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중국 선종사찰 탐방>-②소림사

청원1 2007. 3. 13. 20:42
<중국 선종사찰 탐방>-②소림사
달마대사 9년 면벽 수행동굴 보존
50여개 학교에서 2만여명 무술연마

(정저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중국의 '어머니 강'으로 불리는 황허(黃河)를 건너자 허난(河南)성의 성도인 정저우(鄭州)시가 나타난다. 허베이(河北)의 끝없는 벌판은 너무 넓은데다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붙은 듯 해서 오히려 답답하고 막막한 느낌을 주는데 허난 땅에 이르자 비로소 황량하던 벌판에 푸른 기운이 돌고, 하늘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들쭉날쭉한 산봉우리가 입체적 거리감을 주면서 편안한 마음을 전해준다.

   임제사와 백림선사를 순례하고 다음 행선지인 정저우 서쪽 방향의 소림사(少林寺)로 가기 위해 스자좡(石家莊)을 출발한 시간이 6일 새벽 5시30분. 정저우를 거쳐 소림사가 있는 등펑(登封)시에 도착하기까지 버스로 7시간이 소요됐다.

   숭산(崇山)이 병풍처럼 둘러친 곳에 자리잡은 등펑은 인구 30만명 가량의 중소 도시. 산자락에 위치한 소림사에 가까울수록 '소림무술연구원' '숭산소림정무원' '소룡무원' 등 대규모 무술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 관광가이드에 따르면 소림사 근처에 들어선 무술학교만 50여 곳이 넘고 이곳에서 2만여명의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한다고 했다. 무술을 익히는 학생에는 한국인을 비롯해 미국·영국·독일인 등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했다.

   영화 등을 통해 세계에 소림무술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지 등펑시와 소림사는 이미 상업적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소림사는 불교 선종의 1대조(一代祖)인 보리 달마(普提 達摩)대사가 9년간 면벽 수행한 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선법을 2조(二祖) 혜가(慧可·487-593)에게 전한 곳이다. 달마대사가 전법의 증표로 혜가스님에게 가사(袈裟)를 전했던 방식은 육조(六祖) 혜능대사까지 이어진다.

   달마대사는 원래 남인도 또는 파사국(波斯國)의 셋째왕자로 태어나 140세의 나이에 구불교의 폐해에 빠진 중국에 정법불교를 전하기 위해 건너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광저우(廣州)에 도착해 양(梁)나라 무제(武帝)를 만났으나 자신의 선(禪)불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북위(北魏)의 숭산 소림사로 가서 9년 동안 벽관(壁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양 무제는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전 번역도 했으며 또한 많은 승려를 육성했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주를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황제의 공덕은 하나도 없다(所無功德)"고 대답한 뒤 양쯔(楊子)강을 건너 위나라로 향했다고 한다.

   달마대사의 전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며, 입적한 시기도 서기 436년, 495년, 528년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전설적 인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혜가스님이 눈 속에서 팔을 절단하여 달마대사에게 구도심을 보인 뒤 선법을 전수받았다는 입설정(立雪停)이 소림사에 존재한다. 1928년 소실된 뒤 중건한 사찰 안에는 9년 면벽한 달마대사의 모습이 어려 있다는 바위 등이 있다.

   소림사 뒤편 숭산 8부 능선쯤에는 달마대사가 9년 면벽한 달마동굴이 있다. 동굴에 이르려면 오토바이와 경운기를 결합한 듯한 운송수단을 이용해 10여분간 산자락의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다가 돌계단을 이용해 30여분간 걸어올라가야 한다. 달마동굴은 한두 사람이 앉아 있을 만한 좁은 공간으로 벽면에 사람의 팔뚝 형상을 한 바위기둥이 있다. 사람들은 그 형상을 혜가스님이 절단한 팔로 여긴다고 한다. 거기에 '本來面目(본래면목)'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1천512m에 이르는 숭산은 중국의 5악(五嶽)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정저우에서 등펑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올 때 먼데서 보면 마치 코끼리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

   소림사의 뒤편에 있는 달마동굴에서 내려오는 길에 달마대사가 머물렀던 자리인 초조암(初祖庵)이 있다. 법당 안팎의 기둥을 옥돌로 만든 고색창연한 암자인데 현재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법당 앞마당에 조그만 채소밭을 가꾸어 놓았고 뒤편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채가 지어져 있다.

   초조암은 선종의 종조가 머물렀던 암자인데도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산아래 소림사와는 달리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고 법당 안에는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다. 법당 앞에는 혜능스님이 다녀가면서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고목이 되어 서 있다. 초조암 아래 소림사 인근에는 벽돌로 쌓은 전탑 부도 1천기가 숲을 이룬 탑림(塔林)이 장관을 연출한다.

   소림사 앞쪽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건너편 산에 혜가스님이 머물렀던 이조암(二祖庵)이 있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한 이조암에 이르려면 10여분간 리프트를 타야 한다. 초조암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조암에는 스승 달마대사가 뚫어주었다는 네 가지 물맛의 우물이 있다. 이곳 역시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관리가 허술해 보였고, 참배객이 시주를 할 때마다 작은 종을 울려주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법당을 지키고 있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뤄양(洛陽)에서 태어난 혜가스님은 출가 전 노장(老莊)과 불교경전을 공부하다가 인근 향산사(香山寺)로 출가했으며 두통과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소림사 달마대사를 찾아가 깨우침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탐방길에 동행한 고우스님은 "도교와 유교에 통달했던 혜가스님은 마음의 불안정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달마대사를 찾아가 '불안한 마음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라는 대답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부처의 깨달음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공(空)과 무(無)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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