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버풀 지역의 한 건물, "신을 믿는가?"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벌이는 종교는 역시 기독교(Christ 敎)일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종종 지하철을 누비며 큰소리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기독교 포교자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물론 교리와 종교적 신념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테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왜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포교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건가 나름 아쉬움(?)이 들기도 하더군요.
이런 상황은 외국에서도 비슷한 듯 합니다. 거리의 담벼락이나 공공장소에 걸린 플래카드, 버스에 부착된 종교 관련 슬로건은 기독교 신자들이 만든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내용은 대체로 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이더군요.
"비록 당신은 볼 수 없지만, 신은 존재한다."
"두가지 위대한 진실. 1.신은 존재하며 2.당신은 신이 아니다."
노골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에게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신지옥'도 비슷한 맥락이죠.
"신은 무신론자를 믿지 않는다, 고로 무신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비롯, 인류 역사상 '유신론자(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을 묶어서 호칭하겠습니다)' 들의 결집과 활동은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두드러져 왔습니다. 반면, 신의 존재에 부정적인 무신론자들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채 침묵을 지켜왔지요.
하지만, 이제 고요하던 무신론자들이 조금씩 '반격'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the Atheist Bus Campaign)이 벌어져 화제를 모았는데요.
런던의 명물인 빨간 이층 버스에 "아마도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인생을 즐기세요(There's probably no God.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라는 광고 문구를 싣기 위해 모금 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신은 존재한다.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유신론자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무신론자들의 첫 대중적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년 1월 런던시내를 달릴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을 주도한 영국 인도주의 협회(The British Humanist Association, BHA)는 10월21일 인터넷으로 모금을 시작, 일주일만에 14만 파운드(약 2억8000만원)가 모였다고 밝혔습니다.
처음 BHA에서는 5,500파운드(약 1,100만원) 정도만 모여도 성공이라고 여겼답니다. 무신론자 광고에 선뜻 돈을 기부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영국 가디언지와 BBC방송 등을 통해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신론자 버스 광고 캠페인 사이트 http://www.atheistcampaign.org
놀랍게도 이 캠페인에 돈을 보낸 사람들은 7~8살 어린이로부터 가정주부,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런던에서만 운행될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서 돈을 송금하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덕분에 내년 1월 4주 동안 버스 30대에 광고문구를 부착하려던 기존의 계획이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이 캠페인을 시작한 코미디 작가 애리언 셰린(28세의 젊은 여성이군요)은 "대중적 성원에 힘입어 맨체스터,애딘버러 등 다른 도시에서도 캠페인을 진행하고, 지하철 광고나 길거리에도 추가로 플래카드를 부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네요.이런 식으로 건물, 버스정류장 등에 플래카드를 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셰린양은 "인터넷과 버스 광고에서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문구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고 합니다. "기독교도들이 내세에 가치를 부여하듯, 나를 비롯한 무신론자들은 현세 중심,세속적인 국가와 학교,정부를 원하며 현실에서 행복을 찾고 싶어한다. 가치관의 차이일 뿐인데 한 쪽만 옳다고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얘기였습니다.
일부 적극적 무신론자들은 슬로건에서 '아마도(probably)'를 생략하면 어떻게느냐고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신은 존재한다"는 유신론자들의 확신에 비해 "아마도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가 '약하다'는 지적이었죠.
이에 대해 캠페인 주최 측은 "우리가 유신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 또한 없다"며 "두 가치관 모두 존중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를 넣었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캠페인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지식인은 역시 리처드 도킨스 옥스포드대 교수입니다. 국내에 <만들어진 신>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The God Delusion>의 저자이죠.
리처드 도킨스 교수.원래 전공은 동물행동학입니다. 1976년<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로 일략 스타가 됐지요.
"신은 착각이며, 그것도 유해한 착각"이라고 주장,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로 꼽히는 도킨스 교수는 이번 버스 캠페인 계획을 듣고 선뜻 5,500파운드(약 1,1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답니다.
"종교는 인간을 내세에 치중하게 만듦으로써 현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노력없는 대가를 바라게 만든다. 이번 버스 광고로 모든 이들이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소감을 표했더군요.
주목할 점은 영국 내 종교계, 즉 유신론자들 역시 이번 캠페인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가디언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 감리교와 성공회는 물론 이슬람교 측에서도 "인생의 가장 심오한 질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종교적, 철학적 논의를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물론, '인생을 즐기라'는 문구에 대해 한심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일부 유신론자들도 있었지만, 상반된 의견에 대해 관용적 시선을 보내는 영국 종교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공격의 날을 세우기보다는, 다른 점을 인정하고 공존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요건이겠지요.
어쨌거나, 내년 1월 런던에서 무신론자 버스를 목격하시는 분들은 '직찍'으로 한장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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