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사찰 탐방>-③산곡사·사조사·오조사
관광지로 바뀌어가는 중국 선종 사찰고우스님, 달리는 버스에서 설법 펼쳐
(우한=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가는 길이 잘못되면 문명의 이기가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의 길은 환경이나 조건이 나빠도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초조(初祖) 달마부터 육조(六祖) 혜능까지 중국 선불교의 원류를 찾아나선 길은 멀었다. 중국 대륙 여기저기 퍼져 있는 그들의 수행처는 지도상에서 가깝게 보여도 버스로 4-5시간은 가야 다음 목적지에 닿는 경우가 많았다.
소림사가 있는 허난(河南)성 등펑(登封)에서 후베이(湖北)성 성도인 우한(武漢)을 거쳐 안후이(安徽)성 시엔샨(潛山)현에 있는 천주산(天柱山) 산곡사(山谷寺·삼조사)에 이르는 길도 꽤 멀었다. 정저우와 우한의 중간지점인 허베이성 신양(新陽)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7시에 버스에 탑승해 우한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오후 6시30분쯤이었다.
도로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지라 버스는 그대로 '이동 법당'이 되어 고우스님의 설법 장소로 바뀐다. 고우스님은 순례단을 실은 두 대의 버스에 번갈아 올라 마이크를 잡고 선불교를 강의했다. 우한에서 산곡사로 이동하던 중 황스(黃石)시 부근 고속도로상에서 차량폭발사고가 일어나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져 버스가 울퉁불퉁한 일반도로로 우회하는 동안에도 고우스님의 설법은 이어졌다.
"혜가스님은 달마스님을 만나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났고, 나병환자였던 삼조 승찬(僧璨·?-606)스님은 전생에 나쁜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혜가스님으로부터 '그 죄를 갖고 오라'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두 회광반조(回光返照·밖으로 향하여 구하는 마음을 되돌이켜 자기내부의 불성과 본래면목을 밝히는 것)를 통해 불안이나 죄의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고우스님은 "죄의식은 자기를 학대하고 나아가 남까지 학대하게 만든다"면서 "여기서 벗어나려면 돌로 풀을 잠시 눌러놓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없다'는 공(空)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空)이 무엇이냐. 있는 그대로가 공입니다. 스위스에서 1천200명의 물리학자들이 질량화하지 않는 소립자를 발견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소립자가 발견된다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부처님 말씀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셈이겠죠. 이는 존재의 형상 뿐 아니라 본질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것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 아는 것이어서 무한경쟁이 아니라 무한향상에 이르게 합니다. 공 사상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투쟁과 갈등에서 벗어나 공존과 평화에 이르는 길입니다."
고우스님의 '이동 법당' 설법이 끝나고 산곡사에 당도했을 때 이 절의 방장(한국의 주지)인 콴룽(寬容·37)스님이 입구에서 환영단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취재진과 홍보용 영상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맨까지 동원한 '준비된' 환영행사였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고우스님은 선종사찰 순례단에게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격식이라며 환영예식에 응하지 않았다. 평소 부드러운 말투나 행동과는 달리 노선승의 엄격함이 추상같았다.
