
새겨서 탑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가운데 연화좌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 부처님 머리 위에는 천개가 떠서 햇빛을
가려주고, 천개 위로 하늘 여인 두 사람이 나르고 있다.
서편 7층탑
▼서면
여래좌상 / 서면은 부처님 한 분과 비천 하나가 새겨져 있습니다 양 옆에는 협시보살 대신에
오른 편에는 능수버들이 있고 왼편에는 대나무가 있는 그늘 아래 부처님이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머리위에는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으며 눈과 코, 입술이 이 바위 새겨진
어느 불상보다도 근엄한 표정입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으로 된 두광이 보입니다 부처님의 머리위에는
비천이 피리를 불면서 옆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있으며, 이 면은 동방유리광의 세계이고 부처님은
약사여래라고 생각 됩니다
▼남면
삼존불 앞 중간에 있는 바위 면에는 나뭇가지 아래서 결가부좌를 하고 손을
가슴에 올리고 탑을 향하여 참선을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감실의 삼존불 / 남면 바위 면에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세 불상을 새겼는데 본존불은 큰
연화대좌위에 앉아있고, 양쪽 협시보살은 모두 합장을 하고, 본존불을 향하여 고개를 바싹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동쪽에는 보리수가 있고 그늘 아래는 삼존불이 자리에 같이 앉아서 정답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고 합니다.
삼존불 가운데 본존상은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옷자락이 무릎 아래로 물결치는 듯 주름이
잡혀있다 이러한 옷자락을 상현좌 라고 합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연꽃위에 앉아 합장을 하고 머리를 본존불을 향하여 돌리고 있어서 두광도
타원형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은 변화를 주면서도 얇은 조각에 입체적인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왼쪽 협시보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합장을 하고 본존불 가까이에 앉아 있습니다
입체여래상 / 석조여래입상은 몸통과 다리부분이 다른 돌로 만들어져 서 있다. 대석에는 발만
새겨져 있고 발목 윗부분만 하나의 돌로 된 불상이다.
몸체는 대석의 홈에 끼워 넣었고 두광과 얼굴일부가 손상되었으나 볼록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로 보아
여성처럼 보입니다. 손모양은 좌상에만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을 입상에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왼손을 배에 대고 있기 때문에 출산을 도와주는 안산불이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면
두 불상과 그 둘레에 하늘을 나는 듯한 천인 상이 여러 구 보인다. 두 부처님은 선명하지만 비천상은
마모가 심해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두 불상 중 본존불은 아미타여래로 연화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원형 두광을 하고 계십니다. 본존불 왼쪽에 있는 협시보살은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양 어깨에는
천의가 덮혀져 있으며 두 손을 합장하고 본존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동편 두 번째 바위 면에는 보리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결가부좌로 앉아 선정에 든
스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옥룡암 / 마애조상군 가는 길목에
옥룡암은 1924년 박 일정 스님이 짓기 시작해, 이 심신녀 보살과 이분이 키운 비구니 만석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절로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1942년 8월 이 육사님이 이곳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쓴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 에게” 란
시조가 있습니다.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촉 태우고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으매라
저 달 상기 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하노라.
서출지
사적 제138호
면적 : 7,021㎡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973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이다.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
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보물 제124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이 탑은 통일 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위 서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형이다.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신중상을 돋을
새김한 것이 도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을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위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 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출지 옆 무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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