결국 고우스님의 오랜 도반이자 무문관(無門關·기한을 정해 그 때까지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는 선방) 수행처로 유명한 천성산 조계암에 주석하고 있는 상현(尙玄)스님과 순례단에 뒤늦게 합류한 철산(鐵山·문경 대성사 선원장)스님이 예의상 환영행사에 응했다. 원치 않았던 환영행사 때문인지 어둑한 길을 따라 승찬대사가 선 채로 열반했다는 곳에 세운 해탈기념탑과 사리탑 등을 둘러보고 나오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산곡사의 젊은 방장스님은 이날 중국 불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1988년 출가했다는 그의 명함에는 여러 대학에서 취득한 기업관리학석사, 문학석사, 철학박사의 학력과 함께 안후이성 청년위원 등의 직함이 나열돼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중국 5대 선종 가운데 임제종의 제43대 제자라고 스스로 밝혔으나 한국방문객들의 눈에는 영민하고 의욕에 넘치는 CEO형 사찰 관리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순례단에 탄복해 기쁜 마음에 불교의식에서 가장 높은 우대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앞으로 한국불교와 더 많은 교류를 통해 서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바라며, 불교를 이끌어나가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젊은 방장스님은 "중국에서 문화혁명 후 10여 년간 불교가 쇠퇴했으나 개혁개방정책 이후 국가가 사찰 복원, 불교인재 양성, 경전 복사, 법회장소 마련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올해 설에 하루 5만명 가량의 참배객이 산곡사를 찾았으며, 갈수록 늘어나는 참배객을 위해 절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철산스님으로부터 "삼조스님이 어디에 있느냐" "달마스님은 어디서 무얼 하느냐" 등 질책어린 질문을 받고 당황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오랜 기간 맥이 끊긴 선불교의 종주국이 이제는 거꾸로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선(禪)을 배워가야 할 형편에 놓여 있음을 젊은 스님은 보여줬다.
안후이성에서 후베이성의 우한 쪽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황메이(黃梅)현 쌍봉산(雙峰山)의 사조사(四祖寺)는 도신(道信·580-651)선사가 30년간 주석한 곳이다. 거기서 10여km 떨어진 곳에 홍인(弘忍·594-674) 선사가 머물렀던 빙무산(憑茂山) 오조사(五祖寺)가 있다.
쌍봉산과 빙무산은 그 위치 때문에 각각 서산(西山)과 동산(東山)으로 불린다. 홍인 선사가 설법했던 동산의 오조사는 중국 선종의 법문이 본격적으로 행해진 까닭에 이른바 '동산법문(東山法門)'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홍인선사의 스승인 도신선사를 동산법문의 초조(初祖)로 부른다.
고우스님은 "선종 6대조 가운데 3대조까지는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4대조부터 도량을 갖고 정주하면서 법을 폈다"면서 "사조 도신선사의 문하에는 500여 명의 수행자가, 오조 홍인선사 문하에는 1천여명의 대중이 수학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신라 출신 법랑(法朗·632-?)스님은 도신선사의 4대 제자로 꼽힐 정도였으며, 도신선사의 전신을 모신 사조사의 비로탑 안에는 법랑스님의 입상이 함께 있다. 법랑스님의 문하에 있던 신행(神行·704-779)스님이 다시 중국에 가서 선(禪)을 배워와 전파함으로써 훗날 한국불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기원이 됐으니 도신선사와 한국 선불교의 인연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오조 홍인선사의 제자인 대통 신수(大通 神秀·606-706)와 육조 혜능(六祖 慧能·638-713)은 각각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을 일으켰다. 신수선사는 북방 뤄양(洛陽)으로 가서 점수주의(漸修主義) 선법을, 혜능선사는 남방에서 돈오주의(頓悟主義) 선법을 펼쳤다. 한국불교 선종은 혜능선사의 남종선을 잇고 있다.
쌍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사조사는 근래에 복원되어 규모가 크고 대밭으로 둘러싸인 경관도 좋은 편이다. 도량의 오른쪽 산등성이에 조성된 사조탑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면 시야가 확 트일 뿐 아니라 좌우 산줄기가 포근하게 감싼 명당에 사찰이 조성돼 있음을 보게 된다.
오조 홍인선사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 참선을 하는 좌선법을 실천했는데 이는 전법제자인 홍인선사에 이르러 선(禪)과 노동을 함께 닦는 것으로 자리잡아 훗날 당나라 백장 회해(百丈 懷海·720-814) 대사에 이르러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청규(淸規)를 낳게 된다.
오조사에는 홍인선사의 출생 이력에서 연유한 듯 '성모전(聖母殿)'이 따로 지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찰의 육조전에는 도신선사의 제자였던 혜능 행자가 방아를 찧던 자리가 보존돼 있고, 왕대밭이 조성된 사찰 뒤편에는 도신선사가 혜능에게 몰래 법의를 전해줬다는 수법동굴 등이 남아 있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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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3/13 15: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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